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에 없는 줄
지은이 와우산 · 2026-10-25
수요일 새벽, 컨테이너 문을 두드린 사람은 태성 속공팀 B급이었다.
어제 띠 없는 제 손목을 뒤로 감추던 사내였다. 경량 갑옷 대신 후드티를 입고 있었고, 눈이 벌겠다. 그는 문간에 선 채 들어오지 않았다.
“아저씨 내려가고 얼마 안 돼서, 실장님이 부팀장님이랑 민규를 먼저 들여보냈어요.”
난로 앞에서 졸던 곽 영감이 눈을 떴다. 바닥에서 자던 오철이 몸을 일으켰다.
“11층에서 옆으로 빠지는 목으로요. 30층 가서 청솔 데리고 뛰어 올라오면 구조 화면은 태성 거라고. 팀장님도 알았어요. 아래에서 무전 끊긴 거 알면서 4층에서 그냥 올라갔어요.”
“어제 기자회견에서는 내 작전 때문에 실종됐다던데요.”
사내가 고개를 숙였다. 후드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팀장님이 대표님한테 그렇게 보고했어요. 저는 그 자리에 있었고요. 아무 말도 못 했어요.”
“왜 지금 와서 말해요.”
“민규가 제 동기예요.”
그는 그 말만 하고 문간에 서 있었다. 영감이 난로 위 주전자를 들어 컵에 보리차를 따라 문간으로 내밀었다. 사내는 컵을 받아 들고서야 컨테이너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해가 뜨기 전에 협회장에게서 전화가 왔다. 태성은 추가 수색을 하지 않겠다고 통보했고, 협회 구조대는 30층 아래를 가 본 사람이 없었다. 협회장은 길게 말하지 않았다.
“내려갈 수 있나.”
“40층 아래는 저도 처음입니다.”
“그건 다들 처음이야.”
강가에 곽 영감의 트럭이 섰다. 어제 그 보트가 다시 왔다. 청솔 길드가 내준 보트였다.
압축기가 보트 바닥에서 덜덜 돌았고, 영감은 새 생명줄을 뱃전에 사려 두고 있었다. 태성 바지선은 강 저편에 묶인 채 불이 꺼져 있었다.
셈은 위에서 했다. 보트 뱃전에 잠수판을 올려놓고 연필을 깎았다.
둘 다 하룻밤을 넘겼으니 꽉 찼을 것이고, 문제는 얼마나 깊이 갔느냐였다. 1판의 마지막 줄은 50층이었다. 75미터.
물이라면 공기 잠수의 끝을 한참 넘어선 깊이다. 그 아래는 줄이 없었다. 그들이 그 위에 있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 줄을 흐리게 썼다. 「표 밖」. 등급을 곱했다. 민규는 B급이니 두 배, 부팀장은 A급이니 두 배 반. 정지 띠를 만들었다. 찾을 사람 몫으로.
「B 74」. 「A 92 반」. 맨 위 정지에서 나갈 분이었다. 지상 공기가 닿으면 반으로 준다. 오늘은 영감의 줄이 닿을 것이다. 그래도 띠에는 덤을 빼고 적었다.
방송 PD가 보트 옆으로 다가왔다. 토요일에 내 입 앞에 마이크를 들이밀던 그 사람이었다. 오늘은 마이크 대신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그 표, 찍어 가도 될까요. 정지 시간을 자막으로 띄우려고요. 어제 청솔 채널이 한 것처럼.”
나는 영감을 봤다. 영감이 턱으로 잠수판을 가리켰고, PD가 잠수판을 찍었다.
서정모가 보트 뱃전에 담요와 작은 상자를 올려놓았다. 손가락에 끼우는 산소포화도 측정기, 보온 포일, 수액 대신 마실 이온 음료 몇 병.
“의식이 없으면 다시 안 내려가는 거죠.” 그가 물었다. 확인하는 말투였다.
“숨길부터요. 의식 없는 사람은 못 끌고 내려가요. 문턱 물길에서 숨을 못 참으니까.”
서정모가 고개를 끄덕이고 수첩에 적었다. 의식 없음, 재압 불가, 숨길 우선. 그의 수첩에 줄이 하나 더 생겼다.
입수 직전에 곽 영감이 내 생명줄 끝을 가슴 하네스의 쇠고리에 걸어 주었다. 매듭을 짓고, 한 바퀴 더 돌려 끼웠다.
