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셈은 위에서

지은이 와우산 · 2026-10-25

화요일 새벽, 바지선 작업등 아래에서 나는 연필을 깎았다.

칼로 깎은 연필은 심이 굵게 나온다. 물속에서 잠수판에 쓸 때는 그게 낫다. 가는 심은 장갑 낀 손에서 부러진다. 오늘은 물속에서 쓸 일이 없었지만 손이 그렇게 깎았다.

협회장의 지시서는 새벽에 왔다. 협회 지정 구조, 현장 책임 장해묵, 의료 입회 서정모. 태성은 게이트 우선 진입권을 가진 길드라 바지선을 내줘야 했다.

구 실장은 지시서를 받아 들고 한참 들여다보다가, 바지선 열쇠를 탁자에 던지듯 내려놓고 선실로 들어갔다.

둔치 쪽에는 청솔 길드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담요를 두르고 서 있었다. 아래 있는 열한 명의 동료와 가족이었다. 아무도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다들 내 손만 보고 있었다.

갑판 탁자에 잠수판 대신 종이를 폈다. 협회장이 밤사이 보내 준 청솔 길드 명단이었다. 공대장 A급 하나, B급 넷, C급 넷, D급 둘.

어제 아침 일찍 그 층에 닿았고, 거기서 하루를 넘겼다. 그 층에 있었던 시간만 따지면 꽉 찰 만큼 찼다.

1판에 30층 줄은 없었다. 내가 가진 건 8층과 4층에서 사람을 올려 보고 확인한 줄이 전부였다.

물에서 쓰던 표를 머릿속에 펼쳤다. 공기로 깊이 내려가 오래 있다 나오는 줄은 가장 깊었던 데의 절반쯤에서 짧게 서기 시작해, 올라올수록 길어지다가 수면 바로 밑에서 전체의 반 넘게 선다. 물의 숫자는 가져올 수 없으니 생김새만 빌렸다.

토요일과 어제 확인한 숫자를 그 생김새에 맞춰 늘리자 40분짜리 줄이 나왔다. 짐꾼 기준, 등급 곱하기 전.

연필을 눕혀 흐리게 썼다. 확인 안 된 줄은 진하게 쓰지 않는다. 옆에 작게 「표 밖」이라고 붙였다.

“그게 뭐예요, 표 밖.” 오철이 어깨 너머로 물었다.

“아직 아무도 이걸로 안 올라와 봤다는 뜻.”

등급을 곱했다. 공대장은 두 배 반, B급은 두 배, C급은 한 배 반, D급은 짐꾼과 같다.

무리는 깊은 정지를 가장 센 사람의 시계로 서고, 맨 위 정지에서만 제 시간이 찬 사람부터 나간다. 약한 사람이 먼저, 센 사람이 맨 나중이다.

잠수판에 옮겨 적었다.

깊은 정지는 16층부터 6층까지, 모두 공대장 시간으로. 합쳐서 35분.

4층. D 26. C 39. B 52. A 65.

“공기 있으면 반으로 준다면서요.” 오철이 맨 아래 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왜 길게 적어요?”

“마스크가 둘이야. 사람은 열한 명이고. 호스는 8층까지밖에 안 닿아.”

“그래도 공대장만이라도……”

“닿으면 좋은 거고. 공기는 덤이야. 덤을 셈에 넣고 들어갔다가 덤이 안 오면, 사람은 덤만큼 덜 서고 나와.”

오철이 입을 다물었다.

방수 테이프를 손바닥 길이로 사람 수만큼 잘랐다. 매직으로 적었다. 등급 하나, 4층에서 나갈 분 하나.

글씨는 어두운 데서도 읽히게 크게 썼다. 테이프를 탁자 끝에 등급별로 붙여 놓고, 정지 띠라고 불렀다.

그리고 새 종이에 같은 표를 다시 적었다. 곽 영감 앞에 내려놓았다.

“영감님 몫입니다. 위에서 시계 봐 주세요.”

영감은 종이를 접어 점퍼 안주머니에 넣었다. 일요일 저녁 컨테이너에서 빈 기록지를 꺼내던 그 주머니였다.

셈을 위에서 해 가는 데는 이유가 있었다. 30층이면 내 머리에 소주가 세 잔 들어간다.

