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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by 앙상블 · 2026-10-22

# 퍼펙트큐

## 1부. 무너진 큐

### 11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민호는 요즘 당구장에 갈 때마다 먼저 당구대를 살펴보는 버릇이 생겼다.

공이 놓인 모양을 보면 예전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왔다. 어느 쪽으로 수구를 보내야 할지, 어떤 두께로 제1적구를 맞혀야 할지, 득점에 성공한 뒤 수구가 어디쯤 멈출지 나름대로 생각할 수 있었다.

물론 실제로 공을 치면 예상과 다른 결과가 나오는 일이 여전히 많았다. 그래도 아무 생각 없이 큐를 휘두르던 때와는 달랐다.

문제는 공을 보는 눈이 조금씩 생기면서 사람까지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날 태성당구장에는 낯선 손님 한 명이 와 있었다. 오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당구대 앞에서 한참 동안 공을 살피다가 조심스럽게 큐를 움직였다. 첫 번째 샷은 실패했다. 두 번째도 수구가 의도한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민호는 옆에서 연습하다가 그 모습을 보았다.

‘초보인가?’

남자는 큐를 내려놓고 공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러고는 당구대 반대편으로 돌아가 다른 각도에서 살펴봤다. 민호는 그가 무엇을 하려는지 잘 알 수 없었다. 공을 보는 시간이 길었지만, 막상 치는 모습은 어딘가 어설펐다.

잠시 후 태성이 다가와 남자에게 말을 건넸다.

“오랜만이십니다. 요즘은 통 안 보이시더니요.”

“일이 좀 바빴습니다. 한동안 당구장에 나올 여유가 없었네요.”

“오늘은 천천히 치다 가십시오.”

남자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민호는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는 옷차림도 단정했고 말투도 차분했다. 당구 실력은 몰라도 어딘가 익숙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때 재식이 당구장에 들어왔다.

“사장님, 안녕하세요.”

“잘 왔네. 마침 성호 씨도 왔어.”

재식은 낯선 남자를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했다.

“오랜만입니다. 다시 시작하셨나 봅니다.”

“시작이라고 할 것까지야 있습니까. 몸이나 좀 풀어 보려고요.”

민호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남자의 이름이 성호라는 것을 알았다. 재식은 그에게 먼저 한 게임을 권했다. 성호도 흔쾌히 받아들였다.

민호는 연습을 잠시 멈추고 두 사람이 경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경기가 시작되자 성호는 생각보다 신중했다. 초구를 치기 전에도 여러 방향에서 공을 살폈고, 수구의 위치를 확인한 뒤에야 큐를 잡았다. 그런데 실제 타격에서는 미세한 오차가 반복됐다. 예상한 두께로 제1적구를 맞히지 못하거나, 수구가 쿠션을 돌아 나오는 속도가 생각과 달랐다.

재식은 달랐다. 그는 배치를 확인하고 나면 비교적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자세가 안정적이었고 타격도 매끄러웠다. 득점에 성공한 뒤에는 다음 공의 위치까지 고려하는 모습이 보였다.

초반에는 재식이 앞서 나갔다.

민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재식 씨가 훨씬 잘 치는군.’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경기가 단순해 보였다. 재식이 이길 가능성이 높아 보였고, 성호는 실전 감각을 되찾는 중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중반부터 조금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성호가 어려운 배치에서 연속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공이 놓인 모양만 보면 쉽지 않은 샷이었다. 그는 서두르지 않고 당구대 주변을 돌았다. 한 번 자세를 잡았다가 풀고, 다시 반대편에서 경로를 확인한 뒤 타격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히고 쿠션을 돌아 제2적구까지 연결됐다.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큐를 멈췄다.

‘저 공을 저렇게 친다고?’

성호는 득점에 성공했다고 특별히 기뻐하지 않았다. 그저 수구가 멈춘 위치를 확인하고 다음 배치를 살폈다. 재식은 상대의 좋은 샷을 인정하듯 가볍게 큐 끝에 초크를 대고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성호는 한동안 좋은 흐름을 이어 갔다. 그러나 연속 득점이 끝나자 다시 몇 차례 실수가 나왔다. 수구가 예상보다 짧게 움직였고, 쉬워 보이는 배치에서도 제2적구를 비켜 갔다.

민호는 혼란스러웠다.

처음에는 초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보여 준 샷은 결코 초보의 공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전체적인 경기 운영이 재식만큼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그는 성호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판단하기 어려웠다.

경기는 재식의 승리로 끝났다.

두 사람은 당구대 앞에서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잘 치셨습니다.”

재식의 말에 성호가 웃었다.

“예전 같지는 않네요. 머리로는 보이는데 손이 따라주질 않습니다.”

“그래도 어려운 공을 몇 개나 성공하셨잖습니까.”

