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
지은이 中島敦
이릉이 난전 중에 정신을 잃고 선우의 장막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떠올랐다. 스스로 목을 베어 치욕을 면할 것인가, 아니면 일시적으로 적에게 복종하고 기회를 보아 탈출할 것인가. 이릉은 후자를 택하기로 결심했다.
선우는 직접 이릉의 밧줄을 풀어주었고, 그 후의 대우도 매우 정중했다. 선우는 선대의 동생으로, 골격이 굵고 눈이 큰 중년 남자였다. 그는 지금까지 여러 대의 선우와 함께 한나라와 싸워왔지만, 이릉만큼 강한 적은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이릉의 할아버지인 이광의 이름을 언급하며 그의 선전을 칭찬했다. 이광의 이름은 지금도 오랑캐 땅에까지 전해지고 있었고, 이릉이 후한 대우를 받는 것은 그가 강자의 후손이며, 또한 그 자신도 강했기 때문이었다.
식사 때도 강한 자가 맛있는 것을 취하고, 늙고 약한 자에게는 남은 것을 나눠주는 것이 흉노의 풍습이었다. 이곳에서는 강자가 모욕당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항복한 장수로서 이릉은 하나의 돔형 천막과 수십 명의 시종을 받았고, 빈객처럼 대우받았다.
이릉에게는 기묘한 생활이 시작되었다. 집은 융단 천막, 음식은 양고기, 음료는 유제품과 락장, 짐승 젖, 유초주. 옷은 늑대나 양, 곰 가죽을 꿰매 만든 것으로, 그들의 생활은 목축과 사냥, 그리고 약탈에 한정되어 있었다. 광대한 고원에도 강과 호수, 산들에 의한 경계가 있었고, 선우 직할지 외에는 각 왕후의 영지로 나뉘어 있었다. 촌락은 있었지만, 계절에 따라 물과 풀을 찾아 이동하기 때문에 정주하지는 않았다.
이릉에게는 땅이 주어지지 않았고, 선우 밑에서 다른 장수들과 함께 항상 선우를 따랐다. 틈만 나면 선우의 목을 노리려 생각했지만, 그렇게 쉽게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 설령 선우를 죽인다 해도, 그 목을 가지고 탈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오랑캐 땅에서 선우를 찔러 죽일 경우, 흉노는 그 불명예를 숨길 것이므로 한나라에 알려질 일은 없을 터였다. 이릉은 끈기 있게 그 불가능해 보이는 기회를 기다렸다.
선우의 막하에는 이릉 외에도 한나라에서 항복한 사람이 몇 명 있었다. 그중 한 명인 위율이라는 남자는 군인은 아니었지만, 정령왕의 지위를 받고 선우에게 중용되었다. 그의 아버지는 호인이었으나, 위율은 한나라의 도읍에서 태어나 자랐다. 무제를 섬기다가 지난번 이연년 사건을 두려워하여 흉노로 도망쳐 돌아왔다. 피는 피인지라 호풍에 익숙해지는 것도 빨랐고, 그는 상당한 재능을 가지고 있어 항상 선우의 측근으로서 계책에 참여했다. 이릉은 위율을 비롯한 다른 한인 항복자들과는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 있는 계획을 함께할 인물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어느 날, 선우는 이릉을 불러 군략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그것은 동호에 대한 싸움에 관한 것이었으므로, 이릉은 흔쾌히 의견을 말했다. 그러나 다음에 선우가 한군에 대한 작전에 대해 상담을 요청했을 때, 이릉은 분명히 싫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려고 하지 않았다. 선우도 억지로 대답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대와 상군을 습격하는 군대의 한 장수로서 남행할 것을 요구받았지만, 이릉은 한나라에 대한 싸움에는 나갈 수 없다고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 이후, 선우는 다시는 이러한 요구를 하지 않았다. 대우는 변함없이, 다만 선비를 대우하기 위해 선비를 대우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릉은 이 선우가 남자다운 인물이라고 느꼈다.
선우의 장남인 좌현왕이 묘하게 이릉에게 호의를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호의라기보다는 오히려 존경에 가까운 것이었다. 스무 살을 갓 넘긴 거칠지만 용기 있는 성실한 청년으로, 강자에 대한 찬미가 매우 순수하고 강렬했다. 처음 이릉에게 와서 기마술과 활쏘기를 가르쳐 달라고 부탁했다. 기마술과 활쏘기라고 해도, 그 자신도 이릉에 못지않게 능숙했고, 특히 맨몸으로 말을 모는 기술에 있어서는 훨씬 이릉을 능가했으므로, 이릉은 사격만을 가르치기로 했다. 좌현왕은 열성적인 제자가 되어, 이릉의 할아버지 이광의 사격 기술에 대해 이야기하자, 그의 눈은 빛나고 열성적으로 귀를 기울였다.
