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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여행

作 나츠하나 · 2026-10-27

모래시계 · 잔량 80시간 00분 · 여행 4일차

카페는 가게에서 두 골목 떨어진, 성하가 어제 점찍어 둔 집이었다. 오후 두 시의 빛이 드는 창가 자리에 판돈이 걸린 커피 두 잔이 놓였고, 성하는 아직 누가 낼지 모르는 그 상태를 한껏 즐겼다. 내기의 규칙은 오는 길에 성하가 정했다. 순서가 문장을 만들면 이기되 만든 문장이 말이 되어야 하고, 판정은 라틴어가 한다고 했다. 성하가 탁자 한가운데 펴 놓은 수첩에는 스무 개의 글자가 두 줄의 순서 후보로 나뉘어 적혀 있었다.

"굵은 바늘부터." 성하가 자기 줄을 가리켰다. "장인은 손으로 말해. 중요한 별일수록 굵게 만들었을 거야."

"장인은 손으로 말하지." 도윤은 반대편 줄을 가리켰다. "그런데 이 장인은 하늘을 베낀 사람이야. 자기 말을 보태는 사람이 아니고. 바늘이 가리키는 별들의 밝기는 사백 년 전에도 지금도 정해져 있어. 그리고 나는 그 순서를 알아."

도윤은 지시침이 가리키던 별을 하나씩 짚어 이름을 대고는 시리우스, 카펠라, 리겔, 프로키온, 알데바란의 등급순으로 다시 세웠다. 성하는 조금 버티다가 연필을 내려놓았다. "치사해. 직업 쓰기 있기야?" "네가 서기를 맡을 때부터 있었어." 성하는 항복의 표시로 자기 줄 위에 가위표를 치더니 그 옆에 작게 별을 하나 그려 넣고는 진 쪽의 예의라고 했다. 새 순서로 늘어놓자 글자들이 문장이 되었다.

SEQUERE SIDERA MEDICEA.

"메디치의 별들을 따르라." 도윤이 번역을 말하기 무섭게 성하가 손바닥으로 탁자를 쳐서 커피 잔 두 개가 함께 뛰었다. "메디치! 무덤을 미술관처럼 지은 집안. 예배당 있잖아, 그 조각들 있는 데. 내일 아침 일번." 성하는 내기에 진 것을 그날의 두 번째 좋은 소식처럼 여겼다. "커피는 내가 사. 대신 내일 제일 먼저 문 앞에 서는 건 나야."

다음 장소가 정해질 때마다 지도가 좁아졌다.

오후는 성하의 몫이었다. 내일의 일번을 위해 오늘은 걷자더니 곧 물건 고르기가 되었다. 거리에는 젤라토 가게 앞으로 줄이 늘어서고 돌바닥 위로 자전거 종소리가 울렸고, 성하는 셔터를 올리는 손들까지 재료 보듯 눈에 담으며 걸었다. 걷다가 성하는 규칙을 하나 더 발표했다. "다음 책은 안 팔리는 걸로 쓸 거야. 한 번 팔리면 그다음도 팔리는 걸 써야 되잖아. 그게 함정이지." 편집자가 들으면 뒷목을 잡을 말을 성하는 젤라토 맛 고르듯 가볍게 했다. 가죽 시장 초입의 리본 가게에서는 한참을 서 있었는데, 각인 값에는 들어가지 않는 선물이 필요하다고 했다. 왜 사느냐고 묻는 도윤에게 성하는 엿새나 신세 지는 집에 빈손인 게 더 이상하다며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성하에게 그 신세는 이미 가족 사이의 일이었다. 할머니한테는 초록이 어울릴까 포도주색이 어울릴까 하며 성하가 두 색을 번갈아 들어 보이는 동안 도윤은 거리의 다른 것을 세고 있었다.

