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 5. 출정
지은이 외인 · 2026-08-21
명단은 출정 3일 전에 나왔다.
기병 1000.
그중 995가 엘리온 기사단이었다. 나머지 다섯이 브론즈스톰이었다.
한스는 그 종이를 오래 봤다.
부관: 단장님.
부관이 물었다.
부관: 왜 그러십니까.
한스: 아니다.
한스가 종이를 접었다.
한스: 다섯을 골라야겠군.
브론즈스톰에서 다섯을 뽑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자원이 열아홉 명 들어왔다.
왕자를 호위한다는 것은 명예였다. 열아홉이 많은 게 아니라 오히려 적었다. 다들 자기가 안 뽑힐 것을 알기 때문에 안 낸 것이다.
한스는 명단을 훑었다.
그리고 세 번째 줄에서 멈췄다.
한스: ......
한스가 부관을 봤다.
한스: 이 사람 불러와.
베린이 들어왔다.
전보다 나아 보였다. 얼굴에 핏기가 돌았고 걸음도 정상이었다.
베린: 단장님.
한스: 자원했나.
베린: 예.
한스: 왜.
베린이 대답하지 않았다.
한스가 그를 봤다.
한스: 옆구리는.
베린: 붙었습니다.
한스: 의무병한테 확인받았나.
베린: ......
한스: 안 받았군.
베린: 받으면 안 붙었다고 할 겁니다.
한스가 잠깐 조용했다.
한스: 베린.
베린: 예.
한스: 이건 왕자님 호위다.
베린: 압니다.
한스: 딴 데 눈 돌릴 자리가 아니야.
베린: 압니다.
한스: 그런데 왜 자원했나.
베린이 이번에는 대답했다.
베린: 쎄톤은 데던산 아래입니다.
한스가 그를 봤다.
한참 봤다.
한스: ......그게 이유가 되나.
베린: 안 됩니다.
한스: 그런데도 말했군.
베린: 단장님이 물으셨으니까요.
한스는 명단을 다시 봤다.
그리고 붓을 들었다.
베린: 단장님.
한스: 뭔가.
베린: 저를 빼시겠습니까.
한스가 붓으로 이름 하나를 지웠다.
베린의 이름이 아니었다.
베린: ......
한스: 가라.
베린: 단장님.
한스: 대신 하나만 약속해.
한스가 붓을 내려놨다.
한스: 왕자님이 먼저다.
베린: ......
한스: 베린.
베린: 예.
한스: 왕자님이 먼저야.
베린이 무릎을 꿇었다.
베린: 예.
나머지 넷은 그날 안에 정해졌다.
그중 하나가 케이라였다.
브론즈스톰에 여자는 셋이었다.
300 중에 셋이었다.
케이라는 그 셋 중에서 제일 오래 있었다.
케이라: 단장님.
케이라가 명단을 보고 물었다.
케이라: 베린을 넣으셨습니까.
한스: 넣었다.
케이라: 옆구리가 안 붙었습니다.
한스: 안다.
케이라: 의무병한테 확인 안 받았습니다.
한스: 그것도 안다.
케이라가 잠깐 조용했다.
케이라: 그럼 제가 옆에 서겠습니다.
한스: ......
케이라: 쓰러지면 제가 끌고 오겠습니다.
한스가 그를 봤다.
한스: 케이라.
케이라: 예.
한스: 자네는 왜 자원했나.
케이라가 대답했다.
케이라: 왕자님 호위는 이력에 남습니다.
한스: ......
케이라: 저는 그게 필요합니다.
한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한스: 솔직해서 좋군.
케이라: 솔직한 게 제일 쌉니다.
같은 날 저녁에 하일공작이 그 명단을 받았다.
그는 그것을 펴서 숫자를 봤다.
995와 5.
'.......'
하일은 그것을 한참 봤다.
이상했다.
정확히 말하면 이상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케일이 기사단 1000을 냈다. 그중 절반을 남기고 500만 보낸다고 했다가, 나머지 자리를 왕가에서 채우기로 했는데 결국 엘리온에서 더 냈다.
이유도 있었다. 왕가 직속 기병은 왕도 방비에 써야 한다.
말이 됐다.
'.......'
하일은 명단을 접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수가 없었다.
'엘리온이 너무 많다'고 하면, 케일이 물을 것이다.
'그럼 공작가 사병을 내시겠습니까.'
하일가 사병은 이천이었다. 그중 브론즈스톰 오백은 이미 왕가에 헌납했다. 나머지 천오백은 영지를 지킨다.
그것도 내놓으라고 하면 내놓을 수는 있었다.
그런데 그러면 남는 것이 없었다.
'.......'
하일은 창밖을 봤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 무슨 계산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조카가 가는 자리에 붙일 사람을 세면서, 자기 영지가 빌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
하일은 그 계산을 멈췄다.
멈추고 나서도 답은 바뀌지 않았다.
출정 전날 밤에 아인스가 공작저에 왔다.
혼자 왔다.
아인스: 숙부님.
하일: 전하.
