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한 첩
作 와우산 · 2026-10-24
비가 왔다.
왼쪽 볼기 아래 묵은 콩알들이 무거웠다. 날이 궂으면 늘 그랬다. 새로 생긴 스물넷은 무게가 없었다. 대신 비가 와도 동북쪽만 보고 있었다.
막삼은 아침 일찍 남문 밖으로 나갔다. 어제 기름종이 꾸러미가 들어간 국숫집이 마음에 걸려서였다. 걸음은 느렸다.
등과 정강이에 든 몽둥이 멍은 걸을 때마다 제자리에서 아팠고, 콩알들은 걸을 때마다 제 갈 길을 우겼다.
반쯤 열린 국숫집 문 안으로 불 들어간 아궁이가 보였고, 손님 없는 가게에서 왕 노인이 왼손으로 국자를 쥐고 솥을 젓고 있었다.
손님 대신 장득이 있었다. 부뚜막 귀퉁이에 작은 냄비를 따로 걸고, 쪼그려 앉아 죽을 젓고 있었다. 막삼을 보더니 장득이 벌떡 일어섰다.
“서리 나리가 쒀 드리라고 해서요.”
“안 먹는다.”
왕 노인이 솥에서 눈도 떼지 않고 말했다.
“관아에 네 이름 올라간 놈이 쑨 죽은 안 먹는다.”
“드셔야 제가 삽니다, 영감님.”
“네가 살든 말든.”
장득은 울상이 되어 다시 쪼그려 앉았다. 죽은 벌써 바닥이 눌어 탄내가 났다. 막삼은 냄비와 노인의 굽은 등을 번갈아 보았다.
관아 문서에 이름이 올라간 놈과, 그 문서에서 손목이 지워진 노인이 한 부엌에서 서로 등을 지고 있었다.
“면은 못 친다.”
이번에는 막삼에게 하는 말이었다.
“국물만 주십시오.”
노인이 사발에 국물을 펐다. 왼손이라 국자가 흔들려서 국물이 사발 가장자리로 흘렀다. 노인은 국자를 다시 솥에 넣어 더 떠서 부었다. 손목이 성할 때와 똑같은 손버릇이었다.
“앉아라.”
막삼은 서서 먹었다. 국숫집에서 서서 먹는 손님은 대개 관아 담 밑 골목 사람이었다. 노인도 그걸 알아서 더 권하지 않았다.
선반 위에 어제 그 기름종이 꾸러미가 풀리지도 않은 채 놓여 있었다.
“세가에서 약을 보냈다.”
노인이 솥을 저으며 말했다.
“스무 날만 살아 있으라더라.”
막삼은 국물을 한 모금 넘겼다. 짰다. 노인은 원래 국물을 짜게 내지 않았다. 왼손으로 소금을 집으니 가늠이 틀린 것이다.
“드십시오. 그 집 약은 잘 듣습니다.”
“너도 먹어 봤냐?”
“형 묻고 나서 한 첩 먹었습니다.”
노인이 국자를 멈췄다. 솥 끓는 소리만 한참 나다가, 노인이 부목 댄 오른팔을 막삼 쪽으로 조금 들어 보였다. 무명 끈 아래로 손가락 끝이 부어서 번들거렸다.
“나리 말씀에 내 손목은 없다더라. 그럼 이건 뭐냐?”
막삼은 대답하지 못했다.
맡아 둔 스물넷은 다 서문휘의 것이다. 남김없이 돌려주면 공자는 며칠 걷지 못할 것이다. 그래도 노인의 손목이 붙지는 않는다. 맡아 둔 매는 주인 볼기로 갈 뿐이고, 부러진 뼈로 돌아오는 길은 없었다.
“어제 다루에서 삼공자가 또 넘어졌다지?”
노인이 막삼을 보았다.
“너냐?”
“공자님이 의자를 잘못 고르셨습니다.”
노인이 웃었다. 국숫집 일 뒤로 처음 듣는 웃음이었다. 짧게 웃고 나서 노인은 다시 솥을 저었다.
