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쎄톤성
지은이 외인 · 2026-08-21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베드런은 성벽 위에 있었다.
동쪽이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고, 그 위에 점이 하나 있었다.
카린: 저거 뭡니까.
카린이 물었다.
베드런: ......
카린: 새치고는 큰데요.
점이 커졌다.
벨리스톤이 계단을 올라왔다.
에라리온이 그를 부축하고 있었다.
베드런: 선생님.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저것 좀 봐주십시오.
벨리스톤이 눈을 가늘게 떴다.
한참 봤다.
벨리스톤: 와이번일세.
성벽 위가 조용해졌다.
베드런: ......와이번요.
벨리스톤: 응.
베드런: 저게 왜 여기 옵니까.
벨리스톤: 나도 모르네.
벨리스톤이 난간을 잡았다.
벨리스톤: 저건 안 온다네. 사람 사는 데는 안 와.
베드런: ......
벨리스톤: 둥지를 안 떠나거든.
베드런: 그럼 저건 뭡니까.
벨리스톤: ......
벨리스톤: 그러게 말일세.
병사 하나가 아래를 봤다.
성 밖에 오크가 삼백이었다.
그리고 위를 봤다.
하늘에 와이번이 있었다.
병사: ......
병사: 저기요.
병사가 말했다.
병사: 이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계단 아래에서 소리가 났다.
영주였다.
갑옷을 입고 있었다. 마흔 살 때 맞춘 것이어서 배 쪽 끈이 풀려 있었다.
영주가 하늘을 봤다.
영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의무실 문이 열렸다.
에다가 나왔다.
에다도 하늘을 봤다.
그리고 말했다.
에다: 약이 모자란데.
카린이 활을 들었다.
쏠 수 있는 거리가 아니었다.
그런데 들었다.
들고 있으면 조금 나았다.
와이번이 가까워졌다.
날개를 안 젓고 있었다.
바람을 타고 그냥 내려오고 있었다.
카린은 그것을 조준했다.
조준하면서 목을 봤다.
목 위에 뭐가 있었다.
카린이 활을 내렸다.
카린: 대장님.
베드런: 왜.
카린: 사람이 타고 있습니다.
베드런: ......뭐?
기훈은 해가 뜨는 것을 옆에서 봤다.
땅에서 보는 것과 달랐다.
땅에서는 해가 올라온다. 여기서는 해가 옆에 있었다.
두 개 다 옆에 있었다.
기훈은 그것을 잠깐 봤다.
그리고 아래를 봤다.
검은 것이 이제 하나하나 보였다.
봉우리에서는 면이었다.
지금은 점이었다.
점이 아주 많았다.
기훈은 세어보려고 했다.
'하나, 둘, 셋.'
'.......'
기훈은 세는 것을 그만뒀다.
성이 아래에 있었다.
성문이 있어야 할 자리가 비어 있었다.
비어 있는 게 아니라 뭔가로 메워져 있었다.
기훈은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이랬다.
성벽 위에 내린다.
기훈은 멍청이의 목을 두 번 두드렸다.
아론: 저기.
멍청이가 목을 뻗었다.
아론: 저기 위에.
멍청이가 더 뻗었다.
아론: 내려.
멍청이는 내리는 법을 몰랐다.
정확히는 내리는 것과 떨어지는 것을 구분하지 못했다.
성벽이 아주 빠르게 커졌다.
기훈이 왼쪽 눈을 가렸다.
멍청이가 오른쪽으로 틀었다.
성벽이 옆으로 지나갔다.
지나가는 동안 기훈은 얼굴들을 봤다.
아주 짧게 봤다.
전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기훈은 그중 하나와 눈이 마주쳤다.
활을 든 여자였다.
기훈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숙였다.
아론: 안녕하세요.
그리고 지나갔다.
성벽 위가 조용했다.
베드런: ......
카린: 뭐라고 했습니까.
카린이 물었다.
베드런: ......
베드런: 안녕하세요라고 한 것 같은데.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
카린: 나도 그렇게 들었다.
기훈은 성벽을 지나쳐서 성 밖으로 다시 나갔다.
즉 오크 위였다.
아론: 돌아.
기훈이 말했다.
아론: 돌라고.
멍청이가 안 돌았다.
기훈은 그때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달았다.
이 새는 착륙을 못 한다.
두 번은 나무에 처박혔다.
한 번은 호수에 빠졌다.
그게 전부였다.
'.......'
기훈은 아래를 봤다.
오크가 위를 보고 있었다.
높이가 이십 미터쯤이었다.
기훈은 그것을 십 미터로 만들기로 했다.
머리를 아래로 밀었다.
멍청이가 내려갔다.
내려가면서 속도가 붙었다.
'아 이거 아닌데.'
기훈은 뛰었다.
첫 번째 오크는 기훈이 죽인 게 아니었다.
깔려 죽었다.
기훈은 그 위에서 굴렀다.
구르면서 목소리가 하나 났다.
'턱 당겨!'
'닥쳐요.'
기훈은 일어섰다.
일어서면서 몽둥이를 잡았다.
주위가 조용했다.
오크 삼백 마리가 그를 보고 있었다.
