閉じる

2화. 술 때문이 아니야

作 루시엘 · 2026-10-19

## 2화. 술 때문이 아니야

“혹시 번호 물어봐도 될까요?”

강이준의 질문이 끝나자 서하린은 그대로 굳어버렸다.

분명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 같기는 했다.

하지만 정말로 번호를 물어볼 줄은 몰랐다.

하린은 눈앞의 남자를 바라봤다. 가까이에서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잘생겼다. 차분하게 내려앉은 눈매와 웃을 때 살짝 휘어지는 입꼬리까지.

그런 남자가 자신에게 번호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진지한 얼굴로.

“……네?”

하린이 되묻자 이준은 잠깐 웃었다.

“갑작스러웠죠?”

“아, 네. 조금요.”

“죄송해요. 갑자기 다가와서 놀라셨을 것 같아요.”

이준은 머리를 한번 쓸어 넘겼다.

아까 친구 앞에서는 자신만만하게 이야기했지만, 막상 하린 앞에 서니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었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이어갔을 텐데 지금은 달랐다.

그녀가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었다.

하린은 그런 이준의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생각보다 긴장했네.’

조금 전까지는 여유로워 보였는데, 지금은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마저 어색했다.

하린은 괜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네.”

“저를 왜요?”

이준은 잠깐 눈을 깜빡였다.

“네?”

“왜 제 번호를 물어보시는 거예요?”

이준은 예상했던 질문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마음에 들어서요.”

“……네?”

“처음 봤을 때부터 계속 눈이 갔어요.”

하린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준은 그녀가 부담스러워할까 봐 서둘러 덧붙였다.

“물론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당황스러우실 거 알아요. 불편하시면 거절하셔도 괜찮아요.”

그는 진심이었다.

번호를 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하린이 불편하지 않은 것이었다.

하린은 잠시 생각했다.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번호를 물어보는 일은 흔하지 않았다. 게다가 자신을 처음 봤을 때부터 마음에 들었다고 말하다니.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그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질문을 꺼냈다.

“혹시 술 취하셨어요?”

이준은 순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역시 그 질문이 나왔다.

“조금 마시기는 했어요.”

하린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럼 술김에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아니요.”

이준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술에 취해서 하는 말 아니에요.”

그는 하린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술을 안 마셨어도 번호 물어봤을 거예요.”

하린은 그 말에 심장이 이상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너무 자연스럽게 말해서 오히려 더 당황스러웠다.

“…….”

“부담 주려는 건 아니에요.”

이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냥 한번 이야기해 보고 싶었어요. 괜찮으시면 연락하면서 알아가고 싶고요.”

하린은 그를 바라봤다.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도 아니었고,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는 모습도 아니었다.

정말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린은 친구 쪽을 힐끗 바라봤다.

채원은 눈을 반짝이며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채원은 입 모양으로 말했다.

‘줘!’

하린은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미쳤어?’

채원은 두 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었다.

하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다시 이준을 바라봤다.

“저…….”

“네.”

“번호 드리면 연락하실 거예요?”

이준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당연하죠.”

“정말요?”

“네. 제가 먼저 물어봤는데 연락 안 하면 안 되죠.”

하린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이상했다.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가 웃으면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고 싶어졌다.

조금 더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하린은 결국 휴대폰을 꺼냈다.

“그럼…… 번호 드릴게요.”

이준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정말요?”

“네.”

“감사합니다.”

그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을 지었다.

하린은 그 표정을 보며 피식 웃었다.

‘번호 하나 받았다고 저렇게 좋아하네.’

그런데 이상하게 그 모습이 싫지 않았다.

하린이 번호를 알려주자 이준은 자신의 휴대폰에 조심스럽게 저장했다.

이름을 입력하려던 순간, 그가 고개를 들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서하린이요.”

“서하린…….”

이준은 그녀의 이름을 천천히 따라 말했다.

마치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것처럼.

“이름도 예쁘시네요.”

하린은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아…… 감사합니다.”

“저는 강이준이에요.”

“네. 강이준 씨.”

하린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이준은 괜히 웃었다.

자신의 이름을 처음 듣는 그녀의 목소리가 생각보다 마음에 들었다.

“그럼 연락드릴게요.”

“네.”

이준은 한 걸음 물러섰다가 다시 멈췄다.

“아, 그리고.”

“네?”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하린은 작게 웃었다.

“저도요.”

이준은 그제야 돌아섰다.

하지만 몇 걸음 걷다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하린도 마침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이준이 웃었다.

하린도 웃었다.

그 짧은 순간, 두 사람은 동시에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서로 다른 자리에서 같은 생각을 했다.

‘큰일 났네.’

“야아아아!”

