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좋은 뜻만으로는 부족하다
by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제1부
18화. 좋은 뜻만으로는 부족하다
월요일 오전, 민호는 준호가 작성한 프로젝트 수정 대응 기준안을 검토하고 있었다.
문서는 지난주보다 훨씬 구체적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수정 사항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누고, 각 유형에 따라 담당자와 확인 절차를 지정했다. 일정에 직접 영향을 주는 문제가 발생하면 누구에게 보고하고 어떤 결정을 받아야 하는지도 표시되어 있었다.
민호는 내용을 확인하다가 한 부분에서 눈길을 멈췄다.
‘자료 검토 과정에서 오류가 발견되면 담당자가 즉시 수정한 뒤 관리 책임자에게 보고한다.’
얼핏 보면 문제가 없어 보였다. 그러나 민호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오류를 발견한 사람이 먼저 수정하도록 되어 있었지만, 그 오류가 다른 자료와 연결되어 있다면 담당자가 혼자 고칠 수 없는 경우도 있었다. 원인을 확인하지 않고 수치만 수정했다가 다른 부분과 맞지 않게 될 가능성도 있었다.
민호는 준호를 불렀다.
“이 항목을 조금 바꾸면 좋겠네. 오류가 발견되면 바로 수정하기보다, 먼저 원인과 영향 범위를 확인하고 수정하도록 하는 게 어떨까?”
준호는 문서를 들여다보았다.
“그렇네요. 다만 오류가 명확한 경우에도 매번 영향 범위를 확인하면 시간이 더 걸리지 않을까요?”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단순한 오탈자와 수치 오류를 같은 절차로 처리할 필요는 없겠네. 수정 유형에 따라 절차를 다르게 정하자.”
준호가 메모를 시작했다.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자신이 처음 이 일을 맡았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오류를 발견하면 가능한 한 빨리 고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단순한 실수는 신속하게 수정하는 편이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된 것도 있었다. 겉으로 드러난 오류를 바로잡는 것과 오류가 발생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잘못된 숫자 하나를 고쳤다고 해서 그 숫자가 만들어진 과정까지 바로잡힌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민호가 말을 이었다.
“이 기준을 담당 부서에도 확인받아 보자. 우리가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절차가 실제로 그쪽 업무에서는 어떤 부담을 만드는지 알아야 하니까.”
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담당자에게 확인해 보겠습니다.”
“좋아. 다만 우리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해 질문하지는 말게. 불편한 점이 있으면 그대로 알려 달라고 해.”
준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필요한 내용을 먼저 설명하고 의견을 듣겠습니다.”
준호가 돌아간 뒤 민호는 문서를 다시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자신이 놓친 부분을 발견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 기준을 실제로 사용할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도 생각하게 되었다.
업무를 잘하려는 의도는 중요했다. 그러나 의도가 좋다고 해서 결과까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실제로 일하는 사람들의 상황을 살피지 않으면, 좋은 기준이 오히려 불필요한 절차가 될 수도 있었다.
민호는 문서의 여백에 적어 두었던 메모를 지우고 새 문장을 썼다.
절차를 만드는 사람의 편리함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의 상황을 함께 살필 것.
그는 잠시 그 문장을 바라보다가 저장 버튼을 눌렀다.
***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뒤, 준호가 민호의 자리로 돌아왔다.
“선배님, 담당 부서에서 답변을 받았습니다.”
“어떤 의견이었나?”
“단순한 오탈자는 담당자가 바로 수정해도 괜찮지만, 수치가 바뀌거나 다른 자료와 연결되는 항목은 수정 전에 확인하는 게 좋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정 이력을 남겨 두면 나중에 같은 문제가 발생했을 때 원인을 찾기 쉽겠다고 했습니다.”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의견이네. 그럼 수정 유형에 따라 절차를 나누고, 변경된 내용과 이유를 간단하게 기록하도록 하자.”
준호가 문서를 열었다.
“그런데 선배님, 기록을 너무 자세하게 남기면 업무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까지 적어야 할까요?”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누가 언제 무엇을 바꿨는지, 왜 바꿨는지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모든 과정을 길게 적을 필요는 없겠지. 다만 나중에 다시 확인해야 할 때 변경 이유를 알 수는 있어야 하니까.”
“네. 그 기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준호가 돌아가려 하자 민호가 덧붙였다.
“그리고 담당 부서에 의견을 받아 온 것, 잘했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어.”
