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종이예요, 사람이에요?

by 장지호 · 2026-10-26

D+40 · 16:10

그 여자가 다시 전화했다.

첫날 밤 전화를 받았던 사람이라 교환에서 다인에게 돌렸다.

"저 그저께 전화드렸던 사람인데요. 등기부에 모르는 남자 이름 있다고."

"네. 기억해요."

"그 사람이 어제 왔어요."

다인은 볼펜을 놓았다.

"집에요?"

"문 앞까지요. 초인종 누르고, 등기부 뽑은 거 들고 있었어요. 자기 집이라고." 여자는 잠깐 쉬었다.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어요. 그쪽도 뭐가 뭔지 모르는 얼굴이었어요."

"문 여셨어요?"

"안 열었어요. 안 열고 문 너머로 얘기했어요. 삼십 분쯤."

"...무슨 얘기 하셨어요."

"서로 계약서 얘기요. 문 사이로 날짜를 불렀어요. 저는 육 년 전 사월이라고 하고, 그쪽은 그 전에 뭐라고 하고." 여자가 말했다. "이상하죠. 둘 다 진짜인데."

"...네."

"그 삼십 분 동안 애가 안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어요. 소리를 줄일까 했는데 안 줄였어요." 여자는 잠깐 말을 쉬었다. "줄이면 뭔가 인정하는 것 같아서요."

다인은 그 말을 받아 적지 않았다. 적을 칸이 없는 종류의 말이었다.

"주무관님. 이거 언제 정리돼요?"

다인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문장을 갖고 있지 않았다. 안내 문구는 있었다. 조속히 정상화하겠습니다.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

"모르겠습니다."

"그렇구나."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여자가 말했다. "모른다고 해주셔서요. 다들 곧 된다고만 해서 그게 더 무서웠거든요."

홍보 담당이 종이를 들고 들어왔다. 얼굴이 하얬다.

"저, 이거. 지금 실시간 검색어 일 위가 뭔지 아세요?"

"뭔데요."

"복원 시점요. 사람들이 자기 집이 몇 월 며칠 시점으로 복원되는지 확인하는 법을 서로 알려주고 있어요. 시점이 자기한테 불리한 사람들이," 그는 종이를 내려놨다. "단체를 만들고 있고요. 시점별로요."

이월 테이프 피해자 모임. 오월 테이프 피해자 모임. 다인은 그 이름들을 보며 생각했다. 이제 사람들은 날짜를 가지고 싸운다. 같은 집에 사는 사람들이 서로 다른 달력 위에 서 있었다.

D+41 · 14:00

복원 전면 중단이 발표됐다. 시작 사흘 만이었다.

발표문에는 표시 오류라는 말이 쓰였다. 소유권이 뒤섞인 것을 표시 오류라고 부르기로 한 회의에 다인도 있었다. 반대하지 않았다. 반대할 힘이 없었다는 것과 반대하지 않았다는 것 사이의 차이를, 다인은 이제 구분하지 않기로 했다. 결과가 같았다.

그날 오후에 새로운 종류의 신고가 들어왔다.

복원으로 되살아난 옛 소유자들에게 연락이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등기부에 당신 이름이 다시 올라와 있다고, 지금 소송을 걸면 이길 수 있다고, 착수금은 없고 이기면 지분으로 받겠다고. 명함에는 컨설팅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람들 어떻게 알고 연락했을까요." 정 사무관이 물었다.

"등기부는 아무나 볼 수 있어요." 다인이 말했다. "주소만 알면요."

"우리가 뿌린 거네요, 그럼."

전화를 받은 사람 중 하나는 육십 대 여자였고, 십 년 전에 그 집을 팔고 나갔고, 팔 때 받은 돈으로 딸 결혼을 시켰다고 했다. 자기가 그 집 주인으로 다시 떠 있다는 걸 그 전화로 알았다. 여자가 다인에게 물은 것은 이거였다.

"내가 안 하면 그 사람들이 나 대신 하는 거예요?"

D+42 · 11:20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저기, 등기소에서 명함 받은 적이 있는데요. 서다인 주무관님 맞으세요?"

목소리를 듣고 이 초쯤 걸렸다. 작년 봄의 창구. 전입신고 다음 날 0시를 손가락으로 세어보던 사람.

