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쓴 약, 가벼운 몸
作 외인 · 2026-10-16
다음 날 아침, 레티시아는 눈을 뜨자마자 기록지부터 찾았다.
니나가 내민 종이에는 사흘 치 숫자가 빼곡했다. 날짜, 시각, 걸음 수, 숨이 찬 정도, 어지러움. 글씨는 삐뚤빼뚤했지만 빈칸은 하나도 없었다.
레티시아: 잘 썼네, 니나야.
니나: 저, 정말요?
니나의 귀 끝이 빨개졌다. 레티시아는 기록지를 무릎 위에 펼쳐 놓고 숫자를 하나씩 짚어 내려갔다.
첫날 오전 스무 걸음, 오후 스물두 걸음. 둘째 날 오전 스물여섯 걸음, 오후 열아홉 걸음. 어제는 복도를 걸어 주방까지 갔다가, 저녁에는 침대에서 창가까지 가는 것도 버거웠다.
늘었다가, 줄었다가, 다시 늘었다.
동대문에서 이런 매출표를 보면 사람들은 대개 날씨 탓을 했다. 비가 와서, 너무 더워서, 명절 앞이라서. 그런데 날씨 탓을 하는 가게치고 오래가는 가게는 없었다. 숫자가 들쭉날쭉하면, 그 안에 반드시 이유가 있었다.
레티시아: 니나야. 여기 칸 하나만 더 만들어 줄래?
니나: 무슨 칸이요?
레티시아: 약 마신 시각.
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니나: 그건 왜요?
레티시아: 선생님이 약 시간을 꼭 지키라고 하셨잖아. 적어 두면 빠뜨릴 일도 없고.
거짓말은 아니었다. 이유를 다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니나는 금세 납득한 얼굴로 깃펜에 잉크를 찍었다. 이 아이는 일을 하나 더 받으면 오히려 신이 나는 아이였다. 동대문에서도 그런 직원이 제일 귀했다.
율리안은 아침 식사 전에 들어왔다. 회중시계를 손에 들고, 이미 교관의 얼굴이었다.
율리안: 오늘 일정은 오전 열 시, 오후 세 시. 복도 보행 2단계 이틀째.
레티시아: 오라버니. 북부 기사단은 몇 시에 훈련해요?
율리안: 해 뜨기 전에. 연병장 한 바퀴 돌고 나서 아침을 먹지.
레티시아: 왜요?
율리안: 그때가 몸이 제일 가벼우니까. 배도 비어 있고, 공기도 차고.
레티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레티시아: 그럼 저도 그렇게 해요. 아침 훈련을 해 뜰 무렵으로.
율리안이 회중시계를 내려다봤다가, 동생을 봤다가, 다시 시계를 봤다.
율리안: ...여섯 시?
레티시아: 기사단 방식이잖아요.
기사단 방식이라는 말에 율리안은 약했다. 그는 헛기침을 하더니 일정표의 '오전 열 시'에 줄을 긋고 '여섯 시'라고 고쳐 적었다. 글씨에 묘한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아침 약은 여덟 시, 식사와 함께 들어왔다. 점심 약은 정오, 저녁 약은 해 질 녘. 여섯 시 훈련은 저녁 약을 마신 지 반나절이 지난 시각이었고, 세 시 훈련은 점심 약을 마신 지 세 시간 뒤였다.
레티시아는 그 계산을 입 밖에 내지 않았다.
다음 날 새벽 여섯 시.
창밖은 막 묽어지고 있었고, 복도의 촛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지팡이를 짚고 문을 나섰다. 율리안의 구령이 복도를 울렸다. 니나는 잠이 덜 깬 얼굴로 기록지를 품에 안고 따라왔다.
서른여섯 걸음.
숨은 조금 찼지만 다리는 끝까지 버텼다. 율리안은 회중시계를 든 손을 번쩍 들었다.
율리안: 서른여섯! 레티, 서른여섯이야!
같은 날 오후 세 시.
스무 걸음.
열다섯 걸음째부터 다리가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레티시아는 더 걸을 수 있다고 우기지 않았다. 중단 조건은 그녀가 직접 쓴 것이었다.
