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봉우리
지은이 외인 · 2026-08-21
켄젤트는 3일이라고 했다.
그런데 25일이 걸렸다.
'.......'
기훈은 그 계산을 능선 중간에서 했다.
'드워프 다리로 3일이었나.'
아론의 기억이 뭔가 내놓았다. 드워프의 보폭은 인간의 삼분의 이 정도이며, 따라서 드워프의 하루 이동 거리는.
'.......'
그러니까 더 걸려야 하는 거잖아.
기훈은 그 기억을 접었다.
능선은 길었다.
올라가는 게 아니라 옆으로 가는 느낌이었다. 한참 걷고 나서 뒤를 돌아보면 아까 그 자리 같았다.
그런데 뒤가 낮아져 있었다.
숲이 아래에 있었다.
70일 동안 그 안에 있었던 것이 지금은 그냥 초록색 덩어리였다.
'.......'
기훈은 잠깐 그것을 봤다.
정상까지 마지막 삼십 미터가 제일 나빴다.
바위였다.
손으로 잡고 올라가야 하는데 왼쪽 갈비뼈가 아직 덜 붙었다. 팔을 위로 뻗을 때마다 옆구리에서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 났다.
기훈은 세 번 쉬었다.
두 번째 쉴 때 아론의 기억이 말했다.
'공작가의 자제는 스스로를 위험에 두지 않는다.'
'.......'
기훈은 바위에 이마를 댔다.
'지금 그 얘기를 하냐.'
올라갔다.
기훈은 바위 위에 손을 짚고 몸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섰다.
바람이 왔다.
숲에서는 바람이 이렇게 오지 않았다. 나무 사이로 부스러져서 왔다. 여기서는 통째로 왔다.
기훈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리고 앞을 봤다.
평지였다.
기훈은 그것을 한참 봤다.
70일 만이었다.
70일 동안 그가 본 것은 전부 세로였다. 나무가 세로였고 바위가 세로였고 절벽이 세로였다. 하늘도 나뭇가지 사이로 조각나서 보였다.
그런데 저 아래는 가로였다.
끝까지 가로였다.
'.......'
기훈은 앉지도 않고 서서 그것을 봤다.
밭이 보였다.
정확히는 밭인지 뭔지 모르겠는데 네모였다. 네모가 여러 개 붙어 있었다. 색이 조금씩 달랐다.
그리고 그 사이에 선이 하나 있었다.
곧은 선이었다.
'.......'
숲에는 곧은 게 없었다.
곧은 것은 사람이 만든다.
기훈은 그 선을 눈으로 따라갔다.
그러다가 그는 자기 얼굴을 만졌다.
젖어 있었다.
'.......'
기훈은 그것을 손등으로 닦았다.
'바람 때문이다.'
바람이 세긴 셌다.
기훈은 그렇게 정리하고 다시 앞을 봤다.
선을 따라가니 끝에 뭐가 있었다.
작았다.
엄지손톱만 했다.
기훈은 눈을 가늘게 떴다.
네모난 게 있고 그 안에 뾰족한 게 몇 개 솟아 있었다.
'성이네.'
기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웃었다.
성이었다.
사람이 사는 데였다.
기훈은 그때 처음으로 이 산에서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계산을 시작했다.
여기서 내려가는 데 며칠. 산 아래 숲을 지나는 데 며칠. 평지에 나가서 저기까지 며칠.
머릿속으로 대충 7일이 나왔다.
7일.
기훈은 그 숫자가 마음에 들었다.
70일을 있었으니까 7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기훈이 다시 성을 봤다.
성 주위가 검었다.
'.......'
처음에는 밭인 줄 알았다.
갈아엎은 밭은 검다. 그건 아론의 기억이 아니라 그냥 아는 것이었다. 어릴 때 소풍 가서 봤다.
그런데 검은 게 성을 둘러싸고 있었다.
밭이 성을 둘러싸는 건 이상하지 않다.
기훈은 그렇게 생각하려고 했다.
검은 것이 움직였다.
기훈은 숨을 멈췄다.
멀어서 하나하나는 안 보였다. 그냥 검은 면이었다. 그런데 그 면의 가장자리가 조금씩 변했다. 물이 스미듯이 성 쪽으로 밀렸다.
기훈은 그것을 봤다.
십 분쯤 봤다.
가장자리가 아까보다 성에 가까워져 있었다.
'.......'
기훈은 그 자리에 앉았다.
앉아서 무릎에 팔을 얹고 턱을 괬다.
그리고 다시 계산을 했다.
7일이었다.
7일이면 저기 도착한다.
7일 뒤에 저 성이 있을까.
기훈은 그 검은 것을 다시 봤다.
없을 것 같았다.
'내 일 아니잖아.'
기훈이 말했다.
소리 내어 말했다. 요즘 자꾸 소리를 냈다.
아론: 내 일 아니지.
바람이 대답을 안 했다.
아론: 나는 그냥 사람 사는 데로 가면 되는 거고, 저기가 없어지면 다른 데로 가면 되는 거고.
아론: ......
아론: 헤네스에 성이 저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기훈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자기가 몇 마디를 했는지 세어봤다.
세 마디였다.
한 마디면 끝날 얘기를 세 마디 했다.
'.......'
기훈은 자루를 앞으로 당겼다.
끈을 풀었다.
안에 신발 한 짝이 있었다.
기훈은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봤다.
'토반.'
'딸 이름은 미나. 열두 살.'
'마을 이름은 게른. 집이 열두 채.'
