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지은이 한용운
이틀 뒤.
비가 내리는 저녁이었다.
홍 숙자의 술집은 유난히 한산했다.
비를 피하려 들어온 선술꾼들이 드문드문 있을 뿐, 시끌벅적하던 평소와는 달리 적막한 기운마저 감돌았다.
순영은 자기 방 문턱에 걸터앉아 멍하니 처마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마치 작은 구슬처럼 반짝였다.
찬란하게 빛나던 물방울은 땅에 닿는 순간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면 또 다른 물방울이 그 뒤를 이어 떨어졌다.
순영은 이상하게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그래서 문득 손을 뻗어 보았다.
떨어지기 전에 받아 보면 어떨까 싶어서.
하지만 물방울은 손바닥에 닿는 순간에도 마찬가지였다.
톡.
하고 깨져 버렸다.
차가운 물이 손등과 얼굴, 옷깃에 튀었다.
순영은 괜히 마음이 서늘해졌다.
차라리 땅에서 깨지는 것보다 자기 손 안에서 부서지는 게 더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녀는 다시 자리를 옮겨 앉아 빗방울을 바라봤다.
어떻게 하면 저 구슬 같은 물방울을 온전히 받아낼 수 있을까.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순영은 더 자세히 보려고 전등 위치까지 바꾸기 시작했다.
조금 더 환하게 비추면 될까 싶어 등을 앞으로 내걸었지만—
이번에는 빗방울이 너무 또렷하게 보여서 오히려 처음 같은 반짝임이 사라져 버렸다.
“아…”
순영은 괜히 제 실수를 깨달은 사람처럼 멍해졌다.
다시 등을 옮겨 보았다.
위로도 걸어 보고, 아래로도 내려 보고, 이리저리 방향까지 바꿔 봤지만—
처음 보았던 그 반짝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순영은 한숨 같은 웃음을 지었다.
‘세상 일도 그런 건가…’
너무 잘하려 해도 안 되고, 억지로 붙잡으려 해도 틀어지는 것.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도 혹시 다시 볼 수 있을까 싶어 순영은 계속 빗줄기를 바라보았다.
오래 바라보다 보니 눈이 아른거렸다.
실제로 없는 구슬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그때였다.
“넌 뭘 그렇게 정신 놓고 보고 있니?”
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순영이 화들짝 놀랐다.
“에구, 깜짝이야!”
고개를 돌리자 정순이 서 있었다.
“너 왜 그렇게 소리도 없이 와?”
“소리도 없긴 왜 없어.”
정순이 피식 웃었다.
“저기서부터 저벅저벅 걸어왔는데 네가 정신 팔려 있었던 거지.”
“그런데 비 오는데 어쩐 일이야?”
순영은 반가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뜻밖이다. 어서 들어가자.”
두 사람은 방 안으로 들어갔다.
순영은 정순을 앉히며 연신 웃었다.
“근데 정말 웬일이니?”
“네가 보고 싶어서 왔다.”
“응?”
“저녁 먹고 앉아 있는데 갑자기 네 생각이 나더라.”
정순은 젖은 치맛자락을 손으로 털며 웃었다.
“그래서 우장옷만 걸치고 그냥 뛰어나왔지.”
“에구 요런.”
순영이 웃음을 터뜨렸다.
“비 오니까 사람 말까지 많아졌네?”
“정말이라니까.”
정순은 눈을 흘겼다.
“이 비를 뚫고 온 게 장난인 줄 알아?”
“알았어, 알았어.”
순영은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잘 왔다. 나도 심심해 죽는 줄 알았거든.”
정순은 방 밖을 한번 힐끗 바라봤다.
“근데 너 저번에 김 선생님 만났을 때 말이야.”
순영의 눈빛이 순간 달라졌다.
“응?”
“그날 나온 뒤에 무슨 얘기했니? 아마 네 얘기 많이 했겠지?”
순영은 일부러 아무렇지 않은 척 물었지만, 속으로는 심장이 뛰고 있었다.
정순은 피식 웃었다.
“김 선생이 아주 네게 홀딱 반했더라.”
“……!”
“어쩌면 사람을 한 번 보고 그렇게까지 정신을 못 차리니?”
정순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순영은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소리 말고… 정말 뭐라고 했는데?”
“흉은 무슨 흉을 봐.”
정순은 고개를 저었다.
“네가 얌전하고 조촐하다고 하길래 나도 그렇다고 했지.”
그리고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덧붙였다.
“아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더라.”
순영은 웃으려다가 괜히 입술만 깨물었다.
“에구, 또 네 말 보탠 거겠지.”
“아니라니까?”
정순은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진짜야.”
그러고는 조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더 신기한 건 따로 있었어.”
“뭔데?”
“원산에서 네 물에 빠졌을 때 있잖아.”
순영의 눈이 커졌다.
“……!”
“김 선생이 너 구해준 이야기. 나 다 들었어.”
순영은 순간 얼굴이 확 붉어졌다.
“너… 어떻게 알아?”
“어제 김 선생이 서 선생 있는 데 와서 이야기했거든.”
정순은 감탄한 듯 말했다.
“근데 정말 신기한 인연이더라.”
그리고 웃으며 덧붙였다.
“서 선생도 듣고 엄청 놀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