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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지은이 한용운

“떠나세요?”

순영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왜 그렇게 갑자기요?”

“객지에 왔으면 또 떠나야지요.”

대철은 담담하게 말했다.

하지만 순영은 그 태도가 더 서운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으세요?”

“급한 일이라기보다… 사정이 좀 있습니다.”

“무슨 사정인데요?”

“아실 것 없습니다.”

“제가 알아선 안 되는 일인가요?”

순영의 목소리에는 이미 섭섭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대철은 고개를 저었다.

“못 알 일이야 아니지만, 구구한 사정을 굳이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

“또 언제 올지도 모르겠고요.”

그 말을 들은 순간 순영의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또 언제 올지 모른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가슴을 후벼 팠다.

순영은 고개를 숙였다.

대철이 떠난다면서도 자기에게 별다른 미련 없는 사람처럼 말하는 게 너무 서운했다.

대철은 그런 순영의 표정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자리 자세를 고쳐 앉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떠나는 나로서는 적지 않은 고통이 있습니다.”

순영의 눈빛이 곧바로 흔들렸다.

그녀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돈 이야기겠지…’

하지만 일부러 모르는 척 물었다.

“무슨 고통인데요?”

“그건 내가 자초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요.”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니까요.”

순영은 조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것도 말씀 못 하세요?”

“못 할 건 아닙니다.”

대철은 잠시 머뭇거렸다.

“다만…”

그는 순영을 바라봤다.

“순영 씨에게 모욕이 될까 봐 말하기 어렵군요.”

“제게 모욕이요?”

순영은 눈을 크게 떴다.

“대체 무슨 말씀이기에 그래요?”

“그럼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선생님 말씀인데 제가 왜 나쁘게 생각해요.”

순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말이든 하세요.”

대철은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다가 낮게 입을 열었다.

“나는 지금 떠나야 할 사정이 있으면서도…”

그는 말을 천천히 끊었다.

“도무지 떠나기가 싫습니다.”

순영의 심장이 크게 뛰었다.

대철은 눈을 피하지 않은 채 말했다.

“순영 씨와 작별하고 떠날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 순간—

순영은 모든 걸 이해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에구, 선생님도…”

순영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입을 가렸다.

“저 같은 사람한테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시겠지요.”

대철은 씁쓸하게 웃었다.

“순영 씨 마음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용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나로서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겪은 고통 가운데 가장 큰 고통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진심이었다.

“만약 내가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다면…”

대철은 한숨처럼 웃었다.

“나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인 동시에 가장 약한 사람이 되겠지요.”

순영은 결국 눈물을 참지 못했다.

“선생님이 저를 떠나는 게 가장 큰 고통이라면…”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한텐 그게 세상에서 가장 큰 행복이에요.”

대철의 눈빛이 흔들렸다.

순영은 계속 말했다.

“저는 선생님을 모시고 살 수 없다면… 앞으로 세상에 아무 즐거움도 없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주 조용히 덧붙였다.

“선생님이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면… 저는 무슨 고통이 와도 괜찮아요.”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대철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오히려 더 깊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나는 반대입니다.”

“……?”

“순영 씨를 사랑하게 되면서…”

대철은 천장을 바라봤다.

“새로운 고통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순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렇게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저한테 말씀하셔도 되잖아요.”

그녀는 진심 어린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선생님 일이라면 제가 방해될 일은 절대 없어요.”

대철은 잠시 미안한 듯 웃었다.

“글쎄요…”

“……”

“바로 순영 씨를 사랑하기 때문에 말하기 어려운 겁니다.”

순영은 가슴이 저릿해졌다.

그리고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

“선생님.”

“예.”

“정순이한테 하신 말씀 있지요?”

대철의 눈빛이 달라졌다.

“정순 씨한테요?”

“네.”

“무슨 말씀을요?”

“꼭 정순이한테 한 말은 아니더라도…”

순영은 숨을 삼켰다.

“정순이 듣는 데서 하신 말씀 없으세요?”

대철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서 정식 군한테 이야기한 적은 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되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말을 들으셨어요?”

순영은 괜히 입술을 깨물었다.

“정순이 듣는 데는 말씀하시면서…”

그녀는 조금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저한텐 말씀 안 하시는 건 정순이를 더 믿으셔서 아니에요?”

대철은 순간 피식 웃었다.

“그게 아닙니다.”

그는 천천히 말했다.

“다른 사람이 들으면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지만…”

그의 눈빛이 순영에게 향했다.

“순영 씨가 들으면 아플까 봐 말 못 한 겁니다.”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

“사랑하는 사람한텐 못 할 일이 없다 해도…”

잠시 숨을 고른 뒤.

“고통 주는 말만큼은 쉽게 못 하는 법이니까요.”

순영의 눈빛이 천천히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