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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십이

作 장지호 · 2026-10-26

D+19 · 15:20

회의가 끝나고 다인은 자기 자리에서 목록을 다시 열었다.

두 달 동안 이 목록을 소유자 이름으로만 봤다. 누가 집을 잃었는지가 이 사건의 전부였으니까. 그날 처음으로 아래쪽을 봤다.

을구가 통째로 없었다.

지워진 것은 소유권 줄만이 아니었다. 그 아래 걸려 있던 것들, 근저당과 가압류와 압류와 전세권이 같이 사라져 있었다. 사천십이 채의 집이 그 밤에 빚이 없는 집이 됐다.

다인은 계산기를 켰다. 백업에 남아 있는 채권최고액을 필지별로 합산하는 데 사십 분이 걸렸다.

이조 사천억이 조금 넘었다.

숫자를 화면에 띄워놓고 다인은 한참 앉아 있었다. 그 밤에 사라진 것을 나라는 두 달 동안 기록의 훼손이라고 불렀다. 그런데 그 기록에 이름이 적혀 있던 사람들 중 얼마는, 아침에 일어나서 자기 집에 걸려 있던 빚이 없어진 것을 봤을 것이다.

그중 몇 명이 그날 밤 처음으로 잘 잤을지, 다인은 세어볼 방법이 없었다.

D+19 · 16:30

다인은 불인정 3,944건의 명단을 열었다.

찾는 주소가 있었다. 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있었고,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권상호. 불인정. 사유란에는 한 줄이 적혀 있었다.

등기필정보 분실 경위에 대한 소명 불충분. 위조 단정 근거 부족.

"소명 불충분."

다인은 빈 사무실에서 그 말을 소리 내어 읽었다. 소리로 들으니 더 이상했다. 소명할 기회가 있어야 불충분할 수도 있는 것이다. 권상호는 소명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을까. 조사가 있었다는 것 자체를 알았을까. 사 년 동안 저축은행과 등기소와 법원을 돌던 그 사람의 서류 가방 어디에도, 국가가 이미 그의 집을 들여다보고 아니라고 적어놓았다는 흔적은 없었다.

그는 심사받는 줄도 모르고 심사에서 떨어져 있었다.

다인은 휴대폰을 들었다. 세 번 울리고 임 주사가 받았다.

"선배."

"어. 서울은 어떤가."

"...선배, 권상호 씨 요즘 오세요?"

수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났다. 아직 종이 원부 이송 목록을 정리하고 있을 것이었다.

"왔었지. 어제도 왔고."

"뭐 하러요. 접수가 안 되잖아요."

"안 되지." 임 주사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그냥 앉았다 가. 파일 들고 와서 앉았다가, 오늘도 안 되죠, 하고 가."

"뭐라고 하세요, 선배는."

"안 된다고 하지. 뭐라고 해."

다인은 화면을 봤다. 목록 삼백열두 번째 줄이 아직 열려 있었다.

"선배. 그 집 지금 근저당 없어요."

종이 넘기는 소리가 멈췄다.

"없지. 을구가 통째로 날아갔으니까."

"사 년 동안 안 지워지던 게요."

"그렇지."

"복원되면 다시 붙어요. 채권최고액 이억 사천이요."

"붙지." 종이 넘기는 소리가 다시 났다. "그거야 뭐, 우리가 정하는 게 아니고."

다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왜. 뭐 있나."

"...아니요."

"서 주무관."

"네."

"목소리가 그게 아닌데."

다인은 삼백열두 번째 줄을 화면 밖으로 밀어 올렸다. 문건은 대외비였고, 보고 라인은 사흘째 묶여 있었고, 무엇보다 그 말을 임 주사가 알면 권상호에게 옮겨질 것이었다. 옮겨지면 어떻게 되는지 다인은 상상이 갔다. 사 년을 돈 사람에게, 그 사 년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심사가 있었고 거기서 떨어졌다고 알려주는 일.

"아무것도 아니에요.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그래."

전화를 끊고 나서 다인은 그 통화를 노트에 적었다. 적으면서 자기가 무엇을 적고 있는지 알았다. 알고도 말하지 않은 날의 기록이었다.