이준이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도윤이 두 손으로 테이블을 두드렸다.

“받았어? 번호 받았어?”

“목소리 좀 낮춰.”

“받았냐고!”

“받았어.”

“와아아아!”

도윤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미쳤다. 진짜 받았네?”

“내가 못 받을 줄 알았냐?”

“솔직히 말하면 반반이었어.”

“야.”

“아니, 네가 너무 긴장해서 중간에 도망갈 줄 알았지.”

이준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내가 왜 도망가.”

“몰라. 네 얼굴이 너무 진지해서.”

도윤은 이준의 휴대폰을 가리켰다.

“이름 뭐라고 저장했어?”

“서하린.”

“그냥 이름만?”

“그럼 뭘로 저장해?”

“첫눈에 반한 여자?”

“미쳤냐?”

도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아, 진짜 너 오늘 왜 이렇게 귀엽냐.”

“한 번만 더 놀리면 간다.”

“알았어, 알았어.”

도윤은 웃음을 조금 가라앉히고 물었다.

“근데 어땠어?”

“뭐가?”

“가서 이야기해 보니까.”

이준은 잠시 생각했다.

하린이 당황하던 얼굴.

술에 취한 건 아니냐고 묻던 목소리.

번호를 알려주겠다고 말하던 순간의 표정.

하나씩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좋았어.”

도윤은 잠깐 그를 바라봤다.

“진짜네.”

“뭐가.”

“너 진짜 마음에 들었구나.”

이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휴대폰을 내려다봤다.

화면에는 방금 저장한 이름이 떠 있었다.

서하린.

이름 석 자가 이렇게 마음에 들 줄은 몰랐다.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꺼냈다.

도윤이 그 모습을 보고 혀를 찼다.

“야, 아직 연락도 안 했는데 벌써 그러면 어떡하냐?”

“뭘.”

“그렇게 휴대폰 확인할 거면 그냥 지금 연락해.”

이준은 잠깐 망설였다.

“지금 보내도 되나?”

“번호를 왜 물어봤는데?”

“…….”

“연락하려고 물어본 거잖아.”

이준은 웃었다.

“그렇긴 하지.”

그는 메시지 창을 열었다.

그리고 한참 동안 입력창만 바라봤다.

‘잘 들어갔어요?’

너무 평범한가.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이건 조금 전에도 말했는데.

‘지금 뭐 해요?’

이건 너무 갑작스럽지 않나.

이준은 머리를 긁적였다.

도윤이 옆에서 화면을 힐끗 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야, 너 지금 메시지 하나 쓰는데 무슨 자기소개서 쓰냐?”

“시끄러워.”

“그냥 보내!”

이준은 결국 짧게 메시지를 입력했다.

> 하린 씨, 저 이준이에요.

>

>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보내기 버튼을 누른 뒤 이준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보냈다.”

도윤이 박수를 쳤다.

“축하합니다. 강이준 씨의 첫 번째 플러팅이 성공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아, 진짜!”

이준은 웃으면서도 휴대폰을 다시 집어 들었다.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다.

그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바쁘신가…….”

도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직 삼십 초도 안 지났거든?”

한편, 하린은 여전히 친구들과 술집에 앉아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채원에게 붙잡혀 있었다.

“그래서!”

채원이 테이블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이름이 강이준이라고?”

“응.”

“몇 살인지는 물어봤어?”

“아니.”

“직업은?”

“그것도 몰라.”

“사는 곳은?”

“그것도 모르거든!”

하린이 결국 소리쳤다.

채원은 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번호까지 교환했는데 아무것도 모르면 어떡해?”

“갑자기 그런 걸 어떻게 다 물어봐!”

“그럼 내일 물어봐.”

“내일?”

하린은 무심코 되물었다.

채원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머?”

“왜.”

“너 내일 또 만날 생각이야?”

“아니거든!”

“그런데 왜 내일이라는 말에 그렇게 반응해?”

“그냥 물어본 거잖아!”

채원은 하린의 손을 붙잡았다.

“솔직하게 말해 봐.”

“뭘?”

“잘생겼지?”

하린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

채원이 다시 물었다.

“마음에 들었지?”

“…….”

“하린아.”

“……조금.”

“뭐라고?”

“조금 마음에 들었다고!”

하린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자 채원은 환호했다.

“세상에! 서하린이 남자한테 관심이 있대요!”

“야!”

“이거 기념일 아니야?”

하린은 웃으며 채원의 어깨를 밀었다.

“너 진짜 조용히 안 해?”

“알았어, 알았어.”

채원은 장난스럽게 손을 들었다.

그러다가 하린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근데 괜찮겠어?”

“뭐가?”

“연락하면서 알아가는 거.”

하린은 잠시 말이 없었다.

