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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作 나츠하나 · 2026-10-27

사진은 봉투 안에서 마지막으로 나왔다.

인화된 것이었다. 요즘은 아무도 사진을 인화하지 않지만, 이 사람은 했다.

어깨를 붙이고 선 두 사람이 상반신만 나온 채 웃고 있다. 여자는 카메라를 보고 웃고, 그 옆의 남자는 여자 쪽으로 반쯤 고개를 돌린 채 웃고 있는데, 웃음이 헤픈 남자가 아니다. 뒤로는 강이 흐릿하게 번지고 물빛 위로 다리의 윤곽이 초점 밖에서 뭉개져 있다.

광선은 늦은 오후의 것이고 두 사람의 그림자는 같은 방향으로 누워 있다. 합성이라면 그림자가 먼저 어긋나는데, 어긋난 데가 없다.

남자는 그 얼굴을 안다. 알 수밖에 없다.

도윤은 이탈리아에 간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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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피렌체의 밤은 발소리를 숨기기 좋은 도시였다.

채성하는 그 사실을 여행 일곱 번째 밤에야 알았다. 낮 동안 관광객들로 부풀어 있던 골목은 해가 지면 급하게 늙었다. 덧창이 닫히고 간판 불이 꺼지고 나면 돌바닥이 수백 년 전의 소리를 되찾았다. 또각. 또각. 그 뒤를 또 하나의 발소리가 반 박자 늦게 따라왔다.

저녁은 두오모 근처의 식당에서 혼자 먹었는데, 일주일을 드나들었더니 웨이터가 얼굴을 기억하고 창가 자리를 내주었다. 혼자 하는 여행도 막바지라고 생각하니 이상하게 입맛이 돌지 않아서, 성하는 접시를 반쯤 남기고 일어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일부러 그 가게 앞을 지났다. 반쯤 내려간 셔터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왔고, 아직 작업대 앞에 앉아 있던 할머니는 유리 너머로 눈이 마주치자 손가락으로 허공에 '내일'을 그려 보였다. 성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까지만 해도 밤은 아무 문제가 없었다.

호텔은 강 건너였고, 성하는 다리를 건너는 길을 좋아해서 일주일 내내 같은 길로 돌아갔다. 낮의 아르노는 흙빛이었지만 밤의 아르노는 가로등을 받아 금색 비늘을 세웠고, 다리 한가운데서 보면 도시가 물 위에 한 번 더 지어져 있었다. 내년에 그 사람과 다시 오면 이 다리부터 보여줘야지. 성하는 날짜를 정하는 버릇대로 며칠 전부터 '다음에'가 아니라 '내년에'로 생각하고 있었다.

광장을 벗어나자 도시가 조용해져서 성하 자신의 구두 소리만 남았다. 또각. 또각. 그 소리에 익숙해질 무렵 낯선 것이 하나 끼어들었다. 반 박자, 정확히 반 박자 늦게 따라오는 소리였다.

우연이겠지, 하고 성하는 빈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었다. 품이 허전한 것은 꾸러미 하나를 가게에 두고 온 탓이었다. 접시만 한 묵직한 놋쇠 원반은 이 도시에서 본 것 중에 제일 비쌌고 제일 그 사람다운 물건이었다. 별을 재는 도구라니, 평생 뭐든 정확히 재려고 드는 남자한테 이것보다 잘 어울리는 결혼 선물이 있을까.

그 가게를 발견한 것은 여행 이틀째, 골목을 잘못 든 덕분이었다. 지도에 없는 길 끝에 그 가게가 있었고, 진열장 구석의 벨벳 위에 놓인 그 원반은 가격표가 뒤집혀 있었다. 성하는 십 분을 들여다보다가 문을 밀고 들어가 값을 듣고는 그 자리에서 샀다. 고민은 사고 나서 했다. 선물은 오래 고르지 않는다, 처음에 '그 사람이다' 싶은 물건이 맞다는 것도 성하가 만든 규칙이었다.

