19화. 불리한 자리에서
by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제1부
19화. 불리한 자리에서
월요일 아침, 민호는 출근하자마자 팀장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오전 회의 전에 잠깐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민호는 지난주에 공유한 프로젝트 일정 관리안을 떠올렸다. 추가 수정 사항이 있었는지, 아니면 자신의 역할에 관해 새로 정해진 내용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문서를 다시 열어 주요 항목을 확인했다. 수정 대응 기준과 담당자별 역할은 정리되어 있었고, 외부 검토가 늦어질 경우의 대체 일정도 마련되어 있었다.
오전 아홉 시가 조금 지나 팀장에게 갔다.
“부르셨습니까?”
팀장은 책상 위에 놓인 자료를 가리켰다.
“지난번에 정리한 프로젝트 말입니다. 전체적인 방향은 괜찮은데, 담당 부서에서 한 가지 우려를 전달해 왔습니다. 수정 요청이 여러 건 동시에 들어오면 각 부서가 자기 업무를 먼저 처리하려 할 수 있다는 겁니다.”
민호는 자료를 받아 살펴보았다.
“우선순위를 정하는 기준은 마련했는데, 부서 간에 의견이 다를 때 조정하는 절차는 충분히 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부분은 민호 씨가 중심이 되어 조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다만 모든 수정 사항을 직접 판단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각 부서에서 판단할 수 있는 범위는 맡기고, 전체 일정이나 최종 제출에 영향을 주는 문제를 조정하는 역할을 해 주세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우선 각 부서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과 필요한 시간을 확인하고, 공통 기준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팀장은 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번 프로젝트가 끝나면 결과를 함께 검토합시다. 민호 씨가 어떤 역할을 맡았고, 그 역할이 실제로 어떤 성과를 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호는 그 말을 듣고 조금 긴장했다.
자신이 요청했던 구체적인 평가의 기회가 다가오고 있었다. 동시에 부담도 커졌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앞으로 더 넓은 역할을 맡을 기회가 줄어들 수도 있었다.
그는 자리로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기회가 주어졌다고 해서 모든 것이 유리해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책임이 커지면 자신의 부족한 부분도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책임을 피하고 싶지는 않았다.
민호는 회의실 예약을 확인한 뒤 관련 부서 담당자들에게 연락했다. 각 부서가 수정 사항을 처리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일정이 겹쳤을 때 어떤 문제가 생기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담당자는 수정 요청이 들어오면 가능한 한 빨리 처리할 수 있다고 답했다. 두 번째 담당자는 검토 자료가 충분히 제공되어야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세 번째 담당자는 자신의 부서에서 먼저 확인할 사항이 정해져 있지 않으면 다른 부서의 자료를 기다리느라 시간이 지체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민호는 각자의 의견을 들으며 메모했다.
모두 자기 부서의 업무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각 부서가 자신의 일만 우선하면 전체 일정은 오히려 더 늦어질 수 있었다.
민호는 담당자들에게 말했다.
“각 부서에서 필요한 시간을 충분히 고려하겠습니다. 다만 최종 제출일에 영향을 주는 항목은 전체 일정과 함께 판단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할 때는 수정의 중요도와 필요한 시간을 같이 살펴보겠습니다.”
담당자들은 대체로 동의했지만, 세부적인 기준을 정하는 데에는 의견 차이가 있었다.
민호는 회의를 마치고 돌아와 메모를 정리했다.
각 부서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방법은 없었다. 어떤 항목을 먼저 처리하면 다른 항목은 기다려야 했다. 중요한 것은 모두에게 편리한 순서를 찾는 것이 아니라, 전체 일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만드는 일이었다.
민호는 한 가지 원칙을 정했다.
최종 제출에 직접 영향을 주는 항목을 먼저 검토하되, 다른 항목이 무기한 뒤로 밀리지 않도록 처리 시점을 함께 지정한다.
완벽한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왜 그런 순서를 정했는지 설명할 수는 있었다.
그는 수정안을 팀장에게 공유했다.
이번에는 답장을 기다리는 동안 마음이 조급해졌다. 자신의 판단이 받아들여질지, 다른 부서에서 반발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었다.
잠시 뒤 팀장에게서 답장이 왔다.
기준은 타당합니다. 다만 실제 적용 과정에서 조정이 필요할 수 있으니, 담당자들에게 기준을 설명하고 의견을 받아 확정합시다.
민호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짧게 숨을 내쉬었다.
한 번에 끝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이 예전만큼 답답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준을 만들고, 적용해 보고, 문제가 드러나면 다시 조정하면 되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상황을 미리 완벽하게 예상하는 것이 아니라,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겼을 때 다시 판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일이었다.
***
그날 저녁, 민호는 태성당구장에 도착했다.
