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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입신고 다음 날 0시

by 장지호 · 2026-10-26

D+11 · 23:40

임시 원룸은 본부에서 두 정거장이었다. 다인은 불을 켜지 않고 책상 앞에 앉았다.

작년 봄에 창구에서 만난 사람 하나가 떠올랐다.

윤소미. 스물넷이었고 계약직이었고 전세가 처음이었다. 계약서를 들고 왔고, 그래서 묻는 게 많았다. 다인은 그런 손님을 좋아했다.

"전입신고를 오늘 했는데요. 효력이 왜 내일부터예요?"

"대항력은 전입신고한 다음 날 0시부터 생깁니다."

"오늘은요?"

"오늘은 아직 아닙니다."

여자는 계약서를 한 번 봤다. 형광펜이 그어져 있었다. 어디서 배워 온 사람이었다.

"그럼 집주인이 오늘 오후에 대출을 받으면요. 은행이 저보다 앞서요?"

"근저당은 접수한 그 시각에 효력이 생깁니다."

"제 건 내일이고요."

"네."

여자는 손가락으로 책상 위를 한 번 짚었다. 숫자를 세는 사람의 동작이었다.

"그러니까 오늘 밤 하루는, 제가 아무한테도 보호를 못 받는 거네요."

"...규정이 그렇습니다."

"규정이 왜 그래요?"

다인은 그 질문에 답을 갖고 있지 않았다. 종이로 일하던 시절의 순서가 그대로 남았고, 근저당만 전산으로 즉시 들어가게 됐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인은 그렇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윤소미는 계약서를 접었다. 접으면서 혼잣말처럼 말했다.

"저는 사는 게 아니라 맡기는 건데요. 이 돈을."

"...네."

"이 년 뒤에 돌려받는 조건으로 남한테 이억을 맡기는 거잖아요. 통장에 넣으면 이자를 주는데, 사람한테 맡기면 이자도 없고요. 그게 이 나라에서만 있는 제도라고 하더라고요."

"어디서 들으셨어요?"

"찾아봤어요." 그는 웃었다. "계약하기 전에 다 찾아봤어요. 아무한테도 안 물어보고요.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요."

다인은 명함을 한 장 꺼내 유리 아래로 밀었다. 창구에서 명함을 주는 건 규정에 없는 일이었다.

"모르는 게 생기면 전화하세요."

윤소미는 명함을 지갑에 넣고 고맙다고 하고 갔다. 그 뒤로 그 사람이 어떻게 됐는지 다인은 모른다.

02:40은 그 밤의 시각이었다. 서류의 세계가 잠들고 효력의 세계가 아직 깨지 않은 시간.

다인은 노트를 꺼내 적었다.

전입신고 다음 날 0시. 근저당 접수 당일.

적고 나서 손끝이 차가웠다. 난방을 켰는데도 그랬다.

D+12 · 13:00

홍보 담당이 여론 동향 출력물을 들고 왔다. 같은 기사에 달린 베스트 댓글 두 개가 나란히 형광펜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하나는 이랬다. 평생 모아 산 집 등기가 날아간 사람들 심정을 생각하면 잠이 안 온다.

다른 하나는 이랬다. 평생 모아도 집을 못 사는 사람들은 원래 매일 잠이 안 왔다.

"둘 다 좋아요가 만 개가 넘어요. 같은 기사에서요." 홍보 담당은 출력물을 접었다. "보고서에는 여론 양분이라고 씁니다."

"양분이 아닌 것 같은데요."

"저도요. 근데 그거 말고 쓸 단어가 없어요."

그는 출력물 뒷장을 넘겼다. 통계가 붙어 있었다.

"참고자료로 받은 건데요. 서른아홉 살 이하 주택 보유율이 이십칠 퍼센트대예요. 역대 최저요."

"줄었네요."