창구에서 다인이 그에게 열람 신청서를 밀어주던 그 아침에도, 이 문건은 어느 서고에서 비공개로 잠들어 있었다. 그 서류를 보시고 위조라고 생각하셔도 저희가 지워드릴 수는 없어요, 라고 다인은 말했었다. 국가는 그때 이미 보고, 생각하고, 결론까지 내려놓은 상태였다. 아니라고.

D+20 · 06:00

성명이 올라온 것은 새벽이었다.

언론사가 아니라 등기 민원 커뮤니티 세 곳에 동시에 게시됐다. 게시자 계정명은 모두 홍길동이었고, 문장은 관공서 공문 서식을 하고 있었다.

수신: 대한민국

제목: 등기 기록 정정 요구

참는 사람은 무섭지 않다. 원망하는 사람도 무섭지 않다.

무서운 것은 세어보는 사람이다.

이 나라에는 세어보는 사람이 적어서, 위가 아래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1. 삭제된 4,012건은 귀 기관이 피해로 인정하고 방치한 목록임을 확인한다. 목록은 귀 기관이 만들었다. 우리는 순서를 바꾸지 않았다.

2. 다음 세 가지를 요구한다.

가. 등기의 공신력을 법률로 보장할 것

나. 점유하며 살아온 자의 권리를 등기에 준하여 보호할 것

다. 본 건을 포함한 일체의 삭제·정정 이력을 영구히 공개할 것

3. 60일 내에 입법 계획이 공표되지 않을 경우, 남은 기록 전부에 대해 동일한 조치를 실행한다.

우리가 한 일 두 가지를 나란히 적어두었다. 그중 하나는 십오 년 전에 당신들이 한 일이다.

붙임: 숫자 목록 1부. 끝.

성명은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였다. 스캔한 공문처럼 만들어둔 파일이었고, 오른쪽 아래에 도장이 찍혀 있었다.

붉은 원이었다. 다인은 화면을 확대했다.

글자가 없었다.

관인이면 가운데에 기관 이름이 있다. 인감이면 사람 이름이 있다. 이건 테두리만 있고 안이 비어 있었다. 잘못 찍힌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무것도 새기지 않은 도장이었다.

다인은 이틀 전에 자기가 찍은 도장을 생각했다. 서식에 없는 종이에 등기소 이름을 눌러 찍었던 것. 효력이 있는지도 모르는 문서였는데 붉은 게 찍히자 종이가 갑자기 문서처럼 보였다.

이 도장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도 문서처럼 보였다.

붙임은 문건 전문과 숫자 여섯 줄이었다. 문건은 진본이었다. 숫자는 무슨 뜻인지 아무도 몰랐고, 그날은 아무도 그걸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오전 아홉 시에 문건 전문이 모든 포털의 첫 화면에 걸렸고, 오전 열 시에 대책본부의 전화가 일제히 울리기 시작했다.

머리의 세 줄은 출전이 적혀 있지 않았다. 홍보 담당이 오후에 찾아서 보고했다.

"사백 년 전 사람이 쓴 걸 옮긴 것 같습니다. 백성을 세 부류로 나눈 대목이요. 원문은 한문이고요."

"뭐라고 돼 있어요."

"참는 사람, 원망하는 사람, 그리고 일을 꾸미는 사람입니다." 홍보 담당은 출력물을 내려놨다. "성명은 마지막 걸 세어보는 사람으로 바꿔놨어요. 그게 왜 그렇게 됐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다인은 그 세 줄을 노트에 옮겨 적었다. 아래에는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적으면 회의실의 얼굴들을 한 명씩 그 세 칸에 넣게 될 것 같았고, 그러면 자기 이름을 어디에 넣어야 하는지도 정해야 했다.

그 아침의 본부를 다인은 사진처럼 기억한다. 전화기를 든 채 서 있는 사람들, 문건 발견을 사흘 동안 보고 라인에 묶어두었던 남 부장의 하얗게 굳은 얼굴, 그리고 창가에서 혼자 성명 전문을 읽고 있던 황인선.

다인이 다가가자 황인선은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준비 안 된 사실이 나가면 소문이 된다고 내가 그랬죠."

"네."

"정정합니다. 준비 안 된 사실을 우리가 쥐고 있으면," 그는 휴대폰을 내려놨다. "남이 준비해서 내보내요. 저쪽이 우리보다 발표 준비를 잘했네요. 서식까지 갖췄어."

