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급이시면 세 배요
지은이 와우산 · 2026-10-25
목 안에서 내려온 것은 손바닥만 했다.
납작한 등껍질이 헤드랜턴 빛을 받아 허옇게 번들거렸고, 몸통 양옆으로 다리가 빽빽했다. 맨 앞의 것이 천장 바위를 타고 내려오자, 그 뒤로 같은 것이 줄줄이 따라 나왔다. 바위 긁는 소리가 빗소리처럼 번졌다.
“뻘게다.” 오철이 숨을 죽이며 말했다. “짐꾼들이 그렇게 불러요. 8층 청소부.”
나는 남해 방파제를 떠올렸다. 콘크리트 블록 틈마다 바글거리던 갯강구 떼. 바닷가 바위에 붙어 사는 손가락만 한 벌레들이 낚시꾼이 떨군 미끼 하나에 순식간에 몰려들곤 했다. 생김새는 달라도 움직이는 꼴이 똑같았다. 바닥이 왜 그렇게 깨끗했는지 그제야 알았다.
뻘게들이 천장에서 벽으로, 벽에서 바닥으로 번져 내려왔다. 그리고 멈칫하더니, 일제히 우리 쪽으로 더듬이를 돌렸다. 헤드랜턴 셋과 오철 어깨의 빨간 불이 이 홀에서 제일 밝은 것이었다.
오철의 손이 허리로 갔다. 칼자루를 쥐는 소리가 났다.
“움직이면 끓어.”
내 목소리가 생각보다 낮게 나왔다. 오철의 손이 칼자루에서 멈췄다.
“칼 빼면 저것들 다 몰려와. 싸우려면 자리를 비켜야 되고, 비키다 보면 위로 올라가게 돼. 이 사람은 지금 올라가면 끓어.”
“그럼 어떻게 해요.”
허벅지 주머니에서 화학봉을 꺼냈다. 물에서 쓰던 형광 막대였다. 양 끝을 쥐고 꺾자 안에서 유리 앰플 깨지는 소리가 났다. 흔들자 초록빛이 막대 전체로 번졌다.
홀 반대편 벽에 다른 목이 뚫려 있었다. 아래로 내려가는 굴인지 옆으로 빠지는 굴인지는 몰랐다. 상관없었다. 나는 화학봉을 그쪽으로 던졌다. 초록 불이 바닥에 한 번 튀고 굴 어귀로 굴러 들어갔다.
“불 다 꺼. 카메라도.”
“방송 끊겨요.”
“끊겨도 돼.”
오철이 어깨의 빨간 불을 손바닥으로 덮었다가, 결국 스위치를 내렸다. 서하가 제 헤드랜턴을 껐다. 나도 껐다.
어둠이 왔다.
완전한 어둠은 아니었다. 홀 반대편 굴 어귀에서 초록빛이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을 향해, 바닥 전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딸깍거리는 소리가 발치를 지나갔다. 수백 개의 다리가 돌을 두드리며 우리를 비켜 흘렀다. 무언가가 내 장화 코를 타고 넘어갔다.
서하 쪽에서 아주 작게 숨 들이켜는 소리가 났다. S급의 손가락이면 튕겨 내도 벽에 박힐 것들을, 서하는 손등으로 고스란히 받으며 숨만 고르고 있었다.
나는 왼손목을 얼굴 가까이 들었다. 잠수 시계의 야광 눈금이 어둠 속에서 푸르게 떠 있었다. 삼각 표시에서 분침까지가 정지 시간이었다.
“몇 분 남았어.” 서하가 속삭였다.
“22분.”
“이대로?”
“이대로요.”
소리가 조금씩 멀어졌다. 초록빛 쪽으로 몰려간 뻘게들이 굴 안에서 서로 타 넘는 소리가 났다. 화학봉은 몇 시간을 간다. 저것들은 한동안 거기서 나오지 않을 것이다.
생명줄이 위에서 짧게 당겨졌다. 화면이 까맣게 꺼졌으니 위에서는 난리가 났을 거다. 영감은 그 난리 속에서 줄만 잡고 있었다. 괜찮냐. 나도 짧게 당겨 보냈다. 괜찮다.
