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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의 밤

作 許筠 · 2026-10-03

“결박하라!”

길동의 호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대기하던 부하들이 번개처럼 움직였다.

장대한 사내들이 일제히 뛰어들어 승려들의 팔을 꺾고 밧줄을 감기 시작했다.

“아악!”

“이게 무슨 일이오!”

“공자님! 오해이십니다!”

승려들은 혼비백산했지만 이미 늦었다.

길동이 데려온 자들은 평범한 하인이 아니었다. 모두 녹림에서 날고 기던 도적들이었다. 그들에게 승려 수천 명은 그저 묶어야 할 짐승 떼에 지나지 않았다.

승려들은 제대로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술과 음식에 정신이 팔려 있었던 데다, 애초에 길동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길동은 상좌에 앉은 채 차가운 눈으로 그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의 온화한 양반 자제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 자리에 남은 것은 녹림의 우두머리, 홍길동뿐이었다.

“한 놈도 놓치지 마라.”

길동의 목소리가 싸늘하게 울렸다.

“도망치는 자는 다리를 부러뜨려라.”

“예, 장수님!”

부하들의 대답과 함께 계곡은 순식간에 비명으로 가득 찼다. 손발이 묶인 승려 수천 명이 바닥에 엎드려 떨었다.

그때, 멀리 숲속에서 횃불이 하나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길동의 입가에 천천히 미소가 번졌다.

“왔군.”

바로 그 순간, 산 아래 숨어 있던 녹림 도적 수백 명이 해인사 안으로 물밀듯 들이닥쳤다.

“쳐라!”

“재물을 쓸어 담아라!”

“창고부터 뒤져!”

텅 빈 해인사에는 막아설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도적들은 기다렸다는 듯 절 안으로 뛰어들었다.

법당과 창고, 곡식 창고와 불전함, 승려들이 숨겨 둔 금은보화까지. 도적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모조리 긁어모았다.

절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래도 길동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계곡 위에서 모든 상황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빈틈없이 짜인 판을 내려다보는 사람처럼.

잠시 뒤, 한 도적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장수님! 재물이 산더미입니다!”

그는 흥분해 외쳤다.

“쌀이며 비단이며 금붙이까지, 엄청납니다!”

둘레의 도적들 얼굴도 광기에 가까운 흥분으로 번들거렸다. 그러나 길동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약탈은 빨리 끝낸다.”

그가 담담하게 말했다.

“쓸데없는 살생은 하지 마라.”

“명을 따르겠습니다!”

도적들이 일제히 머리를 숙였다. 그때 결박당한 승려들 사이에서 떨리는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늙은 승려 하나가 눈물을 흘리며 길동을 올려다보았다.

“우리는 공자님을 믿고 극진히 대접했는데…….”

길동은 잠시 그 노승을 내려다보다가 아주 차갑게 말했다.

“세상은 원래 믿는 자가 먼저 당하는 법이지.”

노승의 얼굴이 굳었다. 길동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멀리 불빛 아래서 약탈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밤, 천하의 해인사가 홍길동의 손에 송두리째 털리고 있었다.

해인사의 밤은 완전히 뒤집혔다. 도적들은 창고마다 들이닥쳐 재물을 쓸어 담았다.

쌀가마니가 끝도 없이 끌려 나왔고, 비단과 금붙이, 은그릇이 마차 위로 쌓여 갔다.

“여기도 있다!”

“불전함 뜯어!”

“창고 뒤까지 뒤져!”

곳곳에서 거친 함성이 터졌다. 절 안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그 와중에도 길동은 냉정했다. 그는 높은 곳에 서서 판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부하들이 흥분해 날뛰어도 길동만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장수님!”

또 한 도적이 숨을 헐떡이며 달려왔다.

“재물이 너무 많아, 다 옮기려면 시간이 더 필요합니다!”

길동은 잠시 생각하더니 짧게 답했다.

“욕심내지 마라. 들 수 있는 만큼만 가져간다.”

“예?”

도적이 놀라 되묻자 길동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시간을 끌면 관군이 움직인다. 우린 싸우러 온 게 아니라 털러 온 거다.”

“명을 받듭니다!”

도적은 급히 고개를 숙였다. 길동은 다시 승려들이 묶여 있는 계곡 쪽으로 눈을 돌렸다.

수천 승려가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누군가는 분노했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넋이 나간 얼굴이었다.

그때 노승 하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시오…….”

길동은 잠시 말이 없었다. 바람이 그의 옷자락을 흔들었다. 이윽고 그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홍길동이다.”

여기저기서 숨 막히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홍길동…!”

“설마, 그 의적 홍길동?”

이름 하나에 분위기가 뒤집혔다. 요즘 조정과 탐관오리들을 뒤흔든다는 이름, 백성들 사이에서 영웅처럼 떠도는 이름. 바로 그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길동은 그런 반응에도 무심했다. 그는 노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희가 가진 재물, 정말 모두 부처를 위한 것이었나?”

노승의 얼굴이 굳었다. 길동의 목소리가 차갑게 이어졌다.

“백성들은 굶어 죽는데 절 창고에선 쌀이 썩어 간다. 그게 정말 자비인가?”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길동이 피식 웃었다.

“나는 너희보다 솔직하다.”

그는 산 아래를 바라보았다.

“적어도 난 처음부터 도적이라 밝히고 산다.”

그 말은 비수처럼 꽂혔다. 승려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바로 그때, 멀리서 횃불 신호가 올랐다. 길동의 부하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장수님! 짐 정리 끝났습니다!”

길동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전군 철수.”

짧은 명령 하나에 도적들이 일제히 움직였다. 말이 끌려 나오고 마차가 굴러갔다. 수백 명의 도적이 질서정연하게 산길로 빠져나가는 모습은 잘 훈련된 군대 같았다.

길동은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켰다. 불빛 아래 드러난 거대한 절, 그리고 묶인 채 떨고 있는 수천 승려들. 그는 잠시 해인사를 바라보았다.

길동의 눈빛이 알 수 없이 깊어졌다. 잠시 뒤, 그 역시 몸을 돌려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