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대장 이업
作 許筠 · 2026-10-03
그 뒤로 활빈당의 이름은 더욱 무섭게 퍼져 나갔다.
길동은 때로는 화려한 쌍가마를 타고 나타나 수령들을 마음대로 불러냈고, 때로는 관아 창고를 열어 굶주린 백성들에게 곡식을 나누어 주었다.
억울하게 갇힌 죄수를 손수 심문해 죄 없는 자는 풀어 주고, 탐관오리들만 골라 벌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홍길동의 정체를 알아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고을마다 소문만 무성할 뿐이었다.
“홍길동이 나타났다!”
“활빈당이 또 관아를 털었다!”
나라 전체가 흉흉해졌다. 마침내 왕이 크게 노했다.
“대체 어떤 놈이기에 하루 만에 팔도를 돌아다니며 이토록 소란을 피운단 말인가!”
왕의 얼굴이 분노로 붉게 달아올랐다.
“나라를 위해 저 도적 하나 잡을 자가 없단 말이냐!”
그때, 늘어선 신하들 끝자리에서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신이 비록 재주는 부족하오나…….”
그의 목소리는 또렷했다.
“군사 천 명만 주시면 홍길동을 반드시 잡아 전하의 근심을 덜겠나이다.”
모든 신하가 그를 돌아보았다. 포도대장 이업이었다.
왕은 크게 기뻐했다.
“충성스럽도다!”
곧바로 정예 군사 천 명이 이업에게 내려졌다. 이업은 궁을 나와 출정 채비를 서둘렀다.
과천을 지나자 그는 군사들을 여러 갈래로 나누었다.
“너희는 이 길로 가라. 약속한 날 문경에서 합류한다.”
채비를 모두 마친 뒤, 이업은 평민 차림으로 홀로 길을 떠났다.
며칠 뒤 날이 저물 무렵, 이업은 한 주막에 들어 쉬고 있었다.
잠시 후, 한 젊은 선비가 나귀를 타고 종자 수십 명을 거느린 채 주막으로 들어왔다. 소년은 얼굴에 기품이 흐르고 눈빛도 남달랐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자연스럽게 세상 이야기를 꺼냈다.
“온 천하 땅이 왕의 땅 아니고, 온 백성이 왕의 신하 아니겠습니까.”
이업은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소년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홍길동이라는 큰 도적이 팔도를 어지럽히니, 전하께서 크게 노하셔도 누구 하나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지요.”
그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저도 무예를 조금 익혀 나라의 근심을 덜고 싶으나…….”
소년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힘이 부족하고 도와줄 사람이 없으니 한탄스러울 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업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 사람… 보통이 아니다.’
크게 감탄한 이업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의 손을 붙잡았다.
“훌륭하오! 충의까지 갖춘 사람이로군!”
이업의 얼굴에 진심 어린 기쁨이 떠올랐다.
“나 역시 홍길동을 잡으러 나선 몸이오. 함께 힘을 합치는 게 어떻겠소?”
소년도 반색하며 웃었다.
“좋습니다.”
그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면 먼저 서로 재주를 시험해 보고, 홍길동의 은신처를 찾아봅시다.”
이업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소년을 따라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걸었을까. 험한 절벽 위에 오른 소년이 돌아보며 말했다.
“있는 힘껏 나를 차 보시오. 그래야 그대의 재주를 알 수 있을 테니.”
이업은 온 힘을 다해 소년을 걷어찼다. 하지만 소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태연하게 웃었다.
“과연 장사로군.”
소년의 눈빛이 묘하게 빛났다.
“그 정도면 홍길동을 잡는 것도 어렵지 않겠소.”
그리고 다시 말했다.
“홍길동이 지금 이 산속에 있습니다. 내가 먼저 들어가 살피고 올 테니, 그대는 여기서 기다리시오.”
이업은 아무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괴한 모습의 군사 수십 명이 불쑥 나타났다. 모두 누런 두건을 쓰고 있었다.
그들이 이업을 가리키며 외쳤다.
“저놈이 포도대장 이업이다!”
“지부대왕의 명으로 잡으러 왔다!”
군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순식간에 쇠사슬로 이업의 몸을 휘감았다. 이업은 너무 놀라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분간조차 되지 않았다.
그렇게 끌려간 곳은 마치 지하 궁궐 같은 기괴한 곳이었다.
이업은 억지로 끌려가 누군가의 앞에 무릎 꿇려졌다. 위에서 무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네놈이 감히 활빈당 장수 홍길동을 잡겠다고 했느냐!”
“홍 장군은 하늘의 뜻을 받들어 탐관오리의 재물을 빼앗아 백성을 구하는 분이다!”
“그런데 네놈이 나라를 속이고 충신을 해치려 하니 그 죄가 크다!”
곧이어 명령이 떨어졌다.
“풍도로 끌고 가,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못하게 하라!”
이업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는 미친 듯이 머리를 조아리며 빌었다.
“살려 주십시오!”
“전하의 명을 받들었을 뿐입니다!”
“죄 없는 목숨을 거두지 마십시오!”
그 모습을 본 좌우의 무리와 윗자리의 존재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갑자기, 이업을 묶고 있던 쇠사슬이 풀렸다.
“고개를 들어라.”
귀에 익은 목소리였다. 이업이 떨며 위를 올려다보니, 그 자리에는 주막에서 만난 소년이 앉아 있었다.
소년이 술잔을 들며 웃었다.
“나를 알아보겠는가. 주막에서 만났던 바로 그 사람.”
그는 천천히 입꼬리를 올렸다.
“내가 바로 홍길동이다.”
이업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길동은 태연히 말을 이었다.
“그대 같은 자가 수만 명이 와도 나를 잡지는 못한다. 오늘 그대를 여기까지 끌어들인 건…….”
길동의 눈빛이 싸늘하게 빛났다.
“활빈당의 위세를 보여 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둘레를 둘러보며 웃었다.
“앞으로 그대 같은 자들이 함부로 나를 잡겠다고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지.”
이어 길동은 잡혀 온 다른 군사들까지 끌어오게 했다.
“이업은 살려 보내겠다. 너희도 놓아주마.”
길동은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돌아가서 다시는 홍길동을 잡겠다는 생각은 하지 마라.”
그제야 이업은 자신이 완전히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너무 창피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얼마 뒤, 깜빡 잠들었던 이업이 눈을 떴다. 그런데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눈앞도 캄캄했다.
겨우 몸부림쳐 빠져나와 보니, 그는 커다란 가죽 부대 안에 갇혀 있었다.
둘레에는 가죽 부대가 두 개 더 있었다. 끌러 보니 문경으로 먼저 보냈던 자기 군사들이었다.
이업은 허탈하게 웃었다.
“나는 어떤 소년에게 속아 이 꼴이 되었다만, 너희는 또 어찌 된 일이냐?”
군사들이 겁먹은 얼굴로 대답했다.
“저희도 주막에서 자다가 어떻게 여기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셋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곳은 장안 북쪽 들판 한가운데였다.
이업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허망한 일이로다…….”
그리고 낮게 중얼거렸다.
“이 일은 절대 입 밖에 내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