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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 하나

지은이 와우산 · 2026-10-25

전화는 새벽 2시가 조금 넘어서 왔다.

한강수중 야적장 컨테이너에서 자고 있던 참이었다. 머리맡에서 휴대폰이 울렸고, 모르는 번호였다. 받자마자 들뜬 남자 목소리가 쏟아졌다.

“아저씨, 아저씨 맞죠. 영수증에 번호 적어 준. 준이가요, 하준이가 화장실에서 못 일어나요. 다리가 안 움직인대요.”

나는 이미 장화를 신고 있었다.

“어디예요. 지금 바로 눕혀요. 평평하게. 물 먹이고, 포션 먹이지 말고.”

“여기 압구정 고깃집, 2층 룸인데, 아 잠깐만요, 태성 의료팀 왔어요. 아저씨, 의료팀이……”

전화가 끊겼다. 다시 걸었을 때는 꺼져 있었다.

택시를 잡아 압구정에 닿았을 때 가게 앞에는 구급차가 떠난 자리만 남아 있었다. 종업원은 길드 사람들이 와서 데려갔다고 했다.

어느 병원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나는 한강 건너 대학병원 응급실까지 가 봤다. 태성 로고를 단 점퍼들이 응급실 문 앞을 막고 서 있었다.

“장해묵 씨죠. 소속 헌터 접근 금지입니다. 고소 진행 중인 거 아시죠.”

문 틈으로 침대가 보였다. 하준이 누워 있었다. 그 옆에 빈 포션 병이 셋 굴러다녔다.

간호사가 그의 셔츠 자락을 걷어 올리고 있었는데, 옆구리에 얼룩진 살갗이 보였다. 다리는 시트 위에 놓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오후 갑판에서 내 번호를 받아 넣던 손이, 그 옆에 힘없이 펴져 있었다.

아침 뉴스에 그 이름이 떴다. 태성 1공대 하준, 체질 탈락 판정. 3년 동안 42번째였다. 기사는 그 숫자를 제목에 박았고, 1공대의 다른 헌터들이 어깨 결림을 진통 포션으로 넘겼다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일요일 내내 나는 컨테이너에서 나가지 않았다.

협회 홈페이지에는 공인 귀환 기록이 공시되어 있었다. 길드, 공대, 최심층, 귀환 소요 시간, 날짜.

기록 경쟁이 붙은 뒤로는 초 단위까지 올라오는 표였다. 체질 탈락 명단은 표가 없었다. 기사로만 흩어져 있었다. 이름, 등급, 쓰러진 날, 쓰러진 곳.

나는 둘을 맞추기 시작했다.

잠수 일을 오래 하면 사고 보고서를 많이 읽게 된다. 남이 쓴 것도, 내 이름이 들어간 것도. 보고서는 늘 같은 데서 거짓말을 한다. 무엇이 일어났는지는 자세히 쓰고 그 전에 무엇을 했는지는 빼먹는다.

체질 탈락 기사들도 꼴이 같았다. 쓰러진 장면은 사진까지 붙어 있는데, 그 사람이 그날 몇 층에서 어떻게 올라왔는지는 어디에도 없었다.

야적장 사무실 프린터로 귀환 기록을 몇십 장 뽑고, 탈락 기사는 휴대폰으로 차례차례 열어 이름을 받아 적었다. 같은 이름을 귀환 기록에서 찾고, 쓰러진 날과 그 전 귀환 날을 연필로 이었다.

이름이 바뀐 사람, 기사에 성만 나온 사람, 길드를 옮긴 사람이 섞여 있어서 이름 하나 맞추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점심때쯤 서하에게서 문자가 왔다. 걸을 만하다는 말과, 다리가 가끔 저리다는 말. 저린 데가 어딘지 묻자 무릎 뒤라는 답이 왔다.

나는 저린 시각과 자리를 적어 두라는 답을 보냈다. 물을 많이 마시고 뛰지 말라는 말도 붙였다. 그녀는 알았다는 말 대신 사진을 보냈다. 손등에 볼펜으로 적은 시각들이 빼곡했다.