그 뒤로 우리는 어둠 속에 앉아 있었다.
어둠 속에서는 소리가 커진다. 굴 안쪽의 딸깍거림, 오철이 침 삼키는 소리, 내 이어폰에서 나는 희미한 잡음.
이따금 서하의 장화 안에서 발가락 꼼지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서하는 계속 확인하고 있었다. 움직이는지, 아직도 움직이는지.
물에서도 정지 중에 일이 터지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줄을 잡고, 숨을 고르고, 시계를 본다. 남해 바닥에서 감압 줄에 매달려 있을 때 눈앞으로 해파리 떼가 지나간 적이 있었다.
그때도 할 수 있는 건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그래도 그때는 내 몸 하나만 걱정하면 됐다.
“그 보고서.” 어둠 속에서 서하가 말했다. 오철 쪽을 향한 목소리였다. “아까 네가 말한 거. 그게 뭐야.”
오철은 대답하지 않았다. 숨소리만 한 번 거칠어졌다가 가라앉았다.
“나중에 해요.” 내가 말했다. “지금은 발가락만 생각해요.”
45분이 찼다.
내 헤드랜턴만 켜서 사다리를 비췄다. 빛을 손바닥으로 반쯤 가리고, 서하를 먼저 올렸다. 이번에는 업히지 않았다.
서하가 제 손으로 사다리를 잡았다.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칸을 놓치지는 않았다. 오철이 바로 밑에서 그녀 발목을 받쳤다.
6층에 올라서자 나는 갈래 밸브 고리에서 예비 마스크를 떼어 그녀에게 내밀었다.
“이제 이거 물어도 돼요. 여기서부터는.”
“아까는 경련 온다며.”
“아까는 7층이었고요. 여기는 6층.”
서하가 마스크를 받아 썼다. 위에서 흘려보내는 공기가 마스크 안에서 쉭 소리를 냈다. 이 공기를 물리면 정지가 반으로 준다. 물에서 산소를 물리면 그렇다.
여기서도 그렇다는 보장은 없었지만, 7층에서 입술이 떨린 걸 보면 이 공기는 여기서 산소 노릇을 하고 있었다. 잠수판에 적어 둔 대로 6분을 섰다.
5층 홀을 지날 때 사다리 옆 바위 턱에 납작하게 눌린 박스 조각이 깔려 있었다. 그 둘레로 꽁초가 수북했고, 빈 생수병 몇 개가 벽 쪽에 줄 맞춰 서 있었다. 누가 거기 앉아 오래 쉬다 간 자리였다.
“짐꾼 자리예요.” 오철이 말했다. “늙은 짐꾼들은 다섯 층마다 앉아서 담배 한 대씩 피우고 올라와요. 헌터들은 게으르다고 욕하고.”
나는 박스 조각을 내려다봤다. 짐을 지고 걸어 올라오는 사람들은 저절로 쉰다. 다섯 층마다 담배 한 대. 그 사람들이 체질 탈락으로 쓰러졌다는 뉴스는 본 적이 없었다.
4층은 입구로 나가기 전 마지막 정지 층이었다.
굴뚝 어귀 분필 자국에 「입구까지 4」라고 적혀 있었다. 짐꾼 글씨였다. 오늘 아침 1공대가 숨도 안 고르고 지나쳤을 층이었다. 1분도 안 걸렸을 것이다.
“30분.” 내가 말했다.
서하가 마스크 안에서 나를 봤다. 이제 혼자 서 있었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하고, 발뒤꿈치를 들었다 내렸다. 그러다 사다리 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다 나았어. 걸을 수 있어. 이 정도면 올라가도 되잖아.”
“S급이시면 세 배요. 서 계세요.”
“세 배?”
“물에서는 살집 있는 사람이 오래 서요. 많이 먹었으니까 많이 뱉어야죠.”
“나 살 안 쪘는데.”
“그릇이요. 캐스터가 그렇게 자랑하던 거.”
