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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지은이 허균 · 2026-08-25

“여기 말고 한 곳이 더 있으나 길이 수천 리라, 그것이 염려됩니다.”

길현이 말했다.

“이제 수만 리라 한들 부모의 백골이 편안할 곳이 있다면 멀고 가까움을 따지지 않겠다.”

길동은 형과 함께 집으로 돌아와 그 말을 아뢰었다.

부인도 못내 애달파했다.

날을 가려 대감의 영구를 모시고 섬으로 향하게 되었다.

길동이 부인께 아뢰었다.

“소자가 돌아와서도 모자의 정을 다 펴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대감의 영전에 아침저녁 제사를 올리기도 어려우니,”

“어미와 함께 이번 길에 동행하게 해 주시면 좋을까 하나이다.”

부인이 허락했다.

그날로 길을 떠나 서강에 다다르니 부하들이 큰 배 한 척을 대어 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영구를 배에 모신 뒤 딸린 종들을 모두 물리쳤다.

그리고 형과 어머니를 모시고 만경창파로 떠나가니,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 뒤 섬에 이르러 영구를 대청에 모시고, 날을 가려 일봉산에 올라 장례를 치렀다.

산역하는 모습이 임금의 능을 쓰는 것 같았다.

형이 너무 분수에 넘친다며 놀라자 길동이 말했다.

“형님은 의심하지 마십시오.”

“이곳은 조선 사람이 드나드는 땅이 아닙니다.”

“자식 된 자가 부모를 후하게 장사 지내는 것이 죄가 될 리 없습니다.”

장사를 마친 뒤 섬으로 돌아와 몇 달을 머물렀다.

이윽고 형이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하니, 길동이 길을 차리며 이별을 고했다.

“형님을 다시 뵐 날이 아득합니다.”

“어머니는 이미 이곳에 오셨으니 모자의 정으로 차마 떠나지 못하겠습니다.”

“형님께서는 대감을 살아 계실 때 모셨으니 한이 없으실 것입니다.”

“돌아가신 뒤의 제사는 제가 받들어, 불효한 죄를 만분의 일이나마 덜고자 합니다.”

그러고는 함께 산소에 올라 하직하고 내려왔다.

길동의 어머니와 백씨에게도 작별을 고하니, 서로 다시 만나기를 당부하며 못내 아쉬워했다.

작은 배 한 척을 재촉하여 고국으로 향할 때, 형이 길동의 손을 잡고 말했다.

“슬프다. 이 이별이 길겠구나.”

“아우는 내 사정을 살펴, 살아생전에 대감의 산소를 다시 볼 수 있게 해 다오.”

그러면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려 옷깃을 적셨다.

길동도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형님께서는 고국에 돌아가 부인을 모시고 만수무강하십시오.”

“다시 만날 기약을 정하지 못하니,”

“남과 북으로 수천 리를 나뉘어 이불은 차갑고 외로운 새의 날개는 고단할 것입니다.”

“속절없이 북으로 가는 기러기를 보며 탄식하고, 동으로 흐르는 물을 바라볼 따름입니다.”

“산 이별이 죽은 이별과 다를 바 없으니 그 마음은 피차 한가지입니다.”

“아무리 쇠와 돌 같은 간장인들 어찌 견디겠습니까.”

두 줄기 눈물이 말소리를 따라 떨어지니, 참으로 만고에 마음 아픈 한마디였다.

강물도 그 소리에 흐르기를 멈추고, 지나가던 구름도 머무는 듯했다.

차마 서로 떨어지지 못했다.

억지로 마음을 다잡고 서로 위로한 뒤 배를 띄웠다.

몇 달 만에 고국으로 돌아와 어머니 부인께 뵙고, 산소의 사연과 앞뒤 이야기를 낱낱이 아뢰었다.

부인도 못내 애석해했다.

길동은 형을 이별한 뒤 부하들에게 농사에 힘쓰게 하고 군법을 익히게 했다.

그렇게 삼년상을 지내고 나니 양식이 넉넉했다.

수만 군졸의 무예와 진법이 천하에 으뜸이었다.

가까운 곳에 한 나라가 있었으니 이름은 율도국이었다.

중국을 섬기지 않고 수십 대를 이어 내려오며 덕으로 다스려, 나라가 태평하고 백성이 넉넉했다.

길동이 부하들과 의논했다.

“우리가 어찌 이 섬만 지키며 세월을 보내겠는가.”

“이제 율도국을 치고자 하니, 저마다 소견이 어떠한가?”

모두가 기꺼이 원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곧 날을 잡아 군사를 일으켰다.

삼호걸을 선봉으로 삼고, 김인수를 후군장으로 삼았다.

길동 스스로 대원수가 되어 중군을 총지휘하니, 기병이 오천이요 보병이 이만이었다.

북소리와 함성이 강산을 흔들고, 깃발과 칼과 창이 해와 달을 가렸다.

군사를 재촉하여 율도국으로 향하니 맞설 자가 없었다.

가는 곳마다 밥과 물을 내어 문을 열고 항복했다.

몇 달 사이에 칠십여 성을 평정하니 위엄이 온 나라에 진동했다.

도성에서 오십 리 밖에 진을 치고 율도왕에게 격문을 보냈다.

그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