그다음 날도 똑같았다. 새벽에는 마흔 걸음, 오후에는 스물한 걸음.
율리안은 기록지를 들여다보며 무릎을 쳤다.
율리안: 역시 새벽 공기야. 북부 기사단이 왜 강한지 알겠지? 해 뜰 때 공기에는 뭔가가 있다니까.
레티시아: 그렇네요.
레티시아는 순순히 대답했다. 새벽 공기는 오후에도 창밖에 있었다. 조금 따뜻해졌을 뿐이었다.
물론 다른 이유일 수도 있었다. 오후에는 이미 한 번 걸은 뒤라 지쳤을 수도 있다. 수프를 먹고 배가 불러서일 수도 있다. 장사꾼이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제 마음에 드는 답부터 믿어 버리는 버릇이었다.
새 원단 거래처를 시험할 때도 그녀는 한 번에 하나만 바꿨다. 실 굵기와 염색집을 동시에 바꾸면, 물건이 나빠졌을 때 누구 탓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하나만 바꿔 봐야 한다.
그리고 바꿀 것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드라벨이 나타난 것은 그날 정오였다.
점심 쟁반이 막 들어온 참이었다. 쟁반 위에는 마르타의 닭고기 수프가 김을 올리고 있었다. 사흘째였다. 오늘은 리크 대신 파슬리가 올라가 있었다. 마르타는 매일 무언가를 조금씩 바꿨다. 요리사의 자존심이었다.
문이 열리고, 반지 세 개가 먼저 들어왔다.
드라벨: 아가씨. 이게 무엇입니까.
드라벨은 인사도 없이 쟁반을 내려다봤다. 그 뒤로 공작부인이 따라 들어왔다. 오늘은 머리를 단정하게 올린, 공작가의 얼굴이었다.
레티시아: 닭고기 수프예요, 선생님.
드라벨: 그건 저도 압니다.
드라벨의 입꼬리가 아래로 처졌다.
드라벨: 제가 분명히 말씀드렸을 텐데요. 고기는 피를 탁하게 하고 약효를 흐린다고. 마님, 대체 주방에서 누가 이런...
레티시아: 제가 졸랐어요.
레티시아는 숟가락을 든 채로 말했다.
레티시아: 안 해 주면 주방을 엎어 버리겠다고 했어요. 그릇도 다 깨고요. 마르타는 어쩔 수 없었어요.
방 안이 잠깐 조용해졌다.
공작부인이 이마를 짚었다. 드라벨은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작년에 수프를 열 번 돌려보낸 아가씨였다. 그릇을 깨겠다고 했다는 말을 의심할 사람은 이 저택에 아무도 없었다.
평판도 재산이다. 나쁜 평판도 쓸 데가 있다.
레티시아: 그리고 선생님.
레티시아는 니나에게 눈짓을 했다. 니나가 기록지를 두 손으로 내밀었다.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레티시아: 수프를 먹기 시작한 뒤로 걸음 수가 늘었어요. 여기 다 적혀 있어요. 한번 보실래요?
드라벨은 기록지를 받지 않았다. 손끝으로 한 번 밀어냈을 뿐이었다.
드라벨: 아가씨. 환자가 스스로 좋아졌다고 느끼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습니다. 그건 일시적인 기운입니다. 촛불이 꺼지기 직전에 한 번 확 밝아지는 것처럼요.
공작부인의 얼굴이 하얘졌다.
레티시아는 속으로 혀를 찼다. 아이고, 이 양반 말장사는 잘하네. 환자 앞에서 촛불 이야기를 꺼내는 의원은 처음 봤다. 하지만 효과는 확실했다. 듣는 사람이 엄마라면 더더욱.
그런데 공작부인은 기록지를 받아 들었다.
드라벨이 밀어낸 그 종이를, 부인은 말없이 집어 들고 끝까지 읽었다. 숫자 하나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어 가며. 그리고 고개를 들었다.
엘레노어: 선생님. 이 아이가 제 발로 주방까지 걸어갔다고 들었어요.
