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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우리 데이트해요

지은이 루시엘 · 2026-10-26

# 《두부참이슬》

## 10화. 우리 데이트해요

글 · 루시엘 | 장르 · 로맨틱 코미디, 현대 로맨스

태준이 가게를 나간 뒤, 두부참이슬에는 이상할 만큼 고요한 밤이 찾아왔다.

평소 같으면 마지막 손님이 나간 뒤에도 서하는 바쁘게 움직였다. 테이블을 닦고, 빈 소주병을 정리하고, 내일 쓸 두부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러다 가끔 문 쪽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인간은 내일도 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우스워서 피식 웃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서하는 테이블 하나를 닦다가 멈췄다. 태준이 늘 앉던 구석 자리였다.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앉아 두부김치를 주문했고, 소주잔을 들 때마다 쓸데없는 농담을 던졌다.

“사장님, 저 오늘 잘생겨 보이지 않아요?”

“아니요. 어제랑 똑같이 귀찮아요.”

“그럼 내일은 더 잘생겨질게요.”

그때마다 서하는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지만, 사실은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리가 텅 비어 있었다.

서하는 행주를 꽉 쥐었다.

“……대표님이시라 이거지.”

태성그룹 대표 강태준.

뉴스에서나 볼 법한 사람. 수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수십억짜리 계약을 결정하고, 누군가에게는 감히 말 한마디 붙이기 어려운 사람.

그런 남자가 자신의 가게에 와서 두부김치를 먹고 설거지까지 했다.

처음에는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놀랐다.

그리고 지금은…… 서운했다.

“돈이 많든 적든 그게 뭐가 중요해.”

서하는 혼잣말을 하며 테이블을 닦았다.

“그냥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됐잖아.”

자신은 태준에게 돈을 빌려 달라고 한 적도 없고, 좋은 차를 태워 달라고 한 적도 없었다. 그저 다른 손님들처럼 술 한잔하고 웃다가 돌아가는 사람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태준은 자신에게 중요한 사실을 숨겼다.

어쩌면 자신을 우습게 생각한 걸까.

아니면 자신의 반응이 재미있어서 일부러 감춘 걸까.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가슴이 답답해졌다.

서하는 결국 행주를 내려놓고 휴대전화를 들었다.

태준과 나눈 대화창.

마지막 메시지는 며칠 전이었다.

강태준: 사장님, 오늘 두부김치가 유난히 맛있던데요.

윤서하: 원래 맛있거든요. 이제 알았어요?

강태준: 그러네요. 제가 사장님을 너무 늦게 알아봤나 봅니다.

그때는 그저 장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은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걸렸다.

서하는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보다가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연락하지 마. 윤서하.”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속삭였다.

혹시 연락이 오지는 않을까.

혹시 내일은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오지 않을까.

혹시…… 자신에게 다시 한번 설명해 주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날 밤, 휴대전화는 끝내 울리지 않았다.

### 1. 기다리는 사람

태준은 사흘 동안 두부참이슬에 가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면, 가지 못했다.

첫날에는 가게 앞까지 차를 몰고 갔다.

밤 열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골목 입구에 차를 세우고 창밖을 바라보자, 익숙한 간판이 보였다.

두부참이슬.

작은 간판 아래로 따뜻한 불빛이 새어 나왔다.

저 안에 서하가 있을 것이다.

평소처럼 머리를 대충 묶고, 손님에게는 퉁명스럽게 말하면서도 빈 그릇은 꼼꼼히 챙겨 주고 있을 것이다.

태준은 안전벨트를 풀었다가 다시 맸다.

‘들어가서 사과하자.’

그렇게 마음먹고 차 문을 열었다.

한 걸음.

두 걸음.

가게 문까지 열 걸음도 되지 않았지만, 그 짧은 거리가 유난히 멀게 느껴졌다.

문 앞에 도착한 태준은 손잡이에 손을 얹었다.

안쪽에서 서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손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나가요!”

태준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 목소리가 반가웠다.

너무 반가워서, 오히려 문을 열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보고 또다시 상처받은 얼굴을 하면 어쩌지.

자신을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아니, 이제는 아예 오지 말라고 하면.

태준은 손을 천천히 내렸다.

“……미안해요, 서하 씨.”

아무도 듣지 못할 작은 목소리였다.

그는 결국 돌아섰다.

그날 밤, 태준은 집으로 돌아와 넥타이도 풀지 않은 채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최도윤이 가져다 놓은 서류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대표님.”

도윤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일하시죠. 오늘 결재하실 건 다 끝났습니다.”

“도윤아.”

“네.”

“사과할 때는 뭘 해야 하냐?”

도윤은 들고 있던 태블릿을 내려놓았다.

“……제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사과할 때 뭘 해야 하느냐고.”

