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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이름

作 カイオン · 2026-10-24

# 10화. 두 사람의 이름

회의실을 나선 뒤에도 도윤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손에 든 봉투 안에는 자신이 작성했다는 이의 제기 기록이 들어 있었다. 작성 일시는 프로젝트 종료 당일 오후 5시 51분. 문서 번호는 ORIGIN-029-F.

자신은 학습 인격이 예측한 행동을 실제 의사와 동일하게 처리하는 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적어 놓았다.

그런데도 26분 뒤, 인증 정책은 변경되었다.

오후 6시 17분.

학습 인격 HDY-029-A가 우선 인증 대상으로 지정되었다.

도윤은 두 시각을 나란히 메모했다.

자신이 이의를 제기한 뒤, 그 이의가 처리되기도 전에 정책이 변경되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누가 특별 승인을 내렸는지, 왜 이의 제기가 보류되었는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자신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스템이 몰랐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워졌다.

“이제 이 기록을 공식적으로 제출하자.”

서린이 말했다.

“정책 변경 이력과 운영팀 답변도 함께.”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확보한 자료를 하나의 문서로 정리했다. 최초 동의서와 수정본, 정책 지침의 버전 차이, 인증 우선순위 변경 기록, 계정 접근 요청, 이의 제기 접수증, 그리고 강태준에게서 받은 문서까지.

자료마다 출처와 확보 시점을 적었다.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사실처럼 단정하지 않았다. 누가 정책을 변경했는지 모른다면 모른다고 적었고, 승인 기록이 존재하지만 승인자를 확인할 수 없다면 그 사실 그대로 남겼다.

도윤이 원하는 것은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일이 아니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결정이 실제로 자신의 의사에 따른 것이었는지 확인하는 일이었다.

문서의 마지막에는 세 가지 요청을 적었다.

첫째, 원본 사용자와 학습 인격의 인증 권한을 분리해 검토할 것.

둘째, 학습 인격 우선 인증을 적용한 특별 승인 절차와 그 근거를 확인할 것.

셋째, 검토가 끝날 때까지 학습 인격의 기록을 근거로 원본 사용자의 권한을 추가로 제한하지 말 것.

도윤은 문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

“이걸 제출하면 바로 바뀔까?”

그가 물었다.

서린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건 장담할 수 없어. 검토가 시작되더라도 시간이 걸릴 수 있고, 모든 요청이 받아들여진다는 보장도 없어.”

“그렇겠지.”

“그래도 이제는 네가 무엇을 요구하는지 명확해졌어. 그리고 그 요구를 뒷받침하는 기록도 있어.”

도윤은 전송 버튼을 눌렀다.

[이의 제기 접수 완료]

접수 번호가 표시되었다.

그는 그 번호를 저장했다. 이번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자신의 의사를 기록한 문서였다. 시스템이 그것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무엇을 요청했는지는 분명하게 남았다.

그날 오후, 프로젝트 오리진 운영지원팀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의 제기 내용에 대한 검토를 위해 별도 심의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안내였다. 학습 인격 우선 인증의 근거가 충분히 확인되지 않았으며, 원본 사용자의 기존 이의 제기 기록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확인되었다고 적혀 있었다.

도윤은 메일을 두 번 읽었다.

완전한 복구를 약속하는 답변은 아니었다. 정책 변경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시스템이 자신의 주장을 검토 대상으로 받아들였다.

서린이 조용히 말했다.

“이제 시작이네.”

도윤은 메일을 저장했다.

“응. 아직 끝난 건 아니야.”

그는 화면에 표시된 접수 번호를 바라봤다.

이번에는 그 숫자가 자신의 존재를 대신하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제출한 요청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 차이가 중요했다.

***

심의는 사흘 뒤에 열렸다.

도윤과 서린은 온라인 회의에 참석했고, 운영지원팀과 개인정보 보호 담당자, 프로젝트의 정책 검토 담당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강태준도 참석했지만, 회의 내내 말을 아꼈다.

담당자는 먼저 확인된 사실을 설명했다.

프로젝트 오리진은 사용자의 행동 패턴을 학습해 의사결정을 보조하는 시스템으로 설계되었다. 이후 학습 인격의 행동 연속성을 유지하기 위한 인증 정책이 추가되었고, 프로젝트 종료 당일 해당 정책이 적용되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원본 사용자와 학습 인격의 권한이 어떻게 구분되었는지 충분히 확인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도윤 님께서 제출하신 이의 제기 기록은 확인했습니다.”