"본부장님."

"네."

"저 문건, 사흘 전에 저희가 먼저 발표했으면 달랐을까요."

황인선은 그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넥타이 매듭을 한 번 만졌다.

"달랐겠죠. 우리가 사과하는 그림이 됐을 테니까." 그는 창밖을 봤다. "지금은 저쪽이 고발하는 그림이고요. 같은 문건인데 누가 먼저 꺼내느냐로 주어가 바뀝니다. 이건 시험에 안 나오는데 실무에는 매일 나와요."

오전 열한 시에 다인은 생각했다.

남은 기록 전부.

전국의 등기는 사천만 건이 넘는다. 협박이 실행 가능한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4,012건에 대해서라면, 그 이름은 이미 한 번 말한 대로 했다.

예순 날. 성명이 그렇게 못 박았다. 그날부터 다인은 노트 맨 위에 남은 날수를 적기 시작했다. D-60. 세지 않으려 했는데 손이 먼저 셌다.

D+20 · 23:10

밤 뉴스는 두 화면으로 갈라져 있었다.

한쪽에서는 전직 관료가 나와 테러와의 협상은 없다고 말했다. 다른 쪽에서는 부결 명단에 있던 남자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모자이크 너머의 목소리가 말했다.

나라가 내 피해를 알고 있었다는 걸, 나는 해커 덕분에 알았습니다. 그럼 나한테는 누가 범인입니까.

다인은 소리를 줄이고 한참 앉아 있었다.

지난주까지 이 사건에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있었다. 이제는 피해자와, 가해자와, 그보다 먼저 알고 있던 자가 있었다. 다인은 자신이 그 세 번째의 신분증을 목에 걸고 출근한다는 것을 알았다.

휴대폰이 울렸다. 임 주사였다.

"뉴스 봤나."

"보고 있어요."

"아까 낮에 못 한 말, 그건가."

다인은 화면을 껐다.

"네."

"그래." 임 주사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 "권상호 씨 오늘도 왔었다."

D+21 · 11:30

이튿날 아침에 사진 한 장이 퍼졌다.

어느 등기소 앞이었다. 스무 명쯤이 줄을 서 있는데 업무가 안 되는 날이었으니 발급을 받으러 온 게 아니었다. 손에 종이를 들고 있었다. 사태 전에 떼어둔 자기 집 등기사항증명서, 또는 전세계약서 사본.

그 종이 오른쪽 아래에 붉은 도장이 찍혀 있었다.

성명에 찍혀 있던 그것과 같은 모양이었다. 테두리만 있고 안이 빈 원. 문방구에서 파는 삼십 밀리 원형 스탬프였다. 인주만 따로 사서 직접 찍은 것들이었다.

그날 오후에 그 스탬프를 파는 사이트 링크가 커뮤니티에 돌았다. 저녁에는 품절이었다.

임 주사가 전화했다.

"우리 소 앞에도 왔다."

"몇 명이요?"

"열댓 명. 조용해. 소리도 안 지르고."

"뭐 하고 있어요?"

"자기 등기부 들고 서 있어. 도장 찍어서." 임 주사는 잠깐 말을 쉬었다. "젊은 애들이야. 우리 창구에 오던 얼굴들이 아니고."

전화를 끊고 나서도 다인은 사진을 닫지 않았다.

국가가 종이에 붉은 것을 찍어주는 이유는 하나다. 이건 우리가 확인했다는 뜻이고, 그러니까 믿어도 된다는 뜻이다. 다인은 삼 년 동안 그 도장을 하루에 몇 번씩 찍었다.

사진 속의 사람들은 그걸 자기 손으로 찍고 있었다. 아무도 확인해주지 않으니까 스스로 확인한 것이다. 그 도장에 이름이 없는 것은 새길 이름이 없어서가 아니라, 새길 자리가 아직 아무에게도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효력은 없었다. 그건 그 사람들이 제일 잘 알고 있었다.

다인은 사진을 확대했다. 종이를 쥔 손들이 전부 아래쪽을 잡고 있었다. 위쪽에 도장이 있어서였다. 화면에서 손을 떼고 다인은 자기 손을 봤다. 삼 년 동안 그 자리에 찍어온 손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저 오늘 등기소 앞에 갔다 왔습니다

저는 잃은 게 없습니다. 집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어제 그 성명 읽고 세 번 울었습니다. 왜 우는지도 모르는데 울었습니다.

