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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잠든 곳

作 나츠하나 · 2026-10-27

모래시계 · 잔량 105시간 00분 · 여행 3일차

오전은 그 원반 위에서 다 갔다. 레테를 돌리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오래된 기계 장치를 상하게 하지 않고 움직이려면 눈금과 눈금 사이의 유격을 읽는 눈과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힘을 주어야 하는지 아는 손끝이 있어야 한다. 그런 일이라면 이 골목에서, 어쩌면 이 도시에서 도윤만 한 사람이 없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가게로 돌아온 도윤이 작업대 위에서 겉판을 안쪽 판 위에 도로 겹치고 고정핀을 앉히자, 별들의 자리를 오려 낸 투각 창들이 다시 낱글자들 위에 놓였다.

"1642년, 1월, 8일." 서기가 된 성하가 수첩을 펼쳐 든 채 낭독했다. 그 톤이 쓸데없이 장엄해서 카운터 뒤에서 테레사가 웃음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도윤은 황도의 눈금을 일월 초로, 시각 고리를 자정 언저리로 옮겨 가며 날짜 눈금을 맞춰 나갔다. 몇 세기 묵은 기계라 눈금마다 손끝에 걸리는 저항이 달랐고, 한 눈금을 넘길 때마다 숨을 죽여야 했다. 성하는 어느새 말을 멈추고 있었고 테레사도 카운터에서 나와 작업대 곁에 서 있었다. 겨울의 하늘이 여름의 가게 안에서 천천히 조립되었다. 레테가 마지막 반 눈금을 넘어가며 멈췄을 때 투각 창들의 절반쯤이 안쪽 판의 낱글자 위에 정확히 앉아 있었다. 창에 잡히지 않은 글자들은 죽은 글자가 되었고 잡힌 글자들만 살았다.

살아남은 글자는 스물일곱 개였다.

도윤은 동쪽에서 서쪽으로, 별이 뜨는 순서대로 읽었다. 뜻 없는 철자만 늘어섰고, 서쪽에서 동쪽으로 읽어도 마찬가지였다. 위에서 아래로도, 나선으로도, 건너뛰면서도 읽어 보았지만 감정사가 아는 독법은 십오 분 동안 모조리 실패했다. 도윤이 조바심을 내기 시작한 것을 먼저 눈치챈 사람은 본인보다 옆에 붙어 서 있던 성하였다.

"잠깐만." 성하가 수첩과 판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창 크기가 다 다르네? 얘는 크고, 얘는 바늘구멍이고. 왜 다르지?"

도윤은 대답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별 자리를 오려 낸 창들의 크기가 저마다 다른 데에는 이유가 있어야 했다. 하늘을 종이에 옮기는 손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밝은 별은 크게, 어두운 별은 작게 그린다. 그렇다면 이것은 장식이 아니라 눈금이다.

"제일 큰 창부터 읽어 보면?" 성하가 말했다.

도윤은 창들을 크기 순으로 다시 세웠다. 가장 큰 창의 글자에서 그다음 창의 글자로, 또 그다음으로 이어지는 밝기의 순서였다. 창의 크기는 별의 밝기를 대강만 따랐다. 크기가 같은 창 두 개가 나란히 걸리면 그때는 판이 아니라 하늘에 물어야 한다는 것을, 도윤은 그 자리에서 머릿속 공책 한구석에 적어 두었다. 별이 밝은 차례대로 글자를 이어 보자 십오 분 동안 뜻이 없던 철자들이 줄을 맞췄다. 라틴어였다. 문법이 있었고 문장이 되었다.

UBI OSSA DORMIUNT, LUMEN VIGILAT.

"뼈가 잠든 곳에서 빛이 깨어 있다."

번역을 입 밖에 낸 것은 도윤이었지만 문장을 연 것은 성하였고, 도윤은 그 사실을 또박또박 말해 주었다. 네가 열었어. 성하는 어깨를 으쓱했지만 귀 끝이 빨갰고, 수첩에 문장을 받아 적는 손이 들떠 있었다. 그림책 작가의 방식대로 라틴어 원문 아래에 한국어 번역이, 그 아래에 별 모양 하나가 들어갔다.

뼈가 잠든 곳을 해석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문장을 짜 넣은 사람이 갈릴레오의 사망일을 열쇠로 걸어 두었다면 뼈는 그 사람의 뼈일 것이다. 갈릴레오가 어디 묻혔는지는 서양 고미술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산타 크로체. 이 도시의 위인들이 모여 잠든 그 성당은 걸어서 십오 분 거리였다.

나서는 두 사람을 테레사는 문가까지 나와 배웅했다. 노파는 잘 다녀오라는 말도 없이 수첩이 들어간 성하의 가방을 한 번 보고 두 사람의 등을 오래 보았다. 도윤이 골목 끝에서 돌아보았을 때에도 노파는 아직 문가에 서 있었지만, 너무 멀어서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산타 크로체는 오후의 빛 속에 서 있었다. 두 사람은 광장을 가로질러 흰 대리석 파사드 아래를 지나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권을 사는 줄에서 성하는 안내 책자를 한 부 집어 들고 위인들의 이름을 훑다가 아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소리를 죽여 감탄했다. 여기 다 있네. 한 도시의 이름난 사람들이 한 지붕 아래 잠들어 있다는 것이 물려받은 지붕이 없는 사람에게 어떻게 들렸을지, 도윤은 나중에야 생각하게 된다. 성당 안은 서늘하고 천장이 높아서 관광객들의 발소리가 울렸다. 갈릴레오의 기념묘는 본당에 들어서서 왼쪽, 웅장한 대리석으로 벽면 하나를 차지하고 있었다. 흉상 속의 노인은 망원경을 쥔 채 비스듬히 위를 보고 있었고 그 시선의 끝에는 성당의 채색 유리창이 있었다.