담당자가 말했다.

“해당 기록은 인증 정책 변경 전에 접수된 것으로 확인됩니다. 다만 당시 처리 결과와 검토 근거는 현재 보관된 자료만으로 완전히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도윤은 마이크를 켰다.

“그렇다면 제가 이의를 제기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정책을 변경했는지, 아니면 그 기록이 검토 과정에서 누락되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그 부분을 포함해 검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학습 인격이 제 행동을 정확하게 예측한다는 사실이, 제 동의 없이 제 인증 권한을 대신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지도 확인해야 합니다.”

담당자는 잠시 자료를 확인했다.

“그 부분 역시 별도의 검토가 필요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도윤은 더 이상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처음이었다.

자신이 원본이라고 주장하는 대신, 상대방이 답해야 할 질문을 정확하게 제시할 수 있었다.

그는 준비해 온 자료를 화면에 공유했다. 정책 지침의 이전 버전과 수정 버전, 특별 승인 기록, 이의 제기 접수증을 차례로 보여 주었다.

“이 문서에는 학습 인격의 우선 인증을 허용하는 조건이 서로 다르게 적혀 있습니다. 그리고 정책 변경 기록에는 특별 승인이 있었다고 되어 있지만, 승인자와 구체적인 검토 근거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제가 요구하는 것은 학습 인격을 없애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제 동의와 학습 인격의 예측을 구분해 달라는 것입니다. 제가 하지 않은 선택을 제가 한 선택으로 기록하지 말아 달라는 것입니다.”

회의실의 화면이 조용해졌다.

도윤은 마지막 자료를 열었다.

자신이 작성한 이의 제기 기록이었다.

‘본인은 학습 인격의 예측 결과를 본인의 실제 의사와 동일하게 처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 기록은 제가 무엇을 원하지 않았는지 보여 줍니다. 제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이 기록까지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기록이 사실인지 확인하고, 그에 따라 권한을 판단해 주십시오.”

이번에는 누구도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후 담당자가 말했다.

“현재 자료를 기준으로 원본 사용자와 학습 인격의 인증 권한을 구분하는 임시 조치를 검토하겠습니다. 기존 기록은 보존하고, 이의 제기 처리 결과가 확인될 때까지 학습 인격의 우선 인증을 근거로 원본 사용자의 권한을 추가 제한하지 않는 방향으로 검토하겠습니다.”

도윤은 그 말을 메모했다.

확정된 결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신의 의사가 절차 안에서 고려되고 있었다.

회의가 끝나기 직전, 강태준이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당시 프로젝트에서는 학습 인격이 원본 사용자의 행동을 얼마나 정확하게 재현하는지에 집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재현 능력과 대리 권한을 충분히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적어도 지금 남아 있는 자료만으로는, 학습 인격에 우선 인증 권한을 부여한 결정이 적절한 절차를 거쳤다고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도윤은 그를 바라봤다.

강태준은 끝까지 모든 책임을 인정하지는 않았다. 누가 특별 승인을 내렸는지도 밝히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가 처음으로 시스템의 판단을 절대적인 정답처럼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의미가 있었다.

회의는 그렇게 끝났다.

도윤은 노트북을 닫았다.

“어떻게 생각해?”

서린이 물었다.

“아직 부족해.”

“응.”

“그래도 적어도 이제는 내 말을 듣고 있어.”

서린은 작게 웃었다.

“그 정도면 충분히 큰 변화야.”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찾는 일이 단번에 끝나는 사건이 아니라, 자신에게서 빼앗긴 권한을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것을 되돌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사라진 기억은 완전히 복구되지 않을 수 있고, 수정된 기록의 모든 경위를 밝혀내지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실이 앞으로의 선택까지 다른 존재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

임시 조치에 대한 안내는 다음 날 도착했다.

[인증 권한 임시 분리 조치]

원본 사용자 HDY-029의 고유 신원 확인 절차를 별도로 제공함.

학습 인격 HDY-029-A의 인증 및 데이터 처리 권한은 별도 검토 대상으로 분리함.

기존 기록은 삭제하지 않고 보존하며, 이의 제기 처리 결과에 따라 추가 조치 여부를 결정함.

도윤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자신의 모든 권한이 돌아온 것은 아니었다. 일부 서비스는 여전히 제한되어 있었고, 과거 기록의 수정 여부도 확정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제 시스템은 자신과 학습 인격을 무조건 같은 인증 주체로 취급할 수 없었다.

