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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층

지은이 와우산 · 2026-10-25

“다시 들어가요? 던전에?”

PD의 마이크가 내 입 앞에서 흔들렸다. 서정모가 먼저 나섰다.

“마비 환자를 던전에 넣겠다는 겁니까? 의사로서 허락 못 합니다.”

“의사가 허락할 일이면 의사가 하셨겠죠.”

“장 씨.” 구 실장이 전화기를 귀에서 떼지도 않고 말했다. “미쳤어?”

나는 대답 대신 갑판 끝을 봤다. 아까 낄낄대던 헌터들이 수건을 목에 건 채 서 있었다. 다들 같은 문으로, 같은 속도로 올라온 사람들이었다.

“당신들도 같이 내려갑시다.”

잠깐 조용하더니 웃음이 터졌다. 맨 앞에 선 젊은 딜러가 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하준이라는 A급이었다.

“아저씨, 우리 뒤풀이 예약 잡혀 있어요. 거기 같이 내려가실래요?”

“어깨 쑤시는 사람 없어요? 무릎이라든가.”

“쑤시죠. 40층 보스 잡고 왔는데.” 하준이 제 어깨를 툭툭 쳤다. “포션 한 병이면 끝나요. 그릇이 다르잖아요, 그릇이.”

웃음이 또 돌았다. 서정모가 그 웃음 위로 말을 얹었다.

“장해묵 씨. 체질 탈락자가 3년 동안 41명입니다. 전부 고등급이고 포화도 높게 올라온 사람들이에요. 숫자는 거짓말 안 합니다.”

“숫자 틀렸다고 안 했습니다.”

서정모가 입을 다물었다. 틀렸다는 말을 기다리던 사람의 얼굴로 나를 보다가, 그 말이 안 나오자 눈썹을 좁혔다.

그때 오철이 일어섰다. 서하의 머리를 간호사 무릎에 조심스럽게 옮겨 놓고, 내 앞까지 걸어왔다. 덩치가 바지선 그늘을 반쯤 가렸다.

“남해 태성해양 사고 보고서.”

목소리가 낮았다.

“현장 책임자, 장해묵.”

갑판 위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구 실장의 선글라스가 오철 쪽으로 돌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났는데, 구 실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압니까.”

“알아요.”

오철은 그 말만 하고 입을 닫았다가, 이윽고 덧붙였다.

“몇 주 전에 한강수중 일당 명단에서 그 이름 봤어요. 그래서 입구 대기조 자리 안 바꿨어요.”

왜냐고 묻기 전에 갑판에서 산소 마스크 벗기는 소리가 났다. 서하였다. 누운 채 손으로 마스크를 턱까지 끌어내리고 있었다.

“가.”

말은 그게 다였다. 서하는 마스크를 다시 올렸다.

나는 그녀 옆에 쪼그려 앉았다.

“숨 참을 수 있어요? 7미터. 내가 끌어요.”

서하가 눈을 감았다 떴다. 그게 대답이었다.

“무단 출입이야.” 구 실장이 드디어 전화기를 내렸다. “장 씨, 출입 일지에 책임자 누가 써. 들어가서 사고 나면 그거 누가 져.”

“챔버가 없으면 최고수심까지 다시 들여보내라. 법에 있는 겁니다.”

“그건 물 얘기잖아.”

“물에서 생긴 법이니까요.”

협회 부스 앞에 출입 일지 클립보드가 걸려 있었다. 길드명, 인원, 현장 책임자, 감시인. 칸마다 볼펜이 끈에 묶여 달랑거렸다. 나는 볼펜을 뜯어 현장 책임자 칸에 이름을 썼다. 장해묵. 손이 생각보다 안 떨렸다.

그 칸에 내 이름이 들어가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엔 남이 써 넣었다.

옆에서 곽 영감이 볼펜을 받아 갔다. 감시인 칸에 곽만수. 영감은 서하 쪽으로 고개를 돌려 목에 번진 무늬를 오래 봤다.

“시베리 왔네.”

“시베리요?” 오철이 물었다.

“영감님 동네 말로 잠수병.”

◇

바지선 선실 문이 닫히자 강바람 소리가 끊겼다.

구 실장은 선글라스를 벗어 탁자에 내려놓았다. 창밖으로 협회 부스의 클립보드가 보였다. 현장 책임자 칸에 굵게 눌러쓴 이름이 있었다.

