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홍길동전

지은이 허균 · 2026-08-25

어느 날 길동이 부하들에게 분부했다.

“내가 망당산에 들어가 화살촉에 바를 약을 캐 오겠다.”

그러고는 길을 떠나 낙천현에 이르렀다.

그 고을에 만석꾼 부자가 있었으니 이름은 백용이었다.

아들은 없고 일찍이 딸 하나를 두었는데, 덕과 용모를 함께 갖추었다.

물고기가 헤엄치기를 잊고 기러기가 내려앉을 만한 미모요, 달도 숨고 꽃도 부끄러워할 자태였다.

옛 글을 두루 읽어 이백과 두보의 문장을 지녔고,

아름다움은 장강에 견줄 만했으며, 부덕은 태사를 본받아 말과 행동에 예절이 배어 있었다.

그 부모가 몹시 사랑하여 좋은 사윗감을 구하던 참이었다.

딸의 나이 열여덟이 되던 어느 날이었다.

비바람이 크게 일어 지척을 분간할 수 없고 천둥과 벼락이 진동했다.

그러더니 백 소저가 간 곳이 없어졌다.

백용 부부는 정신을 잃고 낯빛이 하얗게 질려, 천금을 흩어 사방으로 찾았으나 종적이 없었다.

백용은 넋 나간 사람처럼 거리를 헤매며 방을 붙였다.

‘누구든 내 딸이 있는 곳을 알아 알려 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사위로 삼고 재산을 반으로 나누어 주겠다.’

한편 길동은 망당산에 들어가 약을 캐고 있었다.

날이 저문 뒤 이리저리 헤매며 갈 곳을 알지 못했다.

그때 문득 한곳을 바라보니 불빛이 비치고 여러 사람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그곳을 찾아가니, 수백 무리가 모여 뛰놀며 즐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었는데, 모양만은 사람과 같았다.

마음속으로 의심하여 몸을 감추고 그 거동을 살폈다.

본디 이 짐승은 이름이 울동이라 하는 것이었다.

길동은 가만히 활을 잡아 윗자리에 앉은 우두머리를 쏘았다.

화살이 바로 그 가슴에 맞았다.

울동들이 크게 놀라 소리를 지르며 달아났다.

길동이 뒤쫓아 잡으려 했으나 밤이 이미 깊어, 소나무에 몸을 기대고 밤을 지새웠다.

이튿날 동틀 무렵 살펴보니 그 짐승이 흘린 피가 있었다.

핏자국을 따라 몇 리를 들어가니 큰 집이 있었는데 몹시 웅장했다.

문을 두드리자 군사 하나가 나와 길동을 보고 물었다.

“그대는 어떤 사람이기에 이곳에 왔는가?”

길동이 대답했다.

“나는 조선 사람으로, 이 산중에 약을 캐러 왔다가 길을 잃고 여기까지 왔노라.”

그 짐승은 반기는 기색을 띠며 말했다.

“그대는 의술을 아는가?”

“우리 대왕께서 새로 미인을 얻어 어젯밤 잔치를 벌이며 즐기시던 중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화살이 날아와 대왕의 가슴에 맞아 지금 사경을 헤매고 계신다.”

“오늘 다행히 그대를 만났으니, 의술을 안다면 우리 대왕의 병을 낫게 해 다오.”

길동이 대답했다.

“내 비록 편작 같은 재주는 없으나, 웬만한 병쯤은 어렵지 않게 다스린다.”

그 군사가 크게 기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가 이윽고 길동을 청했다.

길동이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우두머리 짐승이 신음하며 말했다.

“제 목숨이 아침저녁을 보전하지 못할 지경이었는데, 하늘이 도우시어 선생을 만났습니다.”

“부디 좋은 약을 일러 주시어 남은 목숨을 구해 주십시오.”

길동이 그 상처를 살피고 말했다.

“이는 어려운 병이 아니오.”

“내게 좋은 약이 있으니 한 번 먹으면 상처가 나을 뿐 아니라, 온갖 병이 사라지고 오래 살아 죽지 않게 되오.”

울동이 크게 기뻐하며 말했다.

“제가 스스로 몸을 삼가지 못하여 스스로 부른 화를 당해 목숨이 저승으로 갈 뻔했습니다.”

“하늘이 도우시어 명의를 만났으니, 선생께서는 어서 그 좋은 약을 써 주십시오.”

길동이 비단 주머니를 열어 약 한 봉지를 꺼내 술에 타서 주었다.

그 짐승이 받아 마시더니, 이윽고 몸을 뒤틀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너와 원수 진 일이 없거늘, 무슨 까닭으로 나를 해쳐 죽이려 하느냐!”

그러고는 제 아우들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