"줄었는데, 작년에 삼십대가 새로 받은 주택담보대출은 한 사람당 삼억에 가깝습니다." 그는 다음 줄을 짚었다. "못 사는 사람이 늘었고, 사는 사람은 더 크게 빌렸어요."

"안 사는 게 아니라 못 사는 거네요."

"네. 그리고 서울에서 중간쯤 버는 집이 중간쯤 되는 집을 사려면, 소득을 한 푼도 안 쓰고 십 년 반이 걸립니다."

"안 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십 년 반이 아니에요."

"뭐라고 쓰고 싶으신데요."

홍보 담당은 잠깐 생각했다.

"같은 걸 보고 있는 게 아니라고요. 한쪽은 잃은 얘기를 하고 한쪽은 못 가진 얘기를 하는데, 기사는 하나잖아요." 그는 출력물을 가방에 넣었다. "이렇게 쓰면 위에서 안 받아요. 그래서 양분이라고 씁니다."

다인은 목록 속의 얼굴들을 생각했다. 권상호와, 105동 802호와, 지분 삼백 명짜리 임야와, 그리고 정말로 스무 채를 굴리던 누군가가 같은 목록 안에 있었다. 목록은 그들을 구분하지 않았다. 여론도 구분하지 않았다. 방향만 반대였다.

D+13 · 22:50

속보가 떴다.

단독: 등기 삭제 접속 계정명은 '홍길동'... 수사당국 확인

본부 단체방이 그날 밤 내내 울렸다. 누가 흘렸느냐로 시작해서, 이제 어떻게 발표하느냐로 끝나는 대화들. 다인은 화면을 보다가 창밖을 봤다.

내일부터는 세상이 그 이름을 부를 것이다. 견본 속에서 조용히 살던 이름. 아무나 덧쓰고 아무나 지우던 이름.

찾아질 리가 없다고, 다인은 생각했다. 홍길동은 애초에 누구도 아니라서 홍길동인 것이다.

D+14 · 11:00

본부 대표번호로 전화가 한 통 넘어왔다. 민원실에서 돌린 것이었다. 창구 출신이 받는 게 낫겠다고 누가 말했고, 그래서 다인 자리로 왔다.

"복구대책본부 서다인 주무관입니다."

"저기, 제가 홍길동인데요."

다인은 볼펜을 들다 말았다.

"...네."

"진짜 홍길동이요. 주민등록에 그렇게 돼 있는 사람이요."

목소리는 오십쯤으로 들렸고 피곤했다. 뒤로 도로 소음이 났다.

"어제부터 전화가 백 통쯤 왔어요. 기자도 있고 그냥 장난도 있고요. 어제는 아들 학교에서도 전화가 왔습니다. 애가 좀 곤란한 모양이에요."

"...죄송합니다."

"주무관님이 죄송할 건 아니고요." 그는 잠깐 말을 쉬었다. "부탁이 하나 있어서요. 뉴스에서 그 사람을 홍길동이라고 부르잖아요. 그걸 좀 다르게 부르면 안 됩니까."

"다르게요."

"아무렇게나요. 계정 1번이라든지. 저는 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요즘 제 이름이 그 사람 이름이 됐어요."

다인은 답을 골랐다. 골랐다기보다 없는 답을 뒤졌다.

"삭제 로그에 찍힌 이름이 그겁니다. 저희가 그걸 다르게 부르면, 그때부터 그건 기록이 아니게 됩니다."

"기록이 아니면 안 됩니까."

"안 됩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방향지시등 소리가 규칙적으로 났다. 그가 차를 세우는 모양이었다.

"그렇군요."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 말 두 번 하셨어요." 그가 말했다. "저기, 하나만 더요. 그 사람 잡히면 이름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어요?"

"왜요."

"제 이름이 아니라는 걸 알아야 되니까요."

다인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대답하고 나서 노트에 그 번호를 적었다. 적을 칸이 없어서 여백에 적었다.

D+14 · 13:20

이백열아홉 명이었다.

