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 살 막내 공녀님은 연애가 처음입니다
作 異邦人
잉크 방울은 종이에 번졌다. 레티시아는 그 위에 줄을 그었다.
'마님 사교비. 사 할 삭감.'
숫자는 숫자였다. 장부에서 약값 다음으로 큰 줄을 그냥 두고 12퍼센트를 말하는 건, 장사꾼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잤다. 그날 밤은 꿈도 꾸지 않았다.
오스윈: 이게 다 레티가 쓴 거냐?
공작의 서재. 책상 위에 종이 다섯 장이 펼쳐져 있었다. 레티시아의 글씨가 빼곡했다. 공작은 그것을 들고 이리저리 돌려 봤다. 율리안이 일정표를 처음 받았을 때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레티시아: 그레고르랑 같이 썼어요.
그레고르: 저는 숫자만 맞춰 드렸습니다.
그레고르가 문가에서 말했다. 공작은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종이를 내려놓았다.
오스윈: 말로 해 다오. 나는 글보다 말이 빠르다.
레티시아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레티시아: 첫째, 얼음. 창고 짚을 갈고 배수구를 뚫었어요. 새 얼음 장수는 매번 줄자로 재요. 얼음값이 절반으로 줄어요.
오스윈: 좋다.
레티시아: 둘째, 납품업자 세 곳. 양초, 포도주, 세탁. 값을 시세로 돌렸어요. 포도주 장수는 바로 받아들였고, 양초 장수는 버텨서 바꿨어요. 세탁소는 울더라고요.
오스윈: 울어?
레티시아: 십 년 동안 삼 할씩 더 받았으니까요. 그 돈 토해 내라고는 안 했어요. 대신 앞으로 오 년은 지금 값에서 한 푼도 못 올려요. 계약서에 박았어요.
공작은 그레고르를 봤다. 그레고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서에 박은 건 그레고르였다. 레티시아는 옆에서 문구만 불러 줬다.
레티시아: 셋째, 양초. 복도 촛불이 밤새 켜져 있어요. 아무도 안 다니는 새벽 한 시부터 네 시까지 반만 켜도, 한 해 양초가 두 상자 줄어요.
레티시아: 넷째, 별관 연금은 정식으로 올렸어요. 이건 늘어나는 돈이에요. 그래도 셋째까지 합치면 남아요.
레티시아: 그리고 다섯째.
레티시아는 마지막 장을 펼쳤다.
레티시아: 어머니 사교비를 사 할 줄여요.
서재가 조용해졌다.
공작이 헛기침을 했다. 그레고르의 시선이 아주 잠깐 바닥으로 내려갔다.
레티시아: 이걸 다 합치면, 저택 살림의 12퍼센트예요. 하인 한 명도 안 내보내고요. 작년 겨울에 나간 다섯 명, 다시 불러들일 수도 있어요.
공작이 고개를 들었다.
오스윈: 다시 불러들인다고?
레티시아: 남는 돈의 일부로요. 니나 사촌 언니도 있어요.
공작은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큰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오스윈: 작년 겨울에 그레고르가 하인을 줄이자고 했을 때, 나는 그러라고만 했다. 누가 나가는지도 안 물었어.
공작은 책상 위의 종이를 다시 집었다. 이번에는 돌려 보지 않았다.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
오스윈: 좋다. 전부 좋아. 그대로 해라.
레티시아: 전부요?
오스윈: 전부.
레티시아는 마지막 장을 짚었다.
레티시아: 아버지. 어머니 것도요?
공작의 손이 멈췄다.
오스윈: ...그건 엘레노어한테 내가 말하마.
그레고르: 아니요.
그레고르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공작과 레티시아가 동시에 그를 봤다.
그레고르: 외람되오나 각하. 그 줄은 아가씨께서 마님께 직접 말씀드리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레티시아는 그레고르를 봤다. 노인의 얼굴은 무표정했다. 하지만 그 눈은 무언가를 경고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 경고를 읽었다. 그리고 넘겼다.
레티시아: 좋아요. 제가 말씀드릴게요. 숫자를 보시면 이해하실 거예요.
공작이 서명했다. 다섯 장 모두에.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그날 오후부터 저택이 바뀌었다.
새 얼음이 들어왔다. 얼음 장수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제 손으로 줄자를 꺼내 들었다. 소문이 이미 돌았던 것이다. 마르타는 그 얼음으로 처음으로 생선을 사흘 재웠다. 그리고 그날 저녁 레티시아의 쟁반에 생선 찜을 올리며 한마디를 했다.
마르타: 사흘 묵혀도 비린내가 안 납니다. 십오 년 만에 처음이에요.
새벽 한 시의 복도는 반쯤 어두워졌다. 처음 사흘은 하인들이 툴툴댔다. 나흘째부터는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닷새째, 하인 출입문으로 짐 보따리를 든 사람 다섯이 들어왔다.
니나가 빨래 바구니를 떨어뜨리고 뛰어갔다. 출입문 앞에서 한 여자를 끌어안고 엉엉 울었다. 사촌 언니였다. 레티시아는 2층 창가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지난번 이 창가에 섰을 때는 그레고르가 봉투를 받는 걸 봤다. 이번에는 이걸 봤다.
같은 창이었다. 장부가 바뀌니, 창밖도 바뀌었다.
그레고르: 아가씨.
뒤에서 그레고르가 불렀다. 복귀한 다섯의 명단을 들고 있었다.
그레고르: 마님께는 언제 말씀드리실 겁니까.
레티시아: 내일이요. 오늘은 니나 울게 놔두고요.
그레고르는 명단을 접었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 말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레티시아: 그레고르.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요.
그레고르: ...마님은 숫자로 설득되시는 분이 아닙니다.
레티시아: 그럼 뭐로 설득돼요?
그레고르는 대답 대신 고개를 숙이고 물러갔다.
그런데 내일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저녁 무렵, 레티시아의 방문을 누군가 두드렸다. 니나가 아니었다. 공작부인 전속 시녀였다. 마흔이 넘은 단정한 여자로, 레티시아가 깨어난 첫날부터 어머니 뒤에 그림자처럼 서 있던 사람이었다.
시녀: 아가씨. 마님께서 차를 함께 드시자고 하십니다.
레티시아: 지금요?
시녀: 지금입니다. 마님의 응접실에서요.
시녀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덧붙였다.
시녀: 단둘이서, 라고 하셨습니다.
레티시아는 시녀의 얼굴을 봤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그 무표정이, 그레고르의 무표정보다 훨씬 무서웠다.
공작이 서명을 한 지 반나절. 하인 다섯이 돌아오는 걸 온 저택이 봤다. 하인들은 이유를 수군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하인들의 수군거림이 제일 먼저 닿는 곳은, 언제나 안주인의 귀였다.
어머니는 이미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