각인을 부탁하며 성하는 종이에 날짜 하나를 적어 건넸다. 팔 년 전 팔월 십이 일, 이 날짜의 밤하늘을 새겨 주세요. 노파는 종이를 받아 들고 안경 너머로 성하를 오래 보았다.

"이 날짜가 확실해요?" 두 사람은 성하의 짧은 영어와 노파의 더 짧은 영어로 이야기했지만 부족한 적이 없었다. 확실하다고 하자 노파는 원반을 벨벳째 들어 올렸다. "이 아이는 주인이 정해져 있었나 보네." 값은 한 푼도 깎아주지 않으면서 각인 값은 받지 않았는데, 성하는 그런 셈법이 좋았다.

각인은 내일 오전에 끝난다고 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밤의 하늘이라는 주문을 받아 적으며 할머니는 기뻐하는 것도 같고 겁내는 것도 같은 표정을 지었었다. 그래서 물건은 오늘 밤까지 그 가게의 진열장 안에 놓여 있어야 했다.

찾으러 갈 시간은 내일 오전 열 시로 잡고 포장은 두 겹으로 부탁해 두었다. 어차피 받는 사람은 뜯기 전에 무게부터 잴 테고, 상자를 들어보며 놋쇠 밀도를 암산하겠지. 그 얼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일주일 치 화가 반은 녹았다.

그때 지붕과 지붕 사이의 좁은 하늘로 유성 하나가 지나갔다. 팔월은 원래 그런 계절이라고 여덟 해 전의 서도윤이 알려주었었다. 성하는 보육원 후원회 소식지에 끼어 온 초대장을 들고 교외 천문대의 공개 관측회에 갔다. 접이식 의자에 앉자마자 옆자리 남자의 무릎 위 수첩부터 눈에 들어왔는데, 거기에는 극대기 시각과 복사점의 방위, 시간당 예상 유성 수가 적혀 있었다. 소풍을 와서 실험 일지를 쓰는 사람이라니. 게다가 남자는 같은 보육원의 복도를 몇 해 차이로 스쳐 지나간, 이름보다 뒷모습이 먼저 기억나는 얼굴이었다. 첫 유성이 떨어졌을 때 성하는 소원을 빌 타이밍을 놓쳤고 남자는 수첩에 획 하나를 그었다.

"방금 거 빌었어요?" 성하가 물었다.

"아니요." 남자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극대기는 새벽 두 시입니다. 시간당 육십 개. 기회는 통계적으로 충분합니다."

"그쪽은 뭐 빌 건데요?"

"빌 소원이 없습니다."

"빌 소원이 없으면 만들면 되죠."

남자가 처음으로 하늘에서 눈을 떼고 성하를 보았다. 성하는 시범 삼아 첫 번째 소원을 시시하게 빌었다. 내일 아침 숙소 조식에 크루아상이 남아 있게 해주세요. 두 번째는 조금 진심으로 빌었고, 세 번째부터는 별이 떨어지는 속도보다 소원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또각. 등 뒤에서 반 박자 늦은 소리가 한 번, 여덟 해 전의 하늘 사이로 끼어들었다.

그날 남자는 끝내 소원을 빌지 않고 새벽 두 시의 극대기까지 남아, 소원 만드는 법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성하의 소원을 여섯 개 들었다. 헤어질 때는 수첩을 찢어 다음 극대기의 날짜를 적어 주었다. 연락처를 묻는 대신 날짜를 주고, 일 년 뒤의 약속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이었다. 성하는 그 쪽지를 지금도 가지고 있고, 여섯 번째 소원이 무엇이었는지는 지금도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다. 각인될 하늘이 바로 그 밤이라는 것을 그 사람은 상자를 열고 나서야 알게 될 것이다.

화는 닷새째부터 거의 다 풀려 있었는데, 전화로 풀어주기가 아까워서 아껴둔 것뿐이었다. 화해는 얼굴 보고 해야지. 그게 성하가 스스로 만든 규칙 중 하나였다. 물려받은 규칙이 하나도 없어서 기념일도 의식도 용서의 방식도 전부 직접 만들어야 했다. 한 달 뒤로 다가온 결혼식도 순서 하나하나까지 두 사람이 직접 만들었다.

