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2. 2호 (2)
作 기니피그군 · 2026-10-21
# 002. 2호 (2)
퍽-
부름에 다섯 암살자가 응답 대신 제 가슴을 치는 것으로 대답했다. 황제를 향한, 그리고 란데를 향한 충성심을 드러내는 동작이었다.
암살자들의 응답에 란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이내 다시 입을 열었다.
“백 명으로 시작해, 열 명만이 살아남아 황제의 그림자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중 절반도 죽어 이제는 너희 다섯밖에 남지 않았구나.”
7년 전, 란데는 전 대륙을 돌며 100명의 아이를 모았다. 그리고 아직 어린 그들에게 암살 기술을 습득시켰다.
기술의 습득 과정은 전혀 쉽지 않았다. 100명의 아이 중 80명이 훈련을 이기지 못하고 죽거나, 도망치다 잡혀 죽었다. 그리고 20명만이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들 중 모두가 황제의 그림자가 될 수는 없었다.
‘스무 명이라. 그러면 열 명이면 되겠군.’
그 후 벌어진 일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암살자는 살인을 업으로 하는 직업이다. 그리고 그날, 열 명의 아이들은 첫 살인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렇게 손에 피를 묻힌 열 명의 아이들은 각각 1호부터 10호까지 이름을 부여받아 황제의 그림자가 되었다.
황제의 그림자는 임명과 동시에 임무에 배치되었다. 제국 전역을 돌며 황제의 뜻에 반하는 이들을 처단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두 명의 암살자가 사망했고, 한 명의 암살자는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마지막으로 두 명의 암살자는 도망치다 잡혀 처형됐다.
그렇게 백 명으로 시작한 고아 집단은 열 명의 황제의 그림자가 되었고, 현재는 그중 다섯 명만이 남아 황제의 명에 따라 사람들을 암살하고 있었다.
“오늘 내가 온 것은 너희에게 임무를 내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황제 폐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이다.”
“….”
“너희 다섯의 노고를 황제 폐하께서는 알고 계시다. 그리고 너희의 노고를 칭찬하시며, 상을 내리라 하셨다. 자, 들어와라.”
란데의 지시가 떨어지자 다시 한번 문이 열리며 이번에는 몇 명의 시종들이 들어왔다. 앞서 들어온 시종들의 손에는 식탁과 의자가 들려있었고, 이어서 들어오는 시종들의 손에는 갖가지 음식과 술이 들려있었다.
시종들은 빠르게 방 중앙에 식탁과 의자를 깔아놓았다. 그리고 그 위를 들고 온 음식과 술로 가득 채워놓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너희가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고 즐기라 하셨다. 당분간 임무는 없을 예정이니, 오늘만큼은 마음껏 먹고 즐기도록 하거라. 자, 그러면 편하게 쉬거라.”
말을 마친 란데는 시종들과 함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다섯 암살자는 각자의 자리에서 나와 란데의 시종들이 깔아놓은 음식을 가운데 두고 둥글게 서서 음식을 응시했다.
구운 고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갓 구운 흰 빵에서는 고소한 냄새가 났다. 윤기가 흐르는 과일과 처음 보는 색깔의 술까지. 평소 그들에게 주어지던 것은 딱딱하게 굳은 검은 빵과 물 같은 수프가 전부였다. 그런 그들에게 눈앞의 식탁은 마치 다른 세상의 것처럼 보였다.
“와… 이게 다 뭐야. 이거 진짜 우리 먹으라고 준 거 맞아?”
10호가 침을 꿀꺽 삼키며 중얼거렸다. 그의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나머지 넷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식탁을 내려다볼 뿐이었다. 7년 동안 이 방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몸에 배어 있었다. 이유 없는 친절은 없다는 것.
그리고 2호는 한 가지 더 눈치챈 것이 있었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나지 않았다.’
란데가 나가며 닫은 문. 평소라면 반드시 철컥, 하고 잠금장치가 걸리는 소리가 들려야 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윽고 다른 암살자를 번갈아 쳐다보던 10호가 손을 뻗어 음식을 쥐려고 할 때였다. 옆에 서 있던 4호가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4호? 뭐야, 왜 그래?”
“먹지 마라. 수상하다.”
“뭐? 뭐가?”
10호가 4호를 응시했다. 이윽고 독살의 전문가이자, 독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7호가 음식에 손가락을 갖다댄 후, 다시 가져와 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독은 없어. 하지만.”
7호가 고개를 돌려 2호와 눈을 맞췄다.
“희미하게 발레리안 향과 캐모마일 향. 그리고 알코올 향이 나. 그 외에도 몇 가지 향이 더 나는데, 모두 수면제 성분이야.”
“수면제? 황제 폐하께서 우리가 푹 자서 푹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나 보다.”
“그럴 리가 있겠냐.”
10호의 말에 8호가 으르렁거리며 그의 허벅지를 걷어찼다.
“도대체 왜 이래? 다들 무슨 일 있어?”