“그 국물 값은 외상이다.”
막삼이 빈 사발을 내려놓고 가게를 나서는데, 뒤에서 노인이 장득에게 말했다.
“물 더 부어라. 탄 죽은 개도 안 먹는다.”
장득이 허둥지둥 물바가지를 찾았다. 먹겠다는 말인지 아닌지는 장득도 몰랐다. 노인이 장득에게 말을 건 건 그게 처음이었다.
방으로 돌아오니 처마 밑에 하녀가 서 있었다.
열일고여덟쯤 되어 보였다. 비에 젖은 바구니를 두 손으로 들고, 막삼을 보고도 눈을 내리깔지 않았다. 세가 하녀들은 대신 맞는 놈을 보면 대개 길을 비키며 소매로 코를 막는다. 이 하녀는 바구니를 든 채 그냥 서 있었다.
방문이 열려 있었다. 형이 쓰던 낡은 걸상에 누가 앉아 있었다.
“왔느냐?”
총관 노구였다.
수염이 희고 손이 작은 예순 넘은 늙은이였다. 손등에 검버섯이 앉았고 손톱은 짧고 깨끗했으며, 가운뎃손가락 첫마디에 붓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세가 총관이라기보다 약방 주인 같았다. 막삼이 문지방에서 무릎을 꿇으려 하자 노구가 도리어 일어났다.
“꿇지 마라. 앉지도 못할 몸이 꿇기는. 엎드려라. 주인이 서 있으면 손님이 불편하다.”
막삼은 시키는 대로 바닥에 엎드렸다. 형이 쓰던 걸상은 다리가 짧아 기우뚱했다. 노구는 그 기우는 쪽으로 몸을 맞춰 다시 앉았다.
처음 앉아 보는 사람 같지 않았다. 노구가 몸을 숙이자 인주 냄새가 났다. 관아 서리 방에서 나는 냄새였다.
노구의 목덜미 옷깃 안쪽으로 기름에 결어 누렇게 바랜 종이 귀퉁이가 비쳤다. 붉은 인주가 번진 자국이 묻어 있었다. 늙은이들이 옷깃에 꿰매고 다닌다던 그 종이려니 했다. 총관 어른도 늙기는 늙었다.
노구가 바구니에서 기름종이 꾸러미를 꺼냈다. 종이도, 삼끈 매듭도 삼 년 전과 같았다.
“대성탕이다. 겉은 멀쩡한데 속에 피가 고였을 때 먹는다. 그저께 밤 골목에서 받은 매는 속으로 들었을 게다.”
“그것까지 아십니까?”
“익도에서 세가 하인이 몽둥이를 들면 내 귀에 제일 빨리 들어온다.”
노구가 막삼의 오른손을 슬쩍 보았다.
“관아 의문 앞에서는 삼공자 손목을 잡았다지?”
“턱을 잡으셔서 떼어 냈습니다.”
“그래. 그 애 손버릇이 그렇다. 어려서부터 무엇이든 움켜쥐어야 직성이 풀렸지.”
노구는 꾸러미를 막삼의 머리맡에 놓았다. 삼 년 전에도 약은 거기 놓여 있었다. 막삼이 사흘 만에 눈을 떴을 때, 형의 빈 자리 옆에.
“네 형 장례에 못 가 봤다. 세가 일이 바빠서. 늘 그게 마음에 걸렸다.”
“약을 보내 주셨잖습니까.”
“약이야 누구나 보낼 수 있지.”
이 늙은이가 왜 대신 맞는 놈한테 약을 보내는지 막삼은 물어본 적이 없다. 물으면 다음부터 안 보내 줄 것 같았다.
노구가 젖은 소맷부리를 털며 말했다.
“삼공자께서 요새 자꾸 넘어지신다더구나. 어제는 다루에서.”
“술이 약하신가 봅니다.”
“그 애는 술이 약하지. 마음도 약하고.”
노구는 웃지도 않고 그렇게 말했다. 무릎 위에 손을 모았다.
