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일백
作 와우산 · 2026-10-24
소완이 두부를 들고 온 것은 해가 한 뼘쯤 올라왔을 때였다.
바구니를 내려놓는 손이 평소보다 느렸다. 두부를 소금물에 넣고, 화로에 숯을 더 넣고, 그러고 나서야 소완이 입을 열었다.
“예물함에서 비녀가 없어졌대요.”
막삼은 엎드린 채 고개만 들었다.
“신부 댁에 보낼 예물을 오늘 아침에 함에 담다가 알았대요. 봉황 금비녀가 쌍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한 짝뿐이었대요. 제가 두부 사 들고 들어가니까 안채가 뒤집혀 있었어요.”
막삼은 허리춤 주머니에서 금 깃털을 꺼내 바닥에 놓았다. 소완은 그것을 집어 들지 않고 내려다보기만 했다.
“함을 다시 열어 볼 때 제가 등불을 들었어요. 남은 한 짝 꼬리깃이 이렇게 생겼어요. 깃이 일곱 가닥인데, 이건 그 가운데 하나예요.”
소완이 숨을 골랐다.
“총관 어른이 갈 영감을 불렀어요. 그믐밤 뒷문을 열어 준 게 영감이니까, 취옥이가 비녀를 빼돌린 것도 영감이 도왔을 거래요. 취옥이는 우물에 빠졌으니 비녀는 영감이 가졌을 거래요. 아침에 하인들이 영감을 관아로 끌고 갔어요.”
막삼은 금 깃털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갈 영감의 몸을 뒤져도 비녀는 안 나올 것이다. 비녀는 우물가에서 깃털 하나를 흘리고 다른 손으로 갔다.
그 손이 누구 손인지 막삼은 아직 몰랐다. 다만 갈 영감 몫으로 맡아 둔 스무 대가 어느 쪽을 보는지는 알았다.
“관아에서는 언제 판결이 난대?”
“내일 아침이요.”
이튿날 아침, 막삼은 관아 의문 밖 구경꾼들 틈에 섰다.
서서 보는 관아 마당은 엎드려서 보던 마당과 달랐다. 마당 가운데 비석을 모신 정자, 관아 사람들이 계석정이라 부르는 그 기단이 생각보다 낮았고, 대당은 생각보다 높았다. 처음으로 지현의 얼굴이 보였다.
마흔 남짓, 수염을 단정히 기른 사내였다. 눈 밑이 처져 있었다. 엎드린 막삼에게 쳐라, 한마디만 떨어뜨리던 목소리는 이 얼굴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옆에 장득이 붙어 섰다. 보고가 끝날 때까지 성 밖에 못 나가니, 성안에서 제일 무서운 구경을 하러 온 것이다.
대당 아래 오른편에는 세가 집사들이 서 있었다. 고발한 집에서 나온 사람들이었다. 지현은 무슨 말을 하기 전에 그쪽을 먼저 보았다.
대당이 높아도 눈은 아래 서 있는 집사들 쪽으로 내려왔다. 익도 사람들은 그걸 다 알았다.
갈 영감이 대당 앞 뜰에 꿇어앉아 있었다. 두 손은 등 뒤로 묶여 있었다. 소매에 숨길 수 없게 된 손바닥이 막삼이 선 곳에서도 보였다. 쓸린 자리에 앉은 딱지가 시커멨다.
채 서리가 판결문을 읽었다.
“마구간 고용인 갈가. 주인집 혼례 예물 가운데 금비녀 한 짝을 훔쳤다. 장물 값을 쳐 보니 쉰 관 남짓이다. 남의 재물을 이만큼 훔쳤으면 장 육십에 도 일 년이나, 한 집에 사는 고용인이 집안 재물을 훔친 것이므로 한 등을 덜어 장 일백으로 한다. 팔뚝에 글자를 새기는 것은 면한다.”
구경꾼들이 웅성거렸다. 글자를 안 새겨 주는 것이 나리의 은혜라고 누가 말했다. 장득이 막삼의 소매를 잡았다.
