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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빛의 저격수

作 일곱날의빛

난로에서 장작 타는 냄새가 났다.

그 위로 소독약의 알싸한 냄새, 그리고 처음 맡아 보는 마른 담요의 냄새가 포근하게 얹혀 있었다.

몸에는 모포가 덮여 있었고, 상처마다 붕대가 감겨 있었다.

창밖에서는 아직 빗소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늦가을 비는 밤새 멎을 기미가 없었다.

처마를 두드리는 물소리가 일정한 박자로 이어졌다. 어디선가 낡은 시계가 초침을 밀어내는 소리도 함께 났다. 그 단정한 소리들 때문에 이곳이 저택의 지하와는 전혀 다른 세계라는 게 실감이 났다.

난로 옆 앤티크 의자에 금테 안경을 쓴 사내가 앉아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반사적으로 허리춤을 더듬었다. 아무것도 잡히지 않았다.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손바닥에 식은땀이 배어 모포 끝이 축축해졌다. 총이 없는 손은 이렇게 허전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총은 저기 있다.”

그가 턱짓으로 탁자를 가리켰다. 핏물을 닦아 낸 마도총과 풀어 놓은 링 목걸이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아르카눔의 참모, 줄리앙이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서 떼어 놓는 데 꽤 걸렸어. 잠든 와중에도 안 놓더군.”

“열네 살짜리가 맘몬의 수하를 쏴 죽이고, 위장 상점의 표식까지 찾아왔다. 이유를 들어야겠다.”

“살기 위해서요.”

“맘몬을 무너뜨릴 수 있는 곳은…… 여기뿐인 것 같았어요.”

줄리앙이 짧게 숨을 내쉬었다.

“짓밟힌 들풀인 줄 알았더니, 속에 마탄을 품고 있었군.”

그때 닫혀 있던 원목 문이 소리 없이 열렸다.

터벅, 터벅.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줄리앙이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문턱을 넘어 들어온 사람은 무광 블랙의 롱코트를 입은 청년이었다.

칠흑 같은 머리칼, 어둠 속에서도 가라앉아 빛나는 묵빛 눈동자. 홍채 가장자리를 아주 가느다란 금빛이 두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그가 한 번 숨을 삼킨 것 같았다. 아주 짧아서 착각이었는지도 모른다.

“수고했어, 줄리앙. 나머지는 내가 하지.”

“수장님, 이 아이는 출처가……”

“내가 허락했어.”

그 한마디로 방이 잠잠해졌다. 그는 침상 앞에서 한쪽 무릎을 굽혀 내 눈높이에 시선을 맞췄다.

묵빛 눈동자와 흑청색 눈동자가 정면으로 마주쳤다.

알아보는 데는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4년 전, 첫눈이 내리던 불탄 터. 피 묻은 손으로 내 손을 놓지 않던 소년.

그 소년이 아르카눔의 수장이었다.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나는 모포 속에서 손가락을 오므려 그 소리를 눌렀다.

‘아는 척하면 안 돼.’

저 사람이 그날 일을 입에 올리지 않는 이유를 모르는 이상, 나도 꺼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입을 열었다.

“안녕, 내 작은 저격수.”

숨이 멎었다.

4년 전 눈 속에서 들은 말 그대로였다.

목소리는 낮아졌지만 끝을 아주 조금 올리는 버릇은 그대로였다. 말해 놓고 자신도 놀란 사람처럼, 그의 입꼬리가 한 박자 늦게 올라가 있었다.

나는 눈썹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안녕이라니, 처음 보는 사이에 그런 인사를 하나요?”

‘처음’이라는 말은 일부러 골랐다. 그의 눈이 가늘어졌다. 웃는 것인지 안도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문이 빠르거든. 오늘 밤 이 도시에서 오팔빛 총성을 못 들은 놈은 귀머거리뿐일 거다.”

그럴듯한 대답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대답이 너무 매끄러웠다.