해가 질 무렵 곽 영감이 컨테이너 문을 열었다.

영감은 은박지에 싼 김밥을 내 종이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내가 펼쳐 놓은 종이들을 오래 내려다봤다. 이름과 날짜와 화살표가 어지럽게 엉켜 있었다.

영감이 점퍼 안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펴 보니 빈 잠수 기록지였다. 우리가 바지선에서 매일 쓰는 양식.

잠수사 이름, 최대 수심, 입수 시각, 바닥 시간, 상승 시작, 정지, 출수 시각. 물에서는 늘 이 칸부터 채운다. 영감은 그걸 내 종이 위에 올려놓고 컨테이너를 나갔다.

나는 기록지를 펴 들었다.

내가 맞추던 표에는 이름과 등급과 쓰러진 날이 있었다. 협회 판정서에도 그것들이 있었다. 기록지에는 있고 거기에는 없는 칸이 하나 있었다. 얼마나 빨리 올라왔는지.

새 종이를 꺼내 맨 위에 칸을 그었다. 이름과 등급과 최심층 옆에 귀환 시간과 정지 여부를 넣고, 맨 끝에 쓰러진 시각을 두었다. 그리고 처음부터 다시 채웠다.

칸을 하나 더하자 종이가 다르게 읽혔다. 같은 30층이라도 짐을 지고 반나절에 걸쳐 올라온 날에는 아무도 안 쓰러졌다. 같은 사람이 같은 층에서 쉬지 않고 뛰어 올라온 날, 그 밤에 쓰러졌다.

3년 전에 4명이던 숫자가 공인 귀환 기록이 생긴 이듬해에 19명으로 뛰어 있었다. 기록 제도가 생긴 날짜를 확인하려고 협회 공지를 뒤졌다. 2년 전 봄이었다.

새벽녘에 마지막 줄이 찼다. 정지 여부 칸에는 같은 글자가 줄줄이 내려와 있었다. 없음. 없음. 없음.

여의도 헌터협회 본부 로비에는 순위판이 걸려 있었다.

벽 한 면을 다 차지하는 전광판이었다. 층별 최단 귀환 기록. 맨 위 줄에 태성 1공대, 40층, 47분. 그 아래로 길드 이름과 숫자가 초 단위까지 촘촘히 내려갔다.

순위판 옆에는 S급 헌터들의 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었는데, 윤서하의 사진이 있던 자리만 비어 있었다. 못 자국 둘레의 벽지가 조금 더 하얬다.

그 빈자리 아래 벤치에 서하가 앉아 있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무릎에 손을 올린 채였다.

“증인 신청했는데 안 받아 주더라. 판정 끝난 사람은 당사자가 아니래.”

“무릎은요.”

“아침에 잠깐 저리고 말았어. 손등에 적어 놨어.”

그녀가 손등을 내밀었다. 볼펜 자국이 땀에 번져 있었다. 나는 그 시각을 내 종이 귀퉁이에 옮겨 적었다.

3층 대회의실은 생각보다 작았다.

긴 탁자 안쪽에 협회 안전위원회 사람들이 앉았고, 맞은편에 태성 법무팀 변호사들이 앉았다. 서정모는 협회 쪽 끝자리에 있었다.

그 앞에 노트북과, 모서리가 닳은 수첩이 놓여 있었다. 나는 탁자 끝 보조 의자에 앉았다. 뒷벽에 붙은 대형 화면에는 태성 2공대의 30층 공략 중계가 소리 없이 켜져 있었다.

변호사가 먼저 일어섰다.

“장해묵 씨는 지난 토요일 협회 허가 없이 게이트에 출입했습니다. 출입 일지에 스스로 현장 책임자로 서명했고요. 태성 소속 헌터들을 위험에 빠뜨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살아서 나왔습니다.”

“발언권 드리면 하세요.” 위원장이 말했다.

변호사가 서류를 넘겼다.