“그걸 제가 알려 드려야 합니까? 대표님, 사과는 그냥 진심으로 하시면 됩니다.”

“진심으로 했는데 상대가 안 받아 주면?”

“받아 줄 때까지 기다려야죠.”

태준은 고개를 숙였다.

“기다리는 게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도윤은 잠시 태준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대표님은 늘 원하는 걸 얻으셨잖습니까. 계약이든, 사업이든, 사람이든요.”

“…….”

“그런데 윤서하 씨는 계약서가 아니잖아요. 대표님이 원하는 조건을 제시한다고 해서 마음을 돌릴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요.”

태준은 씁쓸하게 웃었다.

“알아.”

“정말 아시면 이번에는 서두르지 마세요. 대표님이 잘못하신 건 사실이니까요.”

“내가 너무 늦게 말했어.”

“그건 맞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평범하게 만나고 싶었어. 대표 강태준이 아니라, 그냥 강태준으로.”

태준은 두 손을 맞잡았다.

“그 사람 앞에서는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거든. 회사에서는 하루 종일 대표라는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가게에서는 그냥 귀찮은 손님이었어.”

“…….”

“내가 잘생겼냐고 물으면 못생겼다고 하고, 돈 많냐고 물어보지도 않고, 늦게 오면 왜 이제 왔냐고 따지지도 않아. 아니, 따지기는 하네.”

도윤이 작게 웃었다.

“그게 좋으셨군요.”

“응. 너무 좋았어.”

태준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래서 놓치기 싫었어. 그런데 놓치기 싫어서 숨긴 게, 결국 그 사람을 더 아프게 만들었네.”

도윤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준에게 필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제대로 마주하는 일이었으니까.

### 2. 빈자리가 더 크게 보이는 날

둘째 날 저녁.

서하는 무심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여덟 시 십 분.

평소 태준이 가게에 자주 오던 시간이었다.

그녀는 냉장고에서 두부를 꺼내다가 멈췄다.

“……내가 왜 시간을 확인해?”

서하는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오늘은 그가 오든 말든 상관없었다.

아니, 오지 않는 편이 나았다.

얼굴을 보면 또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았다. 그의 장난스러운 웃음을 보면 자신이 화를 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일이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다고 해서 상대의 잘못까지 아무렇지 않게 넘겨서는 안 됐다.

서하는 그렇게 생각하며 두부김치를 볶았다.

그때 옆 가게 미자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서하야.”

“네, 이모.”

“너 요즘 왜 이렇게 멍하니 있니?”

“제가 언제요?”

“방금도 두부를 볶다가 불을 너무 세게 올려서 김치 태울 뻔했잖아.”

“아…….”

서하는 얼른 불을 줄였다.

미자는 서하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태준 씨 안 오지?”

서하의 손이 멈췄다.

“……안 오는데요.”

“보고 싶어?”

“아니요.”

“그럼 왜 그렇게 대답이 느려?”

“이모!”

서하가 발끈하자 미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알았어, 알았어. 내가 더는 안 물어볼게.”

미자는 서하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데 있잖아. 사람이 잘못할 수도 있어. 중요한 건 잘못한 다음에 어떻게 하느냐야.”

“…….”

“그 사람이 정말 널 좋아한다면, 네가 화났다고 도망가지는 않겠지. 그렇다고 네가 무조건 받아 줘야 한다는 뜻도 아니야.”

서하는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네 마음이 먼저야. 그 사람을 좋아하는 마음도 네 마음이고, 상처받은 마음도 네 마음이잖니.”

미자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게를 나갔다.

서하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자신은 태준이 미웠다.

그런데 미운 것보다 더 괴로운 건, 그가 보고 싶다는 사실이었다.

셋째 날 오후.

서하 앞으로 작은 꽃다발이 도착했다.

연분홍색 장미와 하얀 안개꽃이 어우러진 꽃다발이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누군가 정성껏 골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꽃 사이에는 작은 카드가 꽂혀 있었다.

서하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익숙한 글씨체였다.

사장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처음부터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제 욕심 때문에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장님이 저를 다른 사람으로 보게 될까 봐 무서웠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사장님이 저를 어떻게 볼지 걱정하면서 정작 사장님이 저를 믿을 기회는 빼앗았더군요.

변명하지 않겠습니다.

당장 용서해 달라고도 하지 않겠습니다.

사장님 마음이 괜찮아질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다만 언젠가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주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때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강태준.

서하는 카드를 두 번 읽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읽으려다 그만두었다.

“……진짜 사람을 왜 이렇게 만들어.”

그녀는 카드를 내려놓았다.

꽃다발을 돌려보낼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손이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서하는 꽃병을 꺼내 물을 채웠다. 꽃다발을 조심스럽게 꽂아 계산대 옆에 두었다.

