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길동전
지은이 허균
그 무렵.
녹림 도적들은 해인사 사방에 숨어 있다가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일제히 달려들었다.
창고 문이 열리고—
수만 금에 이르는 재물이 쏟아져 나왔다.
도적들은 제각기 금은보화와 비단, 곡식을 챙겨 우마에 실었다.
결박당한 승려들은 몸 하나 움직이지 못한 채 그 광경을 바라볼 뿐이었다.
“원통하다!”
“아이고, 부처님이시여!”
통곡 소리가 절 안을 무너뜨릴 듯 울려 퍼졌다.
그때.
절 안에는 잔치에 끼지 않고 홀로 절을 지키던 목공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는 느닷없이 들이닥친 도적 떼가 창고를 털어 가는 광경을 보고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큰일 났다!”
목공은 곧장 절을 빠져나와 합천 관아로 달려갔다.
그리고 숨도 돌리지 못한 채 외쳤다.
“해인사가 털렸습니다!”
“도적들이 절 재물을 모조리 가져가고 있습니다!”
합천 원은 그 말을 듣고 크게 놀랐다.
“뭐라?”
그는 즉시 관인을 보내 상황을 확인하게 하고, 동시에 관군을 급히 모아 도적 추격에 나섰다.
한편—
도적들은 재물을 가득 실은 우마를 몰고 산길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뒤를 돌아본 순간.
수천 관군이 먼지를 일으키며 몰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폭풍 같았다.
도적들은 순식간에 겁에 질렸다.
“따라왔다!”
“이제 끝장이야!”
“장수 때문에 다 죽게 생겼다!”
심지어 길동을 원망하는 자들까지 생겨났다.
하지만 길동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았다.
그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내 계책을 아직 모르겠느냐.”
그리고 손으로 남쪽 큰길을 가리켰다.
“너희는 걱정 말고 남쪽 큰길로 가라.”
길동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관군은 내가 북쪽 샛길로 돌려놓겠다.”
그 말을 남긴 길동은 홀로 해인사 법당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승려 장삼을 걸치고.
꽃갓까지 눌러쓴 모습은 영락없는 늙은 중이었다.
곧 관군이 절 근처까지 들이닥쳤다.
길동은 일부러 다급한 표정으로 뛰어나갔다.
“도적들이 북쪽 샛길로 달아났습니다!”
그는 장삼 소매를 흔들며 북쪽 길을 가리켰다.
“어서 그리로 쫓으십시오!”
관군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눈앞의 노승이 홍길동일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관군은 남쪽 큰길을 버리고 북쪽 샛길로 몰려갔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길동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축지법을 펼쳐 순식간에 도적들을 따라잡았다.
도적들은 무사히 돌아온 길동을 보자 환호성을 질렀다.
“역시 장수님이다!”
“관군까지 속이다니!”
“천하의 기재로다!”
길동은 그저 담담히 웃을 뿐이었다.
그날 이후 합천 원은 관군을 이끌고 며칠이나 산을 뒤졌지만—
끝내 도적 그림자조차 찾지 못했다.
소문은 순식간에 퍼졌다.
합천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결국 이 사건은 감영에까지 보고되었다.
감사는 보고를 듣고 크게 놀랐다.
각 고을에 급히 방을 붙여 도적들을 수색하게 했지만, 홍길동 무리는 끝내 종적조차 드러내지 않았다.
오히려 관군들만 헛걸음하며 허둥댈 뿐이었다.
며칠 뒤.
길동은 다시 수백 명의 도적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는 비록 녹림에 몸담고 있으나, 본래는 모두 이 나라 백성이다.”
도적들이 조용히 길동을 바라보았다.
“나라가 위태로운 때가 오면 목숨을 걸고 임금을 도와야 한다.”
길동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그러니 병법 또한 익혀야 한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제 군기와 창고를 손에 넣을 계책이 있다.”
순간 도적들 얼굴이 굳었다.
길동은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약속한 날 밤.”
“함경감영 남문 밖 능소 근처에 불을 질러라.”
하지만 곧바로 덧붙였다.
“능소 자체는 절대 건드리지 마라.”
도적들은 동시에 머리를 숙였다.
“명을 받듭니다!”
길동은 군사를 둘로 나누었다.
한 무리는 능소 근처에 숨어 불을 지르는 역할.
그리고 다른 한 무리는 길동이 직접 이끌었다.
마침내 약속한 밤.
삼경이 되자 능소 근처에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불빛이 하늘까지 붉게 물들였다.
그 순간 길동은 곧장 감영으로 달려갔다.
쾅! 쾅! 쾅!
관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외쳤다.
“능소에 불이 났습니다!”
“어서 구휼하셔야 합니다!”
감사는 잠결에 뛰쳐나왔다.
밖을 보니 과연 불빛이 하늘을 태우고 있었다.
감사는 크게 놀라 급히 군사를 모았다.
“당장 출동하라!”
순식간에 감영 안은 끓는 물처럼 뒤집혔다.
백성들까지 모두 불 끄러 몰려나갔다.
그 결과—
성 안에는 노약자들만 남게 되었다.
바로 그 순간.
길동은 매복해 있던 도적들을 이끌고 감영 안으로 들이닥쳤다.
창고 문이 부서졌다.
군기와 곡식이 순식간에 쓸려 나갔다.
도적들은 질서정연하게 재물을 챙겼다.
그리고 길동은 다시 축지법을 펼쳐—
눈 깜짝할 사이 산채로 돌아가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