드라벨: 마님, 그건...
엘레노어: 수프는 하루 한 번만 허락하겠어요. 대신 약은 선생님 말씀대로 한 번도 거르지 않게 하지요. 그거면 되겠습니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그러나 질문이 아니었다.
레티시아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다시 봤다. 사교계에서 이십 년을 버틴 여자의 협상법이었다. 상대 손에 이긴 쪽을 하나 쥐여 주고, 제가 원하는 걸 가져가는 것.
드라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드라벨: 마님 뜻대로 하십시오. 대신 오늘 점심 약은 제가 보는 앞에서 드시게 하겠습니다.
니나가 사발을 가져왔다. 거무튀튀한 탕약이 찰랑거렸다.
레티시아는 드라벨의 얼굴을 보며 사발을 들었다. 쓰고, 그 뒤에 달큰했다. 마지막 한 모금까지 넘기자, 드라벨의 입가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반지 세 개가 햇빛에 반짝였다.
드라벨: 잘하셨습니다, 아가씨.
그는 맥도 짚지 않고 돌아섰다. 다리를 살펴보지도 않았고, 기록지를 다시 보지도 않았다. 수프 한 그릇에 그렇게 언짢아하던 사람이, 환자가 실제로 몇 걸음을 걷는지는 끝내 묻지 않았다.
그가 확인한 것은 단 하나. 빈 사발이었다.
물건을 파는 사람이 제일 신경 쓰는 건 손님의 몸이 아니다. 재주문이다.
그날 오후 세 시, 레티시아는 열여덟 걸음에서 멈췄다.
다리가 무거웠다. 눈꺼풀도 무거웠다. 율리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를 침대에 앉혔다.
율리안: 점심을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레티시아: 그런가 봐요.
니나가 기록지에 적었다. 정오, 약. 오후 세 시, 열여덟 걸음. 다리 무거움, 졸림.
레티시아는 그 줄을 오래 봤다.
해 질 녘, 저녁 약이 들어왔다.
니나가 쟁반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사발에서 김이 피어올랐다. 한약방 뒷골목의 냄새.
레티시아: 니나야.
니나: 네, 아가씨.
레티시아: 마르타한테 가서, 데운 우유에 꿀 좀 타 달라고 해 줄래? 약 먹고 나서 입가심하게.
니나: 지금요? 약 식기 전에 드셔야 하는데...
레티시아: 식혀서 마실게. 뜨거워서 혀를 데겠어.
니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문이 닫혔다. 발소리가 복도 끝으로 멀어졌다. 주방은 1층 동쪽 끝, 반지하였다. 계단을 내려갔다가 올라오려면 시간이 넉넉했다.
레티시아는 사발을 들었다.
그리고 창가를 봤다.
창턱에 작은 화분이 하나 놓여 있었다. 흰 제라늄이었다. 그녀가 깨어난 첫날부터 거기 있었다. 니나가 매일 아침 물을 주고, 커튼을 걷을 때마다 잎을 한 번씩 쓰다듬는 화분이었다.
레티시아는 지팡이를 짚고 일어났다. 창가까지 열 걸음. 오늘 저녁의 다리로도 충분했다.
사발을 기울이기 직전, 손이 잠깐 멈췄다.
정말 괜찮을까. 드라벨의 말이 다 거짓이라는 증거는 아직 없었다. 숫자 몇 줄, 그리고 장사꾼의 감. 그게 전부였다.
하지만 동대문에서 삼십 년을 버틴 것은 결국 그 감 덕분이었다. 숫자 몇 줄이 이상할 때 그냥 넘기지 않은 덕분이었다.
한 번에 하나만 바꾼다. 오늘 밤은, 이것 하나만.
검은 탕약이 흙 위로 쏟아졌다. 흙이 그것을 소리 없이 삼켰다. 쓰고 달큰한 냄새가 창가에 잠깐 고였다가 흩어졌다.
레티시아는 빈 사발을 탁자에 돌려놓고,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 올렸다.
미안하다, 꽃아.
내일 새벽 여섯 시에, 답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