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지은이 太宰治
하지만 자네, 내가 이렇게 나약하고 고루한 고민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세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네. 유럽에서는 나치가 전멸하고, 동양에서는 필리핀 결전 이후 오키나와 결전이 이어졌으며, 미국의 비행기가 일본 본토를 폭격하고 있었지. 나는 병사들의 작전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몰랐지만, 젊고 민감한 안테나가 있었네. 이 안테나는 신뢰할 수 있는 것으로, 한 나라의 우울과 위기를 즉시 감지할 수 있었지. 이치에 맞는 설명은 없네. 그저 감일 뿐이야. 올해 초여름부터 나의 이 안테나는 전례 없는 거대한 해일 소리를 감지하고 떨고 있었네. 하지만 나에게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네. 그저 허둥댈 뿐이었지.
나는 밭일에 힘썼네.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무거운 괭이를 휘두르며 밭의 흙을 뒤엎고 고구마 줄기를 심었네. 왜 매일 그렇게 밭일을 계속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네. 나의 쓸모없는 몸이 미워서 실컷 괴롭혀주겠다는, 약간 자포자기와 비슷한 마음도 있었던 것 같네. “죽어! 죽어버려!”라고 괭이를 내리칠 때마다 낮게 신음하듯이 계속 말했던 날도 있었네. 결국 나는 고구마 줄기를 육백 개 심었네.
“그만 밭일을 하거라. 네 몸에는 좀 무리다.” 저녁 식사 때 아버지께서 말씀하셨다. 사흘 뒤 한밤중에 꿈결 속에서 쿨럭쿨럭 기침을 하는데, 가슴 속에서 뭔가 꾸르륵거리는 것을 느꼈다. 아, 안 되겠다, 하고 바로 알아차리고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각혈하기 전에 가슴이 꾸르륵거린다는 것을 나는 어떤 책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엎드리자마자 꿀꺽 넘어왔다. 입안에 비린내가 나는 것을 머금은 채 나는 변소로 종종걸음으로 달려갔다. 역시 피였다. 변소에 오래 서 있었지만, 그 이상은 피가 나오지 않았다. 살금살금 부엌으로 가서 소금물로 양치질을 한 다음, 얼굴도 손도 씻고 잠자리로 돌아왔다. 기침이 나오지 않도록 숨을 죽이고 조용히 누워 있으니, 이상할 정도로 괜찮았다. 이런 밤을 오래전부터 기다렸던 것 같은 생각마저 들었다. ‘본망’이라는 말까지 떠올랐다. 내일도 또 묵묵히 밭일을 계속하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달리 삶의 보람이 없는 인간이니까. 제 분수를 알아야 한다. 아, 정말 나 같은 건 하루라도 빨리 죽어 버리는 편이 낫다. 지금 당장 내 몸을 혹사해서 조금이라도 식량 증산에 도움이 되고, 그 후에는 이 세상에서 사라져서 나라의 부담을 덜어 드리는 편이 낫다. 그것이 나 같은 쓸모없는 병자의 최소한의 봉공의 길이다. 아, 빨리 죽고 싶다.