물에서 그만큼 내려가면 계산이 틀려도 틀린 줄을 모르고 괜히 웃음이 난다. 내려가서 셈할 생각이면 아예 안 내려가는 편이 낫다.

마스크를 쓰기 전에 오철을 불렀다.

“넌 위에 있어.”

“저도 가요. 저 B급이에요. 짐도 질 수 있고, 싸울 줄도 알고.”

“B급이라서 안 돼. 거기 갔다 오면 너도 한 시간 넘게 서야 돼. 그리고 줄 잡는 사람이 하나면 안 돼.”

오철이 곽 영감을 봤다. 영감이 오철 손에 생명줄 끝을 쥐여 주었다. 어제처럼. 오철이 그 줄 끝을 제 손목에 감으려 하자, 영감이 손등을 툭 쳐서 풀고 줄을 두 손에 다시 쥐여 주었다.

“감지 마. 끌려가면 손목째 끌려간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바지선 난간에서 강을 내려다봤다. 새벽 강물은 검었고, 문턱의 빛이 그 아래에서 희미하게 번졌다.

저 아래 30층에 사람 열한 명이 하룻밤을 앉아 있었다. 올라가면 끓을까 봐. 나는 마스크 끈을 다시 조였다.

나는 혼자 들어갔다. 문턱을 넘자마자 0층 기둥에 생명줄을 감아 두고 굴뚝으로 내려섰다.

마력이 없으면 빨리 내려가도 된다. 측정기에 0이 뜨는 몸은 내려가는 길에서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8층에서 생명줄이 끝났다. 내 마스크를 벗어 호스 끝의 갈래 밸브, 예비 마스크와 함께 바위 턱에 걸어 두고, 어깨에 메고 온 연장 통화선 한 사리를 통화 단자에 물렸다.

이어폰을 그 선에 옮겨 꽂고, 선을 풀며 굴뚝을 계속 내려갔다. 이제부터는 내 숨이 던전 공기였다.

토요일에도 어제도 누군가를 업거나 부축하고 내려간 굴뚝이었다. 손이 비니까 사다리가 빨랐다.

고관절은 빨리 내려간다고 봐주지 않았다. 칸을 디딜 때마다 왼쪽 엉덩이 안쪽에서 무언가가 갈리는 느낌이 났다.

10층에서 귀 뒤가 확실히 뜨거워졌다. 사다리 칸을 세다가, 바위에 박힌 분필 화살표가 꼭 생선 대가리 같아서 혼자 웃었다. 그런 게 웃기면 한 잔이다.

그 아래로 내려가자 굴뚝이 끝났다. 목이 층마다 흩어져 있어서, 다음 목까지 몇십 미터씩 홀을 가로질러 걸어야 했다. 청솔이 어제 쓸고 내려간 길이었다.

바닥에 짐승 사체가 드문드문 굴러 있었고, 짐꾼들이 남긴 분필 화살표가 다음 목을 가리켰다. 나는 화살표를 지날 때마다 연장 통화선을 바위에 감아 두었다.

“영감님, 15층.”

“들린다.”

영감 목소리는 바지선 위에서 들을 때와 똑같았다. 낮고 느리고, 뒤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목소리가 가는 선을 타고 여기까지 내려온다는 게 이상하게 든든했다.

20층 근처에서 연장 통화선이 끝났다. 끝을 바위에 묶고 이어폰을 뽑았다. 이 아래로는 목소리가 없다.

거기 기운은 두 잔이었다. 생각이 늦게 와서, 다음 목이 어느 쪽인지 화살표를 보고도 다시 봤고 잠수판의 숫자도 몇 번씩 읽었다.

그 아래 어느 홀을 가로지르다 발을 멈췄다. 저쪽 벽 아래에서 무언가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헤드랜턴 끝에 걸린 등짝이 소형 트럭만 했다.

바위 색깔이었고, 걸을 때마다 바닥이 미세하게 울렸다. 청솔도 저놈은 잡지 않고 비켜 내려갔을 것이다.

