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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빛의 저격수

作 일곱날의빛

비는 새벽이 되어서도 그치지 않았다.

지하 창고의 공기는 젖은 볏짚과 녹슨 쇠, 오래 묵은 피 냄새로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환기구 쇠살대로 스며든 빗물이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 한쪽에 작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그 곁에 쓰러져 있던 레나는 숨을 내쉬다가 입김이 허옇게 번지는 것을 보았다.

이 창고에서 입김을 본 것은 올가을 들어 처음이었다. 첫눈이 멀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갈비뼈는 숨을 쉴 때마다 안쪽에서 칼끝처럼 긁었다. 그래도 아픈 곳은 거기가 아니었다.

딸의 팔목을 움켜쥐던 낯선 손들. 구둣발에 밀려나며 셀레네의 옷자락을 놓치던 순간,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던 헝겊의 감촉.

몸은 그 장면을 쉬지 않고 되풀이했다.

눈을 감아도 소용없었다. 감은 눈꺼풀 안쪽에서 딸의 작은 발이 질질 끌려가는 모습이 더 선명해졌다. 레나는 입안 살을 깨물어 그 장면을 멈추려 했다.

찾으러 갈게.

그렇게 외쳤다. 외칠 수 있는 말이 그것뿐이어서. 지킬 방법은 하나도 없으면서.

레나는 헐렁해진 가슴께를 더듬었다.

어젯밤 마지막 힘으로 딸의 옷 속에 밀어 넣은 쇳덩이와 목걸이가 있던 자리였다. 거기엔 이제 식은땀에 젖은 천뿐이었다.

그 목걸이를 딸의 목에 걸어 주기까지 6년이 걸렸다.

오각 별을 깎아 은으로 두른 링 목걸이. 레나가 일곱 살이던 해에 아버지가 손수 만들어 걸어 준 것이었다.

마력이라고는 한 방울도 흐르지 않는 투박한 손이 서툴게 걸쇠를 채우던 모습을, 레나는 지금도 어제 일처럼 기억했다.

그 손은 걸쇠를 세 번이나 놓쳤다. 세 번째에야 겨우 채운 뒤, 아버지는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며 창밖만 바라보았다.

“이게 네 안의 문을 열어 줄 거다. 아비는 그 문 앞에 서 보지 못했지만.”

평범한 집이라면 여덟 살 무렵 아이의 목에 걸어 주었을 것이다.

레나는 그 나이를 지나서도 목걸이를 꺼내지 못했다. 그리고 이 집에 들어온 뒤로는 더더욱 그럴 수 없었다.

이 집의 주인, 볼트는 마도총기를 사고팔아 돈을 버는 사내였다.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부터 공방을 드나들며 레나에게 마음을 두었고, 남편을 잃고 주저앉은 레나에게 가장 먼저 손을 내밀어 준 사람이었다.

그 다정함이 고마워서 레나는 그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가 마력을 어떤 눈으로 보는 사내인지는 같은 지붕 아래 살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그의 눈에 마력이 깨어난 아이는 딸이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래서 목걸이를 마룻장 아래 묻어 두었다.

마력이 열리지 않은 딸은 맞을지언정 팔려 가지는 않는다고 믿으면서. ‘쭉정이’라는 말이 딸의 이름 대신 불리는 것을 듣고도, 그 믿음 하나로 버텼다.

그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어젯밤에야 알았다. 마력이 없어도 팔려 가는 아이는 팔려 갔다.

마룻장 아래 묻어 둔 목걸이는 딸을 지키지도, 딸의 길을 열어 주지도 못한 채 먼지만 덮어쓰고 있었다. 지켜 준다고 믿었던 침묵이 사실은 딸의 앞길을 막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일찍 걸어 줄걸.’

딸이 열두 살이 되던 봄, 레나는 한 번 마룻장을 들춘 적이 있었다. 목걸이가 아직 거기 있는지 확인하려고.

그날 저녁 셀레네는 제 방 마루를 한참 발끝으로 눌러 보더니 물었다. 엄마, 여기만 소리가 달라요.