“그런 공이 들어갈 때는 기분이 좋죠. 그런데 다음에 쉬운 공을 놓치면 또 마음이 급해집니다.”

민호는 그 말을 듣고 귀를 기울였다. 자신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성호가 큐를 정리하자 민호는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실례지만, 당구를 오래 치셨습니까?”

성호는 민호를 바라보며 웃었다.

“오래 치기는 했습니다. 그렇다고 늘 잘 친 건 아니고요.”

“아까 치시는 걸 보니까 어떤 공은 굉장히 잘 치시던데요. 그런데 중간에 실수도 하시고…….”

민호는 말을 하다가 표현이 무례하게 들릴까 봐 잠시 멈췄다.

성호는 오히려 편하게 웃었다.

“제가 봐도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감각이 좋았어요. 한동안 당구를 거의 못 쳤더니 생각한 대로 공이 움직이지 않네요.”

“그럼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잘 치셨다는 말씀이군요.”

“한때는 그랬죠. 그런데 오래 쉬었다고 해서 예전 실력이 그대로 남아 있는 건 아니더군요.”

성호는 당구대 위의 공을 바라봤다.

“공의 길을 아는 것과 실제로 그 길을 만들어 내는 건 조금 다른 문제입니다. 머리로는 두께를 알고 속도를 예상해도, 막상 큐를 움직일 때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결과가 달라지니까요.”

민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은 성호의 몇 번의 실수만 보고 초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어려운 공을 성공시키는 모습을 보고는 실력이 대단하다고 감탄했다. 하지만 몇 번의 샷만으로 그 사람의 실력을 전부 판단할 수는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공을 보는 방식도 다시 생각하게 됐다.

당구에서는 한 번의 득점이 그 사람의 모든 실력을 증명하지 않았다. 한 번의 실수 역시 그 사람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증거가 아니었다.

사람을 보는 일도 마찬가지일지 몰랐다.

그날 저녁 민호는 성호와 한 게임을 하게 됐다. 성호가 먼저 제안했다.

“저랑 한 게임 하시겠습니까? 저도 다른 분과 쳐 보면서 감각을 되찾아야 하니까요.”

민호는 조금 긴장했지만 흔쾌히 응했다.

두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뱅킹으로 초구를 정했다. 성호가 먼저 초구를 치게 됐다.

성호는 당구대 앞에 서서 한참 동안 공을 살폈다. 민호는 기다리면서 상대의 자세를 관찰했다. 성호의 동작은 재식처럼 매끄럽지는 않았지만, 공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분했다.

첫 샷은 득점에 실패했다.

민호는 속으로 조금 안도했다. 자신도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어진 배치에서 성호가 어려운 옆돌리기를 성공시키자 민호의 생각이 달라졌다. 수구가 쿠션을 돌아 제2적구를 맞히는 순간, 민호는 감탄을 감추지 못했다.

“좋은 공이네요.”

성호는 짧게 웃었다.

“운도 좀 따랐습니다.”

그는 다음 공을 살폈다. 이번에는 무리하지 않고 안정적인 경로를 선택했다. 하지만 타격이 조금 길어 득점에 실패했다.

민호는 성호의 경기에서 일정한 패턴을 찾으려 했다. 어떤 공은 잘 치고 어떤 공은 놓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이 상대의 약점을 찾아내려고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대의 약점을 알면 이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 같았다.

물론 경기에서 상대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은 필요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이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대를 몇 번의 실수만으로 규정한다면, 오히려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었다.

민호는 자기 차례가 되자 당구대 위의 공을 살폈다.

득점 가능성이 있는 경로가 보였다. 다만 수구가 제2적구를 맞힌 뒤 어디에 멈출지는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비교적 안정적인 경로를 선택했다.

타격은 정확했다. 수구가 제1적구를 맞히고 쿠션을 돌아 제2적구에 닿았다.

득점이었다.

민호는 기분이 좋았다. 무엇보다 자신의 판단을 유지한 채 공을 성공시켰다는 점이 반가웠다.

그러나 다음 배치에서는 실수했다. 득점에 성공한 기분이 남아 있었는지, 평소보다 빠르게 자세를 잡고 공을 쳤다. 수구는 예상보다 길게 움직였다.

민호는 아쉬웠지만 곧바로 큐를 다시 잡지는 않았다. 공이 멈춘 위치를 확인하고, 자신이 선택한 경로와 실제 결과를 비교했다.

성호도 자신의 차례에서 비슷한 실수를 했다. 그는 잠시 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공은 참 어렵네요. 들어갈 것 같아서 서둘렀더니 오히려 더 안 맞습니다.”

민호는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방금 그랬습니다.”

그 말에는 위안이 있었다. 상대가 실수한다고 자신이 잘하는 것은 아니었고, 상대가 잘 친다고 자신이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실력으로 같은 당구대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경기는 팽팽하게 이어졌다.