준호는 조금 쑥스러운 듯 웃었다.
“제가 혼자 생각했을 때도 빠진 부분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사용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더 분명해졌습니다.”
민호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네.”
준호가 자리로 돌아간 뒤 민호는 잠시 그를 바라보았다.
자신은 후배에게 일을 잘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잘 가르친다는 것이 자신이 아는 방법을 전달하는 일만을 뜻하지는 않을 것이다. 함께 일하면서 더 나은 방법을 찾고, 상대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살피는 것도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 역시 배울 수 있었다.
민호는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수정 대응 기준안은 이제 처음 작성했을 때보다 훨씬 실용적인 문서가 되어 있었다. 자신의 경험에 준호의 의견이 더해졌고, 실제 담당 부서의 입장도 반영되었다.
좋은 결과는 한 사람의 생각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 수도 있었다.
***
퇴근 후 민호는 태성당구장에 들렀다.
당구장 안에서는 정호가 혼자 연습하고 있었다. 그는 수구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같은 유형의 공을 반복해서 쳤다. 공이 빗나갈 때마다 자세를 풀고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민호가 다가가자 정호가 반갑게 인사했다.
“선배님, 오늘은 제가 조금 어려운 공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어떤 공인데요?”
정호가 당구대 위의 공을 가리켰다.
“앞돌리기인데요. 이쪽으로 보내면 될 것 같아서 계속 시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꾸 두께가 맞지 않습니다.”
민호는 공의 배치를 살펴보았다.
수구와 제1적구의 위치를 보면 앞돌리기를 시도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현재 배치에서는 수구가 쿠션을 돌아 나오는 각도와 제2적구의 위치를 함께 고려해야 했다. 정호가 생각한 경로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는 두께 조절이 쉽지 않은 공이었다.
민호는 공의 위치를 가리키며 설명했다.
“여기서 수구가 조금 더 얇게 맞으면 이쪽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반대로 두꺼워지면 각도가 짧아질 수 있고요.”
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얇게 맞히는 연습을 하면 되겠네요?”
“그렇게 해 볼 수는 있죠. 다만 지금은 두께만 바꾸어 보면서 수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확인해 보는 게 좋겠습니다.”
정호는 큐를 들었다.
그런데 첫 번째 시도에서 공이 크게 빗나갔다. 정호는 아쉬운 표정으로 다시 자세를 잡았다. 두 번째 시도도 실패했다.
민호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팔에 힘이 너무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스트로크를 조금 더 부드럽게 해 보세요.”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알겠습니다.”
그는 다시 공을 쳤다. 이번에도 득점에 실패했다.
민호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려 했다.
“큐를 너무 세게 밀지 말고, 공을 맞히는 순간에 힘을 주려고 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자연스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정호는 큐를 내려놓았다.
“선배님, 그런데 제가 힘을 빼려고 하면 큐가 흔들리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꾸 힘을 주게 됩니다.”
민호는 그제야 정호의 표정을 살폈다.
정호는 설명을 이해하지 못해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었다.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힘을 빼면 큐가 흔들린다는 또 다른 문제를 겪고 있었다.
민호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렇군요. 제가 힘을 빼라는 말만 반복했네요. 정호 씨는 힘을 빼면 큐가 흔들리는 게 문제였군요.”
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힘을 주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힘이 들어갑니다.”
민호는 큐를 받아 들고 자세를 보여 주려다가 멈췄다.
자신이 직접 보여 주면 도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정호가 어떤 부분에서 흔들리는지 먼저 살펴보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한 번만 천천히 자세를 잡아 보세요. 공은 치지 말고, 큐가 움직이는 동안 어디에서 흔들리는지 같이 봅시다.”
정호는 큐를 잡고 스트로크 동작을 천천히 반복했다.
민호는 옆에서 살폈다. 큐를 뒤로 당길 때는 비교적 안정적이었지만, 앞으로 밀어내는 순간 손목이 안쪽으로 꺾이면서 큐가 미세하게 흔들렸다.
“여기서 손목이 조금 움직이네요. 힘을 빼려고 할 때 손목까지 풀리는 것 같습니다. 팔 전체를 억지로 굳히라는 뜻은 아니고, 큐가 움직이는 방향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데 집중해 보세요.”
정호는 다시 동작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큐가 조금 더 곧게 움직였다.
“아, 이렇게 하는 거군요.”