감색 재킷이었다. 처음에는 십오 분 간격으로 두 번 보였고, 거기까지는 우연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진열창 유리에 비쳤는데, 거리를 두고 멈추는 걸음과 상점을 보는 척하는 시선으로 알아볼 수 있었다. 도윤은 세지 않으려다 결국 세었고, 그러는 동안 자기도 누군가에게 세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등에 먼저 왔다. 네 번째는 없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마음에 걸렸다.

"초록." 도윤이 말하자 성하가 왜냐고 물었고, 도윤은 가게의 차양이 초록이라고 대답했다. 성하는 그 대답이 감정사답다며 웃고는 초록 리본을 샀다. 도윤의 목소리는 평소의 속도를 지켰다.

광장은 사람으로 붐볐고, 두 사람은 조각상 앞에 몰린 관광객들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었다. 스친 것은 삼 초가 되지 않았다. 회색 리넨 재킷에 빗어 넘긴 머리, 홍콩의 프리뷰 룸에서 도록 너머로 두어 번 목례를 주고받던 얼굴이었다. 명함의 이름보다 오래 닦인 놋쇠 같은 목소리로 먼저 기억되는 남자였다.

도윤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봤을 때 그 얼굴은 이미 인파 속으로 사라지고 없었다. 쫓아가 볼까 했지만 반 걸음 만에 그만두었다. 성하를 인파에 혼자 두고 이미 사라진 등을 쫓을 수는 없었다. 그는 잘못 봤을 가능성도 따져 보았다. 두어 번의 목례와 한 번의 통화, 십삼 개월의 간격까지 하나하나는 흐릿해도 모아 놓으면 분명했다. 문석주였다.

성하는 조각상의 그림자 안에서 아무것도 보지 못한 얼굴로 리본 상자를 고쳐 안고 있었다. 도윤은 그 옆에 나란히 서서, 안에서 무언가가 차례로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제는 우연이라고 넘길 수 없었다. 홍콩의 아트딜러가 피렌체의 광장에 있고, 하룻밤 일입니다, 하던 목소리가 이 도시에 있다. 이틀 전 가게에서 소리에 끊겨 반쯤에서 놓쳤던 생각을 그는 이번에는 장부에서부터 끝까지 따라갔다. 같은 성이 대를 물려 반복되던 공방의 마흔두 장은 마지막 주문을 끝으로 기록이 끊겨 있었는데, 그 공방이 어디로 이어졌는지는 별을 재는 물건의 계보를 짚을 때부터 이미 반쯤 알고 있었다. 이 가게였다. 정확하시니까요, 하던 목소리는 처음부터 그 정확함을 사려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의견서가 있었다. '현재 소재지' 란에 그가 직접 적어 넣은 주소는 등기 기준의 붉은 번지였고, 성하의 편지 봉투에 적혀 있던 주소는 검은 번지의 일반 표기였다. 표기 하나가 달랐을 뿐 문은 같았다. 십삼 개월 전에 그가 꼭 한 번 적은 주소였는데, 표기가 달라서 여태 알아보지 못했다.

좋은 여행 되시고요.

전화를 끊기 전에 문석주는 그렇게 말했었다. 도윤은 여행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린 적이 없었다. 그때는 그냥 인사말이려니 하고 넘겼던 위화감의 정체를 그는 이제야 알았다. 문석주는 여행을 알고 있었다. 그 장부를 읽을 수 있는 감정사는 이 나라에 한 사람뿐이었다. 조건이 아니라 지목이었다. 밤을 새워 마흔두 장을 읽던 일도, 새벽에 누른 전송 버튼도, 서명이 종이를 떠나던 그 작은 소리까지 전부 기억났다. 내 의견서가 이 골목까지 그들을 안내했다. 안내인은 처음부터 나였다.