줄리앙이 약상자를 건네고 한 걸음 물러났다.

“손 내.”

“괜찮아요.”

“철문을 두드리다 껍질이 다 벗겨졌어. 게다가 줄리앙의 매듭은 엉망이고.”

그는 내 오른손을 받쳐 들었다.

차갑고 조심스러운 손이었다. 4년 전 눈 속에서 내가 쥐었던 손과 크기만 달랐다.

“아프면 말해.”

“안 아파요.”

거짓말이었다. 그는 대꾸하지 않고 붕대를 감았다.

손놀림이 이상할 만큼 정성스러웠다. 거친 천이 상처 위를 한 겹씩 덮을 때마다 난로의 온기가 손바닥으로 번졌다.

붕대 위로 닿는 손가락 끝이 조심스러워서, 아프다고 말하는 게 오히려 미안할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붕대 끝을 쥐고 매듭을 지었다. 꽉 조이는 그 순간, 나는 알아보았다.

두 번 꼬아 안으로 밀어 넣는 매듭. 아버지가 가르쳐 준, 아무리 달려도 풀리지 않는 매듭.

소매가 흘러내리며 그의 왼쪽 손목이 드러났다. 거기에 낡은 천 조각이 감겨 있었다.

한때는 은빛이었을 것이다. 빛이 바래 거의 회색이 되도록 오래 묶여 있던 가느다란 리본이었다.

가슴 한가운데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도 내가 보았다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소매를 내리는 손놀림에는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4년 동안 나는 그 밤을 나 혼자만 기억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그 밤을 손목에 묶어 두고 있었다.

“자, 꼬맹이.”

그가 의자를 끌어다 내 앞에 앉았다.

“맘몬 수장의 저택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말해 볼 수 있겠나?”

누군가에게 기대할 마음은 바닥난 지 오래인데, 이 사람 앞에 앉아 있으면 이상하게 숨이 편했다.

저택에서는 누군가 가까이 앉으면 몸이 먼저 굳었다. 그런데 이 방에서는 어깨의 힘이 한 겹씩 풀려 나갔다.

4년 전 이 사람 손을 잡고 달리던 내가, 아직 어딘가에 남아 있는 것처럼.

나는 그것을 눌러 삼키고 입을 열었다.

“새아버지가 아르카눔의 총을 집어 던지며 날뛰는 걸 봤어요. 그 사람을 지옥으로 끌어내릴 수 있는 건 아르카눔뿐이라고 생각했어요.”

“숨을 곳만 내주세요. 어머니는 제가 직접 구하고, 볼트는…… 제 손으로 죽일 거예요.”

방 안이 조용해졌다. 열네 살이 할 말이 아니었다. 나도 알았다.

“목표가 분명해서 좋군. 마침 나도 맘몬이란 이름을 이 도시에서 지울 생각이었거든.”

“마도총을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귀한 시대야. 하물며 그런 빛을 내는 저격수라면 더더욱.”

그는 다정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 뒤에서 무언가가 계산을 마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네가 원하는 대로 맘몬의 손이 닿지 않는 울타리가 되어 주지.”

“대신 나를 너무 믿지는 마. 이용할 수 있는 만큼 이용해. 나도 그럴 테니까.”

솔직한 말이었다. 이상하게도, 그래서 믿을 수 있었다.

“이름은.”

숨이 멈췄다.

4년 전 그 말 그대로였다. 그땐 내가 먼저 물을게.

그는 약속을 지키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얼굴로.

“……셀레네요.”

“셀레네.”

그는 처음 듣는 이름인 척 한 번 따라 불렀다.

붕대를 쥐었던 손끝이 아주 잠깐 멈췄다. 연기를 하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나는 레이너다.”

레이너. 4년 동안 이름도 모르고 마음속으로 ‘그 애’라고만 불러 온 사람의 이름이었다.