그리고는 꽃을 한참 바라보다가 중얼거렸다.

“꽃은 예쁘네.”

잠시 후 덧붙였다.

“그래도 아직 용서한 건 아니야.”

마치 태준이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 3. 다시 열린 문

그날 밤,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비였다.

처음에는 몇 방울씩 떨어지더니, 밤이 깊어질수록 빗줄기가 굵어졌다.

서하는 가게 문 앞에 작은 우산통을 옮겨 놓고, 젖은 바닥을 닦았다.

손님들은 하나둘 돌아갔다.

밤 열 시가 가까워졌을 때였다.

딸랑.

가게 문에 달린 작은 종이 울렸다.

서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대로 멈췄다.

검은색 셔츠에 어두운 재킷을 걸친 남자가 문 앞에 서 있었다. 머리카락 끝에는 빗방울이 맺혀 있었고, 손에는 접은 우산이 들려 있었다.

강태준이었다.

사흘 만이었다.

태준은 문 안으로 들어오지 않은 채 서하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서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준은 입술을 한 번 꾹 눌렀다.

“들어와도 될까요?”

서하는 한참 그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손님이잖아요. 들어오세요.”

그 한마디에 태준의 얼굴이 조금 풀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와 늘 앉던 구석 자리에 앉았다.

서하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뭐 드실 건데요?”

“두부김치 하나요.”

“술은요?”

태준은 잠시 망설였다.

“오늘은 소주 말고 물로 주세요.”

서하가 고개를 돌렸다.

“술 안 드시게요?”

“네.”

“왜요?”

태준은 쓴웃음을 지었다.

“술기운 빌려서 말하고 싶지 않아서요.”

서하는 아무 말 없이 두부김치를 준비했다.

잠시 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가 태준 앞에 놓였다. 그 옆에는 물 한 잔이 놓였다.

태준은 접시를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맛없으면 말하지 마세요.”

“맛없어도 맛있다고 할 겁니다.”

“그럼 왜 물어봐요?”

“사장님이랑 대화하고 싶어서요.”

서하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진짜 여전하시네요.”

“그런가요?”

“네. 사람 마음 복잡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요.”

태준의 웃음이 사라졌다.

“미안합니다.”

서하는 행주를 손에 쥔 채 그를 바라봤다.

태준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날 제가 했던 말, 전부 진심입니다.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못한 건 제 잘못이에요. 사장님이 저를 어떻게 생각할지 무서워서 피했습니다.”

“…….”

“그렇다고 사장님이 저를 믿지 못하게 된 걸 제가 서운해할 자격은 없겠죠.”

그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오늘은 용서해 달라고 하러 온 게 아닙니다. 제가 숨긴 것 때문에 사장님이 상처받았다는 걸 알고 있고, 그걸 제가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해서 왔어요.”

서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숨길 거 있어요?”

“없습니다.”

“정말요?”

“네. 제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셔도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당장 대답할 수 없는 일이라면, 왜 대답할 수 없는지도 설명하겠습니다.”

서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이 듣고 싶었다.

완벽한 사과도, 비싼 선물도, 화려한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을 속이지 않겠다는 말.

자신을 믿을 수 있게 해 주겠다는 말.

그게 필요했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의 두려움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태준 씨.”

“네.”

“나는 태성그룹 대표님 같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요.”

“저도 윤서하 씨 같은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서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지금 저 놀리는 거예요?”

“아니요. 진심입니다.”

태준은 조금 쑥스러운 듯 웃었다.

“회사에서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다들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은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일단 한 번 의심하시잖아요.”

“그건 태준 씨가 수상하니까요.”

“네. 그러니까 앞으로는 수상하지 않게 노력하겠습니다.”

서하는 결국 작게 웃고 말았다.

아주 잠깐이었다.

하지만 태준은 그 웃음을 놓치지 않았다.

그의 눈빛이 조심스럽게 따뜻해졌다.

“사장님.”

“왜요?”

“웃으시는 거 오랜만에 봅니다.”

“착각이에요.”

“그럼 제가 착각한 걸로 하겠습니다.”

“……진짜.”

서하는 고개를 돌렸지만, 입가에 남은 미소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태준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괜찮아진 건 아니다.

아직 모든 게 예전으로 돌아온 것도 아니다.

그래도 지금 이 순간, 자신에게 다시 말을 걸어 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 4. 우리 데이트해요

밤 열한 시가 조금 넘었다.

마지막 손님이 계산을 마치고 나가자 가게 안에는 두 사람만 남았다.

서하는 테이블을 정리했고, 태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빈 접시를 주방으로 가져왔다.

“손님, 그건 제가 할게요.”

“저도 할 수 있습니다.”

“대표님이 설거지도 하세요?”

태준이 멈칫했다.

