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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첫 데이트부터 망했다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 11화. 첫 데이트부터 망했다

글 · 루시엘 | 장르 · 현대 로맨스, 로맨틱 코미디

### 1. 재벌 대표의 첫 데이트 준비

강태준은 인생에서 수많은 중요한 순간을 경험했다.

태성그룹의 대표이사로 취임하던 날.

수천억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하던 날.

해외 투자자들 앞에서 처음으로 기업 설명회를 진행하던 날.

그 어떤 순간에도 그는 긴장하지 않았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 굴지의 기업을 이끄는 강태준 대표가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맸다가 풀기를 다섯 번째 반복하고 있었다.

“……아니야. 너무 회사 사람 같아.”

그는 검은색 넥타이를 풀어 침대 위로 던졌다.

이번에는 흰 셔츠에 베이지색 니트를 입었다.

거울을 바라봤다.

“너무 어려 보이나?”

다시 벗었다.

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

“이건 너무 성의 없어 보이는데.”

그때였다.

똑똑.

“대표님, 들어가겠습니다.”

최도윤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그대로 멈춰 섰다.

침대 위에는 셔츠 여섯 벌이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바지 세 벌이 놓여 있었다.

평소 먼지 하나 없는 집에서 살던 강태준의 방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대표님.”

“왜?”

“도둑 들었습니까?”

“아니.”

“그럼 옷장이 폭발했습니까?”

“데이트 준비 중이야.”

도윤은 눈을 감았다.

“아.”

그 짧은 한마디에 모든 감정이 담겨 있었다.

태준은 옷을 하나 들어 보였다.

“이거 어때?”

“괜찮습니다.”

“이건?”

“괜찮습니다.”

“그럼 이건?”

“대표님.”

“왜.”

“윤서하 씨가 대표님 옷 구경하러 나오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태준이 인상을 찌푸렸다.

“그래도 첫 데이트잖아.”

“그러니까 평범하게 입으시면 됩니다.”

“평범한 게 뭔데?”

도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 지금 입으신 검은 티셔츠에 청바지면 충분합니다.”

“정말?”

“네. 그리고 제발 시계는 그거 차지 마십시오.”

태준이 손목을 내려다봤다.

“왜?”

“그 시계 하나가 웬만한 자동차보다 비쌉니다.”

“……아.”

태준은 조용히 시계를 풀었다.

도윤은 그 모습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대표님이 평범한 데이트를 하시려면 준비가 꽤 필요하겠네요.”

태준은 시계를 내려놓으며 중얼거렸다.

“서하 씨가 부담스러워하는 건 싫어.”

도윤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윤서하 이야기를 하던 남자가 오늘만큼은 유난히 진지했다.

“대표님.”

“응?”

“오늘은 멋있게 보이려고 하지 마시고, 그냥 즐겁게 보내세요.”

“…….”

“그분도 대표님이 편하게 웃는 모습을 좋아하실 겁니다.”

태준은 거울을 바라봤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그래. 오늘은 그냥 강태준으로 가야지.”

도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표님.”

“왜?”

“꽃다발은 준비 안 하셨죠?”

태준의 시선이 슬그머니 옆으로 향했다.

도윤도 그쪽을 바라봤다.

테이블 위에는 커다란 장미 꽃다발이 놓여 있었다.

“…….”

“…….”

“강태준 대표님.”

“왜.”

“윤서하 씨가 꽃다발 매번 사 오지 말라고 하셨다면서요.”

태준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꽃다발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안 가져갈게.”

도윤은 진심으로 안도했다.

### 2. 사장님의 데이트 준비

같은 시각.

윤서하는 거울 앞에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아, 진짜. 내가 왜 이러고 있냐.”

침대 위에는 원피스 두 벌과 청바지, 블라우스가 펼쳐져 있었다.

평소 가게에서는 편한 티셔츠와 앞치마만 입었다.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옷을 고르는 일은 오랜만이었다.

서하는 연한 하늘색 블라우스를 들어 몸에 대봤다.

“너무 꾸민 것 같나?”

다시 내려놓았다.

검은색 니트와 청바지.

“이건 너무 평소 같고.”

그녀는 결국 침대에 털썩 앉았다.

“그냥 밥 먹는 건데 무슨 데이트야.”

하지만 그 말을 하는 자신의 입가에는 이미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박미자였다.

“네, 이모.”

“서하야! 오늘 가게 쉰다며?”

“네.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요.”

“개인적인 일?”

“네.”

“혹시 태준 씨 만나니?”

서하는 벌떡 일어났다.

“이모!”

전화기 너머로 미자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아이고, 맞네! 맞아!”

“누가 그렇대요?”

“너 지금 목소리만 들어도 다 티 나.”

“아니거든요.”

“그래, 그래. 예쁘게 하고 나가.”

“이모!”

“그리고 너무 튕기지만 말고.”

“끊어요!”

서하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다 티 나나?”

