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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은 묻지 않았다

作 받아적는사람 · 2026-10-22

등록소는 종이 냄새가 났다.

새 종이와 오래된 종이, 마르지 않은 잉크와 촛농. 대리석 기둥마다 제국 문장 대신 금색 가시 덩굴이 새겨져 있었다.

정문 옆 동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붙박이 출입 금지. 하인은 뒷문 이용.】

나는 동판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10년 동안 뒷문으로만 다녔다. 발이 저절로 옆 골목으로 돌아가려 했다.

"응시자요?"

문지기가 물었다. 숨을 한 번 고르고 마르코를 떠올렸다. 턱을 조금 들고 말끝을 귀찮다는 듯 늘어뜨리는 버릇.

"네. 지난달에 깼어요. 늦깎이라."

"몇 권?"

"그건 거울이 알려 주겠죠."

"하, 다들 그 소리네." 문지기가 피식 웃으며 비켜섰다. "들어가요. 대기실은 왼쪽. 떨어지면 나갈 땐 지하 계단이고."

"지하요?"

"농담이에요. 반쯤은. 지난주엔 넷이 내려갔으니까."

정문을 지나는 동안 등 뒤가 뜨거웠다. 아무도 잡지 않았다.

대회랑 벽에 커다란 칠판이 걸려 있었다.

【1급 41 · 2급 187 · 3급 506 · 4급 893 · 5급 1,402 · 합계 3,029】

칠판 앞에서 응시자 둘이 수군거렸다.

"5급이 제일 많네. 1권도 다 못 읽은 사람이 제일 많다는 거잖아."

"마르코 상단주는 5급을 관광객이라고 부르더라."

"저기 봐. 누가 낙서했어."

1급 41 옆에 분필로 작게 적혀 있었다. 「3권 중반 이후 0」.

"3권 중반 넘게 읽은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연재가 거기서 끊겼대. 다들 거기서 멈췄지."

* * *

대기실에는 좋은 옷을 입은 응시자가 열 명쯤 있었다.

내 옆자리 남자는 얇은 책자를 쥐고 있었다. 표지에 「황금 가시의 황녀 핵심 정리 1~3권」이라고 찍혀 있었다. 시장 책방에서 은화 세 닢에 파는 그거였다.

"몇 권까지 읽으셨어요?"

남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조금요. 그쪽은요?"

"2권이요. 2권 다요." 그가 책자를 무릎 아래로 숨겼다. "이건 그냥, 복습용이고."

"핵심 정리 들고 온 사람은 꼭 떨어지던데." 맞은편 남자가 코웃음을 쳤다. "거울은 글자를 안 본대요."

옆자리 남자의 얼굴이 하얘졌다.

책자 모서리가 그의 땀으로 눅눅했다. 그의 눈 밑은 밤을 새운 사람의 색이었다. 나도 그랬다.

"근데요. 거울이 진짜 머릿속을 다 보여 준대요?"

"그렇다던데요."

"읽은 장면을 떠올리면 그게 거울에 그대로 뜬다고."

"네."

"그럼 떠올리기만 하면 되는 거죠? 외운 거라도?"

그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을 이었다.

"저 원래 재봉사였어요. 가게가 망해서. 건너온 이들이 다 자기네 재봉사만 쓰거든요. 2급 되면 연금이 금화 스물이래요. 그거면 가게 다시 열어요."

"……."

"그쪽은요? 등록되면 뭐 할 거예요?"

동생 약값이요.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삼켰다. 건너온 이는 붙박이 동생을 위해 시험을 보지 않는다.

"……아직 생각 안 해 봤어요."

"에이. 다들 생각해 놓고 오는데." 재봉사가 웃었다. 웃는 얼굴이 떨렸다. "저는 간판도 정했어요. 「금색 가시 양장점」. 건너온 이들이 좋아할 것 같아서."

"혹시 떨어지면요." 재봉사가 책자를 쥐었다. "아니에요. 안 떨어져요. 2권 다 읽었는데."

"다음, 7번 응시자."

남자가 일어났다. 책자가 의자 위에 남았다.

* * *

시험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방 한가운데 사람 키 두 배쯤 되는 거울이 서 있었다. 테두리는 검은 쇠, 표면은 고인 물처럼 흐렸다. 거울 앞에 등록소 서기 둘이 책상을 두고 앉았다.

위층 난간에서 검은 장갑을 낀 여자가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서서 문틈으로 7번 남자의 시험을 봤다.