“형님, 장 백 대면…….”
막삼은 대답하지 않았다.
채 서리가 종이를 넘겼다.
“별채 시비 취옥은 그믐밤 후원 우물가에서 발을 헛디뎌 빠져 죽었다. 검시하니 몸에 다른 상처가 없다.”
그게 다였다.
구경꾼 가운데 누가 중얼거렸다. 우물에 빠진 애가 비녀 훔칠 틈은 언제 났담? 옆 사람이 쉿 하고 그 입을 막았다.
판결문은 취옥을 그렇게 끝냈다. 물을 무서워하던 아이가 밤에 혼자 우물가에 가서 발을 헛디뎠다고.
“장물은 어디 있느냐?”
지현이 대당 위에서 물었다. 갈 영감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어디 두었느냐 묻지 않느냐?”
갈 영감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다. 지현이 귀찮은 듯 손을 저었다.
“매가 입을 열게 하겠지. 집행은 모레 아침이다. 예물 받을 신부 댁 어른들도 보러 오신다니, 그날 마당을 열겠다.”
판결이 끝나자 조례들이 갈 영감을 옥으로 끌고 갔다. 의문 앞을 지나며 갈 영감이 구경꾼들 쪽을 보았다. 늙은 마부는 사람들 틈에서 막삼을 찾아내 잠깐 눈을 맞추고는, 다락에서처럼 고개를 돌렸다.
구경꾼들이 흩어진 뒤 막삼은 의문 옆 그늘에서 채 서리를 기다렸다. 채 서리가 서류 꾸러미를 끼고 나오다 막삼을 보고 멈췄다.
“왜, 맡게?”
“장 백 대짜리는 중간에 수가 느는 일도 있습니까?”
채 서리가 막삼을 빤히 보았다.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져 있었다.
“네 형 얘기냐?”
막삼이 입을 다물고 있자 채 서리가 목소리를 낮췄다.
“네 형은 육십짜리 일감으로 들어갔다. 마당에서 백이 됐지. 판결은 나리 입에서 나오는 거라, 나리 입이 백이라면 백이다. 대신 맞는 놈은 엎드린 다음에는 못 일어나. 일어나면 삯이 없으니까.”
“누가 나리 입을 백으로 만들었습니까?”
“그건 나도 모른다.”
채 서리는 걸음을 떼다가 돌아보았다.
“알아도 모른다. 너도 그렇게 살아라. 그래야 오래 맞는다.”
채 서리가 한마디를 더 얹었다.
“장 백이면 열 냥은 받아라. 세가가 깎으면 내가 말해 주마. 내 몫은 한 냥이다.”
채 서리다운 친절이었다. 막삼은 고개를 숙였다.
채 서리가 가고 나서도 막삼은 그늘에 오래 서 있었다.
형은 육십을 맡으러 들어갔다. 육십이면 형은 웃으며 걸어 나왔을 것이다. 누가 그 육십을 백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아흔째에 형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날 열여섯이던 막삼은 형 옆에 엎드려 남은 열 대를 맞느라, 누가 대당 위에 무엇을 넣었는지 볼 틈이 없었다.
오후에 노구가 막삼의 방을 찾아왔다.
이번에도 형의 걸상에 기우뚱하게 앉았다. 약 꾸러미는 없었다. 종이에 싼 은이 무릎 위에 있었다. 노구가 앉자 방 안에 또 인주 냄새가 돌았다.
“판결은 들었겠구나.”
“들었습니다.”
“가주께서 사십 년 말을 먹인 늙은이를 관아 마당에서 죽게 둘 수는 없다신다. 혼례를 앞두고 집안 사람 피를 볼 수도 없고. 그 늙은이 손바닥 봤느냐? 고삐를 사십 년 쥐면 손이 그렇게 된다.”