두 사람은 자주 사냥을 나갔다. 겨우 몇 명의 수행원만 데리고 광활한 들판을 달리며 여우나 늑대, 영양, 꿩을 쏘았다. 한번은 해 질 녘이 다가오고 화살이 다 떨어져 갈 때 두 사람이 늑대 무리에 둘러싸인 적이 있었다. 말에 채찍을 가해 전속력으로 늑대들 사이를 뚫고 도망쳤는데, 그때 이릉의 말 엉덩이에 달려든 한 마리를 뒤에 있던 좌현왕이 훌륭하게 베어버렸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두 사람의 말은 늑대에게 물어뜯겨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그런 하루를 보낸 후 밤에 천막 안에서 오늘의 사냥감을 냄비에 넣고 후후 불어가며 후루룩 마실 때 이릉은 불빛에 비친 젊은 왕자에게 문득 우정 같은 것을 느끼곤 했다.
천한 3년 가을, 흉노가 다시 안문을 습격했다. 이 보복에 대비하여 이듬해인 4년, 한나라는 이사장군 이광리에게 6만 명의 기병과 7만 명의 보병을 주어 삭방으로 향하게 했다. 또한, 강노도위 노박덕에게는 1만 명의 보졸을 이끌게 하여 그의 군대를 지원하게 했다. 나아가 인장군 공손오는 1만 명의 기병과 3만 명의 보병을 안문으로, 유격장군 한설은 3만 명의 보병을 오원으로 각각 파견했다. 이는 근래에 보기 드문 대규모 북벌이었다.
선우는 이 소식을 듣자마자 즉시 부녀자와 노약자, 가축, 재산을 모두 여오수 북쪽으로 옮기고, 스스로 10만 명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이광리와 노박덕의 군대를 수남의 대초원에서 맞아 싸웠다. 연전은 10일 이상 계속되었고, 한군은 결국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릉에게 사사받는 젊은 좌현왕은 다른 부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향하여 공손오를 크게 격파했다. 한군의 좌익을 담당했던 한설의 군대 또한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병력을 철수하게 되었다. 북정은 완전한 실패로 끝났다.
이릉은 평소처럼 한나라와의 전쟁에는 선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수북으로 물러나 있었지만, 좌현왕의 전과를 신경 쓰고 있는 자신을 깨닫고 경악했다. 물론 전체적으로는 한군의 성공과 흉노의 패배를 바랐지만, 좌현왕만은 어떻게든 지게 하고 싶지 않다고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았다. 이릉은 그 사실을 깨닫고 격렬하게 자신을 책망했다.
공손오가 도읍으로 돌아와 많은 사졸을 잃어 공적이 없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혔을 때, 그는 기묘한 변명을 했다. 적의 포로가 말하기를, 흉노군이 강한 것은 한나라에서 투항한 이 장군이 늘 병사들을 훈련시키고 군략을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아군이 패배한 것에 대한 변명이 될 수는 없었으므로, 인 장군의 죄는 용서받지 못했지만, 이 말을 들은 무제는 이릉에게 격노했다. 예전에 용서받아 집으로 돌아갔던 이릉의 일족은 다시 감옥에 갇혔고, 이번에는 그의 노모부터 아내, 자식, 동생에 이르기까지 모두 살해당했다. 경박한 세인의 상례대로, 당시 농서의 사대부들은 모두 이씨 가문을 배출한 것을 부끄러워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소식이 이릉의 귀에 들어간 것은 반년쯤 뒤의 일이었다. 변방에서 납치된 한 한나라 병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것을 들었을 때, 이릉은 벌떡 일어나 그 남자의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면서 일의 진위를 재차 확인했다. 확실히 틀림없는 사실임을 알자, 그는 이를 악물고 무심코 양손에 힘을 주었다. 남자는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이릉의 손은 무의식중에 그 남자의 목을 조르고 있었던 것이다. 손을 놓자, 남자는 털썩하고 땅에 쓰러졌다. 그 모습에 눈길도 주지 않고, 이릉은 장막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무아지경으로 들판을 걸었다. 격렬한 분노가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노모와 어린 자식들을 생각하면 마음은 타오르는 듯했지만, 눈물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너무나 강한 분노는 눈물을 마르게 하는 것일까.
지금의 사태는 이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 우리 집안은 한나라로부터 어떻게 취급받아 왔는가? 그는 할아버지 이광의 최후를 떠올렸다. 이릉의 아버지 당호는 그가 태어나기 몇 달 전에 죽었기 때문에, 그는 이른바 유복자였고, 소년 시절까지 그를 교육하고 단련시킨 것은 유명한 이 할아버지였다. 명장 이광은 수차례의 북정에서 큰 공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임금 곁의 간신들에게 방해받아 아무런 은상도 받지 못했다. 부하 장군들이 차례차례 작위를 얻어가는 동안, 청렴한 장군만이 봉후도 받지 못하고 변함없는 청빈에 만족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대장군 위청과 충돌했다. 위청은 이 노장을 위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막하의 한 군리가 호가호위하여 이광을 욕보였다. 분격한 노명장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을 베었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소리 내어 울었던 소년 시절의 자신을, 이릉은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한다.