그러고는 내 장갑 낀 손바닥을 엄지로 한 번 눌렀다. 괜찮냐. 나도 영감의 손등을 한 번 눌렀다. 괜찮다.
“아저씨.” 오철이 보트에 올라탔다. “저도 갑니다.”
“안 돼.”
“아저씨 혼자 보내면 저는 또 위에서 기다리기만 하는 거잖아요.”
그가 생명줄 사리를 내려다봤다.
“형 때는 제가 고등학생이었어요. 아무것도 못 했어요. 장례식 끝나고 보고서 복사본 하나 받은 게 다였어요.”
영감이 줄을 사리던 손을 멈췄다. 나는 오철의 얼굴을 봤다. 동수가 남해 바지선에서 내밀던 휴대폰 사진 속 덩치가 이제 그 사진보다 훨씬 컸다.
“20층까지.” 내가 말했다. “거기서 40분 안에 돌아서. 그 이상 있으면 네가 서야 하는 시간이 배로 늘어. 돌아오는 길에 정지는 30분, 그건 각오해.”
“알았어요.”
“거기까지야.”
“알았다고요.”
나는 매직을 꺼내 왼손목 시계 아래 맨살에 글씨를 썼다. 보이는 것 믿지 마. 손목을 돌려 오철에게 보여 줬다.
“40층 넘어가면 나는 네 잔이야. 헛것이 보여. 내가 이상한 소리 하면 이 손목을 봐.”
오철이 글씨를 소리 내어 읽었다.
8층까지는 영감의 줄이 따라왔다. 내 마스크를 벗어 갈래 밸브, 예비 마스크와 함께 바위 턱에 걸고, 연장 통화선을 물려 20층까지 깔았다.
오철은 내 뒤를 묵묵히 따라왔다. 말보다 몸이 먼저 나가는 사람이 말없이 따라오니 등이 든든했다.
거기서 통화선 끝을 바위에 묶었다.
“영감님. 철이 돌려보냅니다.”
“들린다.”
나는 오철의 어깨를 두드렸다. 네 번. 올라가.
오철이 나를 봤다. 랜턴 빛에 그의 턱이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가 내 어깨를 한 번 두드리고 돌아섰다.
나는 혼자 내려갔다.
청솔이 머물던 막다른 홀을 지나, 1공대가 나흘 전에 쓸고 간 길을 따라 보스 층까지 갔다. 보스가 쓰러진 홀 바닥에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었다.
거기서부터는 아무도 안 간 층이었다. 분필 화살표도 없었다. 나는 옆 목에서 내려온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그 아래 첫 목 어귀 바위에 칼로 그은 자국이 있었다.
보스 층 아래는 공기가 달랐다. 더 차고, 쇠 냄새가 났다. 벽 틈마다 희미하게 빛나는 이끼가 붙어 있어서 랜턴을 꺼도 바위 윤곽이 보였다.
바닥의 돌은 위층들보다 잘게 부서져 있었고, 밟을 때마다 모래처럼 서걱거렸다.
위층에서 보던 짐승 뼈도, 짐꾼 꽁초도 없었다. 사람이 다녀간 흔적은 그 칼자국밖에 없었다. 칼자국은 태성 로고를 그리고 있었다. 기록 전담 팀은 지나간 자리마다 표시를 남긴다. 화면에 넣으려고.
몇 층 더 내려가자 귀 뒤의 열이 머리 전체로 번졌다. 네 잔이었다. 생각이 느려지는 대신 엉뚱한 데로 미끄러져서, 바위 무늬가 자꾸 사람 얼굴로 보였다. 나는 왼손목을 봤다. 보이는 것 믿지 마.
44층 홀 한가운데에 누가 서 있었다.
헬멧을 쓴 잠수사였다. 구리색 헬멧, 두꺼운 잠수복, 허리에 납 벨트. 머구리 사진에서나 보던 옛날 장비였다. 그가 생명줄을 쥐듯 주먹을 반쯤 말아 쥔 채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줄을 당기려는 것처럼.
나는 걸음을 멈췄다. 숨을 쉬는 걸 잊었다.
손목을 봤다. 보이는 것 믿지 마.