도장 찍은 종이 들고 두 시간 서 있다가 왔습니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났고

저녁에 집에 와서 라면 먹었습니다.

근데 오늘 처음으로, 이 판이 한 번은 뒤집힐 수도 있는 거구나 생각했습니다.

└ 저도 갔습니다. 아무도 말 안 걸어서 좋았어요

└ 잃을 게 없는 사람이 제일 무섭다는 말 이제 알겠다

└ 도장 어디서 사요

└ ㄴ 문방구요. 삼천원.

└ 삼천원으로 나라랑 맞서는 중

[속보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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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기 좋아요 어제 받았습니다

└ ㄴ 이거 사기예요 지금 전국이 다 멈춰 있는데 뭘 조회해요

└ ㄴ 그럼 어제 받은 종이는 뭔데요

└ ㄴ 그러니까요

D+22 · 21:40

사무실에 다인만 남아 있었다. 야근 끝에 다인은 그 일을 했다.

유보 9,348건. 인정도 불인정도 아닌 목록. 조사는 됐는데 판정이 미뤄진 필지들이었다.

다인은 그 숫자를 인정 건수 옆에 적어봤다. 유보가 인정의 두 배가 넘었다. 조사해놓고 절반이 넘는 건에 대해 국가가 낸 결론은 아직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다인은 검색창에 자기 아파트 주소를 넣었다.

넣기 전에 잠깐 손을 멈췄다. 넣지 않으면 오늘 밤은 아무 일도 없는 밤이 된다. 다인은 넣었다.

한 건이 떴다.

다인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옆자리에 최 계장이 아직 앉아 있었다. 이어폰을 끼고 자기 화면을 보고 있었고, 다인 쪽은 보지 않았다. 다인은 화면을 조금 기울였다.

조사 사유: 진정명의회복 판결 후 8개월 내 전매 및 시세 대비 저가 거래 정황. 판정: 유보. 비고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원소유자 소재 불명. 전득자 선의 여부 판단 불가.

전득자. 법률 용어로는 그 판결 뒤에 집을 사들인 사람이라는 뜻이고, 서류 바깥의 말로 하면 다인이라는 뜻이었다.

여덟 달. 지하철에서 읽던 그 여덟 달이 국가의 문장 안에 8개월이라는 활자로 앉아 있었다. 십일 년 전 이 집을 빼앗겼던 사람은 소송으로 되찾았고, 여덟 달 만에 시세보다 싸게 팔았고, 그 뒤로 소재를 알 수 없다. 조사관도 그 여덟 달을 들여다봤고,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고,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 유보 위에 다인의 십일 년이 서 있었다. 대출 이자 백서른두 번. 도배 두 번, 보일러 한 번. 죽은 화분 넷과 아직 살아 있는 화분 둘. 위층이 여섯 시 십 분에 물 내리는 소리를 십일 년 들었고, 벽에 못 자리가 셋 있는데 누가 박았는지는 지금도 모른다.

그게 국가의 서류에서는 전득자, 한 단어였다.

다인은 반나절을 내지 않았던 것을 생각했다. 열람 신청서 한 장이면 되는 일이었다. 매일 창구에서 남에게 밀어주는 그 종이였다. 그 여덟 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보려면 그거 하나로 시작이 됐고, 다인은 석 달째 그걸 안 냈다. 알게 되면 그다음을 알아야 하니까.

국가도 똑같이 했다. 조사는 했고 판정은 미뤘다. 국가의 서랍과 다인의 닫힌 화면은 같은 동작이었다.

다인은 창을 하나 더 열어 지도에 자기 집 주소를 넣었다. 서울 온 첫날 밤에 사천십이 개를 그렇게 열어봤다.

로드뷰가 떴다. 촬영은 작년 가을이었다. 사층 왼쪽 창문에 커튼이 반쯤 걷혀 있었다. 그 커튼은 다인이 걷은 것이다. 아침에 나가면서 늘 반만 걷는다.

목록 안의 집을 처음으로 밖에서 봤다.

화면을 껐다. 끄고 나서 손바닥을 바지에 문질렀다. 마우스가 축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