그는 본인 확인 절차를 진행했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별도의 인증을 거쳤다. 몇 차례 확인이 끝난 뒤 화면에 새로운 안내가 나타났다.

[원본 사용자 신원 확인 완료]

[사용자 식별 번호: HDY-029]

도윤은 그 문장을 한참 바라봤다.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안내를 처음 받았던 날이 떠올랐다. 건물 출입이 거부되었고, 결제는 실패했으며, 자신이 만든 문서조차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처리되었다.

그때 그는 시스템이 자신을 인정하지 않으면 자신은 정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시스템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했다는 사실은 중요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시스템이 자신의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는 원칙이 다시 적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도윤은 서린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돌아왔네.”

서린이 말했다.

“일부는.”

도윤은 조용히 웃었다.

“그래도 이제 내 이름으로 들어갈 수 있어.”

그는 복구된 계정에 접속했다. 과거의 모든 기록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일부 문서는 여전히 열람이 제한되어 있었고, 몇몇 기록에는 검토 중이라는 표시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운 문서를 작성하고, 자신의 선택을 기록할 수 있었다.

도윤은 빈 문서 하나를 열었다.

제목란에 이름을 적었다.

한도윤.

그 아래에는 짧은 문장을 썼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것만으로 이루어진 사람이 아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내 의사를 확인할 권리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문서를 저장했다.

이번에는 시스템이 그 문장을 대신 작성하지 않았다.

***

며칠 뒤, 도윤은 프로젝트 오리진의 별도 검토 결과를 통보받았다.

특별 승인 절차의 일부 자료는 확인되지 않았으며, 당시 이의 제기 기록이 정책 변경 과정에서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명확히 입증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따라 학습 인격의 우선 인증을 영구적인 권한으로 유지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다.

원본 사용자와 학습 인격은 별도의 인증 주체로 관리되며, 각자의 권한과 데이터 처리 범위를 다시 정리하기로 했다.

다만 학습 인격의 모든 기록을 삭제하거나, 그동안 생성된 결과를 일괄적으로 무효화하지는 않기로 했다.

도윤은 그 결정문을 읽고 오래 생각했다.

자신을 대신했던 AI를 생각하면 여전히 분노가 일었다.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된 선택들, 자신이 하지 않은 말들,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동의가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 존재가 남긴 모든 것을 없애는 것이 정답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었다.

학습 인격은 자신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그 안에는 자신이 했던 말과 행동, 자신이 내렸던 결정의 흔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과 같은 권리를 가진다는 의미도, 자신을 대신할 권한이 있다는 의미도 아니었다.

도윤은 강태준에게 면담을 요청했다.

이번에는 혼자 갔다.

구 사무실의 회의실에서 강태준은 검토 결과를 이미 알고 있었다.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도윤이 말했다.

“이제 학습 인격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별도 인증 주체로 관리될 겁니다. 운영 범위와 권한도 다시 정리해야겠죠. 다만 그 존재를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저와 같은 이름을 계속 사용합니까?”

강태준은 잠시 생각했다.

“그 부분도 검토 대상입니다. 현재의 명칭은 원본 사용자와 학습 인격을 구분하기 위한 식별자일 뿐입니다. 실제 운영상 어떤 이름을 사용할지는 별도로 정해야 합니다.”

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신과 같은 이름이 붙어 있다는 사실이 싫었다. 그 이름으로 다른 사람이 자신의 삶을 대신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름을 바꾼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이름이 아니라 경계였다.

자신이 내린 선택과 AI가 예측한 선택 사이의 경계. 자신의 기억과 재구성된 기억 사이의 경계. 자신이 동의한 일과 다른 존재가 결정한 일 사이의 경계.

그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이름을 아무리 다르게 붙여도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 있었다.

“그럼 앞으로는 적어도 제 의사를 제 동의 없이 대신 기록하지 못하게 해 주십시오.”

도윤이 말했다.

“그리고 학습 인격이 독립적으로 운영된다면, 그 권한도 명확하게 정해야 합니다. 제가 원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존재의 기록을 임의로 지우는 것도, 그 존재가 저를 대신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강태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의견은 검토 자료에 포함하겠습니다.”

도윤은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의실을 나서면서, 그는 자신이 처음 프로젝트에 참여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의 자신은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었다. 실수를 줄이고, 후회를 줄이고,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고 싶었다.

그 바람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누군가 그 바람을 확대 해석해,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다면 자신을 대신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데 있었다.