지금의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지 답답한 10호가 동료들을 재촉했다. 저를 제외한 다른 암살자들은 지금의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어 보이지만, 저만큼은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10호가 다른 암살자들을 응시했다. 모든 암살자의 눈은 한 명을 향해있었다. 2호였다.
2호는 침묵한 채 음식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눈을 질끈 감으며 고개를 올렸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
“아니, 도대체 무슨 상황인데? 왜 나만 모르는 거야?”
“너니까 너만 모르지, 이 새끼야.”
8호가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10호가 발끈하며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7호가 입을 열며 그의 말을 막았다.
“10호. 우리가 뭐야?”
“우리? 황제의 그림자지.”
“그러니까, 황제의 그림자가 뭐 하는 건데?”
“황제의 그림자가 뭐냐니? 황제 폐하의 명령에 따라서 황제 폐하에게 반기를 드는 녀석들을 처단하는 거잖아? 나 바보 아니야.”
“그래, 맞아. 우리는 황제의 뜻을 거스르는 녀석들을 처리하는 애들이지. 그런데 잘 생각해 봐.”
“….?”
“우리가 처리한 사람들이, 전부 반드시 죽었어야 할 사람들이었어?”
“….!”
7호의 물음에 10호가 침묵했다. 단순한 그였지만, 그 또한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임무라는 명목으로 그가 죽여야 했던 사람들. 그들 중에는 분명 황제의 뜻에 반해, 그에게 검을 들이 미려는 권력자들도 몇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 외의 사람들은?
“내 저번 단독 임무는 한 남자를 죽이는 일이었어.”
7호가 말했다.
“평범한 남자였어. 자그마한 밭을 가꾸며 밭에서 나는 농작물로 아내와 함께 딸을 키우며 살아가는, 아주 평범한 남자였어.”
“….”
“왜 이 사람을 죽여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됐어. 그래서 죽이기 직전에 물어봤지. 당신은 황제 폐하께 무슨 죄를 지었냐고. 그랬더니 모른다는거야. 그래서 계속 추궁했지. 너는 분명 황제 폐하께 큰 죄를 지었다고. 무슨 죄를 지은건지 솔직하게 말하라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알아?”
7호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황제를 욕했다고. 그게 전부라고.”
그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7호는 평소처럼 웃지 않았다. 2호에게 독 경단을 내밀지도 않았고, 8호와 말싸움을 하지도 않았다. 그저 침대 구석에 무릎을 끌어안고 앉아 한참 동안 벽만 바라보았다. 그날 밤 7호는 독을 만들지 않았다.
2호는 그날의 7호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 방 안의 누구도 '반역자 처단'이라는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게 되었다.
황제의 명에 반한 반란자를 제거하는 일. 그것이 바로 황제의 그림자가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별도의 암살단이 필요할 정도로 반란이 잦은가?
그럴 리가 없다. 그 정도로 반란이 많이 일어나는 상황이라면 이미 제국은 망해 없어졌어야 한다.
그런데도 황제의 그림자는 계속해서 암살을 수행했다. 그 말은 무엇인가?
굳이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어도 상관없다.
그들이 암살하는 대상은 굳이 반란자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저 황제의 뜻에 거슬리는 자들.
아니, 굳이 따지자면 황제에게 미움을 산 자들.
크게는 그에게 반기를 들거나 들 예정이며, 작게는 술자리에서 그의 험담을 한 자들.
그런 자들을 제거하는 것.
그것이 황제의 그림자가 해왔던 일이었다.
“맞다. 반란 같은 거창한 이유가 없어도 상관없다. 그저 황제가 싫어하는 사람을 성별, 직위, 나이에 구애받지 않고 암살해 없애버리는 것. 그게 우리가 해왔던 일이다.”
2호가 말했다.
그렇다면 이렇게 암살단을 조작해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이들을 숙청하는 황제는 현재 세간에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황제는 성군이라 불린다.”
현 황제, 아우스페로 솔리아는 성군이라 불린다. 적어도 남들이 보는 면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2호는 알고 있다. 비록 그를 실제로 만난 적은 없으나, 그가 시키는 일을 해오며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
‘황제는 옹졸한 놈이다.’
옹졸하고, 비겁한 성격. 그것이 황제의 본성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자신의 본성을 절대 남들 앞에 내놓지 않는다. 그는 철저하게 대인배를 연기하며 성군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러나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는 아니었다. 그는 제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심복인 란데에게 명해 제국 곳곳에서 아이들을 모아 암살단을 꾸리고,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이들은 죄의 크고 적음을 구분하지 않고 전부 암살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언젠가는 밟히는 법이다.
“요즘 우리의 존재를 눈치채는 이들이 생긴다고 하더군.”