쥐가 판 자리라고, 레나는 웃으며 거짓말을 했다. 그 거짓말이 이토록 비싼 값을 치르게 될 줄은 몰랐다.

그때였다.

타앙—

빗소리 너머 아주 멀리서 마른 총성이 한 번 울렸다. 이어 한 번 더.

레나가 고개를 든 것과 동시에, 총성보다 먼저 도착한 것이 있었다.

가슴 한가운데를 훑고 지나가는 열.

마력이 사라진 뒤로는 어떤 기척도 느낀 적 없는 몸이, 바람 한 줄기를 만난 빈집처럼 흔들렸다.

서늘한 하늘빛. 마른 흙냄새가 나는 황금빛. 그리고 그 사이를 꿰는, 붉은 한 올.

“이, 이 마력은…….”

붉은 한 올은 레나 자신의 불꽃과 같은 결이었다.

루안이 늘 묻던 말이 떠올랐다.

우리 셀레네는 어떤 속성일까? 무슨 색일까? 당신처럼 붉을까?

겨우 한 올이었지만 분명히 붉었다.

그 한 올 끝에 잊을 수 없는 체온이 매달려 있었다.

어두운 밤 갓난아이를 안아 올릴 때 가슴께로 올라오던 온기. 셀레네였다.

‘살아 있어. 내 딸이 살아 있어. 목걸이가…… 문을 열어 줬어.’

눈물이 차오르려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서 무언가가 톡 하고 튀었다.

레나는 숨을 멈추고 어둠 속에서 손바닥을 펴 들여다보았다.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붉은 점이 손끝에서 깜박였다가 꺼졌다.

4년 만이었다.

‘아직 완전히 꺼진 게 아니었어.’

처음 불씨가 손끝에 맺히던 어린 날이 떠올랐다.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레나 곁에,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물동이를 가져다 두었다.

불을 겁내지 말되, 불에 먹히지는 말라는 뜻이었다. 그 물동이가 곁에 있다고 믿는 것만으로도 그때는 숨이 쉬어졌다.

지금 곁에 있는 것은 빈 궤짝과 어둠뿐인데도, 손바닥의 작은 점은 여전히 따뜻했다.

쾅!

창고 문이 부서질 듯 열렸다.

레나는 손을 말아 쥐고 눈을 내리깔았다. 눈빛을 숨기는 일은 오래전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었다.

등불을 든 볼트가 계단을 내려왔다.

벨벳 슈트의 어깨가 빗물에 젖어 검게 번들거렸고, 담배와 젖은 모직, 값비싼 향유 냄새가 지하의 공기를 더럽혔다.

평소 같으면 구둣발이 먼저 날아왔을 것이다. 오늘은 날아오지 않았다. 그게 더 무서웠다.

“크크, 네 딸년이 보통 핏줄이 아니었어.”

목소리가 즐거워 보여서 등골이 서늘했다.

“수레를 끌던 두 놈은 이마와 심장에 구멍이 뚫린 채 발견됐다. 오팔이래, 오팔.

마력이 말라 가는 시대에 그런 빛이라니. 이제 그 계집은 쭉정이가 아니라 값을 매길 수 없는 물건이야.

헐값에 팔아넘길 뻔했으니 하늘이 도왔지.”

그는 허리를 숙여 등불을 레나의 턱 밑에 들이밀었다. 불빛 안에 그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처음 몇 달 동안 레나에게 보여 주던, 다정하다고 착각했던 바로 그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믿었던 자신이 가장 미웠다. 다정함이 값을 매기는 눈 위에 얹은 얇은 비단일 수도 있다는 걸, 레나는 너무 늦게 배웠다.

“제 발로 다시 걸어 들어오게 만들 테니 기대해라. 네년이 그 미끼니까.”

손가락이 턱뼈를 으스러뜨릴 듯 파고들었다.

레나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 집에서 제일 먼저 배운 것이 소리를 죽이는 법이었다.

두 번째로 배운 것은, 맞는 동안 다른 것을 생각하는 법이었다.

