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作 와우산 · 2026-10-24
소완은 닭이 울기도 전에 왔다. 손에 김이 오르는 사발을 들고 있었다.
“맞기 전에 마시는 거래요. 흰 밀랍을 썰어서 끓는 술에 탔어요. 맞아도 덜 아프대요.”
막삼은 사발을 받아 냄새를 맡았다. 밀랍 냄새와 술 냄새가 섞여 있었다. 맞으러 가는 아침에 이런 걸 챙겨 준 사람은 형밖에 없었다.
“약 이름이 뭐냐.”
“약방에서는 기장산이래요. 맡길 기에 매 장.”
막삼은 사발을 든 채로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엉덩이가 땅겨서 얼굴을 찌푸렸다. 소완이 영문을 몰라 막삼을 보았다.
“관아 늙은이들은 내 볼기를 그렇게 부른다더라.”
“뭐라고요.”
“기장. 매를 남한테 맡기는 요술.”
소완은 잠깐 생각하더니 사발을 다시 막삼 입가로 밀었다.
“그럼 더 잘 듣겠네요.”
막삼은 단숨에 마셨다. 뜨거운 것이 목을 타고 내려가 배에서 퍼졌다. 소완이 빈 사발을 받으며 말했다.
“소가주님도 관아에 나가신대요. 반가 어른들을 모시고요. 예물이 신랑 집 물건이니까, 신랑이 도둑 맞는 걸 지켜봐야 한대요.”
막삼은 엉덩이 아래를 더듬었다. 마흔. 갈 영감 몫 스물은 이제 동북쪽 세가 담장이 아니라 그보다 가까운 성안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소가주가 벌써 길을 나선 모양이었다.
“삼공자는.”
“일어나지도 못하세요. 엎드려서 죽만 드세요.”
“그래야지. 스물넷인데.”
소완이 문을 나서다 돌아섰다. 숯 묻은 손가락으로 제 손바닥을 긋고, 긋고, 또 그었다. 막삼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소완도 설명하지 않았다.
관아 마당이 이렇게 붐비는 날은 드물었다.
의문 밖이 구경꾼으로 꽉 찼다. 세가 도둑이 장 백 대를 맞는다는 소문에, 엊저녁 잔치에서 삼공자가 평상을 찼다고 털어놓았다는 소문까지 얹혀 있었다.
남문 밖 사람들은 다 나온 것 같았다. 사람들 틈에 장득의 하얀 얼굴이 보였다.
마당 안 계석정 옆에는 반가 사람들이 섰다. 예물을 받을 집 어른이라고 안까지 들인 것이었다. 둘째 어른이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 곁에 서문세가 사람들이 섰다. 노구와 집사 둘, 그리고 서문준.
막삼이 대당 앞 맨땅에 엎드리자마자 스무 개가 그쪽으로 몸을 틀었다. 여덟 걸음쯤이었다. 관아 마당에서 여덟 걸음은 대청 위와 아래보다 가까웠다.
갈 영감은 마당 귀퉁이 담 밑에 꿇어앉아 있었다. 묶인 손이 등 뒤에서 떨렸다. 장득이 그랬듯, 갈 영감도 제 이름으로 떨어질 매를 보러 와 있었다.
곽이 판자를 들고 왔다. 막삼과 눈이 마주쳤다.
“오늘은 백.”
“예.”
조례들이 뒤통수와 발목을 눌렀다. 막삼은 흙에 뺨을 대고 기다렸다.
엎드린 눈높이에 젊은 조례의 허리춤이 있었다. 오늘도 묵직했다. 돈주머니를 묶은 삼끈 매듭이 눈에 익었다. 감고, 꼬고, 또 꼬아 끝을 안으로 접어 넣은 매듭. 약 꾸러미마다 묶여 오던 그 매듭이었다.
막삼은 흙에 댄 뺨을 움직이지 않았다. 쳐라, 소리가 내려오지 않았다.
노구가 대당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노구는 지현 곁에 몸을 숙이고 무어라 오래 말했다. 지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대당 아래까지 들리는 말은 몇 마디뿐이었다. 잔치. 삼공자. 옛 책. 지현이 손가락으로 상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채 서리를 불렀다.
“대신 맞는 이놈이 요술을 부린다는 말이 있다. 기장이라던가.”
지현이 마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관인을 모귀 등에 찍는 일은 처음이다만, 옛 책에 그런 말이 있다니 해서 나쁠 것은 없겠지.”