기훈도 그들을 봤다.
아론: ......
아론: 안녕.
성벽 위에서 카린은 그것을 다 봤다.
카린: 대장님.
베드런: 봤다.
카린: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런: 봤다.
카린: 사람이 저기서.
베드런은 성벽 돌을 잡고 있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카린: 대장님.
베드런: ......
카린: 저 사람 죽습니다.
기훈은 안 죽었다.
죽을 뻔은 했다.
처음 열 마리까지는 쉬웠다.
오크는 밀집해 있었고 밀집해 있으면 서로가 방해가 된다. 앞의 것이 도끼를 들면 뒤의 것이 못 움직인다.
기훈은 그 사이로 들어갔다.
몽둥이는 무겁고 짧았다.
무겁고 짧은 것은 좁은 데서 좋다.
퍽.
퍽.
기훈은 세지 않았다.
세면 늦는다.
열한 마리째에서 뒤가 열렸다.
오크들이 물러난 것이다.
기훈은 그것이 좋은 신호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물러나면 활이 온다.
기훈이 몸을 낮췄다.
화살이 왔다.
세 대였다.
두 대는 빗나갔고 한 대는 왼쪽 팔뚝을 스쳤다.
기훈은 그 오크 쪽으로 뛰었다.
거리가 이십 미터였다.
기훈은 그 이십 미터를 사 초에 갔다.
성벽 위에서 누군가 소리를 냈다.
발차기가 나온 것은 그때였다.
활을 든 오크는 몸이 가벼웠다.
가벼운 것은 잘 날아간다.
기훈이 돌았다.
몸이 도는 만큼 발이 나갔다.
오크가 뒤로 삼 미터 날아갔다.
날아가서 다른 오크 둘을 쓰러뜨렸다.
'.......'
기훈은 그 자리에 잠깐 서 있었다.
'김 관장님.'
'저 이제 좀 되는 것 같아요.'
그다음이 문제였다.
오크는 삼백이었고 기훈은 하나였다.
밀집이 풀리자 그들이 기훈을 둘러쌌다.
둘러싸는 법을 알고 있었다.
기훈은 그것이 제일 무서웠다.
짐승은 안 둘러싼다.
짐승은 달려든다.
이것들은 기다렸다.
기훈의 갈비뼈가 다시 나갔다.
정확히는 붙다 만 자리가 다시 벌어졌다.
숨이 짧아졌다.
숨이 짧아지면 몽둥이가 무거워진다.
몽둥이가 무거워지면 다음 것이 느려진다.
기훈은 그 순서를 알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 어두워졌다.
멍청이가 낮게 지나갔다.
기훈이 부른 게 아니었다.
밥 때문이었다.
오크가 흩어졌다.
날개 폭이 삼 미터가 넘는 것이 머리 위 오 미터를 지나가면 뭐든 흩어진다.
멍청이는 그 자리에서 오크를 하나 채갔다.
발톱으로 어깨를 잡고 그대로 올라갔다.
오크가 소리를 냈다.
소리가 점점 위로 갔다.
기훈은 그 틈으로 성 쪽으로 갔다.
가면서 위를 봤다.
아론: 야.
아론: ......
아론: 한 번 더.
멍청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먹느라 바빴다.
기훈은 그것을 봤다.
'.......'
아론: ......너 진짜.
생각해보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기훈이 8일 동안 저것한테 먹인 게 오크였다.
멍청이 머릿속에서 오크는 밥이었다.
그리고 지금 여기에 밥이 삼백 마리 있었다.
성문 자리까지 삼십 미터였다.
기훈은 그 삼십 미터를 못 갔다.
오크들이 갈라졌기 때문이다.
싸우다가 갈라지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도망치거나.
길을 내주거나.
기훈은 그쪽을 봤다.
처음에는 거리 때문에 크기를 잘못 봤다고 생각했다.
가까워졌다.
잘못 본 게 아니었다.
오크였다.
기훈이 지금까지 죽인 것들과 같은 종류였다.
같은 색이었고 같은 이빨이었고 같은 냄새가 났다.
그런데 머리 하나가 더 있었다.
정확히는 다른 오크 위에 머리 하나가 더 얹힌 높이였다.
어깨가 사람 둘 너비였다.
손에 든 것은 도끼가 아니었다.
쇠였다.
성문에서 뜯어낸 것 같았다.
기훈은 아론의 기억을 뒤졌다.
'오크로드.'
기억이 뭔가를 내놨다.
'무리가 커지면 우두머리가 생긴다. 다른 개체보다 크다. 삼십에서 오십 마리를 통솔한다.'
'그리고.'
'.......'
기억은 거기서 끝났다.
기훈은 그 항목을 다시 읽었다.
'삼십에서 오십 마리.'
여기는 삼백이었다.
'.......'
아론은 책을 좋아했다.
몬스터 도감을 통째로 외웠다.
그 도감에 이건 없었다.
기훈은 몽둥이를 고쳐 잡았다.
손이 미끄러웠다.
피가 묻어서였는데 자기 피인지 남의 피인지 몰랐다.
아론: ......
기훈이 말했다.
아론: 넌 뭐냐.