다시 봤을 때 그 자리에는 사람 키만 한 바위가 서 있었다. 꼭대기가 둥글고 허리께가 잘록했다. 나는 그 바위 옆을 지나가며 손바닥으로 짚었다. 차갑고 거칠었다. 바위였다.
46층에서 사람 소리를 들었다.
목 안이었다. 홀에서 아래로 내려가는 목의 중간쯤, 바위가 움푹 팬 자리에 사람이 몸을 구겨 넣고 있었다. 랜턴을 비추자 그가 팔로 눈을 가렸다. 경량 갑옷, 어깨의 꺼진 카메라. 가슴판의 「속공」.
“민규 씨.”
“……누구, 누구세요.”
“한강수중 장해묵입니다. 동기가 보냈어요.”
민규가 팔을 내렸다. 얼굴이 흙투성이였고 입술이 말라 갈라져 있었다. 그가 나를 알아보는 데 시간이 걸렸다. 토요일 중계를 봤을 것이다.
“부팀장님은요.”
“모르겠어요. 밤에, 뭔가 큰 게 왔어요. 아래에서. 부팀장님이 불을 켰는데, 그게 불을 보고……”
그가 아래를 가리켰다. 목은 아래로 계속 이어져 있었다.
“물고 내려갔어요. 50층 쪽으로. 소리가 한참 났어요. 그다음엔 안 났어요.”
46층 홀은 위층들과 생김새가 달랐다. 천장이 낮고, 바닥이 비스듬히 기울어 있었다. 기운 쪽 끝에 아래로 내려가는 목이 입을 벌리고 있었고, 그 둘레 바위에 긁힌 자국이 길게 나 있었다.
사람 손톱으로는 낼 수 없는 자국이었다. 민규가 몸을 숨긴 틈은 그 자국에서 멀지 않았고, 그는 거기서 하룻밤 그 소리를 들으며 버텼다.
나는 민규를 목에서 끌어내 홀 바닥에 앉혔다. 수통을 건넸다. 그가 물을 마시다가 사레가 들렸다.
“이름.”
“네?”
“이름 말해 봐요. 오늘 무슨 요일인지도.”
“민규요. 이민규. 오늘은…… 수요일. 어제가 화요일이었으니까.”
눈동자가 랜턴 빛을 따라 움직였다. 말이 꼬이지 않았다. 손을 쥐어 보라고 하자 내 손가락을 아프게 쥐었다.
서정모가 수첩에 적던 줄이 떠올랐다. 의식이 있으면 데리고 갈 수 있다. 문턱 물길에서 숨을 참을 수 있으면.
“어디까지 내려갔었어요. 제일 깊이.”
“여기요. 46층.” 민규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30층에 가니까 아무도 없었어요. 다 올라간 뒤였어요. 부팀장님이, 온 김에 40층 밑 첫 화면을 따자고 했어요. 그거 하나면 수당이 몇 달 치라고. 더 내려가려다가 그게 와서 숨었어요.”
1판의 마지막 줄 안이었다. 나는 숨을 뱉었다. 띠를 꺼내 그의 손목에 감았다. 「B 74」.
“올라가야 돼요.” 민규가 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빨리요. 그게 또 와요. 지금 바로 뛰면……”
그가 일어서려 했다. 무릎이 꺾였다. 다시 일어서려 했다. 이번에는 내 팔을 밀쳤다. B급의 힘이었다. 나는 바닥에 엉덩이를 찧었다. 고관절에서 불이 났다.
민규가 목 쪽으로 몸을 날렸다. 위로 가는 목.
그의 손이 목 어귀에 닿기 직전에 나는 내 랜턴을 껐다.
홀이 캄캄해졌다. 벽 틈의 이끼가 바위 윤곽만 희미하게 그렸다. 민규의 랜턴은 진작 꺼져 있었다. 민규가 목 어귀에서 멈춰 섰고, 손바닥으로 바위를 더듬는 소리가 났다.
“위로 가는 길 알아요?” 내가 어둠 속에서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분필 화살표가 없어요. 목은 층마다 흩어져 있고, 칼자국은 불 없이 안 보여요. 지금 그 길을 아는 건 나밖에 없어요.”
바위를 더듬던 소리가 멎었다. 한참 뒤에 발소리가 더듬더듬 이쪽으로 돌아왔다.
“뛰면 끓어요.”