채 서리가 인주 함과 관인을 받쳐 들고 계단을 내려왔다. 막삼과 눈이 마주치자 찍어 줄까, 하던 그 사람이 어깨를 조금 으쓱했다. 채 서리가 막삼의 웃옷 자락을 등허리까지 걷어 올렸다.
차가운 것이 허리 위에 눌렸다. 땀에 젖은 살갗이라 인주가 잘 앉지 않아서, 채 서리는 혀를 차며 오래 눌렀다.
엉덩이 속 스물이 움찔했다. 소가주 쪽으로 기울던 쏠림이 등허리에서 턱 막혔다. 막삼은 그 느낌을 안다. 문 앞에 섰는데 문고리가 없는 느낌이었다.
콩알들은 여전히 소가주 쪽을 보았지만, 고개를 들지 못했다. 등에 찍힌 붉은 자리가 뚜껑처럼 위를 덮었다.
노구가 대당 계단을 내려왔다. 막삼 옆을 지나며 내려다보는 눈길이 등허리의 붉은 자리에 잠깐 머물렀다가 지나갔다.
막삼은 흙에 댄 뺨으로 숨을 골랐다.
노구는 기장을 알고, 관인이 그것을 막는다는 것까지 알았다. 엊저녁 대청 끝에서 막삼의 두 손을 보던 얼굴이 무엇을 셈하고 있었는지, 막삼은 이제 알았다.
조례 허리춤의 매듭이 눈앞에 있었다. 떠오르는 것이 또 있었다. 그 늙은이 옷깃 안쪽에 늘 비치던, 인주 번진 누런 종이.
그 생각은 거기서 끊겼다.
“쳐라.”
둘러선 조례들이 받아 외쳤다. 첫째 대가 떨어졌다.
막삼은 셈을 둘로 나눴다. 아역이 부르는 수와 엉덩이가 세는 수. 아역이 첫째를 부르면 엉덩이는 마흔하나를 셌다. 둘째에 마흔둘. 셋째 대를 앞두고 외침이 바뀌었다.
“착실히 쳐라!”
셋째 대. 마흔셋.
다섯째 대가 끝나자 젊은 조례가 손을 내밀었다. 곽은 판자를 넘기지 않았다. 오늘도.
열째 대. 쉰. 막삼은 오른손 손톱으로 흙에 금을 하나 그었다.
곽의 박자는 고르고 무거웠다. 법대로 다 주는 매였다. 콩알이 차례로 생겨 쌓였다.
생기는 족족 소가주 쪽으로 기울었다가 등허리의 붉은 뚜껑에 막혀 주저앉았다. 갈 데를 아는데 갈 수가 없는 매들이 살 속에서 서로 어깨를 밀었다.
스물째 대. 예순. 금이 둘.
서른째 대. 일흔. 금이 셋.
일흔부터는 숨이 짧아졌다. 들이쉰 숨이 가슴께에서 멎고 더 내려가지 않았다. 아래가 꽉 차 있었다. 곽의 다음 매가 들어올 때마다 막삼은 숨 대신 수를 삼켰다.
계석정 옆에서 반가 둘째 어른이 무어라 말하는 소리가 났다. 서문준이 대답하는 소리가 났다. 낮고 고르게. 우리 집은 셈이 바릅니다, 그런 말이었을 것이다.
마흔째 대. 여든. 금이 넷.
막삼의 손톱이 흙을 긁었다. 긋는 금이 조금씩 오른쪽으로 눕기 시작했다. 형도 이 근처에서 이랬을까? 형은 아역이 부르는 수만 셌다. 몸이 따로 세는 수는 몰랐다.
쉰째 대. 아흔. 금이 다섯.
아흔에서 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막삼은 움직였다. 새끼손가락을 흙에서 떼었다 붙였다. 아직이었다.
쉰다섯, 쉰여섯. 아흔다섯, 아흔여섯.
목 끝까지 찼다. 아래에서 차오른 것이 숨구멍을 위에서 누르고 있었다. 이제 몇 대가 남았는지는 막삼의 목이 셌다.
쉰일곱. 아흔일곱.
쉰여덟. 아흔여덟.
막삼은 온몸의 힘을 뺐다.
흙에 댄 뺨이 미끄러지고, 땅을 짚던 손이 풀리고, 목이 옆으로 꺾였다. 뒤통수를 누르던 조례가 놀라 손을 뗐다. 아역이 부르던 수를 삼켰다. 곽의 판자가 공중에서 멈췄다.
“기절했느냐?”
대당 위에서 지현의 목소리가 떨어졌다.
“물을 부어라.”
마당 귀퉁이에 늘 놓여 있는 물동이가 있었다. 엎드린 죄인이 늘어지면 얼굴에 물을 끼얹어 깨운다. 그다음에 남은 수를 친다. 막삼은 그 순서를 엉덩이로 외우고 있었다.
