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우리 무슨 사이야?
作 루시엘 · 2026-10-19
## 8화. 우리 무슨 사이야?
하린은 아침부터 몇 번이나 거울을 들여다봤다.
오늘은 평소와 조금 다른 날이었다.
강이준에게 정식으로 고백을 받기로 한 날.
물론 이준이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젯밤 메시지를 생각하면 분명했다.
내일은 제가 정식으로 고백할게요.
그 문장을 읽은 순간부터 하린은 제대로 잠들지 못했다.
고백.
누군가에게 좋아한다는 말을 듣는 것과,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받는 것은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두 사람은 서로 좋아한다고 이야기했다. 손도 잡았고, 포옹도 했다. 매일 연락하며 다음 만남을 기다렸다.
그런데 오늘은 그 관계에 이름을 붙이는 날이었다.
친구도 아니고, 썸을 타는 사이도 아닌.
서로의 연인이 되는 날.
하린은 거울 앞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혼잣말했다.
"아, 진짜 떨려……."
평소보다 조금 밝은 색의 원피스를 골랐다. 너무 화려하지도, 너무 평범하지도 않은 옷이었다.
머리카락은 자연스럽게 내려놓고, 입술에는 연한 분홍색 립스틱을 발랐다.
거울 속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던 하린은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가 이렇게까지 한다고?"
예전에는 누군가를 만나러 나갈 때 이렇게 긴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준은 달랐다.
그를 만나기 전에는 설렜고, 만나고 나면 아쉬웠다. 헤어지고 나면 다시 보고 싶었고, 연락이 오면 하루가 환해졌다.
이제는 그가 자신의 남자친구가 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린은 휴대폰을 들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강이준: 하린 씨, 일어났어요?
하린은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네! 준비하고 있어요ㅎㅎ
강이준: 오늘 예쁘게 하고 오려고요?
하린은 눈을 크게 떴다.
서하린: 어떻게 알았어요ㅋㅋㅋ
강이준: 그냥요. 오늘은 저한테 특별한 날이니까.
하린은 휴대폰을 가슴에 끌어안았다.
정말이지 이 남자는 한마디로 사람을 정신없게 만들었다.
서하린: 이준 씨도 특별하게 하고 오세요!
강이준: 알겠습니다.
잠시 후 메시지가 하나 더 도착했다.
강이준: 그런데 하린 씨.
서하린: 네?
강이준: 오늘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말아요.
하린은 그대로 굳었다.
'무슨 말을 해도 놀라지 말라니?'
혹시 고백을 앞두고 긴장한 걸까?
아니면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말을 하려는 걸까?
하린은 한참을 고민하다가 답장을 보냈다.
서하린: 무슨 말인데요?
이번에는 답장이 오지 않았다.
몇 초 뒤, 메시지가 도착했다.
강이준: 만나서 이야기해 줄게요.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진짜 사람 궁금하게 만드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이준을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그에게 꼭 말해 주고 싶었다.
자신도 그를 좋아한다고.
그와 정식으로 연인이 되고 싶다고.
하린은 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오늘만큼은 모든 것이 잘될 것 같았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오후 두 시 오십 분.
하린은 약속 장소인 카페 앞에 도착했다.
약속 시간보다 십 분이나 일찍 도착했지만, 이준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하린은 카페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머리카락을 한 번 정리하고, 원피스의 주름을 살짝 펴 주었다.
그리고 휴대폰을 확인했다.
메시지는 없었다.
'아직 출발 안 했나?'
하린은 잠시 기다리다가 메시지를 보냈다.
서하린: 이준 씨, 어디예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하린은 카페 앞에 서서 주변을 둘러봤다.
약속 시간인 세 시가 됐다.
그리고 십 분이 지났다.
하린은 휴대폰을 다시 확인했다.
아직 연락이 없었다.
'무슨 일 있나?'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평소의 이준이라면 늦을 때 먼저 연락했을 것이다. 혹시 갑자기 일이 생긴 걸까?
하린은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이어졌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바쁜가 보다.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카페 앞에 서 있었다.
그런데 십 분쯤 더 지났을 때였다.
멀리서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강이준이었다.
하린은 반가운 마음에 손을 흔들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이준의 옆에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여자였다.
단정한 옷차림의 여자가 이준과 나란히 걷고 있었다.
두 사람은 무언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여자는 심각한 표정이었고, 이준 역시 평소와 달리 웃고 있지 않았다.
하린은 천천히 손을 내렸다.
'누구지?'
두 사람은 카페 앞쪽으로 다가왔다.
그제야 이준이 하린을 발견했다.
"하린 씨!"
이준이 걸음을 재촉했다.
"미안해요. 많이 기다렸어요?"
하린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의 시선은 이준의 옆에 있는 여자에게 향해 있었다.
이준은 하린의 표정을 살피다가 뒤늦게 여자를 돌아봤다.
"아, 하린 씨. 이쪽은……."
그때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린은 얼떨결에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여자는 하린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준에게 말했다.
"그럼 아까 이야기한 건 나중에 다시 연락할게."