아인스: 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아인스가 웃었다.
아인스: 어릴 때는 숙부님이라고 불렀는데요.
하일: 그건 전하께서 어리셨을 때고.
아인스: 지금도 어립니다.
아인스가 자리에 앉았다.
하일이 잔을 내밀었다. 아인스가 받았다.
둘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인스: 숙부님.
하일: 예.
아인스: 아버지가 우셨습니다.
하일: ......
아인스: 제가 간다고 하니까요.
하일이 잔을 봤다.
하일: 폐하께서는 원래 눈물이 많으시지요.
아인스: 많으시죠.
아인스가 잔을 비웠다.
아인스: 그런데 이번에는 좀 다르게 우셨습니다.
하일: ......
아인스: 저를 붙잡고 우신 게 아니고, 등을 돌리고 우셨어요.
하일: ......
아인스: 그게 더 무섭더라고요.
하일이 술을 따랐다.
하일: 전하.
아인스: 예.
하일: 길은 어디로 잡으셨습니까.
아인스: 레이프로를 지나서 갈 겁니다. 그게 제일 빠릅니다.
하일: 레이프로를 지나면.
아인스: 숲이 하나 있습니다.
아인스가 말했다.
아인스: 오윈숲이라고 하던데요.
하일이 잔을 들다가 멈췄다.
'.......'
그런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냥 숲 이름이었다.
하일은 잔을 마저 들었다.
아인스: 숙부님.
하일: 예.
아인스: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하일: 말씀하십시오.
아인스가 잠깐 뜸을 들였다.
아인스: 아론이 살아 있으면요.
하일: ......
아인스: 그 산 안에 있겠죠?
하일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인스: 제가 물어볼 말이 아닌 건 압니다.
아인스가 말했다.
아인스: 그런데 저는 그 애가 죽었다는 게 아직도 안 믿깁니다.
하일: ......
아인스: 열여섯이잖아요.
하일이 잔을 내려놨다.
하일: 전하.
아인스: 예.
하일: 찾지 마십시오.
아인스: ......
하일: 그 산에 들어가면 안 됩니다. 천 명이 들어가도 안 됩니다.
아인스: 압니다.
하일: 아신다면.
아인스: 압니다, 숙부님.
아인스가 말했다.
아인스: 그래도 근처는 갈 거 아닙니까.
하일: ......
아인스: 근처에 가면 볼 수는 있잖아요.
하일은 한참 아무 말도 안 했다.
아인스가 일어섰다.
아인스: 가보겠습니다.
하일: 전하.
아인스: 예.
하일이 그를 불러 세웠다.
그리고 한참 서 있었다.
아인스: ......숙부님?
하일: 만약에.
하일이 말했다.
목소리가 평소와 같았다.
하일: 만약에 찾으면.
아인스: 예.
아인스: 뭐라고 전할까요.
아인스가 물었다.
하일이 잠깐 조용했다.
하일: ......집에 오라고 해주십시오.
아인스는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나갔다.
원정대는 다음 날 새벽에 출발했다.
성문 앞에 1000기가 도열했다.
유리스3세가 단상에 올라왔다. 뭔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안 나왔다. 세 번쯤 시도하다가 결국 손만 들었다.
왕비가 그 옆에 섰다.
로에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아인스가 어머니를 봤다.
로에나가 그를 봤다.
둘은 아무 신호도 주고받지 않았다.
전날 밤에 다 했기 때문이다.
아인스가 말 위에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갔다.
단상 아래에서 니아가 아버지의 옷자락을 잡고 있었다.
아홉 살이었다.
니아: 어머니.
로에나: 응.
니아: 오라버니 손 흔들어요?
로에나가 딸의 손을 잡아 들어줬다.
니아가 손을 흔들었다.
아주 크게 흔들었다.
원정대에서 누군가 그것을 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일공작은 성벽 위에서 그것을 봤다.
기수 하나가 엘리온 깃발을 들고 있었다.
그 뒤로 995기가 따라갔다.
그리고 맨 뒤에 다섯이 있었다.
'.......'
하일은 그 다섯을 봤다.
너무 뒤에 있어서 얼굴은 안 보였다.
케일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다른 쪽 성벽이었다.
제킨: 각하.
제킨이 옆에 섰다.
제킨: 갔습니다.
케일: 그래.
제킨: ......
케일: 제킨.
제킨: 예.
케일: 레이프로에 사람 있나.
제킨: 둘 있습니다.
케일: 셋으로 늘려.
제킨: 예.
케일이 돌아섰다.
케일: 그리고 오늘부터 매일 보고 받는다.
원정대는 그날 하루에 육십 리를 갔다.
기병만으로 움직이니 빨랐다.
밤에 야영지를 세웠을 때 베린은 잠을 못 잤다.
옆구리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
그는 동쪽을 봤다.
아직 아무것도 안 보였다. 열흘은 더 가야 산이 보인다고 했다.
베린은 그 방향을 한참 보다가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절벽이 보였다.
'.......'
베린은 눈을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