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첫 번째 거래 상대
作 외인 · 2026-10-15
“와당탕”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들어온 것은 장롱이었다. 적어도 레티시아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문틀을 꽉 채우는 어깨, 짧게 깎은 잿빛 머리, 턱을 덮은 수염. 군복 같은 검은 외투 단추가 두 개나 잘못 채워져 있었다.
장롱은 침대까지 세 걸음 만에 왔다. 그리고 무릎을 꿇었다.
오스윈: 레티...
굵은 목소리가 갈라졌다. 커다란 손이 그녀의 손을 감쌌다. 젓가락 같은 손목이 그 안에서 보이지도 않았다.
오스윈: 레티, 아버지다. 알아보겠느냐?
아버지.
레티시아는 그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눈가가 시뻘겋고, 수염 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덩치는 장롱인데 우는 건 세 살배기였다.
그녀는 이 남자를 모른다. 이름도, 나이도, 무슨 일을 하는지도.
삼십 년 장사에서 배운 것이 있다면, 손님 이름이 기억 안 날 때 절대 이름을 먼저 부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웃고, 고개를 끄덕이고, 상대가 스스로 말하게 둔다. 사람은 대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레티시아: ...아버지.
단어 하나를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효과는 확실했다. 남자는 그녀의 손등에 이마를 대고 짐승처럼 울기 시작했다.
뒤이어 치맛자락 소리가 들어왔다. 연보랏빛 드레스를 입은 부인이었다. 손수건으로 입가를 누르고 있었는데, 그 와중에도 올림머리가 한 올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레티시아는 저 머리를 유지하려면 하녀가 몇 명 붙어야 하는지 잠깐 계산했다.
그런데 그 얼굴이 문제였다. 은빛 도는 금발, 봄 새잎 같은 연두색 눈, 조각한 듯한 콧날. 조금 전 거울 속에서 본 얼굴이 스무 해 쯤 나이를 먹고 거기 서 있었다. 나이를 먹었는데도 눈이 부셨다.
레티시아는 장롱을 한 번, 부인을 한 번 보았다.
다행이다. 엄마를 닮았구나.
엘레노어: 오스윈, 아이가 놀라요. 좀 비키세요.
부인은 남편을 밀어내고 침대 끝에 앉았다. 차가운 손이 레티시아의 이마를 짚었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엘레노어: 열이... 내렸구나.
부인은 울지 않으려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눈가는 빨갰다.
마지막으로 청년이 들어왔다. 키가 크고, 허리에 칼을 찼고, 이마에 시퍼런 혹이 나 있었다. 계단에서 발을 헛디딘 장본인이 분명했다.
혹만 빼면 얼굴은 그림 같았다. 어머니를 빼닮은 금발에 연두색 눈. 장롱의 피는 어깨에만 간 모양이었다. 이 집 자식들은 다행히 둘 다 엄마 쪽이었다.
율리안: 레티! 오빠 알아보겠어? 율리안이야, 율리안!
오빠는 이름을 스스로 말해 주었다. 고마운 손님이었다.
레티시아: 율리안 오라버니.
청년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그러고는 아버지 옆에 나란히 무릎을 꿇더니, 똑같이 울기 시작했다.
레티시아는 손을 뻗어 청년의 이마를 짚었다. 손끝에 동그란 혹이 만져졌다. 꽤 크게 부딪친 모양이었다.
레티시아: 오라버니, 여기 혹 났어요.
율리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아버지를 돌아봤다.
율리안: 아버지, 들으셨어요? 레티가, 레티가 제 걱정을 해 줬어요!
그러고는 아까보다 더 크게 울었다. 레티시아는 손을 슬그머니 거두었다. 혹 하나 짚어 준 걸로 이렇게까지 남는 장사는 처음이었다.
레티시아는 침대 위에서 두 남자의 정수리를 내려다봤다. 하나는 잿빛, 하나는 금빛. 둘 다 꽤나 크게 울었다.
이 집, 사람은 좋구나.
그녀는 그 사이에서 정보를 주워 담았다. 울음 사이사이로 새어 나오는 말들이 있었다. 3주. 열. 신부님. 마지막 성사. 그리고 '드라벨 선생이 가망이 없다고 했을 때'.