“대표님. 그 잠수부가 윤서하를 데리고 다시 들어가겠답니다. 출입 일지에 자기 이름을 썼고요.”

“누구라고.”

“장해묵이요. 한강수중 일당입니다.”

전화기 너머가 조용했다. 구 실장은 그 침묵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7년 전 남해 현장 서류에도 그 이름이 있었다.

“들여보내.”

“방송은 어떻게 할까요.”

“끊지 마. 살아 나오면 태성 구조고, 죽으면 그 잠수부 이름으로 나간다. 일지에 제 손으로 썼다며.”

전화가 끊겼다. 구 실장은 선글라스를 다시 썼다.

◇

들어가기 전에 나는 갑판 한쪽으로 둘을 불러 모았다. 오철과, 들것째 옮겨 온 서하.

“작업 내용. 윤서하 씨를 증상 풀리는 층까지 데리고 내려간다. 풀리면 거기서 기다렸다가 정해진 층마다 서면서 올라온다. 위험 요인. 짐승, 줄 엉킴, 그리고 나.”

“아저씨가 왜 위험 요인이에요.” 오철이 물었다.

“나도 처음 가 보는 데니까. 비상시엔 줄을 넷씩 세 번 당긴다. 당장 끌어올리라는 거야. 다 외웠어?”

“이거 지금 꼭 해야 돼요?”

“원래 하는 거야. 안 하고 들어갔다가 사고 나면 그것도 내 탓이고.”

오철이 입을 다물었다. 서하가 마스크 안에서 웃은 것 같았다.

둔치 쪽은 아까보다 더 시끄러웠다. 전광판에는 갑판을 내려다보는 드론 화면이 그대로 떠 있었고, 화면 아래로 「윤서하 체질 탈락 판정」이라는 자막이 흘렀다. 그 자막을 아무도 내리지 않았다.

서정모는 의료 부스 앞에 팔짱을 끼고 서서 나를 보고 있었다. 막지도, 거들지도 않는 얼굴로. 이따 무슨 일이 생기면 저 사람이 증인이 된다. 나는 그편이 나았다.

마스크를 다시 쓰고 끈을 조였다. 호스 끝을 둘로 갈라 둔 갈래 밸브에 예비 마스크를 걸었다.

화학봉은 허벅지 주머니에, 잠수판과 연필은 가슴 끈에. 오철의 어깨에는 방송팀이 붙여 준 몸 카메라가 빨간 불을 켜고 있었다.

“넘을 때 숨 참지 마.” 입수 직전에 내가 말했다. “아, 넌 참아도 돼. 난 안 돼.”

“왜요?”

“나는 7미터 바닥에서 눌린 공기를 먹고 있거든. 그걸 문 채로 막을 넘으면 그 깊이를 한숨에 치고 올라가는 거랑 같아. 폐가 찢어져.”

곽 영감이 생명줄 끝을 내 가슴 하네스의 쇠고리에 걸고, 줄을 손바닥으로 훑어 꼬인 데가 없는지 봤다. 영감의 손이 줄을 따라 바지선 끝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내 어깨를 툭 쳤다.

강물은 아까보다 더 차가웠다. 오철이 서하를 등에 업고 줄을 잡았고, 나는 그 앞에서 하강줄을 탔다. 서하의 숨 참은 몸이 오철 등에서 뻣뻣했다. 3미터쯤에서 흙탕물이 눈앞을 지웠다.

그다음부터는 장갑 안의 감각으로만 갔다. 줄의 꼬임, 뻘의 미끈거림, 오철의 손이 내 발목을 놓치지 않으려고 꽉 쥐는 힘. 바닥에서 앵커를 더듬어 찾고, 희미하게 밝은 자리로 손을 뻗었다.

막이 손등을 핥고 지나갔다. 나는 숨을 길게 뱉으며 그 안으로 몸을 밀어 넣었다.

물이 끝났다.

마른 바닥에 무릎부터 떨어졌다. 공기는 서늘했고, 지하 주차장 냄새가 났다. 뒤에서 오철이 서하를 업은 채 굴러 들어왔다. 둘 다 콜록거렸지만 숨은 제대로 쉬고 있었다.