성호는 어려운 공을 몇 차례 성공시켰지만, 간단해 보이는 배치에서 타격이 흔들리기도 했다. 민호는 득점에 성공한 뒤에도 다음 공을 놓쳤고, 반대로 어렵다고 생각한 공에서 예상 밖의 좋은 결과를 얻기도 했다.

민호는 점수 차를 확인하면서도 성호의 실력을 단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방심하지 않으려 했고, 뒤처지면 서두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성호가 연속으로 득점하자 민호는 다시 긴장했다. 이번에 놓치면 점수 차가 더 벌어질 것 같았다. 그는 큐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민호는 자세를 풀었다.

당구대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공의 위치를 다시 살폈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었다.

‘내가 지금 이 공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정말 배치 때문일까? 아니면 상대가 점수를 따라왔기 때문일까?’

공 자체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상대가 득점했다고 해서 공의 경로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민호는 다시 자세를 잡았다.

이번 샷은 실패했다. 제1적구를 맞히기는 했지만, 수구가 제2적구를 비켜 갔다.

그는 아쉬움을 느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서두른 채 타격하지는 않았다. 자신의 판단과 타격에 어떤 차이가 있었는지 살펴볼 수 있었다.

경기는 성호의 승리로 끝났다.

민호는 결과를 확인하고 성호에게 고개를 숙였다.

“잘 쳤습니다. 특히 어려운 공을 풀어 가시는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성호는 손사래를 쳤다.

“제가 잘 친 것만 보셨나 봅니다. 놓친 공도 꽤 많았는데요.”

“저도 많이 놓쳤습니다.”

두 사람은 웃었다.

민호는 성호와의 경기에서 졌지만, 처음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것을 배웠다. 상대가 초보인지 고수인지 단순하게 구분하는 것보다, 어떤 상황에서 강하고 어떤 상황에서 흔들리는지 살펴보는 편이 더 정확했다.

그렇다고 상대를 분석하는 일에만 매달려서도 안 됐다. 결국 자기 차례가 왔을 때는 자신의 공을 쳐야 했다. 상대의 약점을 알아도 자기 스트로크가 흔들리면 소용없었다.

태성이 음료수를 건네며 물었다.

“오늘 성호 씨와 쳐 보니 어땠습니까?”

민호는 잠시 생각했다.

“처음에는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잘 치시는 공도 있고 실수하는 공도 있어서요. 그런데 몇 번 치고 나니 제가 너무 빨리 판단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몇 번의 모습만 보고 판단하기 쉽죠.”

“당구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한 번 득점했다고 계속 잘 치는 것도 아니고, 한 번 놓쳤다고 못 치는 것도 아니니까요.”

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아무 판단도 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경기에서는 상대를 살펴야 하니까요. 다만 처음 내린 판단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열어 두는 게 중요하겠죠.”

민호는 그 말을 마음속에 담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는 회사에서 있었던 장면을 떠올렸다. 준호가 보고를 잘하면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반대로 실수하면 아직 경험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유리한 순간에는 준호의 부족한 점을 크게 보았고, 준호가 좋은 성과를 내면 그동안 쌓아 온 자신의 경험을 떠올렸다.

준호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보려 했다기보다, 그때그때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해 줄 근거를 찾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민호는 걸음을 늦췄다.

그렇다고 준호를 무조건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실제로 부족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야 했고, 자신이 맡아 온 업무에서 쌓은 경험도 분명한 가치가 있었다.

다만 상대를 평가하는 기준이 자신의 자존심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됐다.

당구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가 실수하면 속으로 안도하고, 좋은 공을 치면 괜히 부담을 느끼는 마음은 자연스러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상대의 실력에 대한 판단까지 바꾸도록 내버려 두면 자신의 경기에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한 민호는 수첩을 펼쳤다.

오늘은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상대의 한 번의 실수로 그 사람을 판단하지 말 것.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그 아래에 한 줄을 더 적었다.

상대의 실력을 살피되, 내 공을 대신 쳐 줄 사람은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 것.

수첩을 덮은 민호는 자신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당구 실력이 눈에 띄게 좋아진 것은 아니었다. 경기에서 이기는 횟수가 늘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패배하면 상대와 자신의 차이만 생각했다. 이제는 자신이 어떤 순간에 상대를 잘못 판단했고, 그 판단이 자기 샷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돌아보게 됐다.

그 변화가 당장 점수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당구대 위의 공은 언제나 정직하게 움직였다. 사람이 예상한 대로 움직여 주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친 결과를 숨기거나 바꾸지는 않았다.

민호는 이제 그 공을 조금 더 정확하게 보고 싶었다.

그리고 공 너머에 있는 사람도, 자기 자신도 너무 서둘러 판단하지 않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