"1권. 황녀의 첫 등장 장면을 떠올리세요. 말로 하셔도 됩니다."

"화, 황녀가…… 궁에 처음 들어옵니다. 열두 살이고, 은발이고……."

거울은 그대로였다. 흐린 표면 위로 남자 자신의 겁먹은 얼굴만 비쳤다.

"계속하세요."

"정원에서, 그, 꽃이 피어 있고……."

"무슨 꽃입니까."

"장미요."

서기 한 명이 펜을 내려놓았다.

"7번 응시자. 거울에 장면이 비치지 않았습니다. 허위 등록 혐의로 구금합니다."

"읽었어요!"

남자가 소리쳤다. 경비 둘이 양팔을 잡았다.

"읽었다고요! 2권까지! 내가 다 외웠는데, 외웠는데 왜……."

"핵심 정리에 장미라고 써 있었어요! 장미라고!"

그가 끌려 나가며 내 앞을 지나갔다. 눈이 마주쳤다. 복도 끝에서 문이 닫혔다.

"다음 주 심문, 그다음 주 판결." 서기가 장부에 무언가를 적었다. "교수대 자리 남았나?"

"이번 달은 꽉 찼을걸."

"그럼 다음 달이네. 「금색 가시 양장점」은 못 열겠다."

다른 서기가 킥킥 웃었다. 대기실 얘기가 벌써 여기까지 와 있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다섯 개를 다 접어도 떨림이 멎지 않았다.

외운 거라도 되느냐고 그가 물었었다. 그 남자는 하룻밤 동안 글자를 외웠다. 장미라는 글자.

나는 장미를 외운 적이 없다. 대신 백작 부인이 와인 잔을 내려놓고 눈을 감은 채 그 정원을 말하던 밤을 기억한다.

"가시가 금색이야. 해가 비치면 정원 전체가 불타는 것 같아. 그 한가운데 백금발 여자애가 맨발로 서 있어."

그 밤 잔을 채우다 말고 그 정원을 그렸다. 백 번쯤.

그게 거울에 비칠까. 모르겠다. 지금 돌아서면 아직은.

"8번 응시자."

다리가 먼저 움직였다. 언제나 그랬다. 시키면 몸이 먼저 갔다.

* * *

거울 앞은 추웠다.

"이름."

"이렌 보르."

"보르? 남작가?"

"몰락했던데요. 건너오고 보니 그렇더라고요."

마르코가 처음 등록할 때 했다는 말을 빌렸다. 서기가 고개도 들지 않고 받아 적었다.

"거울이 원래 이렇게 흐려요?"

"질문은 응시자가 하는 게 아닙니다." 서기가 펜을 고쳐 쥐었다. "늦깎이라고요. 언제 깼어요?"

"지난달이요."

"어디서?"

"……셋방에서요. 자고 일어났더니 머릿속에 책이 있었어요."

"다들 그렇게 말하죠." 서기가 펜 끝으로 거울을 가리켰다. "그럼 그 책 좀 봅시다. 1권. 황녀의 첫 등장 장면."

나는 눈을 감았다. 백작 부인의 목소리를 불러냈다. 느리고 끝이 젖은 목소리.

"가시가 금색이에요. 해가 비치면 정원 전체가 불타는 것 같아요. 그 한가운데 여자애가 맨발로 서 있어요. 백금발. 열두 살."

"계속하세요. 거기서 멈추는 사람이 많아요."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는데 울지 않아요. 황제 폐하가 물어요. 아프지 않으냐고. 여자애가 대답해요."

"뭐라고 합니까."

"「가시가 금색이니까요.」"

서기의 펜 소리가 멈췄다. 눈을 떴다.

거울 속에 정원이 있었다.

금색 가시가 해를 받아 타올랐다. 그 한가운데 맨발의 아이가 서 있었다. 내가 백 번 그린 그 정원이었다. 그보다 선명했다. 가시 끝에 맺힌 핏방울까지 보였다.

"……백금발이군요." 서기 한 명이 중얼거렸다. "은발로 기억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2권에서 염색하잖아요."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백작 부인의 말투였다. 서기가 처음으로 나를 쳐다봤다.

"2권. 황녀가 처음으로 검을 잡는 장면."

이번엔 장교의 쉰 목소리를 불렀다.

"눈 덮인 연병장이에요. 손이 곱아서 빨개요. 자기 키만 한 검을 질질 끌고 있어요."

거울에 연병장이 떴다. 소녀가 검을 끌고 있었다.