“네. 지금은 공을 맞히는 것보다 큐가 일정하게 움직이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
정호는 몇 차례 더 연습했다.
민호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자신이 조금 전까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힘을 빼라는 조언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정호에게 필요한 것은 그 말의 반복이 아니라, 왜 힘을 빼면 동작이 흔들리는지 함께 살펴보는 일이었다.
좋은 뜻으로 한 조언도 상대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민호는 그 사실을 오늘 회사에서도, 지금 당구대 앞에서도 배우고 있었다.
***
그때 재식이 당구장으로 들어왔다.
“두 분이 무슨 연습을 하고 계십니까?”
정호가 대답했다.
“제가 힘을 빼면 큐가 흔들려서요. 민호 선배님이 자세를 봐 주고 계셨습니다.”
재식은 정호의 자세를 잠시 살펴보았다.
“한 번 해 보시겠습니까?”
정호는 큐를 잡고 천천히 스트로크했다.
재식은 동작을 본 뒤 말했다.
“큐를 앞으로 밀 때 손목이 조금 안쪽으로 움직이는군요. 그런데 지금은 그 부분을 고치려고 너무 신경을 쓰는 것 같습니다. 큐를 똑바로 움직이는 데 집중하되, 동작 전체가 굳어지지는 않도록 해 보세요.”
정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몇 차례 반복한 뒤 큐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움직였다.
“이제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다.”
재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다만 한 번 잘됐다고 바로 공을 치기보다는, 같은 동작을 몇 번 더 반복해 보세요. 몸이 익숙해져야 실제로 공을 칠 때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정호는 고맙다고 인사하고 연습을 이어 갔다.
민호는 재식에게 물었다.
“아까 정호 씨에게 설명하는 걸 보니, 제가 놓친 부분을 정확히 짚으셨네요.”
재식은 큐를 정리하며 대답했다.
“저도 처음에는 힘을 빼라는 말만 했을 겁니다. 그런데 정호 씨가 어떤 부분에서 흔들리는지 보니 손목 움직임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힘을 빼라는 말을 반복하면서도 정호 씨가 왜 그렇게 하는지는 제대로 묻지 않았습니다.”
재식은 민호를 바라보았다.
“가르치는 사람은 상대가 무엇을 못하는지 살펴야 하지만, 상대가 왜 그렇게 하는지도 알아야겠죠. 같은 실수를 해도 이유는 다를 수 있으니까요.”
민호는 그 말을 곱씹었다.
자신은 정호가 힘을 주어 공을 치는 모습만 보고, 힘을 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호에게는 힘을 뺐을 때 큐가 흔들리는 문제가 있었다. 그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채 힘을 빼라고만 하면, 정호는 알고 있는 조언과 실제 동작 사이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류가 발견되었다고 무조건 수정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왜 오류가 생겼는지, 어떤 절차에서 놓쳤는지 살펴야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았다.
민호는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제가 정호 씨에게 알려 준 것보다 배운 게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재식도 웃었다.
“그런 날도 있는 거죠.”
***
잠시 뒤 정호가 연습을 마치고 민호에게 말했다.
“선배님, 이제 아까보다 큐가 덜 흔들립니다. 다시 공을 쳐 봐도 되겠습니까?”
“그럼요. 한번 해 보세요.”
정호는 처음 연습하던 공 앞에 섰다.
이번에는 곧바로 스트로크하지 않았다. 자세를 잡고 큐를 천천히 움직여 본 뒤, 자신이 의도한 방향으로 큐가 움직이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부드럽게 공을 쳤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힌 뒤 쿠션을 돌아갔다. 각도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이전보다 훨씬 의도한 경로에 가까웠다. 마지막에 제2적구를 맞히며 득점에 성공했다.
정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됐습니다!”
민호도 웃으며 박수를 쳤다.
“잘하셨습니다. 아까보다 동작이 훨씬 안정적이었어요.”
정호는 기뻐하면서도 공의 위치를 다시 살폈다.
“그런데 다음에는 또 안 될 수도 있겠죠?”
민호가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죠. 그래도 오늘 왜 잘됐는지 기억해 두면 다음에 도움이 될 겁니다. 한 번 성공한 걸로 끝내지 말고, 같은 동작을 몇 번 더 연습해 보세요.”
정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그 모습을 보며 흐뭇해졌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것은 답을 알려 주는 일만이 아니었다. 상대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이해하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다시 살펴볼 수 있었다.