3주를 앓아누웠고, 다들 장례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장례 준비라. 꽃값은 얼마로 잡았을까. 레티시아는 그 질문을 꾹 삼켰다.
그레고르: 주인님, 드라벨 선생님 오셨습니다.
문가에 늙은 집사가 서 있었다. 하얀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기고, 등을 꼿꼿이 세운 노인이었다. 그 뒤에서 마른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검은 가죽 가방. 검은 외투. 그리고 손가락에 금반지가 세 개.
레티시아의 시선이 반지에 가서 멈췄다.
의사가 반지를 세 개나. 벌이가 좋으시네.
드라벨: 오오, 이럴 수가.
드라벨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더니 눈을 크게 떴다. 연극 무대에서나 볼 법한 크기였다.
드라벨: 기적입니다, 공작 각하. 제 탕약이 마침내 효과를 본 겁니다.
오스윈: 선생...
공작은 일어나 드라벨의 손을 덥석 잡았다. 반지 세 개가 그 손아귀 안에서 반짝였다.
오스윈: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드라벨: 당치 않습니다. 의원으로서 당연한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당연한 일을 한 사람치고는 입꼬리가 너무 올라가 있었다. 레티시아는 그 입꼬리를 안다. 동대문에서 재고를 정가에 떠넘긴 도매상들이 짓던 입꼬리였다.
드라벨: 다만.
드라벨이 엄숙하게 손가락을 세웠다.
드라벨: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입니다. 아가씨의 몸은 아직 유리처럼 약하십니다. 탕약은 하루 세 번, 단 한 번도 거르시면 안 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시는 것도 당분간은 금하십시오.
오스윈: 물론이오. 무엇이든 선생 말대로 하겠소.
잠시 뒤, 아까 비명을 지르던 하녀가 새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떨어뜨리지 않으려고 두 손으로 꼭 쥐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거무튀튀한 사발이 하나 놓여 있었다.
니나: 아, 아가씨. 약 드실 시간이에요.
하녀는 레티시아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아까 그 말투가 아직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레티시아는 사발을 받아 들었다. 진흙 같은 색에, 냄새는 한약방 뒷골목을 통째로 졸인 것 같았다.
모두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 어머니, 오빠, 집사, 의원, 하녀. 여섯 쌍의 눈.
이 판에서 혼자 안 마시겠다고 버티는 건 장사가 아니었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고 사발을 비웠다.
썼다. 혀가 오그라들 만큼 썼다. 그런데 쓴맛 뒤에 묘하게 달큰한 맛이 따라붙었다.
잠시 후, 몸이 노곤해졌다. 팔다리에 모래주머니를 단 것처럼 무거웠다. 눈꺼풀이 저절로 내려왔다.
약 한 사발에 이렇게 졸린 건 처음이네.
드라벨: 보십시오. 벌써 안정을 찾으시지 않습니까.
드라벨의 목소리가 멀게 들렸다. 공작부인이 이불을 끌어 올려 주었다. 오빠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따뜻했다. 이런 걸 받아 본 게 언제였더라.
그대로 잠들 뻔했다.
그런데 그녀 안의 무언가가, 삼십 년 동안 한 번도 잠든 적 없는 무언가가 눈을 떴다.
하루 세 번. 단 한 번도 거르지 말 것. 반지 세 개.
레티시아는 무거운 입술을 겨우 떼었다.
레티시아: 선생님.
드라벨: 네, 아가씨. 말씀하십시오.
레티시아: 이 약, 한 사발에 얼마예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공작은 눈을 끔뻑였다. 오빠는 입을 벌렸다. 공작부인이 손수건으로 입을 가렸다.
엘레노어: 레티시아. 숙녀가 값을 묻는 건...
아, 이 동네는 그런 걸 안 묻는구나.
레티시아는 대답을 듣지 못한 채 잠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보지 못했다.
방 한구석에서, 의원의 반지 낀 손가락이 가방 손잡이를 꽉 움켜쥐는 것을.
그리고 문가의 늙은 집사가 그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