“……그럼 어머니는요. 지금 당장 구하러 갈 수 있나요?”

“안 돼.”

“네 몸으로는 방아쇠를 열 번도 못 당겨. 지금 가면 네 어머니를 구하기 전에 네가 먼저 죽는다.”

그날부터 며칠은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볏짚과 먼지 냄새 대신 푹신한 침대. 매일 정갈하게 차려지는 따뜻한 스튜와 빵.

숟가락을 입에 넣자 가슴 한구석이 울컥했다.

스튜 속 감자는 포슬포슬 부서졌고, 빵 껍질은 손가락 사이에서 바삭 소리를 냈다. 이렇게 평범한 소리가 이렇게 눈물 나는 것인 줄 몰랐다.

햇살 속에서 웃던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스쳤다.

‘엄마……’

눈가에 맺히려던 온기를 나는 숟가락을 쥐어 눌렀다.

울 시간이 없었다. 하루라도 빨리 총을 잡고 강해져서, 이 손으로 볼트의 머리를 꿰뚫어야 했다.

그래도 밤마다 나는 붕대 감긴 손을 가슴에 얹고 잠들었다.

창틀에는 어느새 비 대신 첫서리가 하얗게 내려앉아 있었다.

매듭은 밤새 풀리지 않았다.

창틀에 내려앉은 서리가 새벽빛에 천천히 은빛으로 변하는 것을 오래 바라보았다. 아버지가 가르쳐 준 매듭이 이렇게 오래 곁에 있을 줄은 몰랐다.

* * *

방문이 닫히자마자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방금까지 ‘레이너’라는 이름으로 웃던 얼굴이었다. 복도로 나오니 줄리앙이 벽에 기대 기다리고 있었다. 가스등 불빛이 창틈으로 드는 바람에 흔들렸다.

“수장님. 그 아이를 아시는 것 같던데, 사실대로 말해 주지 않으실 겁니까?”

“……처음 보는 사이라더군.”

“그게 다입니까?”

“그게 다여야 해.”

나는 닫힌 문 앞에 한참 서 있었다. 손목의 낡은 리본이 맥박 위에서 조용히 닿았다.

몇 달 전 보고서에서 그 아이의 소식을 읽던 날부터 나는 오늘 밤을 수백 번 계획했다.

맘몬의 부하들이 아이를 암시장으로 끌고 가는 순간 정찰병을 난입시켜 데려오는 계획이었다.

완벽했다. 총성이 먼저 울리기 전까지는.

구하러 갔더니, 구해야 할 아이가 이미 제 손으로 구해 낸 뒤였다.

몇 달 짠 계획이 총성 두 번에 물거품이 되었는데도 화는 나지 않았다.

4년 전 눈 속에서 내 손을 끌고 달린 것도 그 아이였다.

이번에도 그 아이는 나보다 한 걸음 앞에 서 있었다. 그게 묘하게 쓰고도 후련했다.

그래서 맘몬의 길목마다 정찰병을 풀어 길을 끊고, 아이가 이 철문으로 흘러들게 몰았다.

쓰러지는 몸을 받아 내며 알았다. 4년 전 눈 속에서 내 손을 끌던 그 손보다, 지금의 그 아이는 훨씬 가벼웠다.

‘4년 전 일은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했는데도 입이 먼저 움직였다.

그 아이는 단단하게 표정을 지워 내고 모른 척해 주었다. 열네 살이 지을 수 있는 얼굴이 아니었다.

서로 모른 척하는 동안은, 아무도 그날의 값을 묻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황궁 지하 깊은 곳에 갇힌 또 다른 ‘그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 총구가 황궁을 향하지 못하게 묶어 두는 단 하나의 이유를.

빚진 아이와, 볼모가 된 아이.

내가 지켜야 할 두 사람이 같은 판 위에서 부딪칠 날이 올 것이다.

그리고 셀레네는 아직, 자신이 그 판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