이 나라에서 홍길동이라는 이름을 실제로 쓰는 사람의 수다. 행정안전부가 그 숫자를 내놓은 것은 기자들이 물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들이 민원을 넣었기 때문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 아무 말 대잔치]

제 이름이 홍길동입니다 (인증)

어제부터 전화가 백 통 넘게 왔습니다. 모르는 번호로요.

기자도 있고 그냥 장난도 있고 욕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등기소가 어디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십육 년을 이 이름으로 살았고

초등학교 때부터 놀림받았는데 마흔여섯에 또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 진짜 홍길동 실존하네 ㅋㅋㅋㅋㅋ

└ ㄴ 이런 댓글 때문에 글 쓰신 거잖아요

└ 저희 아버지도 홍길동이십니다. 어제 회사에서 조퇴하셨어요

└ 개명 신청 몰리는 중이라고 법원에서 그러던데 사실인가요

└ ㄴ 사실입니다 저 지난주에 접수했어요

└ 미안합니다 저도 아까 웃었어요

기사 하나가 그중 한 명을 인터뷰했다. 경기도에서 화물차를 모는 오십 대였다. 기자가 심경을 묻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적혀 있었다.

이름이 유명해졌는데 유명해진 게 내가 아니에요.

다인은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오전에 받은 전화의 도로 소음이 떠올랐다.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다.

견본 위에 덧쓰였다가 지워지던 이름들이 떠올랐다. 이번에는 반대였다.

노트를 폈다가 적지 않고 덮었다. 적을 자리를 못 찾았다.

그날 밤에야 학교에서 배운 홍길동이 떠올랐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아이. 서자라서, 이름이 있어도 없는 것과 같았던 아이. 나라가 자리를 안 주니까 스스로 활빈당을 세워 남의 곳간을 헐던 자.

등기소 견본에 왜 하필 그 이름이 앉아 있었는지, 다인은 삼 년 동안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서류에는 있는데 실은 아무도 아닌 사람. 그게 홍길동이었다. 그리고 사라진 사천 필지에 걸린 이들이 대개 그랬다. 등기부에는 있는데 권리는 없는 사람들. 그 이름은 누가 훔친 게 아니라, 처음부터 그들의 것이었는지도 몰랐다.

이튿날 아침 회의는 예정보다 삼십 분 일찍 시작됐다.

그 계정을 십이 년 전에 처음 만든 사람의 이름이 나왔다고 했다.

수사 브리핑 자료 (D+15, 비공개)

접속 계정 '홍길동'(관리자 권한) 분석 결과:

- 최초 생성: 12년 전. 생성 신청자 정보 확인 중

- 사건 당일 동시 접속 세션 314개. 발신지 국내외 혼재

- 세션별 행위 패턴 상이 — 단독범 아님

- 계정 생성 이래 총 로그인 27,000여 회. 대부분 사건 이전 수년간 분산

D+15 · 09:30

홍길동 계정의 최초 생성 기록이 나왔다.

십이 년 전, 시스템 유지보수 외주 업체를 통해 발급된 테스트 계정이었다.

"미사용 계정 회수 대상으로 지적된 적도 있습니다." 수사관이 자료를 넘겼다. "정보보안 감사에서요."

"언제요."

"몇 해 전에요. 목록에 올랐고, 회신 공문에는 조치 예정이라고 적혀 있고, 조치는 없습니다."

"왜 안 했습니까."

"그건 저희가 물을 게 아니라 이 방에서 답하실 일 같은데요."

방이 조용해졌다. 다인은 권상호의 확인서면을 생각했다. 형식은 다 갖춰져 있었고 아무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고 그래서 통과했다. 아무도 게으르지 않았는데 아무것도 되지 않았다.

"발급 신청서의 담당자란에 이름이 있습니다." 수사관이 말을 이었다. "추적했는데요."

"찾았습니까."

