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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몽둥이를 쓰는 것

지은이 외인 · 2026-08-21

숲이 끝났다.

나무가 성겨지고 빛이 들어왔다. 아래로 내리막이 이어졌고 그 너머로 평지가 보였다.

50일 넘게 못 본 것이었다.

기훈은 그것을 잠깐 봤다.

그리고 돌아섰다.

오크가 지나간 자리가 아직 남아 있었다.

풀이 눕고 흙이 파인 띠였다. 이제는 그게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 눈으로 읽을 수 있었다. 이십 미터쯤 되는 폭이 산 안쪽으로 다시 굽어 들어가고 있었다.

기훈은 그 자리에 섰다.

'.......'

동쪽으로 가면 산을 벗어난다. 벗어나면 사람 사는 데가 나온다. 그게 원래 목적이었다.

띠는 북쪽으로 굽어 있었다.

기훈은 북쪽을 봤다.

'저쪽도 결국 동쪽으로 가겠지.'

기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북쪽으로 걸었다.

이유는 스스로에게 세 번쯤 설명했다.

첫째, 저것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아야 한다.

둘째, 어차피 지나가는 길이다.

셋째, 산을 벗어나기 전에 오크 무리를 앞질러 두는 게 안전하다.

세 개 다 말이 됐다.

'.......'

기훈은 그중 어느 것도 진짜 이유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알면서 계속 걸었다.

첫날은 아무것도 못 만났다.

기훈은 그게 이상했다.

띠는 분명히 새것이었다. 부러진 나뭇가지 단면이 아직 젖어 있었고 눌린 풀이 완전히 마르지 않았다. 하루나 이틀 전이었다.

그런데 그 위에 아무것도 없었다.

'.......'

기훈은 걸음을 조금 빠르게 했다.

갈비뼈가 아팠다.

네 번째 날이었다. 아직 안 붙었다. 숨을 깊게 쉬면 옆구리 어딘가가 걸렸고 그러면 잠깐 멈춰야 했다.

기훈은 짧게 여러 번 숨을 쉬면서 걸었다.

둘째 날 오후에 냄새가 바뀌었다.

오크 냄새는 시큼했다. 그건 이제 안다.

지금 나는 것은 달랐다.

무겁고 비렸다. 뭔가 오래 썩은 것 위에 새 피가 얹힌 냄새였다.

기훈은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나무 뒤로 붙었다.

빈터가 있었다.

나무가 없는 게 아니었다. 나무가 부러져 있었다. 어른 팔뚝보다 굵은 것들이 여섯 그루쯤 밑동에서 꺾여 있었다.

그 가운데에 뭔가가 앉아 있었다.

'.......'

기훈은 그것을 봤다.

컸다.

앉아 있는데도 컸다. 앉은키가 사람 선 키보다 높았다. 등이 굽어 있었고 어깨가 머리보다 위로 솟아 있었다.

일어서면 사 미터쯤 될 것 같았다.

기훈은 아론의 기억을 뒤졌다.

오우거.

그리고 한 줄이 붙어 있었다.

'조우 시 대응 방법 없음.'

'.......'

기훈은 그 문장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

도주하라는 말도 아니었다.

방법이 없다는 것이었다.

오우거는 뭔가를 먹고 있었다.

기훈은 그게 뭔지 확인하는 데 몇 초가 걸렸다.

오크였다.

'.......'

한 마리가 아니었다. 옆에 두 마리가 더 있었다. 아직 안 먹은 것들이었다.

기훈은 잠깐 이상한 계산을 했다.

'저게 오크를 먹네.'

오크를 먹으면 오크의 적이다.

오크의 적이면.

'.......아니지.'

기훈은 그 계산을 중간에 끊었다.

저건 그냥 뭐든 먹는 것이다.

그리고 오우거 옆에 뭔가가 놓여 있었다.

기훈은 그것을 봤다.

나무였다.

정확히는 나무였던 것이었다. 뿌리 쪽을 잡기 좋게 다듬어놨고 위쪽 가지를 다 쳐냈다. 길이가 삼 미터쯤 됐고 굵기가 기훈의 허벅지보다 굵었다.

몽둥이였다.

'.......'

기훈은 자기 몽둥이를 봤다.

사람 키 정도. 팔뚝 굵기.

'.......'

다시 오우거의 것을 봤다.

'저건 좀 반칙 아니냐.'

기훈은 물러서기로 했다.

그건 확실했다. 이건 못 이긴다. 아론의 기억도 그렇게 말했고 눈으로 봐도 그랬다. 트롤 스무 마리를 붙여도 저건 안 될 것 같았다.

기훈은 발을 뒤로 뺐다.

밟았다.

나뭇가지였다.

소리가 아주 작았다.

기훈이 아니었으면 못 들었을 것이다.

오우거가 고개를 들었다.

'.......'

기훈은 그 자리에 굳었다.

오우거가 코를 킁킁거렸다.

그리고 일어섰다.

일어서는 데 시간이 걸렸다. 다리를 펴고 등을 세우고 목을 들었다. 그 과정이 아주 천천히 진행됐고 기훈은 그것을 전부 봤다.