막삼은 대답하지 않았다. 고삐 자국은 손바닥에 세로로 박힌다. 갈 영감의 손바닥에는 줄이 가로로 쓸려 있었다.
노구가 은 꾸러미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무게를 재듯 가볍게 흔들었다.
“장 일백 대장이다. 은 열 냥. 선금 세 냥, 잔금 일곱 냥.”
채 서리가 말한 값 그대로였다. 세가는 깎지 않았다.
“반가 어른들이 오늘 저녁 성에 드신다. 비녀 일로 말이 많다. 시집보낼 딸 머리에 꽂힐 금붙이가 사라졌으니 그럴 만도 하지. 모레 관아 마당에서 도둑이 제대로 맞는 걸 보셔야 마음을 놓으실 게다.”
막삼은 엎드린 채로 은 꾸러미를 보았다. 지금까지 모은 것보다 많았다.
“네게 미안한 일감이다. 백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수다. 네 형도…….”
노구가 말을 끊었다. 막삼이 그 자리를 이었다.
“형도 백이었지요.”
“그래서 너한테 먼저 묻는다. 싫으면 다른 놈을 사겠다.”
막삼은 웃음이 나올 뻔했다. 익도에서 장 백 대를 받겠다고 엎드릴 모귀는 막삼 말고 없었다. 다른 놈들은 쉰만 넘어도 손을 젓는다.
다른 놈을 사겠다는 말은 갈 영감을 제 몸으로 엎드리게 하겠다는 말과 같았다. 예순 넘은 늙은이가 장 백 대를 받으면 아흔까지 갈 것도 없었다.
막삼은 대답하기 전에 엉덩이 아래를 더듬었다.
예순넷. 백을 넘으면 끝이다. 이대로 엎드리면 장 백 대의 절반도 못 가서 끝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스물넷은 서문휘의 것이다. 그걸 미리 돌려주면 마흔이 되고, 마흔이면 예순 대까지는 버틴다.
갈 영감 이름으로 맞는 매는 갈 영감에게 가지 않는다. 별채로 간다. 백 대가 다 떨어지기 전에, 그 사람의 맨살에 손이 닿기만 하면 된다.
모레 아침, 신부 댁 어른들이 예물 도둑 매 맞는 걸 보러 관아에 나온다. 신랑 될 사람이 그 자리에 안 나올 수 있을까?
막삼은 허리춤 안쪽에 꿰맨 은을 손끝으로 눌러 보았다. 손끝이 차가웠다. 셋째 대가 오기 전처럼.
“받겠습니다.”
노구가 막삼을 오래 보았다. 걸상에서 몸을 숙이자 옷깃 안쪽의 누런 종이 귀퉁이가 또 비쳤다.
“네 형도 늘 그렇게 대답했지.”
노구는 은 꾸러미를 풀어 선금 세 냥을 막삼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하나, 둘, 셋. 늙은 손끝이 막삼의 손바닥을 스쳤다. 묵은 콩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레 아침 일찍 관아로 가거라. 오늘 해 지기 전에 서리한테 이름을 올려 두고.”
노구가 돌아간 뒤, 해가 기울 무렵 장득이 숨을 헐떡이며 뛰어왔다.
“형님, 영감님이 열이 나요. 부목 밑이 퉁퉁 붓고 뜨거워요. 아침엔 죽을 반 그릇이나 드셨는데, 점심부터 펄펄 끓어요.”
장득의 목소리가 뒤집혔다.
“스무 날 안에 죽으면 제 목이라면서요. 오늘이 열하루째예요.”
“아흐레 남았다.”
“형님!”
막삼은 은 세 냥을 허리춤 안쪽에 꿰매며 말했다.
“세가에서 보낸 약 있지? 그거 달여 드려. 그 집 약은 잘 듣는다.”
“그래도 열이…….”
“열은 우리가 못 내린다. 대신 다른 걸 내리자.”
장득은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막삼도 다 설명할 수는 없었다. 왕 노인이 아흐레 안에 죽으면 장득의 목이 걸린다. 관아의 판결이 바뀌지 않는 한 그렇다.