잠시 고민하던 그녀는 결국 하늘색 블라우스에 연청바지를 골랐다.

머리는 자연스럽게 풀어 내렸다.

입술에는 평소보다 조금 더 선명한 색의 립스틱을 발랐다.

거울 속에는 가게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있던 윤서하와는 조금 다른 여자가 서 있었다.

서하는 한참 자신을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뭐…… 나쁘지 않네.”

바로 그때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태준: 사장님, 준비 다 하셨습니까?

윤서하: 아직요.

강태준: 천천히 나오세요.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윤서하: 벌써 왔어요?

강태준: 네.

윤서하: 약속까지 30분이나 남았는데요?

강태준: 첫 데이트에 늦으면 안 되니까요.

서하는 휴대전화를 바라보며 웃음을 참았다.

윤서하: 누가 보면 면접 보는 줄 알겠어요.

강태준: 면접보다 더 떨립니다.

그녀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바보.”

하지만 그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다정했다.

### 3. 오늘은 사장님이 아니라 서하 씨

약속 장소는 두부참이슬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공원 앞이었다.

태준은 벤치 옆에 서 있었다.

검은색 티셔츠에 짙은 청바지, 그리고 흰 운동화.

평소 가게에 오던 모습과 비슷했지만, 어딘가 조금 달랐다.

서하는 멀리서 그를 발견하고 걸음을 늦췄다.

‘……잘생기긴 했네.’

괜히 인정하기 싫은 사실이었다.

그때 태준이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태준은 그대로 멈췄다.

서하가 가까이 다가왔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뭐예요?”

서하가 눈썹을 올렸다.

“왜 그렇게 봐요?”

“…….”

“태준 씨?”

그제야 태준이 입을 열었다.

“예쁘네요.”

서하의 발걸음이 멈췄다.

“네?”

“오늘 정말 예쁘십니다.”

서하의 귀가 붉어졌다.

“아, 진짜. 만나자마자 그런 말을 하면 어떡해요!”

“거짓말은 하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거랑 이거랑 같아요?”

“제가 예쁘다고 생각하는데 아니라고 할 수는 없어서요.”

서하는 결국 고개를 돌렸다.

“……가요.”

태준은 웃으며 그녀의 옆에 섰다.

“어디로 갈까요?”

“제가 정해도 돼요?”

“물론이죠.”

“후회하지 마세요.”

“절대 안 합니다.”

서하는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그 말 기억해요.”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걷기 시작했다.

몇 걸음쯤 걸었을 때 태준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사장님.”

“왜요?”

“오늘은 사장님이라고 안 불러도 될까요?”

서하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뭐라고 부르게요?”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서하 씨.”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이상하게 다정했다.

서하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마음대로 하세요.”

“그럼 서하 씨.”

“네.”

“오늘 만나 주셔서 감사합니다.”

서하는 앞을 바라보며 작게 대답했다.

“……저도요.”

태준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 4. 떡볶이 앞에서 무너진 남자

서하가 태준을 데려간 곳은 오래된 시장 골목이었다.

시장 입구에는 튀김 냄새가 가득했고, 골목 안쪽에서는 어묵 국물이 끓고 있었다.

태준은 주변을 둘러봤다.

“여기 자주 오세요?”

“네. 학생 때부터 오던 곳이에요.”

“그렇군요.”

“왜요? 이런 데 별로예요?”

태준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좋습니다.”

서하는 그를 힐끗 바라봤다.

“진짜요?”

“네. 서하 씨가 좋아하는 곳이잖아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앞장서서 작은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이모! 저 왔어요!”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른 중년 여성이 고개를 내밀었다.

“어머, 서하 아니야?”

“오랜만이죠?”

“그러게! 요즘 왜 이렇게 안 왔어?”

“가게가 바빠서요.”

여성은 태준을 발견하더니 눈을 반짝였다.

“어머나. 남자친구?”

“아니에요!”

서하가 재빨리 대답했다.

태준은 옆에서 조용히 웃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강태준 씨!”

분식집 이모는 손뼉을 쳤다.

“아이고, 아직은 아니라니! 그럼 곧 되겠네!”

서하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모, 떡볶이나 주세요!”

“알았어, 알았어. 매운맛으로?”

“네! 제일 매운 걸로요!”

태준은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같은 걸로 주세요.”

서하가 그를 돌아봤다.

“괜찮겠어요?”

“네. 매운 음식 잘 먹습니다.”

“진짜?”

“그럼요.”

서하는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나중에 후회하지 마세요.”

태준은 여유롭게 웃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십 분 뒤.

그는 자신의 말을 후회하고 있었다.

“…….”

태준은 떡볶이 한 개를 입에 넣은 채 굳어 있었다.

입안에서 불이 나는 것 같았다.

혀끝이 얼얼했고, 목구멍까지 뜨거웠다.

그는 조용히 물을 마셨다.

한 잔.

두 잔.

세 잔.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태준 씨.”

“네.”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매운 거 잘 먹는다면서요?”

