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지은이 한용운
순영은 대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웃었다.
“그래도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
“정말 사랑한다면…”
그녀는 술잔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만지며 말했다.
“행복이든 고통이든 같이 나누는 게 맞는 거 아닌가요?”
대철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순영은 눈을 내리깔며 작게 웃었다.
“저는 선생님 고통이라면 통째로라도 가져오고 싶은데요.”
그 말에 대철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감사합니다.”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대철이 말을 망설이던 순간이었다.
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예?”
“금광하신다면서요?”
대철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그 이야긴 어디서 들으셨어요?”
“다 들었어요.”
순영은 숨기지 않고 말했다.
“금광 출원 때문에 돈이 필요하시다면서요.”
대철은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금광을 하는 건 아니고… 하려고 하는 겁니다.”
“요즘 금광해서 큰부자 된 사람 많다던데요.”
“글쎄요.”
대철은 씁쓸하게 웃었다.
“나도 한번 큰부자 되어 보려고 하는데, 뜻대로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순영은 곧장 본론을 꺼냈다.
“그런데 돈이 아직 마련 안 되신 거죠?”
“……”
“얼마면 되는데요?”
대철은 그녀를 바라봤다.
“한 백오십 원 정도면 됩니다.”
“그럼…”
순영은 거의 망설임 없이 말했다.
“제가 해드릴게요.”
대철의 표정이 굳었다.
“천만에.”
“왜요?”
“순영 씨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런 큰돈을…”
“있어요.”
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돈이 있으면 못할 이유도 없잖아요.”
그녀는 대철을 똑바로 바라봤다.
“저는 선생님께 제 몸도 드릴 사람인데…”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돈이 뭐 대수예요.”
대철은 순간 말을 잃었다.
순영은 급히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아무 걱정 마시고 출원부터 하세요.”
그리고 살짝 웃었다.
“금광 잘되면 저도 같이 호강하는 거 아니에요?”
그녀는 끝까지 하지 못한 말이 남은 듯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철은 그런 순영을 한참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말 순서가 바뀌었군요.”
“예?”
“나는…”
대철은 숨을 고르듯 말했다.
“순영 씨와 평생 함께 살고 싶습니다.”
순영의 숨이 멎었다.
“……!”
“나 같은 사람과 결혼해 주시겠습니까?”
순간 세상이 멈춘 것 같았다.
순영은 이미 수없이 마음속으로 그 말을 기다려 왔다.
자기도 여러 번 마음을 내비쳤다.
평생 의지하고 싶다고.
그 사람 곁에서 살고 싶다고.
하지만—
막상 대철 입에서 직접 “결혼”이라는 말이 나오자 가슴이 미친 듯 뛰었다.
목소리까지 떨렸다.
순영은 얼굴이 붉어지는 걸 감추려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올려다봤다.
“선생님…”
그녀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정말이세요?”
대철은 곧장 대답했다.
“그런 말을 농담으로 하는 사람처럼 보입니까?”
순영은 결국 웃음과 눈물이 함께 터졌다.
“아니에요…”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꿈같아서요…”
눈물이 천천히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철은 그런 그녀를 조용히 바라보다가 일부러 분위기를 바꾸듯 말했다.
“자, 술이나 한잔 주시지요.”
“아!”
순영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얘기하다가 깜빡했네.”
그녀는 황급히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서도 문 앞에서 한번 뒤돌아 대철을 바라봤다.
그리고 웃었다.
잠시 뒤 술상을 들고 돌아온 순영은 잔에 술을 따르며 물었다.
“그럼…”
그녀는 조심스럽게 숨을 삼켰다.
“내일이라도 돈만 생기면 바로 가시는 거예요?”
“예.”
대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늦은 편입니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요즘 금광 출원은 시각을 다투거든요.”
“……”
“내가 발견한 곳이라 남이 아직 모를 가능성은 크지만…”
그는 술잔을 내려다봤다.
“세상 일은 모르는 거니까요.”
순영은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럼 어디로 가세요?”
“우선 서울로 갑니다.”
“서울…”
“출원은 서울에서 해야 하니까요.”
“그 뒤에는요?”
“곧 금광 있는 곳으로 내려가야 합니다.”
순영은 조용히 물었다.
“어디인데요?”
대철은 잠시 웃었다.
“원래 출원 전엔 남한테 잘 말 안 하는데…”
그리고 그녀를 바라봤다.
“순영 씨가 설마 내 광산 뺏어가겠습니까.”
“에구.”
순영도 웃었다.
“제가 하나 선생님이 하나 무슨 차이예요.”
그녀는 웃다가 문득 표정을 바꿨다.
“그럼…”
그리고 아주 작게 물었다.
“언제 다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