당구장 안에는 성철과 성호가 함께 있었다. 두 사람은 경기를 마친 뒤 당구대 위의 공을 정리하고 있었다.
성철이 민호를 발견하고 말했다.
“오늘은 제가 성호 씨에게 한 수 배웠습니다.”
성호가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입니까. 제가 운 좋게 몇 공을 맞힌 겁니다.”
민호는 웃으며 물었다.
“경기가 어땠습니까?”
성철이 대답했다.
“초반에는 제가 앞서갔는데, 중간에 어려운 공을 연달아 놓쳤습니다. 그사이에 성호 씨가 따라왔고요.”
성호가 말을 이었다.
“저도 좋은 기회가 여러 번 있었는데 놓쳤습니다. 마지막에는 성철 씨가 먼저 실수해서 제가 유리해졌고요.”
민호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수 차가 좁혀지는 경기의 모습을 떠올렸다. 앞서던 사람이 실수하고, 뒤지던 사람이 기회를 잡으면서 흐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성철이 민호에게 물었다.
“오늘은 누구와 치시겠습니까?”
민호는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성호 씨와 한 게임 해 보고 싶습니다.”
성호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곧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두 사람은 당구대 양쪽에 섰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민호도 인사하고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뱅킹을 한 뒤 민호가 먼저 초구를 치게 되었다.
첫 공은 성공했다. 다음 공도 나쁘지 않았다. 민호는 최근 연습한 대로 공의 두께와 속도를 살피며 차분하게 경기를 이어 갔다.
반면 성호는 초반에 몇 차례 실수했다. 공이 예상보다 짧게 움직이거나, 제2적구를 비켜 가는 경우가 있었다.
민호는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앞서고 있었다.
지난번 재식과의 경기에서 점수 차를 지키려다가 오히려 조급해졌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점수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했다. 앞서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되, 그 사실이 다음 공의 선택을 바꾸게 두지는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성호가 다시 공을 쳤다.
이번에는 까다로운 배치에서 정확하게 득점했다. 수구는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고, 다음 공도 치기 좋은 위치에 남았다.
민호는 큐 끝에 초크를 가볍게 문지르며 성호의 다음 샷을 지켜보았다.
성호는 연속 득점에 성공했다.
점수 차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성호가 초반에 실수할 때는 경기가 수월하게 흘러갈 것 같았다. 그러나 성호가 연속 득점을 시작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민호는 공을 바라보았다.
이번 배치는 자신에게 유리해 보였다. 수구와 제1적구의 위치가 적당했고, 제2적구로 이어지는 경로도 비교적 분명했다. 성공 가능성이 높은 공이었다.
그런데 막상 큐를 잡자 마음이 복잡해졌다.
이번 공을 놓치면 성호에게 완전히 흐름을 넘겨줄 수 있었다. 반드시 득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민호는 자세를 잡았다가 풀었다.
공을 다시 살펴보았다. 경로는 처음과 같았다. 각도가 갑자기 바뀐 것도 아니고, 수구의 위치가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자신이 느끼는 부담은 달라져 있었다.
민호는 큐를 내려놓고 당구대 옆으로 이동했다.
자신이 지금 어려워하는 것은 공의 각도가 아니었다. 앞서고 있던 경기가 팽팽해졌다는 사실, 조금 전까지 유리했던 상황이 더는 유리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같았다. 공을 살피고, 경로를 선택하고,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속도와 두께로 스트로크하는 것.
민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에는 처음 생각했던 경로를 선택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으로 향했다. 각도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수구가 예상보다 조금 짧게 움직이며 제2적구에 닿지 못했다.
득점 실패였다.
민호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곧바로 큐를 내려놓고 공의 위치를 살폈다.
성호가 다가와 공을 바라보았다.
“조금 짧게 나왔네요.”
“네. 두께는 괜찮았는데 속도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민호는 공의 최종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처음부터 다른 길을 선택했어야 했는지, 같은 길에서 속도만 바꾸면 됐을지는 다음에 비슷한 공이 나오면 다시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성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저도 아까 몇 번 놓치고 나서 같은 공을 다시 만났을 때 어떻게 쳐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앞에서 실수한 기억이 남아 있으면 다음 공도 어렵게 보이더라고요.”
민호는 그 말을 듣고 성호를 바라보았다.
성호 역시 경기 초반에는 실수를 반복했다. 하지만 연속 득점을 시작한 뒤에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공을 차분하게 선택했다. 그렇다고 실수를 완전히 극복한 것은 아니었다. 마지막까지 성호도 긴장했고, 때로는 판단이 흔들렸다.
민호는 성호를 초반의 실수만으로 판단하지 않으려 했다. 동시에 성호가 연속 득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완벽한 선수가 되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한 사람의 실력은 몇 번의 성공이나 실패만으로 전부 설명되지 않았다.