문턱 안 홀을 협회는 0층이라 불렀다. 넓은 동굴 한가운데에 돌기둥이 서 있었고, 기둥에 협회 기압계가 박혀 있었다. 바늘이 1에 서 있었다. 지상하고 똑같은 자리였다.

생명줄을 기둥에 한 바퀴 감았다. 그리고 갈래 밸브에서 예비 마스크를 떼어 서하 얼굴에 씌웠다.

“위에서 내려보내는 공기예요. 지상 공기. 숨 좀 편할 거예요.”

서하가 마스크 안에서 길게 숨을 쉬었다. 목의 무늬는 그대로였다. 오철이 허리 주머니에서 예비 헤드랜턴을 꺼내 서하 이마에 둘러 주었다. 입구 대기조는 남의 몫까지 챙겨 다닌다.

홀 구석에 세로로 뚫린 굴이 있었다. 층과 층을 잇는 이런 세로 굴을 짐꾼들은 목이라 불렀다. 병목의 그 목이다. 녹슨 쇠사다리가 박혀 있었고, 그 옆으로 누가 걸어 둔 밧줄이 늘어져 있었다.

위쪽 열 층 남짓은 그 목들이 거의 곧게 겹쳐 한 줄로 내려다보였다. 짐꾼들은 이 구간을 굴뚝이라 부르고, 짐을 줄에 매달아 위아래로 내린다고 들었다.

굴 어귀 바위에 분필 자국이 잔뜩 있었다. 층 숫자, 화살표, 누가 언제 지나갔는지 적은 이름들. 그 사이에 방송팀이 박아 둔 손바닥만 한 돌이 푸르게 깜빡였다. 통신석이라는 물건이었다.

몇 층마다 하나씩 박아 이어 붙이면 깊은 데서 찍은 화면도 위로 올라간다. 오늘 아침 보스전이 강 위 전광판에 뜬 것도 이 돌들 덕이었다. 오철 어깨의 빨간 불이 그 돌빛을 받아 한 번 더 깜빡였다.

“2층마다 섭니다. 서면 발가락부터 봐요.”

사다리 칸을 디딜 때마다 왼쪽 고관절이 욱신거렸다. 오철은 사람을 업고도 나보다 빨랐다. 줄이 내 하네스 쇠고리에서 위로 팽팽하게 이어졌고, 가끔 짧게 당겨졌다. 나도 짧게 당겨 답했다.

2층. 발가락이 그대로였다.

4층. 그대로.

6층에서 서하가 신음 같은 숨을 뱉었다. 무늬는 턱 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나는 손으로 줄을 훑어 남은 길이를 가늠했다. 생명줄은 200미터.

이 굴뚝을 따라 내려가면 8층에서 끝난다. 거기서도 안 풀리면 줄을 놓고 가야 했다. 위에서 내려오는 공기도, 영감의 목소리도 없이.

7층 홀로 내려섰을 때 오철이 나를 불렀다.

“아저씨. 누나 입술이 이상해요.”

헤드랜턴을 비췄다. 마스크 유리 안에서 서하의 아랫입술이 떨리고 있었다. 입꼬리가 제멋대로 당겨졌다 풀렸다.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귀가…… 울려.”

잠수 교육장에서 그림으로 본 얼굴이었다. 순산소를 너무 깊이 물면 입술부터 떨리고 귀가 울고, 그다음엔 경련이 온다. 그래서 물에서는 순산소를 9미터보다 깊은 데서 물리지 않는다.

나는 마스크를 뜯어냈다.

“여기선 이거 물면 안 돼요. 물에서 순산소를 너무 깊이 문 사람이 꼭 이렇게 떨다가 경련해요.”

“뭐, 뭐예요, 그게.”

“이따 설명해 줄게. 흔들지 마. 그대로 업고 있어.”

오철이 숨을 죽였다. 나는 서하의 턱을 손바닥으로 받치고 시계를 봤다. 잠시 뒤 입술이 가라앉았다.

떼어 낸 마스크를 갈래 밸브 고리에 다시 걸었다. 물에서 쓰던 셈이 여기서도 얼추 맞았다.

8층 홀은 위층들보다 천장이 높았다. 사다리가 끝나는 자리에서, 위에서 풀려 내려오던 생명줄이 팽팽하게 섰다. 더 내려갈 줄이 없었다.

바닥이 이상하게 깨끗했다. 짐꾼들이 버리고 간 빈 병도, 헌터들이 잡고 간 짐승 뼈도 없었다.

