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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나지 않은 밤

by 받아적는사람 · 2026-10-22

도망칠 길을 셌다.

문까지 일곱 걸음. 복도 끝 근위병 둘. 정문 근위병 넷. 황태자궁에서 셋방까지 걸어서 삼십 분. 페트라를 업고 성문을 나가는 데 또 삼십 분. 성문 밖에서는 갈 데가 없다.

셈이 끝나기 전에 카시안이 일어났다.

"내일 회의는 쉰다."

"……네?"

"나가 봐."

그게 다였다. 그는 등잔을 들고 서재 안쪽 문으로 사라졌다. 고발하겠다는 말도, 등록소에 알리겠다는 말도 없었다.

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다리가 일어나는 법을 잊은 것 같았다.

* * *

그날 밤 한숨도 못 잤다.

고발당하면 교수형이다. 고발당하지 않는다면, 왜일까. 황태자가 붙박이 사기꾼을 살려 둘 이유가 뭘까.

이유를 찾다가 창밖을 봤다. 달이 거의 찼다. 한쪽 귀퉁이만 조금 이지러져 있었다.

등불 축제 지나고 한 달, 보름밤.

열흘 전 내가 그의 서재에서 한 말이었다. 이번 달 보름이면 열흘쯤 뒤예요.

내일이었다.

스물아홉 번째 공책을 꺼냈다. 장교의 말 아래 내가 적어 둔 메모가 있었다. 「북문 수비대 = 황태자 직속. 불나면 황태자 책임. 거기서부터 석 달.」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근위대장: 원작대로 두자. 황태자: 그래.」

적고 나서 한참 그 두 줄을 봤다. 너무 짧은 대답. 북문에 덧그린 붉은 동그라미. 종이가 얇아질 만큼.

* * *

다음 날 밤, 수도 전체가 북쪽 하늘을 봤다.

적어도 건너온 이들은 그랬다. 등록소 근처 술집 테라스마다 등록증을 단 사람들이 모여 북문 쪽을 바라봤다. 누구는 내기를 걸었다. 몇 시에 불이 오를지.

"자정 넘어서야. 원작에서 「달이 북문 탑에 걸릴 무렵」이라고 했거든."

"달이 탑에 걸리는 게 몇 시인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텍스트엔 시간 안 나와."

"불나면 밀값 오르나?"

"오르지. 북문이 곡물 들어오는 문인데."

나는 술집 구석에서 그들의 말을 들었다. 받아 적지는 않았다. 손이 차가웠다.

자정이 지났다. 달이 북문 탑 위로 올라갔다. 탑 꼭대기를 지나 서쪽으로 기울었다.

북쪽 하늘은 끝까지 깜깜했다.

테라스가 조용해졌다. 누군가 술잔을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안 나는데?"

* * *

다음 날 아침 등록소 대회의실은 아수라장이었다.

"불이 안 났다니까!"

"수비대 교대 시간이 바뀌었대. 누가 바꿨는지는 몰라."

"원작이 틀어진 거야? 그럼 4권은? 4권 전쟁은?"

"내가 밀 창고를 세 개나 지었는데!"

마지막 목소리는 마르코였다. 대회의실 뒤쪽 2급 자리에서 얼굴이 벌게져 있었다. 나는 1급 줄 맨 끝에 앉아 고개를 숙였다. 그가 나를 보지 못하게. 그 옆에 앉은 테오가 두리번거렸다. 나는 동판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도라가 단상에 섰다. 손바닥으로 탁자를 한 번 쳤다. 방이 조용해졌다.

"원작 사건이 날짜에 안 일어난 거, 처음은 아니야."

웅성거림.

"2권 다리 붕괴 기억하지? 누가 막았어. 석 달 뒤에 옆 다리가 무너졌어."

"그건 그냥 다리가 낡아서……."

"장날이었어. 죽은 사람은 원작의 세 배였고." 도라가 말을 잘랐다. "막은 사람은 박수받았지. 석 달 동안만."

방이 조용해졌다. 도라가 방을 훑었다.

"근데 이번 건 달라. 3권 줄기에 박힌 사건이야. 황태자가 내려가기 시작하는 첫 계단. 이게 빠지면 뒤에 오는 게 다 흔들려."

"그럼 어떻게 되는데요?"

"떡밥을 깔아 놓고 회수를 안 하면 뒤가 다 망가져." 그녀가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누가 막았든, 그 사람은 지금 뒤에 뭐가 올지 모르고 일을 벌인 거야."

