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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 매

作 와우산 · 2026-10-24

관아 담 밑 골목 맨 끝 방은 형과 같이 쓰던 방이었다. 형과 쓸 때는 좁았고, 혼자 쓰니 넓었다.

막삼은 그 방 바닥에 엎드려 두부를 갈았다. 두부 장수에게 외상으로 얻은 두 모를 소금물에 삶아, 뜨거울 때 엉덩이 밑에 깔면 김이 찌듯 오른다. 두부가 자줏빛으로 물들면 새것으로 바꾼다. 형이 하던 대로였다.

맞은 직후에는 아이 오줌을 데워 술에 타 마시면 피가 가슴을 치지 않는다고들 했다. 그건 건너뛰었다. 골목 꼬마들은 오줌 한 사발에도 동전 한 문을 받았다.

바꿔 깔 두부가 반 모 남았을 때, 막삼은 바지 속에 손을 넣어 콩알을 눌러 보았다.

콩알이 손끝을 비켜 데굴 굴렀다. 엄지가 그 뒤를 쫓다가 허리춤에서 멈췄다. 동북쪽이었다. 익도 성안에서 그쪽에 있는 거라고는 서문세가의 긴 담장뿐이었다.

스물아홉이 다 그쪽을 보고 있었다. 묵은 콩알들만 아무 데도 안 보고 제자리에 박혀 있었다.

막삼은 손을 빼고 천장을 보았다. 거미줄이 바람에 흔들렸다.

십 년 가까이 엎드렸으면 맞은 매가 수천 대였다. 그런데 몸에 남은 건 마흔, 지금은 서른아홉이다. 그동안 엎드려 준 이름들이 다 제 죄를 진 이름이었나?

도박빚에 멱살 잡은 놈, 술 먹고 이웃 장독을 깬 놈, 세금 밀린 놈. 그 이름들로 맞은 매는 붓고, 검어지고, 빠졌다.

장득처럼 죄 없는 이름은 드물었다. 형이 아흔에서 쓰러진 그날의 이름도 그랬을까?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여럿이었다.

“막삼이 있느냐? 삼공자님께서 안부를 전하라신다.”

문을 열기도 전에 문이 열렸다. 세가 하인복을 입은 사내들이 몽둥이를 들고 서 있었다. 맨 뒤에 선 얼굴이 낯익었다. 장득이었다. 몽둥이를 쥔 손이 몽둥이보다 더 떨고 있었다.

막삼은 두부를 깔고 엎드린 채로 말했다.

“안부는 골목에서 받겠습니다. 방은 형님 방이라서요.”

골목 바닥은 벌써 저녁 이슬에 젖어 차가웠다. 몽둥이가 등과 어깨와 정강이로 떨어졌다. 엉덩이는 피해 주었다.

하인들도 오늘 서른 대 맞은 자리까지 칠 만큼 모질지는 않았다. 막삼은 머리를 두 팔로 감싸고 웅크렸다. 웅크리면 배가 산다.

맞으면서 막삼은 알아챘다.

이 매들은 자리를 잡았다. 떨어진 데서 아프고, 떨어진 데서 부었다. 콩알이 되지 않았고, 어디로도 쏠리지 않았다.

누구 이름으로 맞는 매가 아니라서일까. 아무도 대신하지 않는 매, 삯도 주인도 없는 매는 몸이 맡아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장득은 끝까지 몽둥이를 들어 올리지 않았다. 다른 놈들이 숨을 몰아쉬며 돌아설 때, 장득만 뒤를 돌아보았다. 막삼은 웅크린 채로 손을 조금 들어 보였다. 가라는 뜻이었다.

아침이 되자 골목에는 소문이 벌써 와 있었다.

관아 담 밑 볕 드는 쪽에는 날마다 사내들이 쪼그려 앉는다. 날품 팔러 나온 사람, 동냥하는 사람, 그리고 막삼 같은 매품팔이. 손님이 오면 볼기 값을 부른다.

