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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 4. 성벽

지은이 외인 · 2026-08-21

쎄톤성은 성이라고 부르기에는 좀 작았다.

성벽 높이가 팔 미터. 둘레를 다 돌면 삼십 분. 성문이 하나뿐이고, 그 문이 삼십 년 전에 만든 것이었다.

수비대는 이백이었다.

정확히는 이백일곱인데 그중 여섯은 예순이 넘었고 하나는 다리를 절었다.

카린: 여섯을 빼면 이백하나요.

카린이 그렇게 보고했다.

베드런: 왜 빼.

베드런이 말했다.

카린: 환갑 넘으신 분들이.

베드런: 그분들 없으면 누가 창고 세.

카린: ......

베드런: 빼지 마.

카린은 쎄톤 수비대 부관이었다.

스물여덟이었고 이 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수비대였고 오빠도 수비대였다. 오빠는 6년 전 오크에게 죽었고, 그다음 해에 카린이 지원했다.

베드런이 그때 물었다.

"왜 왔나."

"자리가 비었잖습니까."

"......"

"제가 그 자리를 압니다."

베드런은 쎄톤 수비대장이었다.

평민이었다.

이 성에서 수비대장까지 오른 평민은 그가 처음이었고, 그건 그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이 성에 오려는 기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쪽 끝이었다.

왕도에서 17일. 뒤에는 데던산.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 부임하는 것은 좌천이었다.

베드런은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병사: 대장님.

병사 하나가 뛰어왔다.

병사: 영주님이 부르십니다.

베드런: 뭐래.

병사: 창고에 쥐가 나온답니다.

베드런: ......

병사: 고양이를 사달라고 하십니다.

베드런이 잠깐 하늘을 봤다.

베드런: 고양이.

병사: 예.

베드런: 몇 마리.

병사: 두 마리요.

베드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베드런: 사드려.

쎄톤 영주는 예순여덟이었다.

이름은 그레이슨이었는데 그렇게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들 영주님이라고 했고 본인도 그게 편한 것 같았다.

그는 아무것도 안 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안 하려고 애썼다.

젊었을 때는 이것저것 했다고 한다. 수로를 파려고 했고 시장을 넓히려고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돈이 모자라서 세금을 올려야 했고, 세금을 올리면 사람이 줄었다.

그래서 어느 시점부터 그만뒀다.

영주: 베드런.

베드런: 예, 영주님.

영주: 고양이는 샀나.

베드런: 사 오라고 했습니다.

영주: 두 마리다.

베드런: 예.

영주: 세 마리는 안 된다. 세 마리면 새끼를 낳는다.

베드런: ......두 마리 다 수컷으로 사 오라 했습니다.

영주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성에 마법사가 하나 있었다.

벨리스톤이라고 했다.

예순 가까이 됐고 등이 굽었고 늘 같은 로브를 입었다. 그 로브는 원래 감색이었는데 지금은 무슨 색인지 알 수 없었다.

벨리스톤: 대장.

벨리스톤이 그를 불렀다.

베드런: 예, 선생님.

벨리스톤: 이거 좀 봐주게.

벨리스톤이 나무 상자를 열었다.

안에 종이 두루마리가 여섯 개 들어 있었다.

벨리스톤: 스크롤이야.

베드런: 그건 압니다.

벨리스톤: 평생 모은 걸세.

베드런: 압니다.

벨리스톤: 여섯 개야.

베드런: 압니다.

베드런이 그렇게 말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이 상자를 봤다.

벨리스톤은 원래 왕도에 있었다.

궁정마법사 시험에서 두 번 떨어지고 세 번째에 붙었는데, 붙고 나서 안 갔다.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베드런이 한 번 물어본 적이 있다.

베드런: 왜 안 가셨어요?

벨리스톤: 응?

베드런: 궁정 자리요.

벨리스톤: 아.

벨리스톤이 잠깐 생각했다.

벨리스톤: 거기 가면 스크롤을 못 만드네.

베드런: ......예?

벨리스톤: 궁정마법사는 궁정 일을 하네. 스크롤은 개인 재산이라 못 만들어.

베드런: 그래서 안 가셨어요?

벨리스톤: 응.

베드런: 평생 여섯 개 만드셨는데요.

벨리스톤: ......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네.

벨리스톤이 상자를 닫았다.

벨리스톤: 자네는 참 말을 밉게 하네.

벨리스톤에게 제자가 하나 있었다.

