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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다시 큐를 잡는 이유

by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제1부

20화. 다시 큐를 잡는 이유

토요일 오전, 민호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은 아니었다. 회사에 출근할 필요도 없었고, 아들에게 연락하기로 한 시간도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잠자리에서 한참을 뒤척였다.

머릿속에는 전날 당구장에서 치렀던 성호와의 경기가 남아 있었다.

초반에는 자신이 앞섰다. 상대가 실수할 때는 경기가 수월하게 흘러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성호가 연속 득점을 시작하자 민호는 점수 차를 지키려는 마음에 흔들렸다. 공의 배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자신의 눈에는 전보다 어려운 공처럼 보였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책상 위에 놓인 수첩을 펼쳤다.

유리한 상황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 것.

불리해졌다고 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민호는 두 문장을 읽고 수첩을 덮었다.

그동안 자신은 실패한 일들을 자주 떠올렸다. 승진에서 밀려난 일, 자신보다 젊은 직원에게 업무의 중심을 내주게 된 일, 아들과 대화하면서도 결국 자신의 생각을 먼저 내놓았던 일까지.

그 일들에는 분명 자신이 원하지 않았던 결과가 있었다. 하지만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그 과정에서 자신이 했던 판단까지 전부 잘못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반대로 자신이 열심히 노력했다는 이유만으로 결과가 정당했다고 주장할 수도 없었다.

당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좋은 자세로 쳤는데도 득점하지 못할 수 있었다. 운 좋게 득점했다고 해서 그 선택이 반드시 좋은 판단이었다고 할 수도 없었다. 중요한 것은 공이 멈춘 뒤에도 자신의 선택을 돌아볼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민호는 세수를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당구장에 가서 자신의 실력이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음 당구대 앞에 섰을 때와 지금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스스로 확인하고 싶었다.

***

태성당구장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열한 시가 조금 지나 있었다.

태성은 카운터에서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다.

“오늘은 일찍 오셨네요.”

“집에 있어도 자꾸 당구 생각이 나서요.”

태성이 웃었다.

“그럼 이제 당구장에 자주 오시는 분이 다 됐습니다.”

“아직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공도 제대로 못 맞힐 때가 많은데요.”

“잘 치는 것과 당구를 좋아하는 건 조금 다른 문제니까요.”

민호는 대답하지 않고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예전에는 당구장에 들어오면 어디에 서 있어야 할지부터 어색했다. 다른 사람들의 경기 방식도 잘 몰랐고, 공의 배치를 보아도 무엇을 먼저 생각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은 적어도 당구대 앞에서 무엇을 살펴야 하는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수구와 제1적구의 위치를 확인하고, 제2적구까지 이어지는 경로를 생각했다. 득점 가능성뿐 아니라 수구가 어디에 멈출지도 살폈다. 자신의 실력으로 실행하기 어려운 공이라면 무리하지 않고 다른 경로를 찾으려 했다.

물론 머릿속에서 생각한 대로 공이 움직이는 경우는 아직 많지 않았다.

민호는 빈 당구대에 공을 올려놓고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 몇 차례는 기본적인 두께와 속도를 확인했다. 공을 맞히는 순간 손목이 흔들리지 않는지, 스트로크가 끝까지 곧게 나가는지 살폈다. 이어서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예전에는 득점에 성공하면 기분이 좋았고, 실패하면 곧바로 다음 공을 치고 싶었다. 이제는 공이 멈춘 뒤 잠시 기다릴 수 있었다.

왜 이 방향으로 움직였을까.

두께가 문제였을까, 속도가 부족했을까.

처음부터 경로를 잘못 선택한 것은 아닐까.

질문이 늘었다고 해서 실력이 곧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모르는 것이 많아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민호는 그 변화가 싫지 않았다.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조차 몰랐던 때와, 무엇을 더 익혀야 하는지 조금씩 알게 된 지금은 달랐다.

한참 연습하고 있을 때 재식이 들어왔다.

“오늘은 혼자 연습하십니까?”

민호가 큐를 내려놓았다.

“네. 어제 성호 씨와 친 경기를 다시 생각해 봤습니다. 초반에는 괜찮았는데, 점수 차가 줄어들자 마음이 급해지더군요.”

“그럴 때가 있죠.”

“재식 씨도 그렇습니까?”

재식은 잠시 웃었다.

“저라고 늘 평정심을 유지하겠습니까. 잘 풀리다가도 어려운 공을 놓치면 다음 공에서 만회하고 싶어집니다. 반대로 앞서고 있으면 이 흐름을 유지하고 싶어지고요.”

민호는 의외라는 듯 재식을 바라보았다.

재식은 언제나 공을 차분하게 살피는 사람처럼 보였다. 실수하더라도 쉽게 당황하지 않았고, 어려운 배치에서도 가능한 경로를 찾아냈다.