나는 랜턴을 끄고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물에서 큰 놈을 만나면 움직이지 않고 숨을 길게 쉬면서, 상대가 갈 데로 가게 둔다. 바닥의 울림이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

한참 뒤에 랜턴을 켰을 때 그놈은 다른 목 쪽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저렇게 큰 놈이 나를 그냥 지나간 게 웃겨서 혼자 킥킥댔다.

이유 없이 웃음이 나면 깊이가 머리에 와 있다는 뜻이다. 나는 웃음을 멈추고 잠수판을 다시 읽었다.

30층 막다른 홀은 넓었다. 천장이 높고, 벽마다 희끄무레한 띠가 층층이 져 있었다. 헤드랜턴을 비추자 홀 안쪽에 불빛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이 쳐 놓은 야영 등이었다.

벽의 띠를 보고 웃음이 났다. 오래된 방파제에 끼는 물때하고 똑같은 줄무늬였다. 여기는 물이 없으니 층때인가. 그런 말장난이 혼자 너무 웃겼다. 세 잔이었다.

“누구야!”

야영 등 쪽에서 칼 뽑는 소리가 났다. 불빛이 내 얼굴을 비췄다. 나는 손을 들었다.

“한강수중 장해묵입니다. 부르셨다길래.”

청솔 사람들이 나를 둘러쌌다. 다들 지쳐 있었고, 몇은 무릎을 감싸 쥐고 있었다. 공대장이 앞으로 나왔다. 키가 크고, 어깨에 붕대를 감은 A급이었다. 그가 내 얼굴에 랜턴을 바짝 들이댔다.

“당신 취했어?”

“깊이에 취했습니다. 마력이 없으면 이렇게 돼요.”

“취한 비각성자 말을 듣고 올라가라고?”

“세 잔까지는 일합니다.” 나는 잠수판을 들어 보였다. “네 잔부터는 저도 저를 못 믿어요. 그래서 셈은 위에서 해 왔습니다. 여기서는 이것만 봅니다.”

공대장이 잠수판을 노려봤다. 흐린 연필 글씨와 「표 밖」을.

“표 밖이 뭐야.”

“아직 아무도 이걸로 안 올라와 봤다는 뜻입니다. 여러분이 처음이에요.”

웃음이 터질 줄 알았는데 아무도 웃지 않았다. 대신 D급 청년이 손을 내밀었다. 앳된 얼굴이었다.

“뭘 하면 돼요.”

나는 가슴 끈에서 정지 띠를 떼어 그의 손목에 감았다. 「D 26」.

“입구 밑 마지막 정지, 4층에서 이 숫자만큼. 되기 전엔 나가지 마요. 누가 뭐라고 해도.”

차례로 손목을 내밀었다. C급 넷, B급 넷. 테이프를 감고 끝을 눌러 붙였다. 손목마다 숫자가 생겼다. 마지막으로 공대장이 팔을 내밀었다. 붕대 감은 쪽이 아닌 팔이었다.

「A 65」.

“공대장님도 이 숫자 되기 전엔 나가지 마요.”

공대장이 제 손목을 내려다봤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 손목을 둘러봤다. 숫자가 다 그보다 작았다.

“내가 제일 늦게 나간다고?”

“제일 세시니까요.”

공대장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가 풀렸다.

나는 출발 전에 모두를 홀 가운데 모았다. 그리고 바지선에서 하던 대로 말했다.

“작업 내용. 다 같이 4층까지 올라간다. 정지할 때마다 내 시계로 선다. 위험 요인. 짐승, 넘어지는 사람, 빨리 가고 싶은 마음. 비상시엔 앞사람 어깨를 넷씩 세 번 두드린다.”

“이거 레이드 브리핑이야?” 공대장이 코웃음을 쳤다.

“작업 전 점검입니다. 레이드 브리핑은 들어가는 순서만 정하던데요. 나가는 순서는 안 정하고.”

공대장이 대꾸하지 않았다. B급 청년이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숙였다. 공대장은 붕대 감은 어깨를 돌리고 말했다.

“짐 챙겨. 저 아저씨 시계대로 간다.”

◇

바지선 위에서 곽만수는 생명줄을 놓지 않았다.

구 실장이 태성 점퍼들을 데리고 다가온 것은 장해묵이 20층 근처에서 마지막 교신을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구 실장은 선글라스를 쓴 채 서류를 내밀었다.