재식이 민호에게 물었다.
“민호 씨도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민호는 큐를 들었다.
“좋습니다. 오늘은 저도 제 자세를 한번 살펴봐야겠네요.”
두 사람은 당구대 양쪽에 섰다.
“열심히 치겠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고개를 숙인 뒤 뱅킹을 했다.
경기가 시작되자 민호는 공을 살피는 동시에 자신의 스트로크도 의식했다. 그러나 동작에만 신경을 쓰다 보니 공의 두께를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다.
첫 번째 공은 성공했지만, 두 번째 공은 실패했다.
민호는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큐가 흔들린 것은 아니었다. 이번에는 두께를 잘못 판단한 것이 문제였다.
그는 잠시 생각한 뒤 재식에게 말했다.
“자세는 괜찮았던 것 같은데, 두께를 잘못 봤습니다.”
재식은 공을 바라보았다.
“그렇네요. 동작과 판단을 함께 살펴야겠지만, 한 번에 모든 걸 고치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은 스트로크를 안정시키는 데 집중하고, 공의 두께는 다음에 따로 연습해도 되겠죠.”
민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부족한 부분을 발견했다고 해서 모든 것을 한꺼번에 고칠 수는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구분하고, 지금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다루어야 했다.
경기는 계속되었다.
민호는 몇 차례 실수했지만, 그때마다 자신이 놓친 부분을 살폈다. 재식 역시 좋은 득점을 이어 가다가 어려운 공을 놓쳤다. 두 사람은 서로의 공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각자의 선택에 집중했다.
마지막에는 재식이 승리했다.
“잘 쳤습니다.”
민호가 인사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식이 답했다.
민호는 당구대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늘은 공을 치는 것보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더 많이 배운 것 같습니다.”
재식이 말했다.
“설명하려면 자기가 아는 것을 다시 살펴야 하니까요. 그래서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는 게 있겠죠.”
민호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뜻만으로는 부족했다. 상대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살피고, 자신이 알고 있는 방법이 실제로 도움이 되는지 확인해야 했다.
그것은 당구를 가르칠 때도, 회사에서 일을 나눌 때도 다르지 않았다.
***
집으로 돌아온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오늘은 여러 가지를 배웠지만, 가장 오래 남는 장면은 정호가 큐를 잡고 천천히 스트로크하던 모습이었다. 정호는 힘을 빼야 한다는 말을 몰라서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힘을 빼면 큐가 흔들린다는 문제 때문에 알고 있는 대로 행동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민호는 그 이유를 먼저 물어보지 않았다.
좋은 뜻으로 조언했지만, 상대가 실제로 겪고 있는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수첩에 문장을 적었다.
좋은 조언을 하기 전에, 상대가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지 먼저 물어볼 것.
잠시 생각한 뒤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썼다.
내가 알고 있는 답이 상대에게도 정답인 것은 아니다.
민호는 펜을 내려놓았다.
오랫동안 일하면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경험을 전달하는 것만으로 상대가 성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 사람이 놓인 상황을 살피고, 필요한 부분을 함께 찾아야 했다.
그것은 후배를 가르치는 일뿐 아니라 아들과 대화하는 일에도 해당할 것 같았다.
현우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도 민호는 종종 해결책부터 제시했다. 자신이 살아오면서 배운 방법이 아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현우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충분히 듣지 않은 채 조언부터 했다면, 그 말이 아무리 좋은 뜻에서 나온 것이라도 아들에게는 부담이 되었을 수 있었다.
민호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가 잠시 내려놓았다.
지금 당장 아들에게 긴 메시지를 보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 다음에 대화할 기회가 생기면 먼저 물어보고, 끝까지 들어 주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그는 수첩을 덮었다.
사람마다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달랐다. 같은 실수를 해도 원인은 다를 수 있었고, 같은 조언도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부족할 수 있었다.
그 차이를 이해하려면 먼저 상대를 살펴야 했다.
민호는 불을 끄기 전에 수첩을 서랍에 넣었다.
내일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프로젝트 기준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고, 당구 실력도 여전히 부족했다. 아들과의 대화 역시 다음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돕고 싶을 때, 무엇을 알려 줄지부터 생각하지 않으려 했다.
먼저 무엇이 어려운지 물어보는 것.
민호에게는 그것이 다음에 연습해야 할 새로운 기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