"윤소미님."

"기억하시네요."

"기억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제 등기부에 모르는 사람 이름이 떴어요." 그는 이미 여러 번 설명해본 사람처럼 말했다. "저는 세입자니까 등기부에 제 이름은 없어요. 원래 없는 게 맞고요. 근데 집주인 이름이 제가 계약한 사람이 아니에요."

다인은 주소를 받아 조회했다. 복원 대상 필지였다. 소유자가 삼 년 전 명의로 돌아가 있었다.

"보증금이," 윤소미가 말했다. "그 사람한테 걸려 있는 게 아니라 제가 계약한 사람한테 걸려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등기부에 없는 사람에게 걸린 돈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확인해서 다시 연락드릴게요."

"주무관님."

"네."

"저는 목록에도 없죠."

다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삭제된 사천십이 건은 소유자의 목록이었다. 그 집에 살던 사람들은 어느 목록에도 없었다. 국가가 만든 명단이 인정과 불인정과 유보로 나뉘어 있었는데, 그 셋 중 어디에도 세입자 칸은 없었다.

"작년에 여기 처음 왔을 때요." 윤소미가 말했다. "번호표 뽑고 기다렸어요. 삼십칠 번이었어요. 그때는 번호표라도 있었는데요."

"..."

"주무관님. 저 도장 찍었어요."

"도장이요?"

"그 빈 도장이요. 문방구에서 삼천 원에 팔던 거." 윤소미는 별일 아니라는 투로 말했다. "제 계약서에 찍었어요. 아무 효력 없는 거 알아요. 근데 찍고 나니까 좀 나았어요."

다인은 뭐라고 답해야 하는지 몰라서 가만있었다.

"그날 밤에 이상한 생각 했어요." 잠깐 조용했다. "이 나라 집이 전부 없어졌으면 좋겠다고요. 사천 개가 아니라 사천만 개 다요."

볼펜을 쥐고 있던 손을 다인은 책상에 내려놨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남 잘되는 거 배 아파하는 사람도 아니고 집값 떨어지라고 기도하는 사람도 아니고요. 근데 그 생각이 났어요. 다 없어지면 다 같아지잖아요."

"..."

"무섭죠, 이런 말."

"안 무서워요."

"거짓말."

"진짜예요." 다인은 말했다. "저도 목록 보면서 비슷한 생각 했어요. 사천십이 개면 왜 사천십이 개만인가 하는 생각을요."

전화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났다. 그 통화에서 처음이었다.

전화를 끊고 다인은 노트에 두 줄을 적었다. 번호표라도 있었는데. 그리고 그 아래에, 사천만.

그러고 나서 알아봤다.

법무 담당에게 묻고, 보증금 관련 유권해석을 뒤지고, 임대차 소관 부서에 두 번 전화했다. 세 시간이 걸렸다. 답은 하나로 모였다. 등기부에 뜬 소유자가 계약 당사자가 아니면 그 계약의 효력은 등기와 별도로 판단하고, 판단하는 곳은 법원이다.

다시 전화를 걸어 그대로 전했다. 윤소미는 끝까지 듣고 나서 물었다.

"그럼 소송하라는 거죠."

"...네."

"돈 없어서 전세 산 사람한테요."

다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세 시간을 들여 알아낸 것이 결국 창구에서 매일 하던 말과 같은 문장이었다.

D+44 · 11:00

취재 지시가 내려온 것은 그 주였다. 지시서의 표현으로는 실태 파악 출장이었다.

경기 외곽의 야산 아래, 등기 없이 이십 년을 산 마을이 있었다. 육십 년대에 국유지 개간으로 들어와 눌러앉은 동네였다. 등기부가 마비된 나라에서 등기 없이 잘만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 기사가 났고, 위에서는 그게 어떤 상태인지 보고서를 원했다.

마을 어귀에서 다인을 맞은 사람은 칠십 대 여자였다. 차복순. 이장은 아니라고 했는데 마을 사람들이 뭐든 그 사람에게 물었다.

"등기 없이 어떻게 사냐고? 보면 알잖아. 살아."