2호도 느끼고 있었다. 최근 들어 임무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었다. 목표물의 주변에는 미리 경비가 늘어나 있는 일이 잦았고, 어떤 목표물은 아예 몸을 숨기고 저택 밖으로 나오지 않기도 했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노리고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는 것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암살단이 활개를 친다. 그런데 그들이 암살하는 대상이, 하나같이 아주 사소하게라도 황제의 심기를 거슬리게 했던 이들이다.
그런 상황에서 어둠 속에 숨어있던 황제의 그림자는 조금씩 그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황제와 란데는 황제의 그림자를 숨기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많은 사람이 어렴풋이 진실을 눈치채고 있었고, 마침내 황제의 그림자가 세상에 드러나게 된다면 성군으로 불리는 황제는 큰 타격을 입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황제는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죽여서, 애초에 황제의 그림자라는 것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려는 거겠지.”
아직 황제의 그림자라는 단체를 입증할 명확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황제의 그림자 단원이라는 명확한 증거를 굳이 세상에 노출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증거를 지우는 방법은, 당연히 이 세상에서 증거를 없애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암살자들에게 수면제가 든 음식과 술이 제공된 이유였다.
“이걸 처먹고 우리가 잠들면 란데의 기사 놈들이 들어와서 우리를 죽여버릴 거다.”
8호가 으르렁거리며 탁자를 발로 걷어찼다. 탁자 위를 가득 채운 음식과 술이 바닥에 쏟아지며 가뜩이나 더러운 바닥을 더욱 더럽혔다.
“…. 말도 안 돼. 그동안 얼마나 충성을 바쳤는데….”
모든 전말을 알게 된 10호가 망연자실한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4호와 7호 또한 쉽게 분노를 감추지 못한 채 씩씩거렸다.
“지를 위해 개처럼 일해줬는데, 결국 우리를 버려? 게다가 내가 있는데 이딴 수면제로 장난을 치려고 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 거야.”
“2호 어떻게 할 거냐.”
4호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2호에게 집중되었다. 모두가 리더인 2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 후.”
2호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10살. 어린 나이에 고아원 원장 손에 이끌려 란데를 만났다. 그리고 란데의 손에 이끌려 이 방으로 들어왔고,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5년간 혹독한 훈련을 받았고, 그 안에서 간신히 살아남았다. 그리고 2년간 임무를 수행하며, 그 안에서도 살아남았다.
죽음을 무릅쓰고 황제를 위해 헌신했다. 물론 그것이 저의 의지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어찌 됐든 2호와 황제의 그림자가 황제를 위해 헌신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그거에 대해 보상을 바랐던 적은 없었다.’
그렇다고 이렇게 버림받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문득 1호와 6호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벗어나겠다며 도망쳤다가, 결국 자루에 담겨 돌아온 6호와 시체도 발견되지 못한 1호.
1호는 떠나기 전날 밤 2호에게 말했었다. 언젠가 이곳을 나가면, 아이들을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 말을 들었을 때 2호는 그저 잠이나 자라고 대답했었다.
‘그 녀석들도, 이런 기분이었으려나.’
2호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암살자들은 재촉하지 않고 여전히 2호에게 눈을 떼지 않은 채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2호의 눈이 떠졌다. 동시에 그의 입이 열렸다.
“가자.”
“어디를?”
“여기 말고 어디든.”
2호의 말에 8호가 씨익 미소지으며 제 가슴을 쾅쾅 쳤다. 주저앉아있던 10호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4호는 어느새 자신의 레이피어를 꺼내 손에 쥔 상태였으며, 7호도 헐레벌떡 자신의 침대로 가 서랍에서 그간 만들어놓은 각종 독극물을 꺼냈다.
2호 또한 제자리로 돌아갔다. 곧 그는 침대 옆에 놓아두었던 단검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다섯 암살자는 무장을 끝냈다. 2호가 앞장서 걸어가며, 방 끝에 있는 문을 열었다. 평소라면 잠겨있을 문은 열려있었다. 2호가 문밖으로 나가 긴 복도를 걸었고, 그 뒤를 네 암살자가 따랐다.
다섯 암살자는 그렇게 복도를 따라 걸었다. 곧 복도의 끝에는 올라가는 계단이 있었고, 계단 끝에는 바깥과 통하는 철문이 있었다.
암살자들이 계단을 올랐다.
한 칸, 또 한 칸. 계단을 오를 때마다 공기가 조금씩 차가워졌다. 바깥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야, 2호.”
바로 뒤에서 8호가 낮게 웃었다.
“나가면 제일 먼저 뭐 할 거냐.”
2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 방 밖에서, 임무가 아닌 무언가를 한다는 것을.
“…나가서 생각하지.”
“싱겁긴.”
그렇게 계단의 끝에서, 앞장서고 있던 2호가 철문을 밀었다. 마찬가지로 잠겨있지 않은 철문은 쉽게 열렸고, 동시에 바깥의 풍경이 암살자들의 눈에 들어왔다.
철문 밖에는 여러 사람이 서서 암살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의 가장 앞에 선, 란데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
“결국, 이렇게 됐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