“……잘 먹습니다.”

“근데 왜 울어요?”

태준은 급히 눈가를 문질렀다.

“안 웁니다.”

“눈물 나는데요?”

“감동해서요.”

“떡볶이 먹고 감동해요?”

“네. 굉장히…… 강렬한 맛이네요.”

서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태준은 물을 한 잔 더 마셨다.

“웃지 마세요.”

“아니, 아까는 자신만만하더니!”

“제가 생각했던 매운맛과 조금 다릅니다.”

“얼마나 매운 걸 생각했는데요?”

“……신라면 정도요.”

서하는 테이블을 두드리며 웃었다.

“아하하! 그게 뭐예요!”

태준은 민망한 듯 고개를 숙였다.

“이렇게 매울 줄은 몰랐습니다.”

서하는 웃음을 참으며 주방을 향해 외쳤다.

“이모! 여기 순한 떡볶이 하나만 더 주세요!”

태준이 고개를 들었다.

“괜찮습니다. 저 먹을 수 있어요.”

“됐어요. 그러다 쓰러지겠어요.”

“서하 씨.”

“왜요?”

“제가 조금 창피합니까?”

서하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웃었다.

“조금요.”

태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때 서하가 물컵을 그의 앞으로 밀어 줬다.

“근데 귀엽네요.”

태준의 손이 멈췄다.

“……네?”

서하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깨닫고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떡볶이 먹는 모습이요!”

태준의 입가가 천천히 올라갔다.

“제가 귀엽습니까?”

“아니라니까요!”

“서하 씨가 귀엽다고 하셨는데.”

“못 들은 걸로 해요!”

태준은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 5. 가장 비싼 선물보다 좋은 것

분식집을 나온 뒤 두 사람은 시장 골목을 걸었다.

서하는 작은 액세서리 가게 앞에서 멈췄다.

진열대에는 머리핀과 팔찌, 귀걸이들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작은 은색 머리핀 하나를 집어 들었다.

별 모양 장식이 달린 머리핀이었다.

“예쁘다.”

태준이 옆으로 다가왔다.

“마음에 드세요?”

“그냥요. 귀여워서.”

서하는 가격표를 확인했다.

오천 원.

그녀는 잠시 고민하다가 머리핀을 내려놓았다.

“가요.”

태준은 그 모습을 조용히 바라봤다.

몇 걸음쯤 걸었을 때였다.

“서하 씨.”

“네?”

“잠깐만 기다려 주시겠어요?”

“왜요?”

“금방 오겠습니다.”

태준은 방금 지나온 액세서리 가게로 돌아갔다.

서하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몰라 고개를 갸웃했다.

잠시 뒤 태준이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작은 종이봉투가 들려 있었다.

“이거요.”

서하가 봉투를 받아 들었다.

안에는 방금 자신이 바라보던 별 모양 머리핀이 들어 있었다.

“……이거.”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요.”

서하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이런 거 안 사줘도 되는데.”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요?”

태준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제가 드리고 싶어서요. 혹시 부담스러우시면 돌려주셔도 됩니다.”

서하는 머리핀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

작은 별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오천 원짜리네요.”

“네.”

“태준 씨가 주는 선물치고는 엄청 저렴하네요?”

태준이 웃었다.

“그래서 마음에 안 드십니까?”

서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녀는 머리핀을 가만히 바라봤다.

“마음에 들어요.”

태준의 표정이 환해졌다.

서하는 조심스럽게 머리핀을 머리에 꽂았다.

“어때요?”

태준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별이 반짝였다.

햇살이 서하의 얼굴에 내려앉았다.

그 순간 태준은 자신이 왜 이 여자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다시 한번 깨달았다.

화려한 보석도, 값비싼 옷도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오천 원짜리 머리핀 하나에 웃을 줄 아는 사람.

그 작은 기쁨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

그런 윤서하가 좋았다.

“예쁩니다.”

태준이 말했다.

서하가 웃었다.

“머리핀이요?”

“아니요.”

그가 고개를 저었다.

“서하 씨요.”

서하는 얼굴이 붉어졌다.

“……진짜 말은 잘해.”

“진심입니다.”

“알아요.”

태준의 눈이 커졌다.

서하는 그를 바라보며 덧붙였다.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그 말에 태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서하의 옆에서 천천히 걸었다.

그녀의 걸음에 맞춰서.

### 6. 완벽하지 않은 하루

오후가 되자 하늘이 흐려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서하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샀다.

“태준 씨는 무슨 맛 좋아해요?”

“서하 씨는요?”

“저는 딸기요.”

“그럼 저도 딸기요.”

서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아니, 본인이 좋아하는 맛을 고르라니까요.”

“저도 딸기 좋아합니다.”

“진짜요?”

“……오늘부터요.”

“아하하! 진짜 못 말려!”

태준은 웃으며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었다.

두 사람은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바람이 불었다.

서하의 머리카락이 살짝 흩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