집들은 멀쩡했다. 텃밭이 있고 개가 있고 택배 상자가 문 앞에 있었다. 차복순은 마을 회관에서 공책 한 권을 꺼내 보여줬다. 손으로 그린 마을 지도에 집집마다 이름이 적혀 있었다. 누가 언제 들어왔고, 어느 집이 누구한테 넘어갔고, 뒷밭 경계가 어디인지. 사십 년치가 볼펜 색깔만 바뀌며 이어져 있었다.

"이게 우리 등기부야."

"분쟁 나면 어떻게 해요?"

"모여서 정하지. 오래 산 순서대로 말하고."

다인은 알고 있는 것을 말했다. 남의 땅이라도 이십 년을 자기 것처럼 점유하면 소유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법이 있다. 시험에 나오는 조항이고, 이 마을은 육십 년을 살았다.

차복순은 다 듣고 나서 손을 저었다.

"알아. 옛날에 누가 와서 그 얘기 했어."

"안 하셨어요?"

"측량을 해야 된대. 측량비가 얼마인지 알아? 그러고 나서 소송을 해야 되고, 소송하려면 변호사를 써야 되고." 차복순은 공책을 덮었다. "이 동네에 서른 집이야. 서른 집이 그걸 다 하면 이 마을이 남을 거 같아? 이기는 집 몇이랑 나가는 집 몇으로 갈라지지."

"그러면 지금이 나으세요?"

"낫진 않아. 그냥 이대로가 아무도 안 이기는 거야."

"정한 게 틀렸으면요?"

차복순은 그 질문에 처음으로 다인을 빤히 봤다. 서울에서 온 공무원이 무슨 질문을 하는지 가늠하는 눈이었다.

"틀렸다고 누가 정하는데?"

"그러니까, 나중에라도 억울한 사람이 나오면요."

"억울하면 마을을 뜨지." 차복순은 공책을 덮었다. "삼십 년 전에 하나 떴어. 물길 가지고 싸우다가. 지금 어디 사는지 몰라. 그 집터는 옆집이 텃밭 하고."

거기에는 아무 죄책감도 없었다. 규칙이 그랬고 규칙대로 됐다는 얼굴이었다. 다인은 국가의 등기부가 하는 일을 생각했다. 진 사람의 이름도 줄만 긋고 남겨두는 것. 공책의 세계에서 진 사람은 줄도 없이 사라졌다.

돌아오는 길에야 다인은 낮에 본 것들의 무게를 다시 달았다. 공책은 아름다웠다. 그런데 공책에 이름이 있는 사람들만 아름다웠다. 마을 끝 컨테이너에 혼자 사는 남자 얘기를 물었을 때, 차복순은 이렇게 말했었다.

"걔는 굴러들어온 지 얼마 안 됐어. 아직 마을 사람 아니야."

얼마나 됐느냐고 물으니 구 년이라고 했다.

오래 산 순서, 목소리 큰 순서, 차복순과 가까운 순서. 그 순서는 공책에 적히지 않았고, 적히지 않아서 다툴 수도 없었다. 다인은 보고서 마지막 줄을 이렇게 적었다.

등기 없는 세계는 등기 이전의 세계가 아니라, 등기가 사람 얼굴을 하고 있는 세계임.

D+44 · 23:40

숙소로 돌아와 다인은 오래 씻었다.

물을 맞으며 생각했다. 공책의 마을과 등기부의 나라는 같은 문제를 앓고 있었다. 기록이 사람을 못 따라가는 것. 다만 마을은 그걸 사십 년 동안 천천히 앓았고, 나라는 두 달 만에 한꺼번에 앓았다.

하나 더 있었다. 차복순의 공책은 서랍에 있었다. 그 안에 적힌 것은 사십 년치 진실이었지만, 물길 싸움에서 밀려난 사람은 그 공책에 이름도 없이 사라졌다. 공책이 틀려서가 아니라 공책이 서랍에 있었기 때문이다.

다인은 가방 속 노트를 생각했다. 삼 년치 시각과 한 달치 날짜와 이름이 거기 있었다. 그것도 지금은 서랍이었다.

이튿날 아침, 국회에서 증인 출석 요구서가 왔다.

명단은 넷이었다. 법원행정처장, 복구대책본부장, 전산 총괄, 그리고 맨 아래에 법원주사보 서다인.