그것이 멈췄다.
기훈은 그 순간을 나중에도 기억한다.
오크가 멈춘 게 아니었다.
듣고 멈춘 것이었다.
오크로드: 인간.
기훈은 몽둥이를 놓칠 뻔했다.
소리가 이상했다.
목구멍이 사람 것이 아니라서 발음이 뭉개졌다. 그런데 뭉개진 채로 단어였다.
오크로드: 작다.
아론: ......
아론: 너.
기훈이 말했다.
목소리가 자기 것 같지 않았다.
아론: 말을 하냐.
오크로드: 배웠다.
아론: 누구한테.
그것이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오크로드: 오크. 삼십.
아론: ......
오크로드: 삼십. 죽는다.
아론: ......
오크로드: 삼백.
아론: ......
오크로드: 안 죽는다.
기훈은 그 말을 들었다.
들으면서 등이 서늘해졌다.
오크가 삼백으로 뭉치면 안 죽는다는 것.
그건 계산이었다.
짐승은 계산을 안 한다.
아론: 그거.
기훈이 물었다.
아론: 네가 알아낸 거냐.
오크로드: ......
오크로드: 알려줬다.
기훈은 그다음 질문을 못 했다.
그것이 이미 움직였기 때문이다.
기훈은 그날 죽도록 맞았다.
첫 번째 것은 피했다.
쇠가 지나간 자리에서 흙이 튀었다. 튄 흙이 이 미터를 날아갔다.
두 번째 것도 피했다.
세 번째는 못 피했다.
몽둥이로 막았다.
몽둥이가 부러졌다.
기훈은 그 뒤로 뭘 했는지 잘 기억하지 못한다.
맞았다는 것은 안다.
세 번인지 네 번인지는 모른다.
한 번은 날아가서 오크 시체 위에 떨어졌다.
일어났다.
또 맞았다.
일어났다.
성벽 위에서 누가 소리를 질렀다.
기훈은 그 소리를 못 들었다.
귀에서 다른 소리가 나고 있었다.
네 번째로 맞고 나서 기훈은 못 일어났다.
손이 안 짚어졌다.
그것이 걸어왔다.
기훈의 눈앞에 무릎이 있었다.
'.......'
기훈은 그 무릎을 봤다.
2장에서 정리한 것이 세 개 있었다.
하나, 몬스터는 머리를 뭉개면 죽는다.
문제는 머리가 저 위에 있다는 것이었다.
'발차기는 힘으로 차는 게 아니야.'
'.......'
'몸이 도는 만큼 나가는 거야.'
기훈은 누운 채로 허리를 돌렸다.
허리부터 돌렸다.
발이 나갔다.
무릎 옆이었다.
뭔가가 어긋나는 소리가 났다.
그것이 처음으로 소리를 냈다.
그리고 주저앉았다.
주저앉는 순간 손에 든 쇠를 놓쳤다.
기훈은 그것을 봤다.
머리가 내려와 있었다.
트롤 때와 똑같았다.
기훈은 일어났다.
일어난 게 아니라 기어갔다.
쇠까지 삼 미터였다.
그 삼 미터가 이 산에서 걸은 어떤 삼 미터보다 멀었다.
기훈이 쇠를 잡았다.
무거웠다.
들었다.
'셋, 바위가 제일 세다.'
2장에서 정리한 세 번째였다.
지금은 바위가 아니라 쇠였다.
기훈이 그것을 들고 돌아섰다.
그것이 그를 보고 있었다.
한쪽 무릎이 접힌 채로 그를 보고 있었다.
오크로드: 인간.
아론: ......
오크로드: 이름.
기훈이 멈췄다.
왜 멈췄는지는 본인도 몰랐다.
아론: ......아론.
그것은 그 이름을 따라 하지 않았다.
다만 고개를 아주 조금 움직였다.
기훈이 쇠를 들어 올렸다.
두 손이었다.
한 번.
두 번.
세 번째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기훈은 세 번째도 했다.
성벽 위에서 카린이 그것을 봤다.
카린: ......
카린: 대장님.
베드런: 봤다.
카린: 저게.
베드런: 봤다.
오크가 멈췄다.
삼백이 동시에 멈췄다.
그리고 그다음이 이상했다.
기훈이 처음 만난 오크는 여섯이었다.
여섯은 협공을 했고 하나가 몰고 다섯이 따라왔다.
지금 삼백은 그렇게 안 했다.
앞의 것이 뒤로 물러났고 뒤의 것이 그것에 밀렸다.
밀린 것이 옆의 것을 쳤다.
옆의 것이 되받았다.
베드런은 그것을 성벽 위에서 봤다.
사십 년을 이 성에 산 사람도 못 본 광경이었다.
오크가 오크를 치고 있었다.
베드런: 카린.
카린: 예.
베드런: 저게 몇으로 보이나.
카린이 아래를 봤다.
카린: ......삼백입니다.
베드런: 아니야.
베드런이 말했다.
베드런: 삼십이 열이야.
베드런: 선생님!
벨리스톤이 상자를 이미 열고 있었다.
벨리스톤: 한 장인가.
에라리온: 한 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