살집 좋은 젊은 놈이 비싸고, 막삼처럼 마른 놈이 싸다. 손님들은 살이 많아야 덜 아픈 줄 안다. 막삼은 그 덕에 싸게 팔리고 자주 팔렸다.

그 볕 자리에서 누가 막삼의 방 쪽으로 소리를 질렀다.

“막삼아, 너 어제 세가 공자를 자빠뜨렸다며?”

“공자님이 혼자 미끄러지셨습니다.”

“그래서 밤에 몽둥이 안부를 받았고?”

골목이 웃었다. 이 골목은 남이 맞은 얘기에 제일 크게 웃는다. 다들 맞아서 먹고사니, 남의 매는 공짜 구경이었다.

웃음 끝에 볕 자리 맨 안쪽에서 외눈 장씨가 헛기침을 했다. 이 골목에서 제일 오래 엎드린 늙은이였다.

“세가 볼기에 손댄 놈치고 오래 엎드린 놈 못 봤다. 몸조심해라, 막삼아.”

웃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장씨는 그 말만 하고 다시 볕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막삼은 대꾸 없이 두부를 갈았다. 등과 정강이에 든 멍은 몽둥이가 떨어진 자리 그대로 시퍼렜다. 그것들은 아무 데도 안 쏠렸다. 스물아홉만 아침부터 동북쪽을 보고 있었다.

해가 지붕 위로 올라왔을 때 장득이 삶은 달걀 다섯 알을 들고 다시 왔다.

“어제는…….”

“어제 일은 어제 끝났다. 달걀은 받는다.”

막삼은 엎드린 채로 달걀을 깠다. 장득은 문지방에 걸터앉지도 못하고 서서 손을 비볐다. 마구간 냄새가 났다.

“너는 왜 네가 찼다고 했냐?”

“총관 어른 댁 집사님이 오셔서, 은 한 냥 주고, 판결 끝나면 마구간 일 그대로 하게 해 준다고…….”

“한 냥.”

“어머니 약값이 밀려서요. 어머니는 제가 관아 다녀온 줄도 몰라요. 마구간에서 말 다리 고치느라 늦는 줄 알아요.”

막삼은 달걀을 씹었다. 장득이 죄를 사는 값이 한 냥, 막삼이 매를 파는 값이 세 냥. 노인의 뼈 값은 아무 데도 없었다.

“관아에서 저더러 보고가 끝날 때까지 성 밖에 나가지 말랍니다. 보고가 뭡니까?”

막삼이 대답하기 전에 골목 어귀에서 헛기침이 들렸다. 채 서리였다. 어제 문서를 들고 장득이 대신 왔느냐고 묻던 그 서리였다.

대신 맞을 일감은 대개 이 사람 입에서 나왔다. 삯 한 냥에 서리 몫 한 전이었다.

채 서리는 방 안을 들여다보고 혀를 찼다.

“오늘은 못 엎드리겠구나. 쌀가게 점원 태 열 대짜리 일감이 있었는데.”

“모레면 엎드립니다.”

“모레면 그놈 볼기가 직접 엎드리지.”

장득이 다시 물었다.

“나리, 보고가 뭡니까?”

“스무 날 안에 국숫집 노인네가 그 상처로 죽으면 네 목이다. 됐고, 가서 죽이나 쒀 드려.”

장득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채 서리는 그 얼굴은 보지도 않고 막삼에게 말했다.

“뼈를 적지 않았으니 보고도 스무 날이다. 대명률대로 뼈를 적었으면 쉰 날이었지. 세가 집사가 그 셈까지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리가 하셨겠지요.”

채 서리가 웃었다. 부정하지 않는 웃음이었다.

“그건 그렇고, 어제 의문 앞에서 무슨 짓을 했느냐? 삼공자가 너를 찾는다. 남문 찻집, 다루 이층에서 기다린단다.”

“길이 미끄러웠습니다.”

“관아 늙은이들이 별소리를 다 하더라. 옛날에 기장(寄杖) 요술이라는 게 있었단다. 제가 맞은 매를 남한테 맡긴다나. 그런 놈은 관인을 등에 찍어 놓으면 꼼짝을 못 했다지.”