서하가 입을 다물었다. 마스크 유리에 김이 서렸다 걷혔다. 그녀는 사다리에서 손을 떼고 벽에 등을 붙였다. 그리고 그대로 섰다.
오철이 나를 흘끔 봤다.
“저는요? 저도 그만큼 서요?”
“넌 B급이고, 8층에 한 시간도 안 있었어. 셈으로는 여기서 10분이면 돼. 그래도 같이 나가.”
“왜요?”
“무리는 제일 오래 서야 하는 사람 시계로 움직여. 혼자 먼저 나가면 위에서 누나 기다리면서 발 동동 굴릴 거잖아.”
오철이 대꾸를 못 하고 서하 옆 벽에 등을 댔다.
한동안 셋 다 말이 없었다. 위에서 흘러드는 공기가 마스크 안에서 쉭쉭거렸다. 서하가 그 소리 사이로 물었다.
“아까 철이가 말한 보고서. 아저씨 이름 맞지.”
“네.”
“뭐 했는데.”
“정지 지키다 잘렸어요. 지금 하는 거랑 똑같은 거 하다가.”
서하가 마스크 너머로 나를 봤다. 오철은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얘기는 거기서 끝났다. 나도 더 할 생각이 없었다.
나는 서 있을 필요가 없었다. 측정기가 0을 찍었으니까. 대신 둘 맞은편 바위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고관절이 그편을 원했다.
얼마쯤 지났을 때 이어폰이 딸깍했다. 위에서 영감이 버튼을 눌렀다. 그 너머로 구 실장의 고함이 섞여 들어왔다.
“누르라고! 다 나았다잖아, 끌어올리라고 해!”
그리고 영감의 목소리가 났다. 평소처럼 낮고 느렸다.
“장 씨. 괜찮나.”
“괜찮습니다.”
딸깍. 버튼에서 손을 뗀 소리였다. 구 실장의 고함은 더 들리지 않았다. 영감은 그 버튼을 자기 질문에만 썼다.
24분째에 나는 서하의 마스크를 벗겼다.
“아직 안 끝났잖아.”
“숨 쉬는 시간이에요. 이 공기를 30분 넘게 물리면 몸이 놀라요. 5분은 그냥 여기 공기 마시는 거고, 이건 정지에 안 셉니다.”
“안 세는 시간도 있어?”
“물에서도 그래요.”
서하가 기가 막힌다는 듯 숨을 뱉었다. 그러고는 내 손목의 시계를 들여다봤다. 남의 시계를 들여다보며 기다리는 S급이었다.
5분이 지나고 마스크를 다시 씌웠다. 남은 6분은 길었다. 그녀는 무릎을 굽히지 않고 그 6분을 섰다.
“됐어요.”
0층까지는 금방이었다. 기둥에 감긴 생명줄을 풀고, 막 앞에 섰다.
“숨 참아요. 나갈 때는 귀가 먼저 눌리니까, 코 쥐고 뚫어요.”
서하가 숨을 들이켜고 막을 넘었다. 오철이 뒤따랐다. 나도 물로 나섰다. 7미터의 물이 한꺼번에 귀를 눌렀다. 코를 쥐고 숨을 밀어 귀를 뚫으며 하강줄을 탔다.
물 위로 머리를 내밀자 소리가 쏟아졌다.
서하는 이미 바지선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오철이 밑에서 받칠 준비를 했지만 그녀는 끝까지 혼자 올랐다. 갑판에 두 발로 섰다.
젖은 장화가 미끄러졌다가 다시 섰다. 그리고 걸었다. 갑판 이쪽에서 저쪽까지, 들것이 놓여 있던 자리를 지나서.
둔치가 터졌다.
함성이라기보다 비명에 가까웠다. 전광판에 걷는 서하가 크게 떴다. 드론 네 대가 서하를 따라 돌았다. 캐스터가 무슨 말을 하려다 목이 메어 기침을 했다.