채원은 하린이 지난 연애에서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알고 있었다.

처음에는 다정했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연락을 피하고, 약속을 미루고, 결국 다른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하린은 한동안 누구도 쉽게 믿지 못했다.

좋아하는 마음이 생겨도 스스로 감정을 억누르곤 했다.

채원은 그런 하린이 걱정됐다.

“너무 빨리 마음 주지는 마.”

하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사람은 조금씩 알아가는 거야. 처음에 다정하다고 무조건 좋은 사람인 건 아니니까.”

“응.”

채원은 하린의 손을 한번 꼭 잡았다.

“그래도 네가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건 좋은 일이야.”

하린은 친구를 바라봤다.

“……그렇게 보여?”

“응.”

채원이 웃었다.

“오늘 너 표정이 좀 달랐어.”

“어떻게?”

“계속 웃더라.”

하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정말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이준이 다가왔을 때부터 자신은 계속 웃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술을 안 마셨어도 번호 물어봤을 거예요.’

하린은 작게 웃었다.

“그 사람이 좀 신기하긴 했어.”

“뭐가?”

“보통 그렇게 대놓고 말하기 쉽지 않잖아.”

“그렇지.”

“그런데 엄청 진지하게 말하더라.”

하린은 손가락으로 잔을 만지작거렸다.

“그래서 조금…….”

“조금?”

“궁금해.”

채원은 더 이상 놀리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천천히 알아가 봐.”

하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진동했다.

하린은 무심코 화면을 확인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

하지만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강이준.

하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메시지를 열었다.

> 하린 씨, 저 이준이에요.

>

> 오늘 만나서 반가웠어요. 집에 조심히 들어가세요.

하린은 화면을 한참 바라봤다.

채원이 옆에서 고개를 내밀었다.

“왔어?”

“……응.”

“뭐래?”

하린은 휴대폰을 가슴 쪽으로 가져갔다.

“그냥 잘 들어가래.”

“그냥?”

“응.”

채원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메시지인데!”

“뭐가 중요해?”

“처음 연락이잖아!”

하린은 다시 화면을 내려다봤다.

짧은 메시지였다.

특별한 말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

집에 잘 들어갔는지 궁금해한다는 것.

그리고 먼저 연락해 줬다는 것.

그 작은 사실들이 마음을 간질였다.

하린은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 저도 오늘 반가웠어요.

>

> 이준 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보내고 나서 하린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곧바로 답장이 왔다.

> 네. 그런데 하나 물어봐도 돼요?

하린은 눈을 깜빡였다.

> 뭔데요?

잠시 후 메시지가 도착했다.

> 내일 시간 괜찮아요?

하린은 그대로 굳었다.

‘내일?’

손끝이 조금 떨렸다.

채원이 옆에서 소리 없이 입을 벌렸다.

하린은 메시지를 다시 읽었다.

내일 시간 괜찮아요?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답장을 쓰지 못했다.

내일 만나자는 건가?

정말로 자신을 다시 만나고 싶다는 뜻일까?

아니면 그냥 가볍게 물어보는 걸까?

하린은 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어떡하지.’

마음은 이미 대답을 알고 있었다.

만나고 싶었다.

오늘보다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이야기해 보고 싶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었다.

하지만 너무 쉽게 좋다고 대답하면 자신이 그를 기다렸다는 사실이 드러날 것 같았다.

채원이 하린의 얼굴을 들여다봤다.

“뭐래?”

“내일 시간 괜찮냐고…….”

“헐!”

채원은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만나자는 거잖아!”

“그런가?”

“그런가가 아니라 맞잖아!”

하린은 휴대폰을 꼭 쥐었다.

“뭐라고 답하지?”

채원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시간 괜찮다고 해.”

“너무 빨리 답하는 거 아니야?”

“야, 지금 몇 분째 고민하고 있는데!”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메시지를 입력했다.

> 내일은 시간 괜찮아요.

>

> 혹시 만나자는 말씀이세요?

보내기 버튼을 누른 순간 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아아, 나 뭐라고 보낸 거야!”

채원이 웃음을 터뜨렸다.

“잘했어!”

“뭐가 잘했어!”

“솔직하잖아!”

하린은 휴대폰을 내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화면이 다시 밝아졌다.

답장이었다.

> 네. 다시 만나고 싶어서요.

하린의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메시지가 도착했다.

> 오늘은 너무 짧게 이야기한 것 같아서요.

>

> 내일은 조금 더 오래 보고 싶어요.

하린은 입술을 살짝 벌렸다.

말문이 막혔다.

자신에게 이렇게 솔직하게 다가오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부담스럽게 밀어붙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애매하게 마음을 떠보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하린의 대답을 기다려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