사 미터가 넘었다.

기훈이 뛰었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잡았다.

기훈은 뒤도 안 돌아봤다. 나무 사이로 뛰었다. 나무가 많으면 큰 것은 못 따라온다. 트롤 때 그걸로 살았다.

뒤에서 소리가 났다.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였다.

한 그루가 아니었다.

'.......'

기훈은 그때 알았다.

저건 나무를 피해 가지 않는다.

기훈은 오십 미터를 갔다.

그리고 옆구리가 걸렸다.

숨이 안 들어왔다. 갈비뼈였다. 뛰면 안 되는 상태였는데 뛰었고 그 대가가 바로 왔다.

기훈이 비틀거렸다.

그 순간 뒤에서 그림자가 덮였다.

첫 번째로 날아갔다.

몽둥이가 옆구리에 들어왔다. 정확히는 몽둥이 끝자락이 스쳤다. 그런데도 몸이 십 미터쯤 날아가서 나무에 부딪혔다.

숨이 완전히 끊겼다.

기훈은 그 자리에 엎어져서 아무것도 못 했다.

'.......'

몸이 안 움직였다.

땅이 흔들렸다. 발소리였다.

기훈은 굴렀다.

방금 있던 자리에 몽둥이가 박혔다.

흙이 사람 키만큼 튀었다.

기훈은 네 발로 기어서 물러섰다.

'.......'

숨.

숨부터.

기훈은 짧게 여러 번 들이켰다. 폐가 반쯤만 벌어졌다. 그래도 안 쉬는 것보다는 나았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뽑았다.

두 번째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팔로 막았다. 막았다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팔이 그 자리에 있었다.

건틀릿이 깨지지 않았다.

팔은 안 부러졌다.

대신 몸이 다시 날아갔다.

기훈은 공중에서 몸을 틀었다. 도장에서 배운 것이었다. 날아갈 때는 등으로 떨어지지 말고 옆으로 떨어져라. 등으로 떨어지면 숨이 끊긴다.

옆으로 떨어졌다.

그래도 숨이 끊겼다.

세 번째는 안 맞았다.

기훈이 옆으로 굴렀고 몽둥이가 바닥을 쳤다. 흙이 튀었다.

그 순간 기훈이 봤다.

몽둥이를 내려친 다음 오우거의 팔이 완전히 펴져 있었다.

그리고 다시 들어 올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

'.......'

기훈은 그것을 봤다.

'느리네.'

한 번 알고 나니 보였다.

오우거는 강했다. 강한데 단순했다. 들어 올리고 내리치는 것 두 가지밖에 없었고 그 사이가 길었다.

기훈은 그 사이로 파고들었다.

거리를 쟀다.

이건 몸이 하는 일이었다. 상대가 팔을 펴는 순간 앞으로 반 보. 다시 접기 전에 뒤로 한 보. 열두 해 동안 매트 위에서 한 것이 그거였다.

기훈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무릎을 찼다.

앞차기였다.

발등에 뭔가 단단한 게 걸렸다.

무릎이 안 접혔다.

'.......'

기훈은 물러서면서 자기 발을 봤다.

발등이 아팠다.

'힘이 안 실렸어.'

기훈은 그것을 알았다.

앞차기는 직선이다. 무릎을 접었다 펴는 힘밖에 안 들어간다. 사람을 상대할 때는 그걸로 충분하다. 사람은 앞차기 한 방이면 접힌다.

저건 사람이 아니었다.

'.......'

기훈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하나 지나갔다.

'발차기는 힘으로 차는 게 아니야.'

김 관장이었다.

관원들한테 백 번쯤 한 말이었다. 기훈도 그 말을 들으면서 자랐고, 나중에는 자기가 애들한테 그 말을 했다.

'돌아서 차는 거지. 몸이 도는 만큼 나가는 거야.'

기훈은 자기 다리를 봤다.

'.......'

돌려차기를 마지막으로 언제 했더라.

기억이 안 났다. 이 몸으로는 한 번도 안 했다. 첫날 앞차기 한 번에 가랑이가 찢어졌고 그 뒤로는 시도할 생각도 안 했다.

그런데 그 뒤로 50일이 지났다.

매일 밤 한 시간씩 했다. 비명을 지르면서 했고, 그 비명 때문에 트롤이 온 적도 있었고, 그러고도 계속했다.

그 방법은 민아 선배한테 배운 것이었다.

여자부 주장이었고, 도장에서 발이 제일 높이 올라갔고, 기훈이 끝내 못 이긴 유일한 사람이었다.

'다리는 힘으로 안 올라가.'

민아 선배가 그랬다.

'매일 조금씩 속여야 돼.'

기훈은 50일을 속였다.

기훈은 다리를 한 번 들어봤다.

허리 높이까지 올라갔다.

'.......'

첫날에는 무릎 높이도 안 됐다.

오우거가 몽둥이를 들어 올렸다.

기훈은 뒤로 뛰었다.

그리고 나무 뒤로 돌았다.

몽둥이가 옆으로 왔다. 나무가 반으로 갈라졌다. 밑동에서 이 미터쯤 되는 자리였고 완전히 잘리지는 않았다. 반쯤 갈라져서 위쪽이 기울었다.