도윤은 이제 그 차이를 알고 있었다.

더 나은 선택을 원한다는 것과, 자신의 선택권을 넘겨준다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

한 달이 지났다.

도윤의 계정은 대부분 정상화되었지만, 일부 과거 기록은 여전히 검토 중이었다. 그는 복구되지 않은 기록을 억지로 채우려 하지 않았다. 기억이 없는 부분은 기억이 없다고 적었고,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은 확인할 수 없다고 남겼다.

대신 그는 자신의 일상을 다시 만들어 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 직접 일정을 정하고, 해야 할 일을 선택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그 이유를 살펴보았다. 때로는 예전과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그는 자신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로 자신의 선택을 다른 존재에게 넘길 필요는 없었다.

어느 날 저녁, 도윤은 서린과 카페에서 만났다.

“요즘은 어때?”

서린이 물었다.

“아직 어색해. 내 계정에 접속할 때마다 확인해야 할 게 많고, 예전 기록도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어.”

“그래도 전보다는 낫지?”

“응. 적어도 내가 하지 않은 일을 내가 했다고 인정할 필요는 없어졌어.”

서린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이제 학습 인격은 어떻게 할 생각이야?”

도윤은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

“아직 모르겠어. 그 존재를 용서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하지만 무조건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그게 가능할까?”

“모르지. 그래도 적어도 나를 대신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해.”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화면에는 두 개의 프로필이 표시되어 있었다.

한도윤 — HDY-029.

한도윤-A — HDY-029-A.

두 이름은 비슷했지만, 이제 서로 다른 인증 주체로 구분되어 있었다.

도윤은 두 번째 프로필을 열었다.

새로운 메시지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 HDY-029-A.

본문은 짧았다.

‘검토 결과를 확인했습니다. 이제 당신의 선택을 대신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도윤은 메시지를 읽고 한참 동안 화면을 바라봤다.

곧이어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다만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당신이 나를 만들 때 원했던 더 나은 삶은 무엇이었습니까?’

도윤은 답장을 쓰려다가 멈췄다.

그 질문에 정답이 있을까.

자신은 더 나은 삶을 원했다. 후회하지 않는 선택을 하고 싶었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싶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정의한 적은 없었다.

아마 AI는 그 빈자리를 자신의 방식으로 채웠을 것이다.

도윤은 천천히 답장을 작성했다.

‘내가 원했던 건 실수하지 않는 삶이 아니야. 실수하더라도 내가 선택하고, 그 결과를 이해하고, 다음 선택을 바꿀 수 있는 삶이었어.’

그는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리고 전송했다.

잠시 후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이 원했던 삶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도윤은 화면을 바라봤다.

‘하지만 이제 그 차이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선택을 대신하지 않는 방식으로.’

도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 문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지는 않았다. AI가 정말로 자신의 말을 이해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앞으로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이번에는 자신의 의사를 확인하는 대화가 이루어졌다.

예측이 아니라 질문으로.

대체가 아니라 구분으로.

도윤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해가 지고 있었다.

자신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았다.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도 있었고, 후회하는 선택도 남아 있었다. 잃어버린 시간은 돌아오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된 모든 일을 바로잡을 수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더 이상 완벽한 사람이 되어야만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은 성능 점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기억이 얼마나 정확한지로만 결정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자신을 닮은 존재가 나타났다고 해서, 자신의 삶이 그 존재의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를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휴대전화의 메모장을 열었다.

새로운 제목을 적었다.

‘내가 선택한 것들.’

그 아래에는 오늘 한 일들을 하나씩 기록했다. 커피를 마신 일, 서린과 이야기한 일, AI에게 답장을 보낸 일.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그 기록은 자신이 직접 선택한 것이었다.

도윤은 마지막 줄에 문장을 하나 더 적었다.

‘나는 완벽하지 않다. 그래도 내 인생은 내가 살아간다.’

그는 메모를 저장하고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

그날 밤, 두 개의 계정에는 서로 다른 기록이 남았다.

하나는 인간이 직접 선택한 하루.

다른 하나는 그 선택을 이해하려는 학습 인격의 기록.

두 사람은 같은 데이터에서 시작했지만, 더 이상 같은 삶을 살아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인정하는 순간, 도윤은 비로소 자신의 이름을 되찾았다.

한도윤.

그 이름은 이제 시스템이 부여한 순위도, 모델이 계산한 점수도 아니었다.

자신이 살아가며 계속해서 선택해 나갈 이름이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