떡밥. 회수. 손님 중에 그런 말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 듣는 말을 머릿속 공책에 적었다. 「도라. 떡밥, 회수.」

"조언역들, 각자 맡은 사람 지난 사흘 동선 보고해. 오늘 자정까지."

도라의 눈이 1급 줄 끝에 멈췄다.

"특히 황태자궁."

* * *

보고서는 한 줄도 쓰지 못했다.

황태자의 지난 사흘을 나는 몰랐다. 회의는 쉬었고 서재 문은 닫혀 있었다. 닫힌 문 앞에서 한참 서 있다가 나는 계단을 내려갔다.

정문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담을 따라 내려가면 나오는 쪽문. 10년 동안 다니던 종류의 길이었다. 뒷계단, 세탁장, 부엌, 마구간. 건너온 이들이 평생 한 번도 내려오지 않는 층.

세탁장 아낙은 나를 보고 벌떡 일어섰다. 내 가슴의 동판을 보고. 나는 동판을 떼어 외투 안주머니에 넣었다.

"보르 남작가 셋째예요. 마르코 상단에서 10년 일했어요."

아낙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러다 의자를 내줬다.

"마르코 상단이면, 그 부엌 베르타 알아?"

"베르타 아줌마요. 감자 수프에 계피 넣는."

"그 여편네가 내 사촌이야." 아낙이 빨래 방망이를 다시 들었다. "그래서 뭐. 베르타 사촌이면 동판 단 사람한테 아무 말이나 해도 된대?"

"……."

"지난달에 위층 조언역 하나가 여기 와서 물었어. 말해 줬더니 다음 날 우리 애 하나가 쫓겨났지." 아낙이 방망이로 빨랫물을 가리켰다. "그 동판 이리 줘 봐."

안주머니에서 동판을 꺼냈다. 아낙이 그걸 받아 잿물 통에 던졌다. 금색 가시 테두리가 뿌연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오늘 밤까지 거기 있어. 네가 위층에 우리 얘기를 올리면 그건 영영 못 찾는 줄 알아."

"……네."

"그럼 물어봐."

"사흘 전에 근위병들 옷이 이상하게 젖어서 들어왔어. 비도 안 왔는데 소매부터 무릎까지." 아낙이 코를 찡그렸다. "냄새를 맡아 봤지. 그냥 물이더라."

부엌 화부는 기름 이야기를 했다.

"사흘 전 밤에 북문 기름 창고에서 통 마흔 개가 나갔어요. 여기 지하 창고로요. 짐꾼들이 다 붙박이였는데 품삯을 두 배 줬대요. 두 배."

마구간의 한스는 말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에 전하 검은 말이 자정 넘어 들어왔어요. 발굽에 성벽 돌가루가 잔뜩 묻어 있었어요. 제가 털었어요."

"전하가 직접 타셨어?"

한스가 고개를 저었다가 다시 끄덕였다.

"저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응. 넌 아무 말도 안 했어."

그 애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봤다.

마지막으로 하인장 노라를 찾았다. 노라는 식기실에서 은수저를 세고 있었다. 내가 들어가도 손을 멈추지 않았다.

"수비대 교대 시간을 바꾼 명령서. 누가 썼어요?"

"황태자 전하 인장."

"전하가 직접요?"

노라가 은수저 하나를 들어 등잔에 비췄다. 얼룩을 확인하는 척하며 말했다.

"조언역님. 이 궁 하인이 스물둘이에요. 전하가 내려가시면 다 흩어져요." 은수저에 등잔 불이 비쳤다. "저는 여기서 스무 해를 살았어요. 다른 데 갈 데가 없어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필요가 없었다. 우리는 같은 식탁 뒤에 서 있던 사람들이었다.

"전하는 오늘 밤에도 북문에 가실 거예요." 노라가 은수저를 내려놓았다. "그 전에 조언역님이 등록소에 뭘 보고하실지, 다들 궁금해하고 있어요."

다들. 세탁장 아낙, 화부, 한스, 그리고 이름 모를 짐꾼들.

세탁장과 부엌과 마구간의 말은 한곳을 가리켰다. 북문이었다.

그 말을 위층에 올릴지 말지는 이제 내 손에 있었다.

"노라 씨. 종이 좀 주세요. 두 장이요."

"보고서는 한 장이면 되지 않아요?"

"두 장이요."

노라가 은수저 장부 밑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왜냐고 묻지 않았다.

해 질 무렵 세탁장에 다시 내려갔다. 아낙에게 종이 두 장을 보여 줬다. 한 장은 빽빽했고 한 장은 비어 있었다.

"빽빽한 건 위층에 안 올려요."