그 끝에서, 일 년 동안 강도라는 두 글자로 접어 두었던 밤이 다시 펼쳐졌다. 백 번을 읽어 외워 버린 서류의 문장들을 다시 짚어 보니, 우발, 이라고 적혀 있던 자리마다 다른 단어가 비쳐 나왔다. 서류에는 없어진 물건 없음이라는 한 줄이 있었고, 그는 일 년 동안 그것을 강도가 서툴렀다는 뜻으로 읽어 왔다. 이제는 다르게 읽혔다. 가져갈 것이 처음부터 그 사람의 몸에 없었던 것이다. 물건은 각인을 기다리며 가게에 있었는데, 그날 밤 골목에서 그 사람 뒤를 밟던 누군가는 그것을 들고 나올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다.

"초록 맞지?" 성하가 리본 상자를 들어 보였다. 도윤은 손이 떨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맞다고 했다. 저녁 골목에서 성하는 오늘의 마지막 일정으로 저녁은 오래 먹기, 내일 일번을 위해 일찍 자기를 발표했고, 도윤은 두 항목 모두에 동의했다. 말하지 않기로 한 것들의 목록에는 무거운 줄이 하나 늘었다. 식당은 골목 안쪽의 작은 집이었고 탁자마다 초가 한 자루씩 타고 있었다. 촛불 아래 성하의 얼굴은 낮과 달라 보였다. 성하는 내일의 예배당을 두고 조각들이며 새벽 같은 대리석이며 왕들처럼 묻힌 사람들까지 아는 것을 전부 이야기했다. 그러다 말을 끊더니 초 너머로 다른 목소리를 냈는데, 그림책을 읽어 줄 때의 목소리였다. "아이는 별이 가리키는 데로 가기 전에, 왔던 골목의 문마다 손바닥을 한 번씩 대 두었다. 돌아올 때 세어 보려고." 그러고는 도로 제 목소리로 조각 이야기를 마저 했다. 이야기 사이사이 초록 리본 상자를 만질 때마다 성하는 조금 웃었다. 도윤은 그 이야기를 절반쯤 들었다. 나머지 절반 동안 그는 머릿속으로 같은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썼는데, 고칠수록 무거워지기만 했다. 어디까지, 언제, 어떤 순서로 말해야 하는가.

"안 듣고 있지." 성하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따지는 말투는 아니었다. 도윤은 듣고 있었다고 답하는 대신 성하가 방금 한 말의 마지막 문장을 그대로 되돌려주었다. 성하는 그것이 감정사의 오래된 방어술인 줄 아는 얼굴로 이번에는 넘어가 주었고, 도윤도 그걸 알았다. 오늘은 아니었다. 적어도 오늘 밤은 초록 리본과 예배당의 밤이어야 했다. 다만 식당으로 오는 첫 골목을 도는 동안 그는 한 가지를 정해 두었다. 지도가 좁아지는 속도는 이제 그가 정할 수 없다. 정할 수 있는 것은 누가 그 지도의 가운데 서 있을 것인가뿐이었다.

14시 4분, 회신. 다리오는 그 시각을 분 단위까지 적었다. 사진을 올리고 나서 회신까지 십삼 분이 걸렸다. 일 년을 기다려 온 조직치고는 성급했고, 그 성급함은 위에서 무언가가 확실해졌다는 뜻이었다.

문면에는 두 개의 줄이 하나로 묶여 있었다. 하나는 그가 올린 것으로 13시 51분 접수, 사진 넉 장이었다. 다른 하나는 그가 모르는 데서 온 것으로 박물관 후원 라인, 같은 날 오전, 같은 두 사람, 매표 창구 질문 기록 보고였다.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두 개의 눈이 같은 것을 보았다고 본부는 판단하고 있었고, 다리오는 그 판단의 구조가 마음에 들었다.

명령은 한 줄이었다. "회수하지 마라. 따라가라."

다리오는 일 년 동안 회수라는 단어의 그늘에서 일했지만 그 단어가 철회되는 것은 처음 보았다. 따라가라. 그는 그 동사의 시제가 지금부터라는 것을 이해했다. 창밖의 골목에는 오후의 빛이 아직 길게 남아 있었다. 다리오는 남은 오후의 길이를 눈으로 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