경기는 계속되었다.
성호는 좋은 득점을 이어 가며 결국 민호를 따라잡았다. 민호에게도 몇 차례 기회가 있었지만, 중요한 순간마다 한 번씩 실수가 나왔다.
마지막에는 성호가 득점에 성공하면서 경기가 끝났다.
민호는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초반에는 자신이 앞서고 있었다. 성호의 실수가 이어지자 이대로 경기를 마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성호가 흐름을 되찾자 자신의 판단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잘 쳤습니다.”
민호가 인사했다.
성호도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중간에는 민호 씨가 많이 앞서 있어서 제가 따라잡기 어려울 줄 알았습니다.”
민호는 웃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수 차가 줄어드니까 공이 전보다 어려워 보이더군요.”
성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저는 반대였습니다. 초반에 계속 실수할 때는 모든 공이 어려워 보였습니다. 그러다 한두 공이 들어가니까 조금씩 평소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당구대를 정리했다.
민호는 성호의 말을 곱씹었다. 같은 경기 안에서도 사람마다 느끼는 상황은 달랐다. 자신은 앞서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부담을 느꼈고, 성호는 뒤지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초반에 위축되었다.
그러나 성호는 기회가 왔을 때 다시 자신의 공에 집중했다. 민호는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도 자신의 점수 차를 지키려는 마음에 흔들렸다.
앞서고 있다고 해서 편안한 것은 아니었다. 뒤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불리한 마음에 갇혀 있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다음 공을 어떻게 판단하고 실행하느냐가 중요했다.
***
태성이 민호에게 물었다.
“오늘 경기는 어땠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초반에는 제가 유리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호 씨가 실수를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성호 씨가 연속 득점을 시작하니까 제가 오히려 흔들렸습니다.”
“왜 흔들렸다고 생각합니까?”
“앞서고 있는 상황을 잃고 싶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편하게 치던 공도 점수 차가 줄어드니까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공처럼 느껴졌습니다.”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요. 하지만 앞서고 있다는 사실이 공의 각도를 바꾸지는 않습니다. 점수가 달라지면 마음은 달라질 수 있어도, 실제로 살펴야 할 것은 여전히 공의 위치와 경로입니다.”
민호는 웃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막상 경기를 하면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 연습하는 거겠지요.”
태성은 공을 정리하며 덧붙였다.
“다만 오늘 한 가지는 잘하셨습니다. 놓친 공을 놓친 이유를 살펴보려고 하셨잖습니까. 그 순간에 상대가 따라잡았다는 사실만 생각했다면, 다음 공도 더 급하게 쳤을 겁니다.”
민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실수한 공을 되돌릴 수는 없었다. 점수 차가 좁혀진 것도 되돌릴 수 없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상황에서 다음 공을 어떻게 칠지 판단하는 것이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민호는 큐를 케이스에 넣으며 말했다.
“다음에는 앞서고 있을 때도 뒤지고 있을 때도, 점수보다 공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태성은 웃었다.
“그렇게 한 번에 되면 당구가 훨씬 쉬워지겠지요.”
민호도 웃었다.
당구는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 순간에 흔들리는지는 조금씩 알 수 있게 되었다.
***
집으로 돌아온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오늘 회사에서는 여러 부서의 요구를 조정해야 했다. 모든 사람에게 편리한 방법은 없었지만, 전체 일정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기준을 정하려고 했다.
당구에서는 초반에 앞서고 있다는 이유로 안심했다가, 점수 차가 줄어들자 마음이 흔들렸다. 성호가 초반의 실수를 딛고 연속 득점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상대의 한 시점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했다.
민호는 천천히 문장을 적었다.
유리한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불리해졌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회사에서든 당구장에서든 모든 상황이 자신에게 유리할 수는 없었다. 다른 사람의 요구를 조정하다 보면 누군가는 불편할 수 있었고, 경기에서는 앞서다가도 따라잡힐 수 있었다.
중요한 것은 불리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애쓰는 것만이 아니었다. 불리한 상황이 되었을 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일이었다.
민호는 수첩을 덮었다.
자신은 아직 재식보다 실력이 부족했고, 회사에서도 새로운 역할을 완전히 익히지 못했다. 앞으로도 실수할 것이고,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만날 것이다.
하지만 불리한 상황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을 탓하거나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데서 멈추고 싶지는 않았다.
다음에 어떤 공이 놓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 공 앞에 다시 설 수는 있었다.
민호는 불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1부의 마지막 화가 이제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그동안 당구장에 들어서기조차 어색했던 자신이 이제는 경기에서 흔들리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그 이유를 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아직 갈 길은 멀었다.
그러나 처음 당구대 앞에 섰을 때와는 분명히 달라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