서하는 자신이 무심코 내뱉은 말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잠깐의 침묵.

태준이 조심스럽게 웃었다.

“네. 예전에도 몇 번 했잖아요.”

“……그렇죠.”

“대표가 설거지하면 안 된다는 법은 없으니까요.”

서하는 그의 손에서 접시를 받아 들었다.

“그래도 손님한테 이런 거 시키기 좀 그러네요.”

“그럼 손님 말고 다른 걸로 불러 주시면 되죠.”

서하의 손이 멈췄다.

태준도 자신이 한 말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태준은 헛기침을 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또 앞서갔네요.”

“…….”

“그냥, 사장님이 저를 조금이라도 편하게 생각해 주셨으면 해서요.”

서하는 접시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태준을 바라봤다.

“태준 씨.”

“네.”

“나 아직 화났어요.”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태준 씨를 완전히 믿는 것도 아니에요.”

“네.”

“그렇다고…….”

서하는 말을 멈췄다.

자신의 마음을 꺼내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

그녀는 늘 솔직한 사람이었다. 싫으면 싫다고 했고, 좋으면 좋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상처받으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태준 앞에서는 그게 쉽지 않았다.

미워하려고 하면 좋은 점이 떠올랐다.

잊으려고 하면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마음먹으면, 오늘처럼 비를 맞고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밟혔다.

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렇다고 태준 씨가 싫어진 건 아니에요.”

태준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그렇다고 좋아한다고 한 건 아니거든요!”

“아, 네. 죄송합니다.”

“그리고 혼자 웃지 마요. 지금 웃을 상황 아니거든요?”

“웃는 게 아니라…….”

“아닌 게 아니라 웃고 있잖아요!”

태준은 급히 입술을 꾹 다물었다.

하지만 눈가에 번지는 웃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서하는 그 모습을 보며 괜히 심술이 났다.

“왜요. 제가 안 싫어졌다고 하니까 좋아요?”

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에는 장난스럽게 대답하지 않았다.

“네.”

서하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

“…….”

“너무 좋습니다.”

태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사장님이 저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말 한마디가 이렇게 기쁜 줄 몰랐어요.”

서하는 시선을 내렸다.

심장이 조금 빠르게 뛰었다.

태준은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았다. 그저 제자리에 서서 그녀가 다음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 모습이 오히려 서하의 마음을 흔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벌써 장난을 치며 다가왔을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자신이 불편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있었다.

서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럼…….”

“네.”

“우리 밥 먹어요.”

태준은 눈을 깜빡였다.

“네?”

“못 들었어요?”

“아니요.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요.”

서하는 얼굴이 빨개진 채 퉁명스럽게 말했다.

“밥 먹자고요. 낮에. 가게 말고 다른 데서.”

태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녀가 먼저 함께 밥을 먹자고 했다.

그것도 가게 밖에서.

태준은 혹시라도 자신의 기쁨이 부담이 될까 봐 애써 표정을 다잡았다.

“……제가 사도 될까요?”

“비싼 데는 안 가요.”

“네.”

“그리고 대표님이라고 부르지도 않을 거예요.”

“그럼요.”

“사람들 앞에서 잘난 척도 하지 말고요.”

“제가 언제 잘난 척을 했습니까?”

서하가 눈을 흘겼다.

“지금도 하고 있잖아요.”

“죄송합니다.”

둘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오랜만에 가게 안에 익숙한 웃음소리가 퍼졌다.

하지만 태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사장님.”

“왜요?”

“저 한 가지 더 부탁드려도 될까요?”

서하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뭔데요?”

태준은 손에 들고 있던 우산을 테이블 옆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서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우리 데이트해요.”

순간 가게 안이 조용해졌다.

서하의 눈이 커졌다.

“……뭐라고요?”

“데이트하자고요.”

“밥 먹자는 말이랑 데이트하자는 말은 다르잖아요!”

“네. 그래서 따로 여쭤보는 겁니다.”

태준은 진지했다.

“저는 사장님과 밥만 먹는 것도 좋지만, 사장님과 데이트하고 싶습니다. 같이 걷고 싶고, 영화도 보고 싶고, 사장님이 좋아하는 것도 알고 싶어요.”

“…….”

“제가 좋은 곳을 많이 알고 있다고 자랑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사장님이 원하시면 동네 분식집에 가도 좋고, 공원 벤치에 앉아 있어도 좋습니다.”

태준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덧붙였다.

“제가 원하는 건 장소가 아니라 사장님이니까요.”

서하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아, 진짜……!”

그녀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왜 말을 그렇게 해요?”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서요.”

“그냥 적당히 하면 되잖아요!”

“적당히 말하면 제 마음이 적당한 줄 아실까 봐요.”

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태준은 웃지 않았다.

그저 진심을 다해 그녀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