"응. 알겠어."
여자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하린은 그 뒷모습을 바라봤다.
아까 이야기한 것.
나중에 다시 연락하겠다는 말.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이준은 약속 시간에 늦었다.
그것도 다른 여자와 함께 나타났다.
하린은 애써 웃으며 물었다.
"……누구예요?"
이준은 잠시 망설였다.
"회사 동료예요."
"회사 동료요?"
"네.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래서 늦으신 거예요?"
"맞아요. 미리 연락했어야 했는데 정말 미안해요."
이준은 진심으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그의 표정만 보면 정말 갑작스러운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런데 마음이 쉽게 놓이지 않았다.
여자는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이었을까.
왜 이준과 함께 왔을까.
왜 자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연락하지 못했을까.
하린은 수많은 질문을 삼켰다.
오늘은 정식으로 고백을 받기로 한 날이었다.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괜찮아요."
하린은 애써 웃었다.
"일이 생길 수도 있죠."
이준은 그녀의 얼굴을 살폈다.
"정말 괜찮아요?"
"네."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 들어갈까요?"
이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두 사람은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하린의 마음은 조금 전부터 이상하게 무거워져 있었다.
카페 안.
두 사람은 창가 자리에 마주 앉았다.
이준은 하린이 좋아하는 음료를 주문해 주려고 했다.
"하린 씨, 오늘은 뭐 마실래요?"
"아무거나 괜찮아요."
이준의 손이 잠시 멈췄다.
평소 같으면 하린은 메뉴를 고르며 이것저것 이야기했을 것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료를 기억해 주는 이준에게 고맙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하린은 메뉴판을 바라보지도 않았다.
이준은 조용히 물었다.
"하린 씨, 정말 괜찮아요?"
"네. 왜요?"
"오늘 조금……."
이준은 말을 고르다가 멈췄다.
"아니에요."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무슨 말 하려고 했어요?"
"그냥, 제가 많이 늦어서 미안하다고요."
이준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기다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하지만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다.
괜찮지 않았다.
늦은 것 자체보다, 그 시간 동안 아무 연락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 서운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와 함께 나타난 모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다.
하린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아까 그분이랑 무슨 일 있었어요?"
이준은 잠시 생각했다.
"회사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어요."
"중요한 일이었어요?"
"네. 조금 복잡한 일이었어요."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묻고 싶었다.
하지만 이준의 표정이 조금 굳어 있는 것을 보자 입을 다물었다.
그는 평소보다 말수가 적었다.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했고, 가끔 휴대폰을 확인하기도 했다.
하린은 괜히 불안해졌다.
'혹시 나랑 만나기 싫어진 건가?'
그런 생각이 떠오르자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준은 어제도 자신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오늘 고백하겠다고도 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변했을 리 없었다.
하린은 스스로를 달래며 웃어 보였다.
"이준 씨."
"네?"
"오늘 저한테 할 말 있다고 했잖아요."
그제야 이준의 표정이 조금 밝아졌다.
"맞아요."
그는 주머니에서 접어 둔 종이를 꺼내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휴대폰이 울렸다.
이준은 화면을 확인하자 표정이 굳었다.
하린은 그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무슨 일이에요?"
이준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미안해요. 잠깐 전화 좀 받을게요."
"네."
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카페 밖으로 나갔다.
하린은 그가 나가는 모습을 바라봤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인 자신의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오늘 하루가 자신이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이준이 전화를 받으러 나간 사이, 하린은 창밖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손을 잡고 걸었고, 누군가는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평범한 오후였다.
그런데 하린에게는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는 행복했다.
오늘 이준에게 고백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와 연인이 되는 순간을 상상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이준이 돌아오기를.
그리고 자신이 불안해하는 이유를 설명해 주기를.
하린은 손을 꽉 쥐었다.
'또 시작이네.'
이런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았다.
상대방이 연락이 늦었다고 해서, 다른 여자와 함께 있었다고 해서, 무조건 나쁜 쪽으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은 이준을 믿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먹었다.
그런데 믿는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웠다.
과거의 기억은 생각보다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예전에도 처음에는 모든 것이 좋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들었고, 다정한 행동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상대방은 자신에게 설명하지 않는 일이 많아졌다.
바쁘다는 말이 늘어났고, 연락이 줄어들었다.
그리고 결국 다른 여자가 있었다.
하린은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강이준은 자신이 만났던 사람과 다르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왜 하필 오늘 이런 일이 생겼을까.
왜 하필 고백을 받기로 한 날에.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때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두 여자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까 저 남자 봤어?"
"응. 누구 기다리는 것 같던데?"
"여자친구인가?"
하린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은 카페 밖을 바라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근데 아까 다른 여자랑 같이 오지 않았어?"
"맞아. 둘이 엄청 심각하게 이야기하던데."
하린의 손끝이 차가워졌다.
물론 그들은 이준을 아는 사람들이 아닐 것이다.
그저 우연히 본 장면을 이야기하는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이상하게 마음에 박혔다.