누가 비질이라도 한 것처럼 돌바닥이 반들거렸다. 나는 그게 마음에 걸렸지만, 그때는 서하의 발가락 말고 다른 걸 볼 여유가 없었다.

“내려놔. 천천히.”

오철이 서하를 바닥에 눕혔다. 나는 발치에 무릎을 꿇었다.

“윤서하 씨. 발가락.”

그녀가 이를 악물었다. 왼발 엄지가 움찔했다. 다음에 검지가, 그다음에 오른발이 따라 움직였다. 서하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움직여.”

오철이 욕을 했다. 작게, 길게. 몸 카메라가 그의 어깨에서 흔들렸다.

헤드랜턴을 서하의 목에 비췄다. 턱 밑까지 올라왔던 보랏빛이 한 톤 가라앉아 있었다. 그물 무늬의 가장자리가 흐려지고 있었다.

생명줄이 위에서 짧게 당겨졌다. 나도 같은 신호를 보냈다. 이어폰에서 영감의 숨소리가 났다. 그게 전부였다.

이제 여기서 얼마나 서 있을지를 정해야 했다.

물이라면 답이 있다. 증상이 풀린 깊이에서 오래 머물고, 아주 천천히 올라온다. 교범이 그렇게 적는다. 문제는 여기가 물이 아니라는 것과, 이 여자가 S급이라는 것이었다.

물에서는 살집 있는 사람이 질소를 많이 먹고 늦게 뱉는다. 캐스터는 그릇이 크다고 자랑했다.

그 그릇이 물의 살집 노릇을 한다면 서하는 남보다 오래 서야 했다. 얼마나 오래인지는 몰라서 길게 잡았다. 모를 때는 길게 잡으라고 물에서 배웠다.

나는 마스크를 반쯤 들고 던전 공기를 한 모금 마셔 봤다. 서늘하고, 마른 돌 냄새가 났다. 세 모금째에 귀 뒤가 살짝 뜨거워졌다.

소주 한 잔에 조금 못 미치는 기운이었다. 나는 마스크를 다시 눌러썼다. 잠수사들끼리는 깊이 내려가면 마티니를 한 잔씩 걸친 것 같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물에서라면 한참 더 내려가야 오는 기운이었다. 0층 기둥의 기압계는 지상 자리에 서 있었는데, 내 머리는 어딘가 깊은 데 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가슴 끈에서 잠수판을 빼고 연필로 적었다.

8층 45. 6층 6. 4층 30.

연필심이 판 위에서 조금 미끄러졌다. 이 던전에서 처음 적힌 정지표였다.

“여기서 45분.”

오철이 나를 봤다. 바닥에 누운 서하도 나를 봤다.

“45분이요? 이렇게 멀쩡한데?”

“멀쩡해진 거지, 다 나은 게 아니야. 위로 올라가면 도로 끓어.”

오철이 입을 다물고 서하 옆에 앉았다. 서하는 천장을 보고 있었다. 나는 베젤을 돌려 삼각 표시를 분침에 맞췄다.

“그거.” 서하가 천장을 본 채 말했다. “아까 위에서도 돌렸지.”

“네.”

“나 쓰러지기 전에.”

“네.”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손을 들어 제 목을 만졌다. 무늬가 있던 자리를 손가락으로 쓸어내리다가 멈췄다. 그 손이 아까 7미터 바닥에서 어깨를 긁던 손이었다.

“기록은.” 얼마 뒤에 서하가 말했다. “오늘 기록은 어떻게 돼.”

“위에 두고 왔죠. 들고 오기엔 무거워서.”

오철이 코로 웃음을 뱉었다가 서하 눈치를 보고 삼켰다. 서하는 웃지 않았지만, 목을 만지던 손을 내려 바닥에 펴 놓았다. 돌바닥이 차가울 텐데 그대로 두었다.

8층은 조용했다. 어디선가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고, 서하의 숨소리가 조금씩 고르게 길어졌다. 얼마 뒤에는 혼자 무릎을 세웠다. 오철이 하품을 참았다.

23분째.

머리 위에서 마른 소리가 났다. 손톱으로 바위를 긁는 것 같은 소리가 여기저기서 겹쳤다.

헤드랜턴을 올렸다. 천장에 뚫린 목 안쪽에서, 무언가가 반짝이며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