국회 국토법사위 연석 청문회 — 등기 전산망 사태 진상규명 및 복구 방안 (D+52)

증인: 법원행정처장, 복구대책본부장 황인선, 전산 총괄 ○○○, 법원주사보 서다인 외

└ 생중계 댓글: 7급이 왜 나옴?

└ ㄴ 말단한테 뒤집어씌우려는 각

└ ㄴ 사건 전날 기록 가진 게 저 사람뿐이래

D+52 · 10:00

청문회장은 텔레비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텔레비전이 안 보여주는 것들이 있었다.

증인석 책상이 생각보다 낮다는 것. 마이크에 자기 숨소리가 들어간다는 것. 방청석 맨 앞줄에 시점별 피해자 모임 사람들이 날짜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앉아 있다는 것. 이월. 오월. 팔월. 사람들이 달력 조각을 하나씩 품고 있는 것 같았다. 홍길동의 시한까지는 스물여덟 날이 남아 있었고, 그 날짜는 아무도 팻말로 들고 있지 않았다.

팻말들 뒤로 세 줄쯤 떨어진 자리에, 투명 파일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은 사람이 있었다. 다인은 두 번 봤다. 권상호였다. 그는 팻말이 없었다. 눈이 마주쳤는데 그는 인사하지 않았고, 다인도 하지 못했다.

그 옆 줄 끝에 윤소미가 앉아 있었다. 그쪽도 팻말이 없었다. 다인이 알아보고 고개를 숙이자 그는 짧게 손을 들었다. 인사라기보다 여기 있다는 표시였다.

개회 전 대기실에서 황인선이 다인의 옆에 앉았다.

"떨립니까."

"네."

"떨어도 됩니다. 대신 하나만 지키세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하세요. 여기서 제일 오래 살아남는 답이 그겁니다. 아는 걸 아는 만큼만 말하는 증인을 저 사람들은 못 이겨요."

"본부장님은 뭐라고 하실 건데요."

"나는," 황인선은 넥타이를 한 번 고쳐 맸다. "오늘 잘리기 좋은 말을 하러 갑니다. 공무원이 그런 말을 할 기회는 평생 한두 번인데, 놓치면 임 주사님처럼 삼십 년 뒤에 후회도 못 해요."

다인은 임태섭 얘기를 황인선에게 한 적이 없었다. 물으려다 말았다.

문 쪽에서 개회 오 분 전이라는 소리가 들렸다. 다인은 일어나면서 물었다.

"본부장님. 목록에 두 번 팔린 집이 하나 있어요."

"위조 말소 건이요. 봤습니다."

"지금 사는 분은 빚 없는 집을 산 줄 알고 있습니다. 이월로 되돌리면 그 집이 그분 집이 아니게 되고, 근저당도 다시 붙어요."

"붙죠."

"팔월로 되돌리면 안 붙습니다. 대신 그 빚을 위조로 지운 쪽이 그대로 이깁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두 분이 지금 같은 줄에 앉아 계실 수도 있어요. 이월하고 팔월을 하나씩 들고."

황인선은 넥타이에서 손을 뗐다.

"서 주무관. 저기서 누가 어느 팻말을 들었는지, 우리 자료에는 없죠."

"없습니다."

"저 사람들은 알 겁니다. 옆자리가 무슨 날짜를 들었는지."

오전은 책임 공방이었다. 문건을 누가 덮었는지, 보고가 어디서 끊겼는지. 높은 증인들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할 때마다 방청석이 웅성거렸다.

법원행정처장에게 문건을 언제 처음 봤느냐는 질문이 갔다. 보고받은 기억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 문건에 전결 서명이 있던 국장에게 같은 질문이 갔다. 결재 라인이 길어 개별 문건까지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답이었다. 전산 총괄에게 삭제를 왜 실시간으로 막지 못했느냐는 질문이 갔다. 야간 관제 인력이 한 명이었다는 답이었고, 그 한 명은 오늘 증인석에 없었다. 질문은 매번 벽에 맞고 튕겨 나왔다. 튕겨 나온 질문은 조금 더 낮은 자리를 향해 다시 던져졌다.

다인은 말석에서 그 광경을 봤다. 질문들이 오후 내내 아래로 내려왔고, 다인의 자리는 맨 아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