곽이 판자를 세워 두고 물동이를 들어 왔다.
물은 얼굴에 붓는 것이다. 막 맞은 자리에 물을 대면 덧난다. 그걸 이 마당에서 곽보다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곽은 물동이를 막삼의 어깨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 엎었다.
찬물이 목덜미를 치고 등줄기를 타고 쏟아져 내렸다. 걷어 올린 웃옷 아래, 등허리의 붉은 자리 위로. 물이 허리께에서 고였다가 옆구리로 흘러내렸다. 흙에 떨어진 물이 붉었다.
곽은 빈 물동이를 내려놓고 물러섰다. 손이 떨리고 있었다.
뚜껑이 열렸다.
땀에 젖어 채 마르지도 못한 인주가 찬물에 밀려 번지면서, 등허리를 덮고 있던 것이 흘러내렸다. 갇혀 주저앉아 있던 매들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었다. 소가주 쪽으로. 여덟 걸음 저쪽으로.
막삼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가슴께에서 멎었다. 그래도 들이쉬었다.
막삼은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
“살았느냐?”
“살았습니다, 나리.”
“그럼 계속해라.”
“나리.”
막삼이 흙바닥에서 고개를 든 채 소리를 높였다.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의문 밖까지 갔다.
“서문 소가주님께 청이 있습니다.”
마당이 조용해졌다. 지현이 무슨 짓이냐는 듯 서리를 보았다. 계석정 옆에서 서문준이 처음으로 막삼을 정면으로 내려다보았다.
“소가주님 댁 비녀 값으로 맞는 매입니다. 남은 매는 소가주님께서 직접 세어 주십시오. 돈 내신 댁이 세셔야 셈에 뒷말이 없습니다.”
노구가 한 걸음 나섰다.
“무슨 버릇없는…….”
“옳은 말이군.”
반가 둘째 어른이었다. 팔짱을 낀 채 서문준을 보았다.
“우리 집 딸 머리에 꽂힐 비녀 값 아니오? 신랑이 직접 세어 보시오. 이 댁은 셈이 바르다면서.”
서문준의 얼굴에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잠깐 노구를 보았고, 노구가 무어라 말하려 하자 손을 들어 막았다.
계석정 옆을 떠나 걸어왔다. 걸음이 반듯했고, 마른 흙 위인데도 발밑에서 먼지가 일지 않았다. 수를 부르던 아역이 엉거주춤 비켜났다. 서문준이 막삼의 머리맡에 섰다.
스물만 일어선 게 아니었다. 오늘 맡은 매까지, 엉덩이 속 일흔여덟이 한꺼번에 일어섰다. 막삼은 흙을 움켜쥐었다.
“세어 주지.”
서문준이 곽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곽이 판자를 들었다.
“쉰아홉.”
서문준의 목소리가 매와 함께 떨어졌다. 엉덩이가 셌다. 아흔아홉.
한 대가 남았다. 막삼의 목이 아는 마지막 한 대였다.
막삼은 흙에 댄 입술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머리맡에 선 사람에게만 들릴 만큼.
“취옥이 머리에 꽂혔던 비녀는 깃이 일곱이었지요.”
서문준의 발이 멈췄다.
“한 가닥은 우물 돌 틈에 있습니다.”
서문준이 무릎을 굽혔다. 쪼그려 앉으며 한 손으로 막삼의 얼굴 옆 흙을 짚었다. 얼굴이 가까워졌다. 낮고 고른 목소리가 막삼의 귀에만 들어왔다.
“그 입 닫아라. 백까지 가기 전에 네가 먼저 끝난다.”
막삼은 흙바닥에서 손을 밀어 올렸다. 매 맞다 늘어진 모귀가 소가주 손등에 매달리는 모양으로, 막삼의 손바닥이 서문준의 손등을 덮었다.
셈은 엊저녁부터 해 두었다. 지금 마흔을 보내면 남은 매를 다 맞아도 백에서 멈춘다. 덜 보내면 막삼이 죽고, 더 보내면 서문준이 이 마당에서 못 일어난다.
마흔.
갈 영감 몫 스물부터 나갔다. 형당에서 이틀에 나눠 맞은 매가 엉덩이를 떠나 허리를 타고 손바닥으로 빠져나갔다. 그 뒤로 오늘 맞은 매 스물이 따라 나갔다. 막삼은 아역처럼 셌다.