판결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국숫집 평상을 실제로 걷어찬 그 사람이었다. 그 사람 엉덩이에 막삼의 스물넷이 걸려 있었다.
장득이 돌아갈 무렵, 골목 어귀에 세가 하인이 나타났다. 엿새 전 밤 몽둥이를 들었던 그 하인이 이번에는 몽둥이 대신 보따리를 들고 있었다.
“삼공자님이 내일 잔치에 오라신다. 신부 댁 어른들 모시는 자리에서 매 값 매기는 놀이를 하신단다.”
하인이 보따리를 막삼 앞에 던졌다. 풀어 보니 깨끗한 무명옷 한 벌이었다.
“이거 입고 오라신다. 매 맞는 놈 냄새 나는 옷으로는 대청에 못 올라온다고.”
막삼은 옷을 내려다보았다. 공자가 막삼을 불러 무엇을 하려는지는 짐작이 서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려는 것일 수도, 제 엉덩이 속 일을 확인하려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막삼에게는 같은 뜻이었다. 내일 그 집 대청에 서문휘가 앉아 있다.
막삼은 옷을 털어 보았다. 새 무명 냄새가 났다.
관아로 가는 길에 막삼은 남문 밖으로 돌았다.
국숫집 안쪽 방에 왕 노인이 누워 있었다. 장득이 달인 약 냄새가 방에 가득했다. 노인의 이마에 젖은 수건이 얹혀 있었다. 부목 댄 팔이 이불 위로 나와 있었는데, 손가락 끝이 나흘 전보다 더 부어 보였다.
노인이 눈을 떴다. 열 때문에 눈이 번들거렸다.
“그 공자 놈 볼기에 남은 거 있냐?”
막삼은 잠깐 말이 막혔다. 나흘 전 국물을 퍼 주며 너냐고 묻던 노인이었다. 그때 막삼이 둘러댄 말을 노인은 처음부터 믿지 않았다.
“스물넷 있습니다.”
“다 줘라.”
“다 드리면 공자님이 걸어서 관아에 못 가십니다.”
“관아는 왜?”
“판결 고치러요.”
막삼은 노인의 이마에서 수건을 걷어 뒤집어 다시 얹었다. 수건은 금방 미지근해졌다. 노인은 한참 막삼을 보다가 눈을 감았다. 입가가 조금 움직였다.
“외상 국물 값보다 비싸게 노는구나.”
해 지기 전에 막삼은 관아로 갔다.
채 서리가 집행 문서를 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가 집사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채 서리가 막삼을 흘끗 보았다.
“삼공자가 또 자빠졌다며? 다루에서. 관인 찍어 줄까 하던 거, 이제 농으로만 들리지 않는다는 늙은이들이 있다. 조심해라.”
막삼은 대답 대신 고개를 숙였다. 채 서리가 붓을 들었다.
“대장 이름.”
“막삼입니다.”
“성은?”
“없습니다.”
“막(莫)이면 성으로도 쓰는 글자다만.”
“형하고 저를 부르던 아명입니다.”
채 서리는 대수롭지 않게 붓을 놀렸다. 막삼은 종이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리. 제 이름이 어느 겁니까?”
채 서리가 붓 끝으로 짚어 주었다. 위에 풀 같은 것이 얹히고, 가운데 해 같은 것이 들고, 아래로 사람이 다리를 벌린 글자. 그 옆에 가로줄 셋.
막삼은 그 모양을 눈에 박았다. 생각보다 획이 많았다. 남의 이름으로 엎드리느라 제 이름 모양 볼 일이 없었다. 가로줄 셋 가운데 맨 아래 줄이 조금 길었다. 막삼은 그것까지 외웠다.
“잔금 받거든 내 몫 한 냥은 가져와라. 잊으면 다음 일감은 없다.”
채 서리가 문서를 들고 소리 내어 읽었다.
“장 일백. 대장, 막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