"찾았습니다. 오 년 전에 사망했습니다."

죽었을 때 스물아홉이었다.

수사 자료에 붙은 그 사람의 이력이 이상했다. 외주 업체 계약직으로 여덟 달 일했고, 퇴사 후에는 물류창고와 배달을 했다. 그런데 죽기 전 삼 년 동안 그의 이름으로 된 부동산이 마흔여섯 채였다. 빌라와 오피스텔. 전부 대출과 전세보증금이 꽉 차 있었고, 절반은 이미 경매에 넘어가 있었다.

"명의를 판 겁니다." 최민기가 말했다.

"바지사장이요?"

"네. 스물여섯쯤에 몇 백 받고 도장 찍었을 거예요."

다인도 창구에서 그런 등기를 본 적이 있었다. 서류상 사십육 채의 주인이고 실제로는 고시원에 살던 사람. 이름값으로 몇 백을 받았을 것이고, 그 이름이 감당하게 될 빚이 얼마인지는 계약할 때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이 죽은 뒤에도 이름은 계속 일했다. 마흔여섯 채의 등기부 위에서, 그리고 아무도 회수하지 않은 관리자 계정 속에서.

"유족 진술 녹취가 있습니다." 수사관이 말했다. "짧습니다."

노트북을 돌려놓고 재생을 눌렀다. 조사실 특유의 울림이 섞인 여자 목소리가 나왔다. 진술자는 누나였다.

*동생분 명의로 마흔여섯 채가 있다는 건 언제 아셨습니까.*

*장례 치르고 여덟 달쯤 뒤에요. 우편물이 계속 와서요.*

*어떤 우편물이었습니까.*

*독촉장이요. 처음엔 잘못 온 줄 알았어요. 걔가 무슨 집이 있어요. 고시원에서 살다 갔는데.*

*그 뒤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상속 포기하러 다녔어요. 반년 걸렸어요. 그거 하면서 알게 됐어요, 걔 마지막 이 년을. 어디 살았는지 뭘 했는지 누구 만났는지, 전부 계약서로 알았어요.*

*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없어요. 아, 하나만요.*

*네.*

*걔 이름이 이렇게 많이 남아 있는 줄 몰랐어요. 살아 있을 때는 어디에도 이름이 없던 애였는데.*

녹취가 끝났다. 방에서 아무도 먼저 말하지 않았다. 수사관이 노트북을 도로 돌려놓으며 말했다.

"다음 장으로 넘어가겠습니다."

그날 오후에 다인은 그 마흔여섯 채를 하나씩 열어봤다. 업무와 상관없는 일이었다.

빌라, 오피스텔, 다시 빌라. 주소는 다 다른데 갑구에 적힌 이름이 같았다. 열여섯 번째쯤부터 다인은 화면을 보지 않고도 거기 뭐라고 적혀 있을지 알았고, 그런데도 마흔여섯 번째까지 다 열었다.

다 열고 나서 그 두 문장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볼펜을 쥔 손이 문장 끝에서 잠깐 멈췄다. 죽은 사람의 이름이 마흔여섯 채의 등기부 위에서 아직 일하고 있다는 것이, 종이에 눌러 적는 동안 손끝으로 천천히 올라왔다.

다인은 교육받을 때 봤던 연습용 화면을 떠올렸다. 진짜 사람에게 손대기 전에 시스템이 연습하던 그 이름. 그 연습용 계정 하나가 관리자 권한을 쥔 채 십이 년을 회수되지 않았다. 아무도 지우지 않은 건 그게 사람이 아니라서였다. 종이 견본의 홍길동이 사람 이름만 지워지고 저는 남듯이, 전산의 홍길동도 그렇게 남아서 산 사람들이 번갈아 그 위에 로그인했다. 죽은 명의자의 이름이 마흔여섯 채 위에서 계속 일한 것과 똑같았다. 지워지는 건 늘 진짜 있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