“윤서하 선수가, 윤서하 선수가 걸어서……”
PD가 이어폰을 누르며 누군가에게 소리쳤다. 화면 까맣게 꺼졌을 때부터 사람이 미친 듯이 붙었다고, 지금 서버가 흔들린다고. 나는 그 말을 반만 들었다. 잠수복 지퍼를 내리는 데 손이 자꾸 미끄러졌다.
서정모가 의료 부스 앞에 서 있었다. 그는 걷는 서하의 다리를 오래 봤다. 무릎이 굽었다 펴지는 것을, 발목이 체중을 받는 것을.
그러다 가운 주머니에서 낡은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적었다. 수첩 모서리가 닳아 둥글었다.
구 실장이 PD의 마이크를 가로챈 건 그때였다. 선글라스를 고쳐 쓰고, 걷는 서하와 같은 화면에 들어가는 자리로 한 걸음 옮겨 섰다.
“태성길드는 소속 헌터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협력 잠수사와 함께 긴급 구조를 진행했습니다. 윤서하 선수는 보시는 것처럼……”
협력 잠수사. 들어가기 전에는 무단 출입이었다. 곽 영감이 생명줄을 사리다 말고 구 실장 쪽으로 침을 뱉었다. 강물 쪽으로, 아주 정확하게.
협회 측정원이 서하 손목에 측정기를 댔다가 난처한 얼굴로 말했다.
“저, 이번 귀환은 중간에 정지가 있어서 공인 기록 대상이 아닙니다.”
“그거 안 받을게요.”
갑판 끝에 모여 있던 헌터들이 웃으며 박수를 쳤다. 하준이 제일 크게 쳤다.
“거 봐요, 멀쩡하잖아. 우리 누나는 체질이 아니었던 거지.”
그가 박수를 치다 말고 오른쪽 어깨를 주물렀다. 주머니에서 작은 병을 꺼내 단숨에 비웠다. 진통 포션이었다.
“그 어깨.” 내가 말했다.
“아, 이거요? 보스한테 한 대 맞은 거예요. 뒤풀이 가서 풀래요.”
나는 갑판에 굴러다니던 일당 영수증을 주워 뒷면에 내 번호를 적었다. 하준이 웃으면서 받아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었다.
“오늘 밤에 다리 저리면 바로 전화해요. 몇 시든.”
“네네, 아저씨. 들어가세요.”
서하는 측정원 쪽을 보지도 않고 갑판에 주저앉았다. 오철이 수건을 덮어 주었다.
서정모가 다가와 서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말없이 장화를 벗기고 발가락을 하나씩 눌러 봤다. 서하가 발가락을 오므렸다 폈다. 서정모는 무릎 아래를 손가락 마디로 두드려 보고, 일어서서 나를 봤다.
“오늘 판정서에는 내가 서명했어요.”
“압니다.”
“고치려면 근거가 있어야 됩니다. 오늘 한 번 걸어 나온 걸로는 안 돼요.”
그는 그 말만 하고 부스 쪽으로 돌아갔다. 가운 주머니에 넣은 손이 수첩을 쥐고 있는 게 보였다.
그때 내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장해묵 씨 되시죠. 태성길드 법무팀입니다. 오늘 무단 출입과 소속 헌터 위해 건으로 고소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라 미리 알려 드립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문자가 왔다. 헌터협회였다. 월요일 오후 2시, 여의도 본부. 오늘 사고에 관한 청문회 출석 요구서.
갑판 바닥에서 서하의 휴대폰도 진동했다. 그녀가 화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리고 나한테 화면을 돌려 보였다.
전속계약 해지 통보. 사유, 체질 탈락. 계약서 조항에 따라 위약금은 면제합니다.
“웃기지. 걸어서 나왔는데 체질 탈락이래.”
나는 화면을 끝까지 내려 봤다. 해지 조항만 따로 굵은 글씨였다. 사유와 날짜와 면제 범위가 빈틈없이 적혀 있었다.
“해지 조항이 제일 꼼꼼하네요. 원청 계약서가 다 그래요.”
서하가 나를 올려다봤다. 젖은 머리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럼 나 이제 프리랜서네. 아저씨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