그런 재식에게도 마음이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은 민호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집중합니까?”

재식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당구대 위의 공을 살펴본 뒤 말했다.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안다기보다는, 흔들렸다는 걸 알아차리려고 합니다. 내가 지금 공을 보고 있는지, 점수판을 보고 있는지 말입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다시 공으로 돌아오는 거군요.”

“그렇죠. 다만 돌아왔다고 해서 반드시 득점하는 건 아닙니다.”

재식은 웃으며 큐를 들었다.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민호는 잠시 망설였다.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인해 보죠.”

“그럼 저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당구대 양쪽에 섰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서로 가볍게 인사한 뒤 뱅킹을 했다. 민호가 먼저 초구를 치게 되었다.

***

민호는 첫 번째 기회에서 득점에 성공했다.

이어진 공은 조금 까다로웠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제2적구까지 이어지는 경로는 있었지만, 두께와 속도를 정확하게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

민호는 당구대 옆으로 이동해 각도를 살폈다.

예전 같았으면 눈에 먼저 들어오는 경로를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스트로크로 실행할 수 있는지를 먼저 생각했다.

그는 무리한 경로 대신 성공 가능성이 더 높다고 판단한 길을 선택했다.

수구가 움직였다.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을 돌아 나왔지만, 마지막 각도가 조금 부족했다. 득점에는 실패했다.

민호는 아쉬웠지만 공을 바라보며 잠시 생각했다.

경로 선택 자체가 잘못되었을까, 아니면 실행에서 속도가 부족했을까.

그는 수구가 멈춘 위치를 살피고 나서야 큐를 내려놓았다.

재식은 말없이 다음 차례를 준비했다.

그는 어렵지 않은 공을 놓치지 않고 득점한 뒤, 이어진 공에서도 좋은 위치를 만들었다. 몇 차례 연속으로 득점하자 민호는 자신이 다시 뒤처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마음 한구석에서 서두르고 싶은 생각이 올라왔다.

재식이 한 번만 실수하면 기회가 생길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점수판을 바라보았다.

그는 곧 시선을 당구대로 돌렸다.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재식의 실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차례가 왔을 때 제대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었다.

경기는 계속되었다.

민호는 한 차례 기회를 놓쳤고, 재식은 몇 점을 더 쌓았다. 점수 차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나 민호는 이전 경기와는 다른 점을 느꼈다.

점수 차가 벌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재식이 자신보다 실력이 좋다는 사실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 공을 무조건 어렵게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실행할 수 있는 경로를 찾았다.

때로는 득점에 성공했고, 때로는 실패했다. 성공한 공이 모두 좋은 판단의 결과는 아니었고, 실패한 공이 모두 잘못된 선택의 결과도 아니었다.

민호는 그 차이를 조금씩 구분하려 했다.

경기 후반, 재식이 까다로운 공을 득점했다. 수구는 여러 차례 쿠션을 거쳐 제2적구까지 이어졌고, 다음 공을 노릴 수 있는 위치에 멈췄다.

민호는 큐 끝에 초크를 가볍게 문지르며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좋은 공이네요.”

재식은 짧게 웃었다.

“운도 조금 따랐습니다.”

“그래도 처음부터 경로를 잘 계산하셨잖습니까.”

“계산은 했지만, 실제로 공이 어떻게 움직일지는 쳐 봐야 알죠.”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과 실행은 달랐다. 자신이 생각한 길을 실제로 만들어 내는 데에는 감각과 경험이 필요했다. 그 경험은 한두 번의 경기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었다.

마침내 경기가 끝났다.

재식이 이겼다. 점수 차도 적지 않았다.

민호는 점수판을 바라본 뒤 큐를 내려놓았다.

“잘 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식이 인사했다.

민호는 패배가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던 공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오늘의 패배를 자신의 모든 노력이 소용없었다는 증거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경기에서 무엇이 부족했는지 알게 된 것과, 경기를 이기지 못했다는 것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오늘은 어땠습니까?”

재식이 물었다.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여전히 많이 부족합니다. 그런데 전에는 놓친 공만 생각났다면, 오늘은 왜 놓쳤는지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변화겠지요.”

“그렇다고 실력이 좋아졌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건 앞으로 더 쳐 보면 알겠지요.”

재식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민호는 웃었다.

예전 같으면 이 말을 듣고 당장 실력을 증명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오히려 편하게 느껴졌다.

앞으로 더 쳐 보면 알 일이었다.

***

점심시간이 가까워지자 정호가 당구장에 들어왔다.

정호는 민호와 재식을 발견하고 반갑게 인사했다.

“두 분 경기하셨습니까?”

“방금 끝났습니다.”

민호가 대답하자 정호가 당구대를 바라보았다.