레나는 딸의 손을 떠올렸다. 겨울 아침마다 레나의 언 손을 제 입김으로 데워 주던 작은 손. 열 살짜리 아이가 하기엔 너무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때 계단 위에서 하인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볼트 님, 황궁에서 전갈입니다. 지금 당장 들라 하십니다.”

볼트가 혀를 찼다. 레나의 턱을 놓고, 손수건으로 손가락을 닦으며 일어섰다.

“돌아와서 보지. 그때까지 숨이나 붙이고 있어라.”

구둣소리가 멀어지고, 문이 닫히고, 빗장이 질렸다.

한참 동안 계단 위의 어둠을 올려다보았다. 저 위 어딘가에서 볼트가 웃고 있을 것이다. 웃는 사내는 방심한다.

방심은 갇힌 자가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였다.

그러니 지금은 맞은 척, 무너진 척, 체념한 척해야 한다. 연기는 레나가 이 집에서 가장 오래 해 온 일이었다.

그제야 레나는 숨을 토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아 있었다. 그러나 두려움만은 아니었다.

‘셀레네가 이쪽으로 돌아오게 해서는 안 돼. 그 전에 내가 이 지옥에서 나간다.’

레나는 웅덩이의 찬물에 얼굴을 적시고, 벽을 짚고 일어났다.

찬물이 갈비뼈의 통증을 잠깐 잊게 했다. 잊는 것도 연습하면 되는 일이었다. 레나는 4년 동안 그 연습을 해 왔다.

쌓아 둔 빈 궤짝들 뒤로 기어가자 바닥 가까이에 석탄을 들이던 철제 투입구가 그대로 있었다.

녹슬어 있어야 할 경첩에서 기름 냄새가 났다. 누군가 몇 달에 걸쳐 조금씩 길을 들여 놓은 것처럼.

새벽마다 이 투입구로 구운 밤이 든 종이봉투가 들어왔다.

껍질이 새까맣게 탄 밤 한 알이 맨 위에 올라 있는 날이 많았다. 보내는 사람은 한 번도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밤 껍질에는 가끔 아주 작은 글씨가 긁혀 있었다. 힘내라는 말이 아니라, 오늘 밤은 달이 크다거나 내일은 비가 올 모양이라는 시시한 말이었다.

시시해서 더 고마웠다. 이 지옥에도 날씨가 있다고 알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니까.

레나는 그 봉투를 딸의 손바닥에 쥐여 주곤 했다. 따뜻할 때 먹으렴. 그러면 딸은 오랜만에 어린아이처럼 눈을 둥글게 뜨고 밤을 호호 불었다.

이 집에서 끝까지 자신들을 버리지 않은 손이 하나 있다는 것을, 레나는 그 밤 한 알로 알았다.

열 번도 넘게 이 앞에서 돌아섰다. 딸을 두고 갈 수 없어서였다.

딸을 두고 가는 어미가 되느니 함께 묶여 있는 어미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렸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

딸은 어미를 지키려고 총을 들었다.

이제 이 집에는 딸이 없었다.

딸이 없는 집은 이렇게 조용한 것이었다. 그 고요가 어떤 매질보다 오래 레나의 귓가를 울렸다.

위층 방 앞에는 딸의 낡은 신발이 아직 놓여 있을 것이다. 뒤꿈치가 닳아 한쪽으로 기운, 새것을 사 주겠다고 몇 번이나 약속하고 지키지 못한 신발이.

그 신발에 발을 넣는 딸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을까. 그 질문에 스스로 답하지 못한 채, 레나는 입술 안쪽의 피 맛을 삼켰다.

레나는 차가운 철판에 이마를 대었다가, 천천히 밀었다.

경첩이 숨죽인 소리로 열리기 시작했다.

철판 가장자리에서 녹 부스러기가 소리 없이 떨어졌다. 한 뼘 열린 틈으로 바깥 비 냄새가 스며들어, 오랜만에 폐 안쪽이 시원해졌다.

그 너머 어둠에서 기름 냄새와 함께, 아주 희미하게 구운 밤 냄새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