“가주께서 일을 하나 맡기셨다. 네 몸이 이러니 미안하다만, 날이 급하다. 소가주 혼례가 이레 뒤다.”
“임치 반가 따님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 반가 어른들도 혼례를 보러 미리 성에 드신다. 혼례 날 아침엔 사당 문을 열고 조상께 고하지. 가주께서는 그 전에 집안의 묵은 벌을 다 받게 하라신다. 행랑에 미뤄 둔 벌들 말이다. 사당 앞에서 떳떳하려면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어야 하니.”
“소가주님은 어떤 분입니까?”
노구의 목소리가 그때만 조금 낮아졌다.
“빈틈이 없는 분이다.”
노구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일 이야기로 돌아갔다.
“그런데 혼례에 일할 손이 엎드려 있으면 안 되지 않겠느냐? 부엌도, 마구간도, 문간도 이레 동안 쉴 틈이 없다.”
“그래서 대신 엎드릴 놈이 필요하시다.”
“형당에서 하루 열 대, 사흘이다. 하루 은 한 냥.”
노구가 잠시 말을 골랐다.
“가주께서 그러시더구나. 벌은 받아야 한다. 누가 받든.”
막삼은 그 말을 입속으로 굴려 보았다. 좋은 말이었다. 막삼 같은 놈이 먹고살라고 만든 말 같았다.
“가법 매는 관아 매보다 비쌉니다.”
“어째서?”
“집안 마당에는 어디를 치는지 세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노구의 눈가가 조금 풀렸다.
“그래서 얼마냐?”
“하루 한 냥 두 전. 고약은 따로. 매가 끝나면 바로 눕힐 자리.”
“고약은 넣어 두었다. 사람도 붙여 주마.”
노구가 문 쪽을 보았다. 처마 밑의 하녀가 바구니를 들고 들어와 막삼의 머리맡에 내려놓았다. 바구니 안에는 두부 네 모와 술 한 병, 깨끗한 무명천, 약방 기름종이에 싼 고약 덩이가 들어 있었다.
“소완이다. 말이 없는 아이다. 손은 빠르다.”
소완은 막삼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도 숙이지 않고, 웃지도 않았다. 엎드린 사내를 처음 보는 눈이 아니었다.
사흘이면 서른 대. 다 받으면 허리춤의 은이 곱절이 넘는다. 그 집 담 안에는 스물넷의 주인도 살았다.
“받겠습니다.”
“고맙구나.”
“누구 이름으로 맞는 겁니까?”
“행랑 아이들이다. 부엌 하녀, 문지기, 그리고 마구간 늙은이. 이름은 형당에서 부를 게다.”
노구가 대수롭지 않게 덧붙였다.
“그 마구간 늙은이는 사십 년을 우리 집 말을 먹였다. 이번에 큰 잘못을 했지만, 그 나이에 스무 대를 제 볼기로 받으면 일어나지 못한다. 가주께서 그건 원치 않으신다.”
막삼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물었다.
“어르신. 형이 마지막에 누구 일을 받았는지 아십니까?”
노구는 젖은 소맷부리를 다시 털었다. 천천히, 오래.
“나도 모른다. 그런 일은 묻지 않는 게 좋다. 대신 맞는 일은 이름을 묻지 않아서 값이 붙는 게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막삼도 그렇게 먹고살았다.
노구는 일어나 문으로 갔다. 문지방을 넘다가 돌아섰다. 비가 그의 어깨에 떨어졌다.
“막삼아. 네 형은 좋은 사람이었다.”
노구가 앉아 있는 내내 묵은 콩알들이 유난히 무거웠다. 막삼은 처마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비 탓을 했다. 삼 년 동안 늘 그랬으니까.
노구가 가고 나서 막삼은 머리맡의 꾸러미를 끌어당겼다. 삼끈 매듭 아래 쪽지가 끼워져 있었다. 막삼은 글을 모른다. 그래도 숫자와 제 일에 붙는 글자 몇 개는 모양으로 안다. 쪽지에는 단정한 글씨가 적혀 있었다.