채 서리가 막삼의 엉덩이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찍어 줄까?”

“관인 값이 제 삯보다 비쌉니다.”

“겁 많은 늙은이들은 아예 관인 찍은 종이를 옷깃 안에 꿰매고 다닌다더라. 매가 길을 잃으라고. 세상에 겁낼 매가 그리 많은지.”

채 서리는 껄껄 웃고 돌아갔다. 국숫집 일이 있은 지 엿새째였다. 보고가 끝나려면 열나흘이 남았다. 장득은 달걀 껍데기를 주워 모으다가 막삼을 보았다.

“형님, 그 노인네 손목이 덧나면 저는요?”

“그러니까 가서 죽 쑤라잖아.”

남문 다루는 이층 난간이 길가로 나 있었다. 막삼이 계단을 오르는 동안 스물아홉이 저희끼리 위층으로 올라가려고 몸부림을 쳤다. 막삼은 난간을 붙잡고 천천히 올랐다.

삼공자 서문휘는 창가 자리에 친구들과 앉아 있었다. 어제 일산 밑에서 부채로 어깨를 치던 그 녀석들이었다.

공자 앞의 찻잔에서는 차 대신 술 냄새가 났다. 앉은 자세가 이상했다. 의자 끝에 엉덩이를 반만 걸치고 있었다.

“왔냐, 모귀.”

“부르셨습니까, 공자님?”

친구 녀석이 막삼을 위아래로 훑었다.

“이게 그 매에 값 매긴다는 놈이야? 말라서 제 값은 싸 보이네.”

태 두 대짜리 말이었다. 막삼은 속으로만 매기고 고개를 숙였다.

“의원을 불렀다.”

공자가 목소리를 낮췄다.

“볼기에 판자 자국이 있다더라. 꼭 한 대짜리. 나는 어제 판자 근처에도 안 갔다.”

친구 녀석이 킥킥 웃었다. 공자가 그쪽을 노려보자 웃음이 멎었다.

“무슨 요술이냐?”

“맡아 둔 걸 돌려드렸습니다. 나머지는 공자님 볼기가 압니다.”

“나머지?”

막삼은 대답 대신 공자가 걸터앉은 의자 끝을 보았다. 공자가 엉덩이를 조금 더 뺐다.

“얼마냐?”

공자가 소매에서 은덩이를 꺼내 탁자에 놓았다.

“나머지 말이다. 도로 거둬 가는 데 얼마면 되냐?”

막삼은 은덩이를 보았다. 다섯 냥은 되어 보였다. 백 냥 가운데 다섯 냥이었다.

“매는 사고팔아도, 맡은 매는 물릴 수가 없습니다. 갈 데로 가야 없어집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

“제 볼기에 있습니다.”

친구들이 또 웃었다. 공자는 은덩이를 소매에 도로 넣지 않았다. 손가락으로 탁자 위에서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어젯밤 우리 집 아이들이 안부 전했지?”

“받았습니다. 그건 맡지 않았습니다.”

공자는 그 말을 못 알아들었다. 알아들을 필요도 없었다. 공자가 갑자기 손을 뻗어 막삼의 오른손을 낚아챘다. 손바닥을 위로 뒤집고, 거기에 제 손가락을 꾹꾹 눌러 보았다.

“이 손이냐? 이 손으로 뭘 했어?”

막삼은 손가락을 오므렸다. 공자의 손가락이 막삼의 손안에 갇혔다.

콩알들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이번에는 막았다. 어젯밤 두부를 갈며 콩알을 차례로 눌러 볼 때, 누르는 만큼만 콩알이 따라 나온다는 것을 손끝이 먼저 알았다. 막삼은 둑을 다 터 주지 않고 문을 반만 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에서 문을 닫았다.

공자가 의자째 뒤로 넘어갔다.

찻상이 엎어지고 찻잔이 굴렀다. 공자는 엉덩이를 감싸 쥐고 바닥을 굴렀다. 비명이 끊겼다가 다시 터졌다. 다섯 대를 한꺼번에 맞으면 그렇게 된다. 숨을 쉴 틈에 다음 매가 들어오니까.

