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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지은이 한용운

사실 순영도 알고 있었다.

편지를 보낸 바로 다음 날 답장이 올 리 없다는 걸.

함흥까지 가는 시간도 있을 테고, 대철이 편지를 읽고 다시 답장을 쓰는 시간도 필요했다.

그런데도—

순영은 하루 종일 우체부만 기다렸다.

사람 그림자만 보여도 괜히 가슴이 뛰었다.

우체부 모자라도 언뜻 보이면 반가워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다른 집으로 가 버리면—

괜히 세상이 무정한 것처럼 느껴졌다.

순영은 피식 웃었다.

“내가 왜 이렇게 됐지…”

하지만 웃고도 금세 다시 문 쪽을 바라보게 됐다.

순영은 그제야 깨달았다.

편지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소식을 기다리는 건 그보다 훨씬 더 괴로운 일이었다.

시간은 이상하게도 더디게 흘렀다.

하루가 이틀 같고, 한 시진이 하루 같았다.

그리고—

사흘째 되던 날.

드디어 전보가 도착했다.

〈명일 오후 착〉

짧은 글자 네 개.

하지만 순영은 그 전보를 읽는 순간 정말 날아갈 것만 같았다.

가슴이 너무 뛰어서 숨조차 제대로 쉬기 어려웠다.

“온다…”

그녀는 전보를 두 손으로 꼭 쥐었다.

“정말 오는구나…”

순영은 정신없이 방 안을 서성였다.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 얼굴은 며칠 사이 조금 야위어 보였다.

눈 밑도 아주 살짝 그늘져 있었다.

순영은 자기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왜 이렇게 야위었냐고 물으면…’

그녀는 괜히 혼자 웃었다.

‘기다리느라 그랬다고 해야지.’

생각만 해도 얼굴이 붉어졌다.

순영은 크림을 꺼내 얼굴에 발랐다.

손바닥으로 살살 문지르자 금세 피부에 윤기가 돌았다.

조금 포슬포슬하고 부드러워 보였다.

그러자 또 고민이 생겼다.

‘화장을 안 하고 파리한 얼굴을 보여 줄까…’

자기를 얼마나 기다렸는지 대철이 한눈에 알 수 있게.

아니면—

최대한 예쁘게 꾸며 첫눈에 좋은 얼굴로 보여 줄까.

순영은 한참 고민했다.

그런데 고민하는 사이 손은 이미 향수병과 분갑을 오가고 있었다.

정신 차려 보니 화장은 거의 다 끝나 있었다.

순영은 피식 웃었다.

그리고 다시 전보를 펼쳐 보았다.

〈명일 오후 착〉

“…아.”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

내일이었다.

아직 하루 남아 있었다.

순영은 괜히 민망해져 마른 수건으로 화장을 살짝 닦아 냈다.

조금 옅어진 화장이 오히려 더 수수하고 예뻐 보였다.

그때였다.

“너 어디 가니?”

문지방에 기대선 산월이 퉁퉁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순영은 화들짝 놀라 돌아봤다.

“가긴 어딜 가?”

“그럼 왜 그렇게 단장하고 있어?”

산월이 눈을 가늘게 떴다.

“누가 오나 보다?”

“오긴 누가 와.”

순영은 일부러 시치미를 뗐다.

산월은 키득 웃었다.

“아닌 밤중에 웬 단장이야.”

“뭐가 아닌 밤중이야.”

순영이 발끈했다.

“지금 대낮이거든?”

“대낮에 해도 이상하면 다 아닌 밤중이지.”

산월은 끝까지 놀려댔다.

“네게 전보 왔잖아.”

순영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그래서?”

“정든 임한테서 온 거냐?”

순영은 괜히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래. 정든 임한테 왔다. 왜?”

“에이구, 아주 미쳤네.”

산월이 낄낄 웃었다.

“그래서 그렇게 혼자 화장하고 있었구나?”

“너 진짜…”

순영이 부끄러워 얼굴을 돌리려는 순간—

밖에서 숙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산월아!”

숙자의 짜증 섞인 목소리였다.

“거기서 뭘 그렇게 주절거리고 있어? 얼른 안 나가?”

산월은 깔깔 웃으며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갔다.

방 안에 혼자 남은 순영은—

다시 한번 조심스럽게 전보를 펼쳐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