막삼은 몸을 비틀어 깔고 자던 거적 밑을 더듬었다. 접어 둔 종이가 나왔다. 삼 년 전 약 꾸러미에 끼워져 있던 쪽지였다. 형이 남긴 물건이 거의 없어서 그것까지 버리지 못했다.
둘을 나란히 놓았다. 글자도, 글씨도 같았다. 삼 년이 지났는데 글씨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하루 두 번, 밥 먹고.”
뒤에서 소완이 쪽지를 읽었다. 막삼은 소완의 목소리를 그때 처음 들었다. 막삼이 돌아보자 소완은 벌써 두부를 꺼내 소금물에 넣고 있었다.
“글을 아냐?”
“조금요.”
소완은 화로에 소금물을 올리고, 무명천을 손바닥 크기로 찢었다. 손이 정말 빨랐다. 막삼이 거적 밑에 쪽지를 도로 넣는 동안 천 조각이 수북이 쌓였다.
오후가 되자 비가 그쳤다.
서문세가는 정문을 열지 않았다. 혼례를 앞둔 집은 동서 쪽문으로만 사람이 드나든다. 막삼은 소완을 따라 서쪽 쪽문으로 들어갔다.
쪽문 안쪽 그늘에 키 큰 사내가 서 있었다. 그저께 관아 의문 앞에서 막삼의 오른손을 보던 그 호위무사, 석철이었다.
석철은 오늘도 막삼의 오른손만 보았다.
막삼은 그 손을 소매 안으로 넣고 지나갔다.
담장이 길었다. 마구간을 지나고, 곳간을 지나고, 행랑이 늘어선 마당을 지났다. 혼례 준비로 마당마다 사람이 바빴다.
차일을 펴는 하인, 놋그릇을 닦는 할멈, 장작을 나르는 아이. 그 사이를 하녀 뒤에 붙은 매품팔이가 지나가자 다들 잠깐 손을 멈췄다가 다시 일했다.
가는 길 오른편으로 높은 담이 따로 둘러쳐진 곳이 있었다. 담 위로 기와지붕만 보였다. 문에는 큰 자물쇠가 걸려 있었다.
“사당이에요.”
소완이 앞을 보며 말했다.
“평소엔 늘 잠가요. 열쇠는 가주님하고 총관 어른만 있어요.”
그 너머로 또 다른 문이 보였다. 처마 끝에 꽃 모양 장식이 드리워진 문이었다. 문 앞에서 사내 하인이 물동이를 내려놓자 안에서 할멈이 나와 받아 들어갔다. 하인은 문턱을 넘지 않았다.
“저 안은 안채예요. 사내는 못 들어가요.”
담 너머 저 안쪽 어디쯤에서 사람들 웃음소리가 났다. 스물넷이 그쪽으로 쏠렸다. 막삼은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
행랑 끝에 따로 떨어진 건물이 있었다. 관아 대당을 줄여 놓은 것 같았다. 앞마당에 거적이 깔려 있고, 소매를 걷은 하인 둘이 거적 머리와 끝에 서 있었다. 그 사이에 등나무 회초리 묶음을 쥔 사내가 서 있었다.
세가 무사 옷을 입은 서른 남짓한 사내였다. 막삼을 보는 눈에 침이 들어 있었다. 무인들은 대신 맞는 놈을 대개 그렇게 본다.
제 몸으로 버티는 것이 무인의 일인데, 막삼은 그걸 돈 받고 팔았다.
그 옆 벽에 붙어 선 행랑 사람들이 보였다. 부엌 앞치마를 두른 하녀, 문간에서 본 젊은 문지기, 그리고 허리가 굽은 늙은 마부.
마부는 두 손을 소매 깊이 넣고 있었다. 날이 추워서라기보다 손을 감추는 사람 같았다. 오늘부터 막삼이 빌려 쓸 이름들이었다.
소완이 문 앞에서 멈췄다. 하녀는 거기서 더 들어가지 않았다.
형당 문이 열렸다. 혼례까지 이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