에라리온이라고 했다.

열일곱이었고 말이 많았다. 정확히는 말이 많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에라리온: 대장님! 대장님! 오늘 제가 뭘 했는지 아세요? 스승님이 마나 감응 연습을 시키셨는데요, 제가 오늘은 진짜로 뭔가 느꼈거든요? 그게 뭐냐면 손끝이 좀 저릿한 느낌이었는데 스승님은 그게 그냥 팔이 저린 거라고 하시는데 제 생각에는 아니거든요? 왜냐하면 저릿한 게.

베드런: 에라리온.

에라리온: 예!

베드런: 숨 쉬어라.

에라리온: 아, 예.

에라리온이 숨을 쉬었다.

그리고 다시 시작했다.

에라리온: 그래서 그 저릿한 게요.

베드런은 에라리온을 좋아했다.

인정하지는 않았다.

성에 의무실이 하나 있었다.

에다가 맡고 있었다.

예순둘이었고 이 성에서 사십 년을 약을 지었다. 정식으로 배운 것은 아니었다. 앞사람이 죽으면서 자리가 비었고 그때 에다가 스물둘이었다.

에라리온: 선생님.

에라리온이 의무실에 자주 왔다.

에라리온: 선생님, 이 풀은 뭐예요?

에다: 쥐오줌풀.

에라리온: 이건요?

에다: 쥐오줌풀.

에라리온: 이거는요?

에다: ......그것도 쥐오줌풀이다.

에라리온: 세 개가 다 달라 보이는데요.

에다: 다르지.

에다가 말했다.

에다: 뿌리하고 잎하고 꽃이다.

벨리스톤이 의무실에 오면 두 사람은 꼭 싸웠다.

벨리스톤: 자네 그 열 내리는 약.

에다: 예.

벨리스톤: 그게 마법으로 하면 삼 초일세.

에다: 그럼 하십시오.

벨리스톤: ......

에다: 하실 겁니까?

벨리스톤이 헛기침을 했다.

벨리스톤: 스크롤을 써야 하네.

에다: 여섯 장이시죠.

벨리스톤: ......

에다: 아껴두십시오.

베드런은 그 광경을 십 년쯤 봤다.

수비대에 말단 둘이 있었다.

그레온과 헤레이드였다.

둘은 늘 같이 다녔다.

같이 다니는 이유는 헤레이드가 그레온을 데려왔기 때문이다.

그레온은 원래 용병이었다.

떠돌이였고 소속이 없었다. 그런 자는 성문 안에 잘 안 들인다.

헤레이드가 보증을 섰다.

집도 구해줬다.

베드런: 왜 보증을 섰나.

베드런이 물어본 적이 있다.

헤레이드: 밥을 사더라고요.

베드런: ......

헤레이드: 용병이 밥을 삽니까.

그레온은 헬버드를 썼다.

쎄톤 수비대에서 헬버드를 쓰는 사람은 그뿐이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창고에 남는 게 그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레온은 자주 없어졌다.

베드런: 그레온 어디 갔나.

헤레이드: 모르겠습니다.

베드런: 아까 저기 있었는데.

헤레이드: ......

삼십 분쯤 뒤에 나타난다.

어디 갔다 왔냐고 물으면 대답을 안 한다.

베드런은 그것을 십 년쯤 봤다.

언젠가 한 번은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못 잡았다.

정찰병이 돌아온 것은 그다음 날이었다.

셋이 나갔는데 둘이 돌아왔다.

문지기: 대장님.

문지기가 뛰어왔다.

문지기: 라온이랑 페트가 왔는데요.

베드런: 셋 아니었나.

문지기: 둘입니다.

베드런이 뛰었다.

라온은 말에서 못 내렸다.

내려오다가 그대로 주저앉았다. 페트가 그를 부축했는데 페트도 상태가 좋지 않았다.

베드런: 물.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물 가져와.

라온이 물을 마셨다. 반쯤 흘렸다.

라온: 대장님.

베드런: 천천히 해.

라온: 천천히 할 시간이 없습니다.

라온이 그렇게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다.

라온: 오크입니다.

베드런: 몇이나.

라온: ......

베드런: 라온. 몇이나.

라온이 대답을 안 했다.

베드런이 페트를 봤다.

페트가 고개를 저었다.

페트: 세다가 말았습니다.

베드런: 세다가 말았다니.

페트: ......세는 게 의미가 없어서요.