서문준의 손이 막삼의 손바닥 아래에서 경련했다. 서른쯤에서 서문준이 손을 빼려 했다. 막삼은 놓지 않았다. 마흔에서 놓았다.
서문준이 옆으로 쓰러졌다.
반듯하던 등이 꺾이고, 흙바닥에 어깨부터 떨어졌다. 두 손이 제 엉덩이로 갔다. 입이 벌어졌는데 처음에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다 소리가 터졌다. 반듯하던 목소리가 짐승처럼 갈라졌다.
관아 마당이 뒤집혔다.
의문 밖 구경꾼들이 목을 빼고 소리를 지르고, 세가 집사들이 달려오고, 대당 위에서 지현이 일어섰다.
소가주의 몸에는 판자 근처에도 간 것이 없었는데, 소가주는 장 마흔을 맞은 사람처럼 흙바닥을 굴렀다.
그때 담 밑에서 갈 영감이 무릎으로 일어섰다.
“취옥이 머리에 비녀가 꽂혀 있었소!”
늙은 마부의 목소리가 마당을 갈랐다. 묶인 손을 등 뒤로 비틀며, 갈 영감은 처음으로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그 밤 두레박으로 취옥이를 건진 게 나요! 머리에 금비녀가 꽂혀 있었소! 나는 훔친 게 없소!”
반가 둘째 어른이 갈 영감 쪽으로 돌아섰다.
“뭐라고 했느냐. 그 비녀가 시비 머리에 있었다고?”
“요술이오!”
노구였다. 늘 낮던 목소리가 높았다.
“저 모귀가 소가주께 기장을 걸었소. 어제 삼공자도 저 손에 당했소. 나리, 관인을 다시 찍으시오. 관인이 풀렸으니 요술이 선 것이오!”
지현이 대당 위에서 노구와 반가 둘째 어른과 흙바닥의 서문준을 차례로 보았다. 손으로 상을 두어 번 두드리더니, 귀찮은 일을 털어 내듯 손을 저었다.
“찍어라. 판결은 났다. 끝까지 쳐라.”
채 서리가 인주 함을 들고 다시 내려왔다. 젖은 등허리를 소매로 닦고, 관인을 새로 눌렀다. 콩알들이 다시 고개를 숙였다.
막삼은 흙에 뺨을 대고 눈을 감았다.
찍으시지요. 셈은 끝났습니다.
세가 하인들이 서문준을 들어 의문 쪽으로 옮겼다. 갈 영감은 조례 둘에게 눌려 다시 꿇어앉았다. 반가 둘째 어른은 의문 쪽으로 실려 가는 신랑과 담 밑의 늙은 마부를 번갈아 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아역이 다시 수를 불렀다.
“예순.”
엉덩이가 셌다. 예순. 금이 여섯. 새 콩알이 생겨 소가주가 실려 간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가, 관인 뚜껑에 막혀 주저앉았다. 상관없었다. 이 매는 쌓여도 되는 매였다. 쌓일 자리를 비워 두었으니까.
일흔. 금이 일곱.
여든. 금이 여덟.
곽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박자는 무너지지 않았다. 아흔이 지나자 곽이 판자를 고쳐 쥐는 손이 보였다. 손바닥 가죽이 벗겨져 판자 자루가 붉었다. 곽은 판자를 넘기지 않았다.
아흔여덟. 아흔아홉.
“백이오!”
아역이 외쳤다. 채 서리가 붓을 들어 장부에 적었다.
엉덩이가 셌다. 백.
목 끝까지 찬 것이 숨구멍 바로 아래에서 멎었다.
막삼은 일어나려 했다. 대신 맞는 놈은 제 발로 걸어 나간다. 무릎이 꺾였다. 땅을 짚은 손이 미끄러졌다. 다시 짚어도 꺾였다.
누군가 막삼의 팔을 잡아 일으켰다. 곽이었다.
십 년 가까이 곽은 막삼이 일어나는 것을 보지 않았다. 판자를 세워 두고 딴 데를 보는 것이 그 사람 버릇이었다. 오늘은 곽이 막삼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막삼이 제 발로 설 때까지 팔을 놓지 않았다.
“오늘은 봐 주마.”
곽은 그 한마디를 하고 기름종이에 싼 고약을 막삼 손에 쥐여 주었다. 판자 자루를 쥐었던 손바닥이 막삼의 손에 닿았다. 끈적하고 뜨거웠다.
막삼은 의문 쪽으로 한 걸음을 뗐다. 대당 위에서 채 서리가 장부를 덮는 소리가 났다.
서리의 장부에 백. 막삼의 볼기에도 백.
이제 죄 없는 이름으로 한 대만 더 맡아도 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