“그리고 장해묵 씨는 의료 기록상 골괴사 환자입니다. 압력 받는 일을 오래 해서 뼈가 속에서부터 죽는 병이죠.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에 따르면 관절 질병이 있는 사람은 고기압 업무에 배치할 수 없어요. 법이 물에도 못 들이는 사람이 던전에 들어간 겁니다. 산재 신청도 불승인됐죠. 회사 측 소견은 음주로 인한 괴사였고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나는 왼쪽 엉덩이를 의자에서 조금 들었다. 고관절이 앉은 자세를 오래 못 견뎠다.

불승인 통지서는 컨테이너 서랍에 들어 있다. 회사가 낸 소견서에는 내가 마신 술의 양이 적혀 있었다.

동수 장례식 다음 달부터 몇 달 동안 마신 술이었다. 그 숫자는 정확했다. 그 전에 내가 물속에서 무슨 일을 하며 살았는지는 소견서 어디에도 없었다.

“재심 중입니다.”

“자격은 있습니까? 던전 구조 자격.”

“잠수기능사요. 국가 자격이고, 수심 제한이 없습니다.”

위원 중 누가 웃음을 참으며 기침을 했다. 변호사의 얼굴이 굳었다.

“던전은 물이 아닙니다.”

“그래서 마른 데서 해 봤습니다.”

위원장이 탁자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서정모 차례였다.

서정모가 노트북을 화면에 연결하자 중계 화면이 옆으로 밀려나고 그래프가 떴다. 그래프는 깔끔했다.

가로는 등급, 세로는 체질 탈락 비율. 막대가 F급에서 S급으로 갈수록 높아졌다. 다음 장은 귀환 직후 포화도였다. 포화도가 높을수록 점이 위로 몰렸다.

그는 숫자를 읽을 때 더듬는 법이 없었다. 화면 아래에는 표본 수와 기간과 빠진 사례가 작은 글씨로 달려 있었다.

“3년 동안 42명입니다. 등급이 높을수록, 포화도가 높을수록 잘 쓰러집니다. 그릇이 큰 사람이 심층 마력을 많이 머금고, 그걸 못 견디는 몸이 따로 있다는 겁니다. 협회 판정 기준은 이 통계에 근거합니다.”

화면에 판정표 양식이 떴다. 전투 부상. 체질 탈락. 칸은 그게 다였다.

다친 데 없이 쓰러진 사람은 둘째 칸에 체크를 받는다. 체크가 끝나면 길드 명단에서 이름이 빠진다.

“장해묵 씨, 하실 말씀.”

나는 일어서서 종이를 탁자에 펼쳤다. 연필 자국이 번진 종이였다. 위원들 쪽으로 돌려 놓고 손바닥으로 주름을 폈다.

“통계는 맞습니다.”

서정모가 나를 봤다. 반박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그릇 큰 사람이 잘 쓰러지는 거, 맞아요. 포화도 높은 사람이 잘 쓰러지는 것도 맞고요. 숫자 하나 안 틀렸습니다.”

나는 종이 위에 새로 그은 칸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칸이 하나 없습니다.”

“무슨 칸이요.”

“얼마나 빨리 올라왔는지요. 귀환 시간. 협회 공시 기록하고 명단을 맞춰 봤습니다. 42명 전부, 쓰러지기 전에 한 번도 안 서고 올라왔어요. 공인 기록 받은 사람이 반이 넘고, 나머지도 기록 노리고 뛴 날이었습니다. 제도 생기기 전의 네 사람은 기사에 남은 귀환 시각으로 맞췄는데, 그 사람들도 짐 없이 뛰어 올라온 날이었고요.”

위원들이 종이 위로 몸을 숙였다. 정지 여부 칸에 줄줄이 내려간 글자가 보였을 것이다.

“짐꾼은 이 명단에 없어요. 아무도. 다섯 층마다 앉아서 담배 피우고 올라오는 사람들이요. 그 사람들도 같은 깊이를 갑니다. 그릇이 작아서 안 쓰러지는 줄 알았는데, 쉬면서 와서 안 쓰러지는 겁니다.”

나는 화면의 판정표를 가리켰다.