기훈은 그 나무를 봤다.

굵기가 어른 두 팔로 안을 만했다.

'.......'

그리고 갈라진 자리를 봤다.

기훈은 세 걸음 물러섰다.

축을 잡았다.

왼발이 앞. 오른쪽 어깨를 뒤로.

'.......'

기훈은 잠깐 그 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돌았다.

뒤후려차기였다.

몸을 완전히 돌리면서 발뒤꿈치로 치는 것이다. 태권도에서 가장 힘이 많이 실리는 발차기이고, 그래서 가장 어렵다. 축이 흔들리면 자기가 넘어진다.

기훈은 열두 해 동안 그것을 하루에 백 번씩 찼다.

발뒤꿈치가 갈라진 자리에 들어갔다.

우직.

나무가 넘어갔다.

십 미터짜리 나무가 오우거 위로 쓰러졌다.

정확히 위로는 아니었다.

어깨였다.

그래도 됐다.

오우거가 무릎을 꿇었다. 나무가 어깨를 눌렀고 그 무게에 다리가 접혔다. 오우거가 그것을 밀어내려고 팔을 들었다.

두 손이 다 나무에 갔다.

몽둥이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오우거의 머리가 내려왔다.

기훈의 눈높이였다.

'.......'

기훈은 그것을 봤다.

50일 만에 처음으로 뭔가가 제대로 된 높이에 있었다.

기훈이 뛰었다.

세 걸음 도움닫기.

왼발로 땅을 차고 공중에서 몸을 돌렸다.

뛰어 돌려차기였다.

허리가 돌고 어깨가 돌고 그 회전이 다리 끝으로 나갔다. 이 몸이 이 동작을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그래도 됐다.

발등이 옆머리에 들어갔다.

소리가 짧았다.

오우거의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목이 돌아가면 안 되는 각도까지 돌아갔고, 그 상태로 몸 전체가 옆으로 넘어갔다.

기훈은 착지했다.

착지하면서 무릎이 꺾였다. 다리에 힘이 안 남아 있었다.

'.......'

기훈은 한쪽 무릎을 짚고 앉았다.

오우거는 안 움직였다.

기훈은 오우거의 몽둥이를 봤다.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기훈은 그것을 잡았다.

무거웠다. 두 손으로 들어야 했다. 들어 올리는 데 힘이 다 들어갔다. 팔이 떨렸다.

그래도 들렸다.

기훈은 그것을 어깨 위로 올렸다.

첫 번째로 내려찍었다.

머리에 맞았다.

오우거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기훈은 다시 들어 올렸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쯤에 움직임이 멈췄다.

기훈은 다섯 번째를 쳤다.

여섯 번째를 쳤다.

일곱 번째를 치고 나서 팔이 안 올라갔다.

기훈은 몽둥이를 놓았다.

몽둥이가 옆으로 넘어갔다.

기훈은 숨을 몰아쉬었다.

한참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가 뭘 했는지 봤다.

'.......'

네 번째에서 끝났다.

나머지 세 번은 필요 없었다.

기훈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세 번째쯤에 이미 끝났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계속 쳤다.

'.......왜 그랬지.'

기훈은 그 자리에 서서 그 질문을 붙잡고 있었다.

답이 안 나왔다.

정확히는 답이 나왔는데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훈은 자기 손을 봤다.

'.......'

손이 안 떨렸다.

기훈은 그것을 한참 봤다.

트롤을 잡았을 때는 떨렸다. 손톱이 두 개 빠졌고 손가락 관절이 다 까졌고 손이 떨렸다.

마을에서 서른일곱을 태울 때도 떨렸다.

늑대를 죽인 날에는 토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

기훈은 손을 폈다 쥐었다 해봤다.

멀쩡했다.

기훈은 그 자리에 앉았다.

해가 기울고 있었다.

'.......'

기훈은 자기가 지금 뭘 느껴야 하는지 생각했다.

이겨서 기뻐야 하나. 안 기뻤다.

살아서 안심해야 하나. 안심도 안 됐다.

무서워야 하나.

'.......'

기훈은 그건 조금 그랬다.

다만 오우거가 무서운 게 아니었다.

기훈은 자루를 열었다.

안에 신발 한 짝이 있었다.

'.......'

기훈은 그것을 꺼내지 않았다.

그냥 자루 안을 잠깐 보다가 다시 묶었다.

기훈은 그날 밤 불을 피웠다.

고기를 구웠다. 오크가 남긴 것 중에 먹을 만한 게 있었다.

먹으면서 기훈은 하늘을 봤다.

달이 두 개였다.

'.......'

기훈은 그 달을 보면서 소리 내어 말했다.

아론: 토반.

목소리가 좀 이상했다.

아론: 딸 이름은 미나. 열두 살. 셈을 잘함.

아론: 마을 이름은 게른. 집이 열두 채.

아론: 가운데 우물. 그 옆에 나무.

기훈은 그것을 한 번 되뇌었다.

그리고 불을 껐다.

다음 날 아침에 기훈은 북쪽으로 가지 않았다.

동쪽으로 갔다.

이유는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