"그 장면에서 교관이 황녀에게 한 말은?"

함정이었다. 핵심 정리 책자에는 없는 대사. 열아홉 번째 공책, 장교가 신병 시절 들었다며 꼭 따라 하던 말.

"「검이 무거우면 끌어라. 놓지만 마라.」"

거울 속 교관의 입이 그 말을 따라 움직였다.

"교관 대사까지." 서기가 중얼거렸다. "이번 달엔 처음이네."

"3권."

서기가 종이를 넘겼다. 위층 난간의 여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3권 등불 축제. 황녀궁 안뜰에서 황족끼리만 등을 올리는 밤이죠. 황녀가 황태자에게 처음으로 대드는 장면."

스물일곱 번째 공책. 장교가 연재가 끊겼다며 탁자를 내리친 밤, 그 직전에 술을 마시며 들려준 이야기. 나는 그 밤의 장교가 됐다.

"황태자가 등불을 들고 서 있어요. 황녀가 말해요. 「오라버니는 왜 맨날 끝을 모르는 사람처럼 굴어요?」"

"황태자는?"

"대답 안 해요. 등불만 내려놔요. 그 등불이 바닥에서 꺼지고."

거울에 등불 하나가 떴다. 꺼지기 직전의 등불. 그 너머에 서 있는 남자의 얼굴은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등불이 꺼졌다. 거울이 다시 흐린 물빛으로 돌아갔다.

그 물빛 가장자리에 머리카락 같은 검은 금이 하나 남아 있었다. 아까는 없던 금이었다. 서기 둘은 장부만 봤다. 위층 난간의 검은 장갑만 그 금을 오래 내려다봤다.

서기 둘이 서로를 봤다.

"이거 토씨까지 맞은 거 맞지?"

"맞아. 기록에 세 명뿐인데."

한 명이 장부 맨 아래 칸에 붉은 도장을 찍었다.

"이렌 보르. 1급."

"……1급이요?"

"3권 등불까지 맞혔으면 1급이죠. 축하합니다, 나리." 서기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

"등록증에 새길 전생 이름. 건너오기 전 이름 적으세요."

펜을 쥔 손이 멈췄다. 이건 준비하지 못했다. 손님들 중 누구도 자기 옛 이름을 식탁에서 말한 적이 없었다. 마르코도 그랬다. 그건 그들끼리도 묻지 않는 거였다.

"……기억이 잘 안 나요. 늦깎이라서 그런지."

서기가 처음으로 피곤한 웃음을 지었다.

"늦깎이들이 다 그러더라. 빈칸으로 둬요. 나중에 생각나면 고치고."

다리에 힘이 풀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거울 테두리를 짚었다. 검은 쇠가 얼음장 같았다.

거울은 끝까지 묻지 않았다. 내가 그 장면을 어디서 얻었는지.

* * *

복도로 나오자 다른 응시자들이 웅성거렸다.

"8번이 1급이래."

"늦깎이가? 1급?"

"보르 남작가래. 망한 데."

"망한 집에서 1급이 나오네. 원작 같다."

"원작에 그런 얘기 있어?"

"몰라. 있을 것 같잖아."

"3권까지 읽은 늦깎이는 처음 보는데."

"등불 장면을 토씨까지 맞혔대."

"거짓말. 그거 1급 중에서도 세 명이라던데."

"그러니까 네 명이 된 거지."

나는 벽에 붙어서 걸었다. 빨리 나가고 싶었다.

7번 남자가 앉았던 의자에 책자가 그대로 있었다. 나는 보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

"잠깐."

복도 끝에 검은 장갑의 여자가 서 있었다.

마흔 중반쯤. 짧게 자른 머리에 흰 가닥이 섞여 있었다. 목까지 채운 검은 외투. 가슴에는 등록증 대신 금색 가시 모양 열쇠가 걸려 있었다. 서기들이 고개를 숙이며 지나갔다.

"소장님."

여자는 나를 위아래로 훑었다. 원고를 넘기다가 빨간 펜을 드는 사람의 눈이었다.

"백금발. 정확했어. 1권 백금발 맞히는 응시자, 올해 처음이야."

"……감사합니다."

"그리고 3권 등불 장면. 그 대사를 토씨까지 맞힌 사람은 등록소 기록에 세 명뿐이야."

여자가 한 걸음 다가왔다. 잉크 냄새가 났다. 등록소의 종이 냄새보다 진했다.

"당신, 몇 권까지 읽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