다루 안이 잠깐 조용했다가 와르르 웃음이 터졌다.

“삼공자님 또 넘어지셨네!”

“어제 관아 앞에서도 그러셨다던데.”

“낮술은 의자에서 드셔야지요, 공자님.”

친구들이 제일 크게 웃었다. 한 녀석은 탁자를 두드리며 웃었다. 공자가 바닥에서 고개를 들고 이를 악물었다.

“웃지 마라.”

웃음이 줄지 않았다. 공자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웃지 말라고. 이 일 형님 귀에 들어가면…….”

공자는 거기서 말을 끊고 계단 쪽을 흘끗 보았다. 낮술 먹고 넘어졌다는 소문보다 그 소문을 들을 사람이 더 무서운 모양이었다.

형님이라면 익도 사람이 다 아는 이름이었다. 서문세가의 대를 이을 소가주 서문준. 여드레 뒤에 장가를 든다고 성안이 벌써 들떠 있었다.

막삼은 쪼그려 앉아 엎어진 찻잔을 바로 세웠다. 공자가 바닥에 누운 채 낮게 물었다.

“몇 개냐? 아직 몇 개 남았어?”

“스물넷입니다.”

“……장득이 서른 대. 그거냐?”

생각보다 빨랐다. 막삼은 공자를 다시 보았다.

“장득이는 한 대도 안 맞았습니다. 제가 맞았지요. 그 매가 원래 갈 데로 가는 것뿐입니다.”

“다 받으면 어떻게 되는데?”

“공자님이 걸어서 댁에 못 가십니다.”

공자의 입술이 떨렸다.

“왜 다 안 보내?”

“급할 거 없습니다. 관아에서는 국숫집 노인네한테 스무 날을 줬습니다.”

“스무 날?”

“관아에서 그렇게 셉니다. 그 안에 노인네가 그 상처로 죽으면 장득이가 목을 맵니다.”

공자가 바닥에서 몸을 반쯤 일으켰다.

“목을…… 왜 장득이가?”

“공자님 대신 죄를 썼으니까요. 관아에서는 장득이가 찬 걸로 압니다.”

친구들이 이제 그만 일어나라고, 술이나 더 하자고 불렀다. 공자는 그쪽을 보지 않고 엎어진 찻상 다리만 보았다. 한참 만에 손을 내저었다.

“가라.”

막삼은 일어나 허리를 굽혔다. 계단 쪽으로 돌아서는데 공자가 다시 불렀다.

“장득이 그놈, 요새 뭐 하냐?”

“국숫집 노인네 죽 쑤러 갑니다. 서리 나리가 시켰습니다.”

공자는 찻상 다리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친구들은 아직 웃고 있었다. 그들 눈에는 술 취한 공자와 비위 맞추는 모귀가 보였을 것이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안 막삼은 남은 것을 셌다. 스물넷. 묵은 콩알들은 여전히 아무 데도 안 보고 있었다. 삼 년 동안 그 주인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다루를 나와 남문으로 돌았다. 왕 노인의 국숫집은 오늘도 문이 닫혀 있었다. 면 치는 소리 대신, 솥을 걸던 아궁이가 식어서 하얗게 재가 앉아 있었다.

막삼은 길 건너 처마 밑에 섰다. 스무 날 안에 노인이 죽으면 장득의 목이 걸린다. 세가는 마구간 하인 목쯤은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노인이 살아서 남문 밖에 손목 얘기를 하고 다니는 것도 반길 리 없었다.

그 닫힌 문을 세가 집사가 밀고 들어가고 있었다.

집사의 손에 기름종이 꾸러미가 들려 있었다. 막삼은 걸음을 멈췄다. 종이도, 종이를 묶은 삼끈의 매듭도 낯익었다. 삼 년 전 형을 묻고 돌아온 날, 막삼의 머리맡에 놓여 있던 약 꾸러미가 꼭 그렇게 묶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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