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조판서를 청하다
作 許筠 · 2026-10-03
“네가 갈수록 죄를 키워 기어이 온 집안에 화를 끼치려 하느냐. 지금 나라의 엄명이 이토록 무거우니, 나를 원망하지 말고 어서 하늘의 뜻을 따르라.”
길동이 엎드려 대답했다.
“형님께서는 염려하지 마십시오. 내일 아우를 잡아 보내시되, 장교 가운데 부모도 처자도 없는 자를 골라 저를 압송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시면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감사가 까닭을 물었으나 길동은 대답하지 않았다. 감사는 그 속뜻을 알 수 없었지만, 말한 대로 장교를 가려 뽑아 길동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조정에서는 길동이 잡혀 온다는 말을 듣고, 총 쏘는 군사 수백 명을 남대문에 매복시켰다.
“길동이 문 안에 들어서거든 일시에 총을 쏘아 잡으라.”
그렇게 분부했으나, 길동이 어찌 그 낌새를 모르겠는가. 동작나루를 건너며 비 우(雨) 자 세 개를 써서 공중에 날려 보냈다.
길동이 남대문 안에 들어서자 좌우의 포수들이 일제히 총을 쏘려 했다. 그러나 총구마다 물이 가득 차 있어, 손쓸 도리 없이 계획이 어그러졌다.
길동은 대궐문 밖에 이르러, 자신을 호송해 온 장교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가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으니, 그 죄로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는 몸을 날려 수레에서 내려서더니 천천히 걸어갔다. 오군문의 기병들이 말을 달려 길동을 쏘려 했다.
그러나 길동은 걷고 있는데도, 말에 아무리 채찍질을 한들 축지법을 어찌 따라잡겠는가. 온 성안 백성 가운데 그 신기한 재주에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날 사대문에 글이 나붙었다.
‘홍길동의 평생소원은 병조판서이옵니다. 전하께서 바다 같은 은택을 베푸시어 소신에게 병조판서의 교지를 내려 주시면, 신이 스스로 잡히겠나이다.’
이를 두고 조정에서 의논이 벌어졌다. 어떤 이는 말했다.
“그의 소원을 풀어 주어 백성의 마음을 가라앉힙시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무도하고 불충한 도적이오. 나라에 손톱만 한 공도 없이 만민을 소란케 하고 성상께 근심을 끼친 놈에게, 어찌 일국의 대사마 자리를 주겠소.”
의논이 분분하여 끝내 결정을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길동이 동대문 밖 외진 곳에 가서 육갑 신장을 호령하여 진을 치게 했다.
이윽고 두 집사가 공중에서 내려와 몸을 굽히고 좌우에 섰다. 그러자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천병만마가 순식간에 진을 이루었다.
진 한가운데 황금 단을 세 층으로 쌓고 길동을 단 위에 모시니, 군대의 위용이 가지런하고 위엄이 서릿발 같았다.
길동이 황건역사에게 호령했다.
“조정에서 길동을 헐뜯는 자들의 심복을 잡아들여라.”
신장들이 명을 받들어 나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십여 명을 쇠사슬로 묶어 끌고 왔다. 마치 솔개가 병아리를 낚아채 오는 듯했다.
길동은 그들을 단 아래 꿇리고 죄를 헤아려 말했다.
“너희는 조정의 좀이 되어 나라를 속이고, 기어이 홍길동 장군을 해치려 하였다. 그 죄는 마땅히 목을 벨 일이나, 사람의 목숨이 가엾어 이번만은 덮어 둔다.”
그러고는 각각 군문 곤장 서른 대씩을 쳐서 내쫓으니, 그들은 겨우 목숨만 건졌다.
길동이 다시 신장들에게 분부했다.
“내가 조정에 들어가 법을 맡게 되면, 먼저 불도를 몰아내고 각 도의 절을 헐어 버리려 했다. 그러나 이제 머지않아 조선을 떠나게 되었다.”
“그래도 부모의 나라이니, 만 리 타국에 있은들 잊지 못할 것이다. 이제 각 절에 가서 세상을 홀리고 백성을 속이는 중들을 모조리 잡아 오라.”
“또한 서울 재상가의 자식들 가운데 세도를 믿고 가난한 백성의 재물을 빼앗는 자들이 있다. 의롭지 못한 일이 많고 마음이 교만하나, 구중궁궐이 깊어 엎어 놓은 동이 밑까지는 햇빛이 비치지 못하는 격이다.”
“간신들이 나라의 좀이 되어 성상의 총명을 가리니 한심한 일이 허다하다. 서울에서 호걸인 체하는 무리를 낱낱이 잡아들여라.”
신장들이 명을 듣고 공중으로 날아갔다. 얼마 뒤 중 백여 명과 세도가 자제 십여 명을 잡아들였다.
길동은 위엄을 갖추고 목소리를 높여 하나하나 죄를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