베드런은 두 사람을 앉히고 물을 더 먹였다.

그리고 다시 물었다.

베드런: 대충이라도.

라온: 대충.

라온이 손등으로 입을 닦았다.

라온: 띠가 이십 미터쯤 됐습니다.

베드런: 띠?

라온: 지나간 자리요. 풀이 눕고 나무가 부러져서 길처럼 나 있었습니다.

베드런: 그게 이십 미터.

라온: 예.

베드런: 길이는.

라온: 안 보였습니다.

베드런: ......안 보였다니.

라온: 끝이 안 보였습니다.

베드런은 그 자리에 한참 서 있었다.

베드런: 라온.

라온: 예.

베드런: 숫자를 말해봐.

라온: ......

베드런: 틀려도 되니까 말해봐.

라온이 입을 열었다.

라온: 300은 넘습니다.

베드런: ......

라온: 그 이상은 모르겠습니다.

영주는 집무실에 있었다.

고양이 두 마리가 바닥에 있었다.

베드런: 영주님.

영주: 오, 베드런. 고양이가 왔네.

베드런: 영주님.

영주: 이놈이 벌써 쥐를 하나 잡았어.

베드런: 영주님.

베드런의 목소리가 달라졌다.

영주가 그를 봤다.

베드런이 보고했다.

말을 다 마치는 데 이 분이 걸렸다.

영주는 듣는 동안 아무 말도 안 했다.

다 듣고 나서 그가 물었다.

영주: 300이라고 했나.

베드런: 예.

영주: 오크가.

베드런: 예.

영주: ......

영주가 의자를 잡았다.

그리고 앉았다.

앉는 게 아니라 무너지듯이 앉았다.

영주: 베드런.

베드런: 예.

영주: 내가 여기 마흔 해를 있었네.

베드런: 압니다.

영주: 오크는 스물이 최고였어. 스물이 왔을 때도 서른이 죽었네.

베드런: ......

영주: 300이면.

영주가 계산을 하려다 그만뒀다.

베드런: 전서구를 날리겠습니다.

베드런이 말했다.

영주: 왕도까지 며칠인가.

베드런: 새로는 4일입니다.

영주: 군사가 오는 데는.

베드런: ......17일입니다.

영주: 기병만 오면.

베드런: 9일입니다.

영주가 고개를 끄덕였다.

영주: 9일.

베드런: 예.

영주: 우리가 9일을 버티나.

베드런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서구는 그날 저녁에 날렸다.

두 마리를 날렸다. 한 마리가 떨어질 수 있어서였다.

베드런이 직접 종이를 썼다.

글씨가 컸다. 그는 글을 늦게 배웠고 지금도 잘 못 썼다.

'쎄톤. 오크. 300 이상. 지원 요청.'

그렇게 쓰고 나서 잠깐 봤다.

그리고 한 줄을 더 썼다.

'빨리.'

밤에 베드런은 성벽에 올라갔다.

동쪽을 봤다.

산이 있었다.

밤에는 산이 그냥 검은 덩어리였다. 하늘보다 조금 더 검었고 별이 그 위로 잘렸다.

카린: 대장님.

카린이 올라왔다.

카린: 안 주무십니까.

베드런: 응.

카린: 뭐 보십니까.

베드런: 산.

카린: ......산이 뭐 어떻습니까.

베드런이 대답하지 않았다.

베드런: 카린.

카린: 예.

베드런: 저 산에서 뭐가 나온 적이 있나.

카린: 뭐가요.

베드런: 뭐든.

카린이 잠깐 생각했다.

카린: 오크가 나오지 않습니까.

베드런: 그거 말고.

카린: ......그거 말고는 없습니다.

카린이 웃었다.

베드런: ......그렇지.

베드런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린이 내려가고 나서 베드런은 혼자 성벽에 있었다.

바람이 동쪽에서 왔다.

그는 그 바람 속에 뭔가 있는지 맡아보려고 했다.

아무 냄새도 안 났다.

'.......'

베드런은 성벽 돌에 손을 얹었다.

팔 미터짜리 성벽이었다. 삼십 년 된 성문이 하나 있었다. 병사가 이백일곱이었고 그중 여섯은 환갑이 넘었다.

마법사가 하나 있었고 스크롤이 여섯 장이었다.

'.......'

베드런은 그 계산을 끝까지 하지 않았다.

끝까지 하면 답이 나올 것 같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