“저도 연습을 좀 하려고 하는데, 오늘은 옆돌리기를 제대로 익혀 보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배운 대로 해 봤는데 자꾸 방향이 달라집니다.”

민호는 정호의 말을 듣고 당구대 앞으로 다가갔다.

“어디가 가장 어렵습니까?”

정호는 잠시 생각했다.

“공을 맞히는 순간에는 제대로 친 것 같은데, 수구가 생각보다 길게 가거나 짧게 갑니다. 그래서 두께가 잘못된 건지 속도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습니다.”

민호는 예전의 자신을 떠올렸다. 처음에는 공이 예상과 다르게 움직이면 무엇이 문제인지 구분하기 어려웠다. 두께와 속도, 스트로크의 방향이 모두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정호에게 곧바로 답을 알려 주려다가 잠시 멈췄다.

“우선 한 번 쳐 보시겠습니까? 공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같이 살펴보죠.”

정호가 자세를 잡았다.

첫 번째 시도는 수구가 짧게 멈췄다. 두 번째 시도에서는 조금 길게 나갔다. 정호는 큐를 내려놓고 고개를 갸웃했다.

민호는 공의 위치를 살펴보았다.

“두 번째 공은 첫 번째보다 속도가 조금 빨랐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두께도 달라진 것 같아서, 지금은 어느 쪽이 더 큰 영향을 줬는지 단정하기 어렵네요.”

정호가 물었다.

“그럼 어떻게 연습해야 합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한 뒤 대답했다.

“한꺼번에 바꾸지 말고, 한 가지씩 확인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같은 배치에서 속도를 조금씩 바꿔 보고, 그다음 두께를 비교해 보는 식으로요. 그래야 무엇 때문에 결과가 달라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민호는 당구대 옆에 서서 정호가 반복해서 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처음에는 공이 짧게 멈췄고, 몇 차례 뒤에는 조금 더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아직 원하는 위치에 정확하게 수구를 보내지는 못했다. 그래도 정호는 이전보다 결과의 차이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에는 속도를 조금 줄였더니 짧게 멈추는 정도가 덜해졌습니다.”

정호가 말했다.

민호는 웃었다.

“그럼 그 차이를 기억해 두시면 좋겠습니다. 다음에는 두께를 조금씩 바꿔 보시고요.”

그 말을 하면서 민호는 자신이 과거에 다른 사람에게 했던 조언을 떠올렸다.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치라는 말.

그 말은 틀리지 않았지만, 정호가 겪는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했다. 정호에게 필요한 것은 막연한 격려보다 자신의 공이 왜 다르게 움직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민호는 정호의 연습을 더 지켜보다가 큐를 챙겼다.

당구를 배우는 과정에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그 사람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자신도 여전히 배우는 중이었다.

***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민호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현우는 몇 번 신호가 간 뒤 전화를 받았다.

“아버지, 무슨 일이세요?”

“별일은 없다. 지난번에 말한 실무 교육 과정 말이다. 알아보고 있다고 했지?”

“네. 교육기관에서 상담을 받아 봤어요.”

민호는 무심코 어떤 과정인지, 취업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비용은 얼마나 드는지 물어보려 했다. 하지만 잠시 생각한 뒤 질문을 바꾸었다.

“상담은 어땠어? 네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했니?”

전화기 너머에서 현우가 잠깐 웃었다.

“생각보다 괜찮았어요. 교육 내용도 그렇고, 실제로 관련 업무를 해 본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요.”

“그렇구나. 네가 관심을 가질 만한 부분이 있었나 보네.”

“네. 다만 교육 기간이 길고, 수료한다고 바로 취업이 되는 것도 아니라서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 시작해도 괜찮을지 모르겠어요.”

민호는 아들의 말에서 망설임을 들었다.

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서 장단점을 정리해 주었을 것이다. 교육 기간이 얼마나 되는지, 취업 가능성은 어떤지, 다른 선택지는 무엇인지 따져 보자고 했을 것이다.

그런 이야기가 쓸모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현우가 지금 무엇 때문에 망설이는지 충분히 듣기도 전에 해결책부터 제시하고 싶지는 않았다.

“네가 가장 걱정하는 건 어떤 부분이니?”

현우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시간이요. 시작했다가 적성에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 싶고, 다른 사람들은 벌써 취업해서 일하고 있는데 저만 계속 준비하는 것 같아서요.”

민호는 천천히 걸음을 늦췄다.

아들은 단순히 교육 과정의 비용이나 기간만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었다. 선택이 잘못되었을 때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 또래보다 늦어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민호는 그 말밖에 하지 않았다.

현우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네 입장이라면 걱정이 없을 것 같다고 말할 수는 없겠다. 시작해 보고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생각보다 오래 걸릴 수도 있으니까.”