“한강수중 분들은 하선해 주세요. 바지선 안전 규정입니다. 협회 허가 받은 구조는 태성이 진행하고, 줄은 우리 직원이 잡습니다.”

곽만수는 서류를 보지 않았다. 줄을 쥔 손등에 핏줄이 섰다. 오철이 그 옆에서 한 걸음 나섰다. 태성 직원이 오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밀었고, 오철의 주먹이 쥐어졌다.

곽만수가 오철의 손목을 잡았다. 늙은 손이었지만 놓지 않았다. 오철이 영감을 내려다봤다. 영감은 고개를 저었다.

태성 직원들이 영감과 오철의 손가락을 차례로 펴서 줄을 빼냈다. 영감은 그 줄이 남의 손으로 넘어가는 걸 끝까지 보고 있었다.

7년 전 남해 바지선에서도 줄이 그렇게 넘어갔다. 그때 그 줄은 장해묵 손에서 빠져나갔고, 영감은 그 옆에 서 있었다.

“모셔다드려.”

곽만수와 오철이 바지선 사다리를 내려갔다. 구 실장은 전화기를 귀에 댔다.

“예, 대표님. 줄 넘겨받았습니다.”

전화를 내린 구 실장이 바지선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성 속공팀의 부팀장과 B급 하나가 마스크를 쓰고 기다리고 있었다.

“굴뚝으로 내려가다 11층에서 옆 목으로 빠져. 청솔한테 가서 데리고 뛰어 올라오면, 구조 화면은 태성 거야.”

부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민규라는 그 B급은 장비 끈을 조이다가 손이 들떠 끈을 놓쳤다. 둘은 뱃전을 넘어 검은 물로 들어갔다.

◇

청솔은 내 뒤로 줄지어 섰다. 공대장이 맨 끝이었다. 내가 앞장서서 분필 화살표를 따라가면, 공대장이 맨 뒤에서 처지는 사람의 등을 밀었다.

다리를 저는 C급이 둘 있었다. 올라오는 동안 그들의 무릎은 더 나빠지지 않았다. 첫 정지는 아직 오지 않은 셈이었다. 표대로라면 16층까지는 서지 않고 올라와도 된다.

올라오는 길은 생각보다 빨랐다. 서두르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자꾸 걸음이 빨라졌다. 나는 맨 앞에서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한 층에 1분 넘게. 물에서 올라오는 속도를 몸에 박아 둔 사람만 그 걸음을 참는다. 뒤에서 공대장이 앞지르려는 B급의 배낭끈을 잡아당겼다.

층을 올라올수록 머리가 조금씩 가벼워졌다. 세 잔이 두 잔으로 내려왔다. 잠수판의 숫자가 한 번에 읽혔다.

바위에 묶어 둔 연장 통화선 끝을 다시 만났다. 이어폰을 꽂았다.

“영감님. 출발했습니다. 다 같이. 첫 정지 16층.”

이어폰 너머에서 숨소리가 났다. 그리고 목소리가 왔다.

“네, 확인했습니다.”

영감 목소리가 아니었다. 젊고 깍듯한 목소리였다.

“누구십니까.”

“태성 현장 지원팀입니다. 곽만수 씨는 사정이 있어서 잠깐 내려가셨고요. 진행하시면 됩니다.”

두 잔짜리 머리로는 그 말의 무게가 바로 오지 않았다. 사정이 있어서. 나는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영감은 내가 물에 있는 동안 줄을 놓고 자리를 뜬 적이 없었다. 같이 일한 세월 내내.

“영감님 바꿔 주세요.”

“지금은 어렵습니다. 진행하시죠.”

나는 통화선 끝을 쥐고, 남는 선을 팔에 사려 가며 첫 정지 층으로 올라갔다. 목 어귀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내 뒤에서 멈춰 섰다. 첫 정지였다. 베젤을 돌려 삼각 표시를 분침에 맞췄다.

“첫 정지 들어갑니다. 2분 30초……”

이어폰 속 목소리가 대답을 하려다 끊겼다. 숨 들이켜는 소리 한 토막이 나고, 그다음은 아무것도 없었다. 잡음도 없었다. 끝에 아무것도 매달려 있지 않은 선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