“판정표에 칸이 둘뿐이라서, 다른 이름을 쓸 데가 없었던 거고요.”

변호사가 끼어들었다.

“상관관계일 뿐입니다. 빨리 올라오는 건 실력 있는 헌터들이고, 실력 있는 헌터가 고등급이에요. 결국 같은 얘기 아닙니까.”

“물에서도 그 말을 했습니다.”

“네?”

“사람들이 잠수병 원인을 알아내는 데 37년, 표를 만드는 데 67년 걸렸어요. 그동안 의사들은 체질하고 술하고 살집을 탓했습니다. 다 반쯤은 맞는 얘기였고요. 살집 있는 사람이 잘 걸리는 건 지금도 맞으니까.”

회의실이 조용했다. 서정모가 제 앞의 닳은 수첩을 열었다. 몇 장을 넘기다가 손을 멈췄다. 그의 손가락이 무언가를 따라 아래로 내려갔다. 내 종이에 그은 칸과 같은 높이에서.

나는 그 수첩에 무엇이 적혀 있는지 몰랐다. 다만 토요일 갑판에서 서하가 걷는 동안 그가 거기에 무언가를 적던 것과, 모서리가 오래 들고 다닌 물건처럼 닳아 있던 것은 기억했다. 몇 년을 들고 다녀야 수첩이 저렇게 된다.

변호사가 손목시계를 흘끗 보더니, 뒷벽 화면을 돌아보며 웃었다.

“마침 좋은 장면이 나오네요. 소리 좀 켜 주시겠습니까.”

화면이 다시 중계로 바뀌었다. 반포 바지선이었다. 캐스터가 소리를 질렀다.

“태성 2공대, 30층 클리어 후 귀환! 귀환 시간 36분! 30층 부문 국내 최단 기록입니다!”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2분.

화면 속에서 A급들이 바지선 갑판에 올라 손을 흔들었다. 장검을 어깨에 걸친 남자와, 젖은 머리를 털며 웃는 남자. 둔치가 들썩였다. 변호사가 팔을 펼쳐 화면을 가리켰다.

“보십시오. 쉬지 않고 올라왔고, 멀쩡합니다. 장해묵 씨 말대로라면 저 사람들도 지금 쓰러져야겠죠.”

“A급 둘이 먼저 쓰러집니다.”

회의실이 나를 봤다.

“오늘 안에요. 빠르면 한 시간 안에.”

누군가 헛웃음을 뱉었다. 변호사가 고개를 저었다.

“여기 예언하러 오셨습니까?”

질의는 그 뒤로도 이어졌다. 무면허, 골괴사, 출입 일지. 같은 질문이 말만 바꿔 돌아왔다. 나는 대답하는 사이사이 손목시계를 봤다. 분침이 반 바퀴 가까이 돌았을 때, 나는 종이를 접어 가슴 주머니에 넣었다.

맞는지 틀리는지 여기 앉아서 볼 생각은 없었다. 저 바지선에는 정지표도, 줄 잡을 사람도 없다. 곽 영감은 오늘 일당이 없는 날이었다.

“장해묵 씨, 질의 안 끝났습니다.”

“끝나면 연락 주세요.”

위원장이 뭐라고 더 말했지만 나는 문을 밀고 나왔다. 복도는 길었고 엘리베이터는 꼭대기 층에 멈춰 있었다. 계단을 택했다. 계단을 내려설 때마다 고관절이 욱신거렸다. 난간을 잡은 손에 땀이 찼다.

아래층 계단참에서 뒤에 발소리가 따라붙었다. 서정모였다. 가운 대신 양복 차림이었고, 손에 차 열쇠를 쥐고 있었다. 다른 손에 쥔 휴대폰에서 중계 소리가 새어 나왔다.

“반포까지 20분이에요. 올림픽대로 타면.”

“의사로서 오시는 겁니까.”

“수첩 들고 갑니다.”

그때 그의 휴대폰에서 캐스터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비명에 가까웠다.

오후 3시 31분, 화면 속 A급 하나가 무릎을 꺾었다. 그때 나는 이미 협회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