식은 구월 십이 일이었고, 만난 날과 같은 십이 일로 맞춘 것도 성하였다. 청첩장 문구도 입장 순서도, 신부 손을 잡고 들어와 줄 사람도 성하가 정했다. 보육원의 원장 선생님은 전화기 저편에서 한참 말이 없다가, 알았다고, 구두를 새로 사야겠다고 했다.

편지를 쓴 것은 나흘째 저녁이었다. 산타 크로체 뒤편 문구점 문 옆 벽에 '느린 우체통'이 있었는데, 봉투를 넣으면 적어 둔 날짜에 부쳐 준다는, 관광객을 위한 낡은 나무 함이었다. 성하는 엽서 대신 편지지를 사서 카페에서 세 장을 채웠다. 화해의 말들은 화가 난 동안 제일 잘 써졌다. 사과가 반, 자랑이 반이었고, 마지막 줄은 쓰고 나서 세 번을 다시 읽었다. 문구점 주인은 봉투를 받아 들고 배송 날짜를 큼직한 장부에 옮겨 적었다. 일 년치 편지가 들어 있는 나무 함에 성하의 봉투가 미끄러져 들어가는 소리는 생각보다 가벼웠다.

또각. 이번에는 조금 더 가까웠다.

느린 우체통에 넣은 편지를 떠올리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배송 날짜는 내년, 결혼식 일 주년이 되는 날로 직접 골라 적었다. 그날의 서도윤은 그 편지를 읽고 무슨 표정을 지을까. 종이의 산성도부터 따질 사람이니까 봉투를 뜯기 전에 조명 아래 비춰볼 것이다.

또각. 또각.

발소리가 반 박자를 줄였다.

성하는 걸음을 빠르게 하는 대신 밝은 쪽 길을 골랐고, 문 닫은 상점의 진열창에 비친 등 뒤를 확인했다. 코트를 입은 남자 하나가 비쳤고 얼굴은 그림자 속이었다. 심장이 한 박자 건너뛰었지만 성하는 자신이 만든 규칙 하나를 꺼냈다. 무서울수록 평소의 속도로.

광장에 닿자 숨이 조금 트였다. 낮에 악사가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고 카페의 마지막 의자가 쌓이는 소리가 들렸다. 성하는 광장을 대각선으로 질러가며 사람이 있는 쪽에서 한 번만 뒤를 보자고 마음먹었다. 카페 앞을 지나며 돌아본 광장 입구에 코트의 남자가 걸음을 멈추고 서 있었다. 담뱃불을 붙이지도 전화를 보지도 않고 그냥 서 있었다.

전화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지금 걸면 서울은 아직 캄캄한 새벽일 것이다. 장부에 파묻힌 사람은 벨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고, 듣는다 해도, 아니다. 성하는 전화기를 도로 주머니에 넣었다. 화해는 얼굴 보고 해야 하고, 이런 목소리로는 하지 않는다.

하늘 끝에서 유성이 하나 더 떨어졌지만 이번에는 소원을 빌지 못했다. 성하는 걸음을 늦추지 않은 채 호텔까지 남은 거리를 셌다. 골목 하나, 광장 하나, 그리고 가로등 세 개였다.

골목은 생각보다 길었고, 등 뒤의 소리는 이제 박자를 세지 않아도 들렸다. 가로등 하나를 지나자 발 앞에 성하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가로등 둘. 그림자가 두 개가 되었다가 하나로 줄었다. 호텔 간판의 첫 글자가 골목 끝에 보였다. 저기까지만, 저기까지만 가면. 별일 아닐 거다. 별일 없이 살아온 인생은 아니지만 적어도 오늘은 아닐 거다. 내일은 각인을 찾으러 가야 하고, 모레는 집에 가는 날이고, 한 달 뒤엔 결혼식이고, 집에 가면.

집에 가면, 화를 풀어줘야지.

성하가 마지막으로 한 생각은 그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