나는 바닥에 앉은 채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여기서 하루 있다가 단숨에 뛰어 올라가면, 나가서 몇 분 안에 다리가 풀려요. 아니면 숨이 막히거나. 토요일 거 봤죠. 윤서하가 그렇게 쓰러졌어요.”
민규가 내 옆에 주저앉아 떨었다. 그의 손이 어둠 속에서 내 팔을 더듬다가 꽉 쥐었다.
그때 위쪽 목에서 랜턴 빛이 쏟아졌다.
오철이었다.
“아저씨!”
“20층까지라니까.”
“돌아섰다가 다시 왔어요.” 오철이 목에서 뛰어내렸다. 숨이 턱에 차 있었다. “40층 밑으로는 화살표가 없던데, 먼지에 아저씨 발자국이 있어서요. 왼발 끄는 거.”
나는 손목을 봤다. 보이는 것 믿지 마. 다시 오철을 봤다. 그는 그대로 거기 있었다. 진짜였다.
오철이 민규와 나를 내려다보다가, 아래로 이어진 목을 봤다. 그 아래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아주 멀리서. 사람 목소리 같기도 하고, 바위가 긁히는 소리 같기도 했다.
“부팀장 아래 있어요?”
“있었어. 밤에.”
“살아 있을 수도 있잖아요.”
“철아.”
오철은 이미 목 어귀로 가 있었다. 대답보다 발이 빨랐다.
“철아, 거기는 50층 아래야. 표에 없는 데라고. 넌 B급이야. 내려갔다 오면 네가 끓어.”
“형 때도 그랬잖아요.”
그가 나를 돌아봤다.
“다들 위에서 기다리기만 했잖아요. 네 시간.”
그리고 목 안으로 몸을 던졌다. 사다리도 없는 목을 바위를 짚으며 미끄러져 내려갔다. 랜턴 빛이 아래로 아래로 작아졌다.
나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리가 먼저 목 쪽으로 움직였지만 고관절이 그걸 막았다. 아니, 민규가 막았다. 내 팔을 쥔 그의 손이 나를 바닥에 붙들었다.
목 어귀를 짚은 손이 떨렸다. 손을 떼고 주먹을 쥐었다 폈다. 떨림이 가라앉지 않았다.
민규가 내 팔을 쥐고 있었다. 그를 두고 내려가면 그는 혼자 뛰어 올라갈 것이다. 그를 데리고 내려가면 둘 다 50층 아래로 간다. 거기는 1판에 줄이 없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네 잔 반이었다. 50층이면 다섯 잔. 그 아래는 여섯 잔. 물로 치면 공기를 마시는 사람이 갈 수 있는 끝을 한참 넘긴 깊이다. 거기서는 나도 나를 못 믿는다.
배낭에서 예비 줄 한 사리를 꺼냈다. 연장 통화선 옆에 감아 온 강도 줄이었다. 랜턴 빛을 손바닥으로 반쯤 덮고, 민규의 손목을 쥔 채 목을 따라 50층까지 내려갔다.
민규에게 그 깊이는 이미 그의 줄 안이었다. 같은 띠, 같은 숫자.
50층 목 어귀에 쇠 난간이 박혀 있었다. 랜턴을 대자 소금기가 하얗게 핀 녹이 보였다. 한강 물은 민물인데. 볼트 머리에 찍힌 글자는 녹에 먹혀 읽히지 않았다. 줄 끝을 난간에 감았다. 한 바퀴 더 돌려 끼웠다.
영감이 하는 매듭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줄을 목 아래 어둠으로 늘어뜨렸다. 줄은 한참을 풀려 내려가다가 멈췄다. 바닥에 닿은 건지, 다 풀린 건지 알 수 없었다.
다섯 잔이었다. 민규가 옆에서 뭐라 중얼거렸는데 잘 들리지 않았다.
“민규 씨.” 내가 말했다. “지금부터 내 말 믿지 마요. 내가 이상한 소리 하면 이 띠만 봐요.”
나는 그의 손목을 들어 띠를 보여 주었다. B 74. 그리고 목 아래를 봤다.
저 아래, 아주 멀리서 오철의 랜턴 빛이 흔들렸다. 바위 사이를 지나고, 꺾이고, 작아졌다. 마지막으로 반짝이고는 꺼졌다.
공기로는 못 가는 깊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