현우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렇지만 네가 어떤 일을 해 보고 싶은지 알아보려고 상담까지 받았다면, 그 과정에서 알게 된 것도 있을 거야. 지금 당장 결론을 내리기보다 무엇을 더 확인하면 결정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 어떨까?”

민호는 말을 마친 뒤 덧붙였다.

“물론 이건 내 생각이다. 네가 결정할 때 필요한 게 따로 있다면 그것부터 이야기해도 좋고.”

현우는 조금 편안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교육기관에서 수료한 사람들 이야기를 더 들어 보고 싶어요. 실제로 어떤 일을 하는지, 교육 내용이 현장과 얼마나 연결되는지요.”

“좋은 방법인 것 같다. 그 이야기를 들어 보고 나서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겠네.”

“네. 다음에 상담받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민호는 웃었다.

“그래. 궁금한 게 있으면 같이 알아보자.”

전화를 끊은 뒤에도 민호는 한동안 휴대전화를 손에 들고 있었다.

아들의 진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현우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오늘은 민호가 먼저 답을 정해 놓고 아들을 설득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는 아들이 자신의 고민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기다렸다.

그것만으로 모든 것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고, 민호는 또다시 성급하게 조언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 몰랐다.

그래도 다음 대화를 이어 갈 수 있는 여지는 남아 있었다.

***

그날 밤,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당구장에 처음 들어갔던 날의 기록이 남아 있었다.

공을 두 번이나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는 이야기, 큐를 잡는 것부터 어색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자신이 왜 당구를 계속 쳐 보려는지 모르겠다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때의 자신은 회사에서 인정받지 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오랫동안 성실하게 일했으니 그에 걸맞은 결과를 받아야 한다고 믿었다. 결과가 기대와 다르면 자신이 해 온 모든 일이 부정당한 것처럼 느꼈다.

당구에서도 처음에는 비슷했다.

잘 치고 싶었다. 다른 사람에게 실력을 인정받고 싶었다. 가능하면 빨리 배우고, 경기에서도 이기고 싶었다.

그 마음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그 마음이 너무 커지면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놓치게 된다는 점이었다.

앞서고 있을 때는 그 점수를 잃지 않으려고 조급해졌다. 뒤지고 있을 때는 한 번에 만회하려고 무리했다. 상대가 실수하면 기회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이 실수하면 모든 것이 틀어진 것처럼 받아들였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았다.

당구를 잘 치고 싶다는 마음과 당구를 배우는 일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이기고 싶다는 마음과 좋은 경기를 하는 일도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승부를 포기할 필요는 없었다.

상대가 좋은 공을 치면 인정하고, 자신의 공을 놓치면 이유를 살펴보고, 유리한 상황에서도 방심하지 않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무리하지 않는 것.

그런 태도를 몸에 익히려면 앞으로도 많은 경기를 치러야 했다.

민호는 수첩에 새 문장을 적었다.

**이기고 싶은 마음은 간직하되, 그 마음 때문에 내가 해야 할 판단을 놓치지 말 것.**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완벽한 공을 치는 것보다, 잘못 친 공에서 무엇을 배울지 아는 사람이 될 것.**

민호는 펜을 내려놓았다.

첫 번째 문장은 아직 자신에게 어려운 과제였다. 두 번째 문장은 조금씩 실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수첩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당구를 시작했다고 해서 회사에서의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현우와의 관계도 이제 겨우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 단계였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아직 뚜렷한 답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모든 답을 한꺼번에 얻어야만 다음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월요일에는 회사에서 맡은 일을 계속해야 했다. 다음 주에도 당구장에 가서 큐를 잡을 것이다. 현우가 교육 상담을 마치면 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루씩 살아가다 보면 지금은 보이지 않는 길도 조금씩 드러날지 몰랐다.

민호는 수첩을 책상 서랍에 넣었다.

제1부가 끝나고 있었다.

당구장에 처음 들어온 민호는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제 그는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조금씩 구분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의 실수와 자신의 실패를 한 가지 기준으로 단정하지 않으려 했다.

아직 잘 치는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큐를 다시 잡을 이유는 충분했다.

다음 경기에서는 또 실수할 것이다. 예상한 경로로 공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고, 마음이 흔들려 쉬운 공을 놓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다시 당구대 앞에 설 수 있었다.

민호는 불을 끄고 방을 나섰다.

당구대 위에 놓인 공은 누구에게나 똑같이 둥글었다. 공은 선수의 직급도, 나이도, 지난 경기의 승패도 알지 못했다.

그저 지금 놓인 자리에서, 지금 잡은 큐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움직일 뿐이었다.

민호는 아직 그 단순한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도 이제는 그 사실을 배워 보고 싶었다.

그리고 월요일이 오면, 회사에서도 다시 자신의 큐를 잡을 생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