다른 여자랑 같이 오지 않았어?
하린은 고개를 숙였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쳤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십 분쯤 지나서야 이준이 돌아왔다.
그는 자리에 앉으며 미안하다는 듯 웃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이준은 그녀를 잠시 바라봤다.
"하린 씨."
"네."
"저 오늘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하린의 심장이 뛰었다.
이준은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접어 둔 종이를 꺼내려는 듯했다.
그런데 그 순간 휴대폰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메시지였다.
이준은 화면을 확인하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린은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이준 씨."
"네?"
"오늘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이준은 잠시 멈췄다.
"……미안해요."
"계속 연락이 오잖아요."
하린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제가 기다리고 있는데도 계속 다른 일에 신경 쓰고 있고……."
이준은 놀란 듯 그녀를 바라봤다.
"하린 씨, 그런 뜻은 아니에요."
"그럼 무슨 뜻인데요?"
말이 생각보다 날카롭게 나왔다.
하린은 곧바로 후회했다.
하지만 이미 입 밖으로 나온 말이었다.
이준은 휴대폰을 뒤집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미안해요. 오늘은 정말 예상하지 못한 일이 생겼어요."
"그럼 저한테 말해 주면 되잖아요."
하린은 애써 목소리를 낮췄다.
"무슨 일인지, 왜 늦었는지, 왜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그 여자분이랑 이야기했는지……."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저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이준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하린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그건 맞아요. 제가 설명을 제대로 못 했어요."
하린은 눈을 내리깔았다.
이준은 미안하다고 했다.
자신이 잘못했다고 인정했다.
그런데도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았다.
하린은 결국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꺼냈다.
"그 여자분…… 정말 회사 동료예요?"
이준은 잠시 멈췄다.
"네."
"그런데 왜 그렇게 심각하게 이야기했어요?"
"개인적인 사정이 조금 섞인 일이라서요."
하린은 그 말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개인적인 사정.
회사 일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인 사정도 섞여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 여자와 이준 사이에는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다는 뜻일까.
하린은 천천히 물었다.
"저한테 말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이준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짧은 침묵이 하린에게는 너무 길게 느껴졌다.
"……지금은 조금 그래요."
이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먼저 정리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하린 씨한테 숨기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숨기려는 게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은 말할 수 없다고 했다.
하린은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내가 믿어 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나한테 말하지 못할 정도라면 무언가 있는 걸까?'
하린은 자신이 싫어졌다.
또다시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수많은 의미를 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자신이 이준의 여자친구가 되는 날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앞으로는 더 솔직하게 이야기하자고 약속할 줄 알았다.
그런데 이준은 자신이 모르는 일이 있다고 했다.
하린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준 씨."
"네."
"우리…… 지금 무슨 사이예요?"
이준의 표정이 굳었다.
하린은 손끝을 꼭 쥐었다.
"서로 좋아한다고 말했잖아요. 보고 싶다고도 하고, 매일 연락하고……."
그녀는 억지로 웃으려 했다.
"그런데 저는 오늘 무슨 일이 있는지도 모르고, 이준 씨가 누구랑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고……."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제가 이준 씨한테 어디까지 물어봐도 되는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린은 눈을 내리깔았다.
"제가 너무 앞서간 거예요?"
"하린 씨."
"아니면 저 혼자 너무 진지하게 생각한 걸까요?"
하린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준 씨는 그냥 저랑 알아 가는 게 좋았던 건데, 저는……."
그녀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이준은 급히 손을 뻗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하지만 하린은 그의 손을 잡지 못했다.
"그럼 뭐예요?"
하린이 물었다.
"저는 이준 씨가 좋아요. 그래서 기다리는 것도 좋았고, 연락하는 것도 좋았고, 같이 있는 것도 좋았어요."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그런데 오늘은…… 제가 뭘 믿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하린이 이렇게까지 불안해할 줄 몰랐다.
자신은 단지 갑작스러운 일을 처리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린에게 고백할 준비도 해 왔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 그녀를 혼자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설명하지 못한 부분 때문에 하린이 과거의 상처를 떠올리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이준은 입술을 깨물었다.
"하린 씨, 제발……."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를 조금만 믿어 주면 안 돼요?"
하린의 눈빛이 흔들렸다.
믿어 달라는 말.
예전에도 들었던 말이었다.
왜 나를 못 믿어?
그런 일 아니야.
네가 너무 예민한 거야.
그때도 자신은 믿으려고 했다.
하지만 결국 혼자 상처받았다.
하린은 고개를 저었다.
"믿고 싶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저도 이준 씨를 믿고 싶어요. 정말로요."
그녀는 눈물을 닦았다.
"그런데 믿으려면…… 저도 알아야 하잖아요."
이준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미안해요."
"하린 씨, 잠깐만요."
이준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디 가요?"
하린은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집에 갈게요."
이준은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려다 멈췄다.
억지로 붙잡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하린 씨. 오늘 제가 하려고 했던 말이 있어요."
하린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
이준은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저 오늘…… 하린 씨한테 정식으로 고백하려고 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