'가운데 우물.'
'그 옆에 나무.'
기훈은 자루를 다시 묶었다.
저 성 안에도 사람이 있을 것이다.
몇인지는 모른다.
이름도 모른다.
기훈은 그게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이름을 모르면 안 외워진다.
기훈이 일어섰다.
아론: 아니 그러니까.
기훈이 말했다.
아론: 오크가 저 성을 먹으면 그다음에 어디로 가겠냐고.
아론: ......
아론: 이쪽으로 오지.
아론: ......
아론: 내가 저기 있으면 귀찮잖아.
기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논리적이었다.
문제는 7일이었다.
7일을 5일로 줄일 방법이 없었다. 산은 산이고 다리는 다리다. 기훈은 이미 하루에 걸을 수 있는 만큼 걷고 있었다.
기훈은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다시 앉았다.
그리고 아론의 기억을 뒤졌다.
빠르게 가는 법.
말.
'말이 없다.'
배.
'강이 저쪽으로 안 흐른다.'
전이 마법.
'.......'
기훈은 그 항목에서 잠깐 멈췄다.
전이 마법이 있긴 있었다. 대륙에 그걸 쓸 수 있는 마법사가 다섯 명 있고, 그중 셋이 신국에 있고, 한 번 쓰는 데 성 하나 값이 든다.
'.......'
기훈은 그 항목을 접었다.
그다음 항목이 이상했다.
아론의 기억이 갑자기 옛날이야기를 내놓았다.
드레곤나이트.
대륙이 갈라지기 전에 하늘을 나는 기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용을 탔다.
용의 등에 앉아 구름 위를 갔고, 하루면 대륙 끝에서 끝까지 갔고, 그중 가장 뛰어난 자는 용과 말이 통했다고 한다.
지금은 없다.
기훈은 그 이야기를 끝까지 떠올리고 나서 뒤에 붙은 주석을 봤다.
아론의 기억은 성실했다.
'전승. 문헌 근거 없음. 유아용 서사.'
'.......'
동화책이었다.
기훈은 한숨을 쉬었다.
아론: 동화책까지 왔네.
기훈이 말했다.
아론: 이 정도면 진짜 방법이 없다는 거지.
기훈은 하늘을 봤다.
하늘에 뭐가 있었다.
처음에는 새인 줄 알았다.
높이 있었고 천천히 돌고 있었다.
독수리가 그렇게 돈다.
그런데 좀 컸다.
기훈은 그것을 봤다.
한참 봤다.
새가 아니었다.
날개가 두 장이었다.
그런데 앞다리가 없었다. 날개가 앞다리였다. 뒤로 긴 게 하나 나와 있었고 그 끝이 뾰족했다.
기훈은 입을 조금 벌렸다.
'.......'
아론의 기억이 이번에는 빨리 나왔다.
와이번.
용의 아종. 지능 낮음. 무리 생활 안 함.
어미가 새끼를 이 년간 기름. 독은 꼬리 끝에 있음.
'용의 아종이면.'
기훈이 생각했다.
'용이잖아.'
아론의 기억이 정정했다.
'용이 아님.'
'왜.'
'다리가 넷이 아님.'
'.......'
기훈은 그 와이번을 계속 봤다.
와이번이 크게 한 바퀴 돌았다.
그리고 북쪽 절벽 쪽으로 내려갔다.
내려가는 각도가 완만했다.
기훈은 그 각도를 눈으로 따라갔다.
'저기 뭐 있나.'
기훈은 아론의 기억을 한 번 더 뒤졌다.
'와이번을 탄 기록.'
'없음.'
'왜.'
'길들일 수 없음.'
'왜.'
'.......'
아론의 기억은 그 이상 아무것도 없었다.
기훈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바람이 계속 왔다.
아래에서는 검은 것이 계속 성 쪽으로 밀리고 있었고, 위에서는 와이번이 절벽 뒤로 사라졌고, 기훈은 그 사이에 서서 두 개를 번갈아 봤다.
아론: ......길들인 기록이 없다는 거지.
기훈이 말했다.
아론: 안 된다는 건 아니잖아.
그러고 나서 기훈은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박자 늦게 알아들었다.
'.......'
아론: 아니.
기훈이 고개를 저었다.
아론: 아니야.
아론: ......
아론: 그건 진짜 아니지.
기훈은 내려가는 길을 봤다.
남쪽이었다.
성으로 가는 길이었다.
기훈은 그쪽으로 한 발 갔다.
그리고 멈췄다.
기훈은 뒤를 돌아봤다.
북쪽 절벽이 있었다.
와이번이 사라진 쪽이었다.
'.......'
기훈은 거기를 한참 봤다.
아론: 7일이라.
기훈이 말했다.
아론: 7일이면 성이 없고.
아론: ......
아론: 근데 저기는.
기훈은 절벽까지의 거리를 눈으로 쟀다.
하루 반쯤이었다.
기훈은 자루 끈을 조였다.
몽둥이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걸었다.
북쪽이었다.
걸으면서 기훈은 계속 뭐라고 중얼거렸다.
아론: 이건 계산을 해본 거지,
아론: 하겠다는 게 아니고.
아론: ......
아론: 가서 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냥 내려오면 되는 거고.
아론: ......
아론: 어차피 저쪽 길로 내려가도 하루 반 차이밖에 안 나고.
기훈은 걸음을 조금 빨리했다.
봉우리 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바람만 계속 불었다.
아래에서는 검은 것이 성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