다음 날 아침, 평소보다 한 시간 이상 일찍 일어나 이불을 서둘러 개고 밥도 먹지 않은 채 밭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밭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마치 지옥의 꿈만 같다. 나는 물론 이 병에 대해 죽을 때까지 누구에게도 고백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몰래 병을 악화시킬 생각이었다. 이런 마음이야말로 타락한 생각이라고 할 수 있겠지. 그날 밤, 부엌에 몰래 들어가 배급받은 소주를 찻잔으로 한 잔 마셔 버렸다. 그리고 한밤중에 또다시 각혈을 했다. 문득 잠에서 깨어 가볍게 기침을 하자 왈칵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번에는 변소까지 달려갈 틈도 없었다. 유리문을 열고 맨발로 마당으로 뛰어내려 토했다. 목에서 얼마든지 솟아나와 눈과 귀에서도 피가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컵으로 두 잔 정도 토했을까, 피가 멎었다. 피로 더러워진 흙을 막대기로 파헤쳐 알 수 없게 만들자마자 공습경보가 울렸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일본의, 아니 세계의 마지막 야간 공습이었다. 몽롱한 기분으로 방공호에서 기어 나오자 그 8월 15일 아침이 희뿌옇게 밝아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날도 역시 밭으로 나갔다. 그 말을 들으면 자네도 쓴웃음을 지을 것이다. 하지만 자네, 나에게는 웃을 일이 아니었다. 정말이지 이제 그것 말고는 내가 취할 태도가 없는 것 같았다. 도무지 다른 방법이 없었다. 한참을 망설인 끝에 농부로서 죽어가기로 각오를 다졌다. 내 손으로 일군 밭에 농부의 모습으로 쓰러져 죽는 것이 본분이다. 에이, 무엇이든 상관없다, 빨리 죽고 싶다. 현기증과 오한, 끈적하고 차가운 땀으로 괴로운 것을 넘어 이제 정신이 아득해질 것 같아 콩밭 덤불 속에 똑바로 누워 있을 때, 어머니가 부르러 오셨다. “빨리 손과 발을 씻고 아버지 계신 거실로 오렴.” 항상 미소 지으며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딴사람처럼 엄숙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아버지의 거실 라디오 앞에 앉아 정오에 저는 하늘의 목소리에 울었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으며, 신비한 빛이 몸에 비쳐 마치 다른 세상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혹은 뭔가 큰 배에 태워진 듯한 느낌으로, 문득 정신을 차리니 이미 옛날의 제가 아니었습니다.
설마 제가 사생일여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자만하는 것은 아니지만, 죽는 것도 사는 것도 같은 것이 아닙니까? 어느 쪽이든 똑같이 괴로운 것입니다. 억지로 죽음을 서두르는 사람 중에는 멋 부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겪었던 괴로움도 자신의 솜씨를 뽐내려는 노력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낡은 멋 부리기는 그만두지 않겠습니까? 당신의 편지 속에 ‘비통한 결의’라는 말이 있었지만, 비통함은 지금의 저에게는 값싼 연극의 바람둥이 배우의 표정처럼 느껴집니다. 비통함 정도가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거짓된 표정입니다. 배는 스르륵 부두에서 멀어졌습니다. 그리고 배의 출항에는 반드시 어떤 희미한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풀이 죽어 있지 않습니다. 가슴의 병도 신경 쓰지 않습니다. 당신에게서 그렇게 동정의 말로 가득 찬 편지를 받고 저는 실제로 당황했습니다. 저는 지금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이 배에 몸을 맡기고 갈 생각입니다. 저는 그날, 곧바로 어머니께 털어놓았습니다. 저 스스로도 신기할 정도로 평온한 태도로 털어놓았습니다.
“저, 어젯밤에 피를 토했어요. 그 전날 밤에도 같은 일이 있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갑자기 목숨이 아까워진 것도 아닙니다. 그저 어제까지의 억지스러운 멋 부리기가 사라졌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나를 위해 이 ‘건강 도장’을 선택해 주셨다. 아시다시피 아버지는 수학 교수님이시다. 숫자 계산은 잘하실지 몰라도 돈 관리는 해본 적이 없으신 듯하다. 늘 가난하시니 나도 사치스러운 요양 생활을 바랄 수는 없다. 이 소박한 ‘건강 도장’은 그런 면에서도 나에게 딱 맞는다. 나는 아무 불만도 없다. 6개월이면 완치된다고 한다. 그 이후로 한 번도 피를 토한 적이 없다. 피 섞인 가래조차 나오지 않는다. 병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어버렸다. 이 ‘병을 잊는 것’이 완치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이곳의 관장님이 말씀하셨다. 조금 특이한 분이다. 결핵 요양 병원에 ‘건강 도장’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전쟁 중 식량 부족과 약품 부족에 대처하여 특별한 투병법을 고안하고, 많은 입원 환자를 격려해 온 분이니까. 어쨌든, 특이한 병원이다. 재미있는 일이 많지만, 다음에 천천히 이야기하자.
나에 대해서는 정말 걱정하지 마시길 바란다. 그럼, 그쪽도 몸조리 잘하시길.
쇼와 20년 8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