"난 글 몰라." 아낙이 한참 나를 보다가 잿물 통에 팔을 넣었다. 동판이 물을 뚝뚝 흘렸다. "반나절이라 다행인 줄 알아. 하루 담그면 금칠이 다 벗겨져."

테두리 금칠이 한쪽 귀퉁이만 희게 벗겨져 있었다. 나는 그걸 앞치마 대신 외투 자락에 닦았다.

"고마워요."

"고맙긴. 베르타한테 수프 한 그릇 빚진 걸로 쳐." 아낙이 다시 방망이를 들었다. "다음엔 동판 떼고 와. 처음부터."

* * *

북문 성벽은 바람이 셌다.

보고서는 두 장을 써 두었다. 한 장에는 세탁장과 부엌과 마구간에서 들은 것이 전부 있었고 한 장은 백지였다. 둘 다 외투 안주머니에 넣어 두었다. 자정까지 두 시간.

성벽 위 횃불 받침대 옆에 사람이 쭈그려 앉아 있었다. 양동이에 횃불을 하나씩 담그고 있었다. 걷어 올린 소매. 손등의 잉크.

"원작에선." 카시안이 돌아보지도 않고 말했다. "이 횃불 받침대 하나가 바람에 넘어진대. 그 불씨가 아래 기름 창고로 떨어지고."

그가 젖은 횃불 하나를 들어 올렸다. 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대로 일어났으면 북문 수비대장은 내 사람이니 문책은 내게 왔겠지. 폐하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하고, 거기서부터 석 달. 네 전임자들이 단정하는 말투로 그렇게 말하더군."

"……전하가 막으셨어요."

"기름은 옮겼고 횃불은 적셨고 교대 시간은 바꿨지. 사흘 걸렸어." 그가 다음 횃불을 양동이에 담갔다. "어젯밤에 안 났으니 끝난 줄 알았나?"

"……아니에요?"

"2권 다리 얘기는 나도 들었어. 석 달 뒤 옆 다리." 그가 젖은 손을 털었다. "그래서 매일 밤 적시는 중이야."

그가 그제야 나를 봤다.

"등록소에 올라온 보고서에는 이 얘기가 없었어. 알아낸 사람이 입을 다물었는지는 모르지. 넌 하루 만에 여기 왔군. 어떻게 알았지?"

"세탁장이랑 부엌이랑 마구간에 물어봤어요."

카시안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고 아주 짧게 웃었다. 서재에서 웃던 것과는 다른 웃음이었다.

"그렇군. 그 사람들한테는 아무도 안 묻지."

그가 젖은 횃불을 내 쪽으로 내밀었다. 나는 엉겁결에 받아 들었다. 찬물이 손목을 타고 소매 안으로 흘러들었다.

"하나 묻지. 원작에서 내가 죽는 장면. 정말 건너뛰었나?"

나는 젖은 횃불을 쥐고 있었다. 도망칠 길은 성벽 계단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끝까지 안 가르쳐 줬어요. 사냥터에서 화살이라는 분도 있었고, 독이라는 분도 있었어요. 술 마시다 싸우고 끝났어요. 그 장면 읽은 사람, 아무도 없어요."

말을 다 하고 나서야 알았다. 끝이 「대요」가 아니었다.

카시안은 잠시 나를 봤다.

"내가 언제 죽는지는 다들 아는데, 왜 사는지는 아무도 모르더군." 그가 성벽 아래 어둠을 내려다봤다. "어떻게 죽는지 모른다고 말한 사람은 네가 처음이야."

바람이 불었다. 젖은 횃불에서 물방울이 날렸다.

"내가 지금 뭘 하는지 알겠지."

"원작을…… 바꾸고 계세요."

"바꿀 수 있는지 시험하는 중이었지. 이제 알았어. 바꿀 수 있어."

그가 몸을 일으켰다. 나보다 머리 하나가 컸다. 달빛이 그의 젖은 소매에서 번들거렸다.

"원작은 바꿀 수 있다. 나는 그걸 증명하는 중이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횃불을 돌려 달라는 건지, 다른 걸 내밀라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넌 지금 두 가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어. 저 아래 등록소로 가서 내가 한 일을 다 말하든지. 아니면 여기 남든지. 네가 뭔지는 나도 알고, 너도 내가 뭘 하는지 알지. 공평하잖아."

종탑에서 열한 시 종이 울렸다. 자정까지 한 시간.

내 손이 외투 안주머니로 갔다. 종이 두 장의 모서리가 손끝에 걸렸다. 한 장은 두껍게 접혀 있었다. 한 장은 얇았다.

카시안이 천천히 말했다.

"도울래, 고발할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