"저쪽 봐." 성하가 도윤의 소매를 당겼다. "미켈란젤로야. 둘이 마주 보고 있어."

본당을 사이에 두고 정확히 맞은편이었다. 갈릴레오의 묘와 미켈란젤로의 묘가 수백 년째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성하는 두 묘 사이의 한가운데로 걸어가 양쪽을 번갈아 보며 한참 생각하더니 성하다운 결론을 내렸다.

"좋겠다, 둘이. 죽어서도 심심하진 않겠어." 성하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 "우리도 이렇게 하자. 고아는 묻힐 가족 묘가 없으니까, 우리 둘이 서로의 묘를 지켜주면 되겠다. 당신이 먼저 가면 내가 지키고, 내가 먼저 가면 당신이 지키고. 어때, 좋은 규칙이지?"

도윤은 한순간 숨이 무거워졌다. 유골함의 무게를 두 손으로 받아 본 사람 앞에서 그 유골함의 주인이 웃으며 서로의 묘를 지키자고 하고 있었다. 표정을 지키는 근육이 어디까지 버티는지, 도윤은 이 여행에서 날마다 새로 배우고 있었다. 그는 조금 늦게, 성하처럼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규칙은 아주 나중에 쓰자."

"당연하지. 규칙은 미리 만들어 두는 거야." 성하는 만족한 얼굴로 수첩을 꺼냈다. "자, 그럼. 뼈가 잠든 곳에서, 빛이 깨어 있다."

수색이 시작되자 두 사람의 방법은 뚜렷하게 갈렸다. 그림책 작가는 숨은그림찾기 하듯 묘 전체를 훑으며 조각의 손이 가리키는 곳과 천사의 시선, 무늬 속에 숨은 글자를 찾았다. 도윤은 재고 따지는 쪽으로 가서, 명문의 라틴어를 한 줄씩 옮겨 읽고 조각의 상징을 연대와 대조한 다음, 램프와 창, 촛대, 반사면까지 '빛'이라 부를 만한 것의 목록을 만들어 하나씩 지웠다.

그래도 실은 두 사람이 서로의 방법을 반쯤 훔쳐 쓰고 있었다. 성하가 조각의 시선을 따라가면 도윤이 그 좌표를 쟀고, 도윤이 명문을 읽으면 성하가 그 단어로 이야기를 지어 가설을 세웠다. 한 시간 뒤 두 방법은 같은 결론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명문은 위대한 천문학자를 기리는 흔한 문구였고 조각의 상징도 뻔했다. 묘의 어느 표면에도 다음 날짜나 다음 문장은커녕 별 모양의 흠집 하나 없었다. '빛이 깨어 있다'에 해당하는 것은 채색 유리를 통과해 바닥에 떨어지는 오후의 빛뿐이었는데, 그것은 매일 움직이는 빛이지 사백 년을 기다린 빛일 수 없었다.

도윤은 감정사가 하던 순서대로 어디서 막혔는지 따져 보았다. 하나, 오독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문장은 문법적으로 완결되었고 성하의 수첩과 판을 대조해도 오류가 없었다. 둘, 장소가 틀렸는가. 뼈가 잠든 곳이 산타 크로체가 아닐 가능성을 세워 보아도 갈릴레오의 묘는 여기다. 셋, 은유인가. 뼈도 빛도 다른 무엇의 비유라면 실마리가 문장 안에 더 있어야 하는데, 문장은 짧고 단단해서 더 내놓을 것이 없어 보였다.

도윤은 명치 어딘가에 걸린 그 구절, 뼈가 잠든 곳을 되뇌었다. 무언가가 걸렸는데 그게 무엇인지 잡히지 않았다. 걸린 것은 때가 되면 스스로 내려오니, 감정에서 이런 순간에 하는 일은 하나, 억지로 당기지 않는 것이다.

성당을 나설 때 해는 광장의 반대편으로 기울어 있었다. 계단에 앉아 남은 볕을 쬐는 관광객들 사이로 비둘기들이 돌아다녔다. 사흘째의 해가 지고 있었다.

"한 번에 풀리면 시시하지." 성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은 얼굴로 계단을 내려갔다. "보물찾기는 원래 허탕이 반이야. 내일 아침에 다시 오자. 빛이 깨어 있다며. 아침 빛은 다를 수도 있잖아. 그리고 오늘 저녁엔 어제 그 강가. 이건 협상 불가."

내일 아침에 다시 와서 아침 빛을 보자는 성하의 말에, 다른 가설이 아직 없던 도윤은 반대하지 않았다. 다만 계단을 내려가며 도윤은 다른 계산을 하고 있었다. 오늘이 사흘째의 저녁이니 그 밤까지 나흘이다. 문장 하나를 여는 데 한나절이 들었고 문장이 몇 개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같은 계단을 내려가면서 성하는 남은 여행을, 도윤은 남은 시간을 세고 있었다.

수첩은 성하의 가방 안에 있었다. 라틴어 한 줄과 번역 한 줄과 별 하나가 그려진 페이지가 든 가방이 성하의 어깨에서 걸음마다 흔들렸다. 저녁의 강가로 향하는 골목 어귀에서 성하가 뒤를 돌아보며 무언가 말했고, 도윤은 그 말을 들으려고 걸음을 서둘렀다. 내일은 답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적기로 했다. 적으면서, 자신이 어느새 희망의 문법으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성하의 문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