이릉의 숙부, 이감의 최후는 어떠했는가. 그는 아버지의 비참한 죽음에 대해 위청을 원망하고, 대장군의 저택으로 찾아가 그를 욕보였다. 대장군의 조카인 표기장군 곽거병이 그것을 분노하여, 감천궁의 사냥 중에 이감을 활로 쏘아 죽였다. 무제는 그것을 알면서도, 표기장군을 감싸기 위해, 이감은 사슴 뿔에 찔려 죽었다고 발표하게 했다.
이릉의 경우는 사마천과는 달리 간단했다. 그에게는 분노가 전부였다. 무리인 줄 알면서도 조금 더 일찍 선우의 목을 가지고 오랑캐 땅을 벗어나는 계획을 실행했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후회를 제외하면, 단지 그것을 어떻게 나타낼지가 문제였다. 그는 아까 그 남자의 말, “오랑캐 땅에 있으면서 이 장군이 병사를 가르쳐 한나라에 대비하고 있다고 듣고 폐하께서 격노하셨다”라는 것을 떠올렸다. 마침내 생각이 미쳤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런 기억이 없지만, 같은 한나라의 항장 중에 이서라는 자가 있다. 원래 새외도위로서 해후성을 지키던 남자인데, 그가 흉노에 항복한 후로는 항상 오랑캐 군대에 군략을 가르치고 병사를 단련시키고 있다. 실제로 반년 전의 군대에서도 선우를 따라 한나라 군대와 싸웠던 것이다. 이것이다, 이릉은 생각했다. 같은 이 장군이고, 이서와 착각한 것이 틀림없다.
그날 밤, 그는 혼자 이서의 장막으로 향했다. 말을 섞을 것도 없이, 단 한 번의 칼질로 이서를 쓰러뜨렸다.
다음 날 아침, 이릉은 선우 앞에 나아가 사정을 털어놓았다. 걱정할 것 없다고 선우는 말했다. 그러나 어머니인 대알씨가 다소 시끄러우니—이는 상당한 노령임에도 불구하고, 선우의 어머니는 이서와 불륜 관계에 있었던 모양이다. 선우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흉노의 풍습에 따르면, 아버지가 죽으면 장자는 죽은 아버지의 처첩을 모두 이어받지만, 생모만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는다.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존경은 남존여비인 그들에게도 특별한 것이었다—당분간 북쪽에 숨어 있다가, 소란이 가라앉을 때쯤 데리러 사람을 보낼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 말에 따라, 이릉은 한동안 종자들을 데리고 서북쪽의 두함산 기슭에 몸을 숨겼다.
머지않아 문제의 대알씨가 병사하고 선우의 정원으로 불려 돌아왔을 때, 이릉은 마치 딴사람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한나라에 대한 군략에는 결코 관여하지 않았던 그가, 스스로 나서서 그 상담에 응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선우는 이 변화를 보고 크게 기뻐하며, 이릉을 우교왕에 임명하고 자신의 딸 중 한 명을 아내로 맞이하게 했다. 이전에도 그 이야기는 있었지만, 이릉은 계속 거절해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주저 없이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침 주천 장액 부근에서 남쪽으로 출발하는 군대가 있었고, 이릉은 스스로 그 군대를 따르겠다고 청했다. 그러나 서남쪽으로 나아가는 도중, 준계산 기슭을 지나갈 때, 그의 마음은 흐려졌다. 예전에 이곳에서 함께 싸웠던 부하들을 떠올리며, 그들의 뼈가 묻히고 피가 스며든 모래 위를 걸으면서, 지금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니 한나라 병사와 싸울 용기를 잃어버렸다. 병을 핑계로, 그는 홀로 북쪽으로 말을 돌렸다.
이듬해, 태시 원년, 차후 선우가 죽고 이릉과 친했던 좌현왕이 뒤를 이었다. 그의 이름은 호록고 선우이다.
흉노의 우교왕 이릉의 마음은 여전히 정해지지 않았다. 어머니와 아내, 자식을 멸족당한 한이 골수에 사무쳤지만, 스스로 병사를 이끌고 한과 싸울 수 없다는 것은 최근의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분명했다. 다시는 한의 땅을 밟지 않겠다고 맹세했지만, 흉노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새로운 선우와의 우정을 가지고도 자신할 수 없었다.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초조해지면 늘 혼자 준마를 몰아 광활한 들판으로 뛰쳐나갔다. 가을의 푸른 하늘 아래, 발굽 소리를 울리며 초원과 구릉을 미친 듯이 내달렸다. 수십 리를 달린 후, 말도 사람도 마침내 지쳐 고원의 작은 시냇물을 찾아 그 강가로 내려가 말에게 물을 먹였다. 그리고 풀밭에 똑바로 누워 쾌적한 피로감에 잠기며 맑은 하늘의 높이와 넓이를 올려다보았다. 아아, 나는 천지 사이의 한 알갱이에 불과하다, 한과 오랑캐의 차이가 무엇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 쉰 후, 다시 말에 올라 무작정 내달렸다. 온종일 말을 타고 지쳐 황혼녘이 되어서야 그는 막영으로 돌아왔다. 피로만이 그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사마천이 이릉을 위해 변명하여 죄를 가볍게 해주었다는 것을 전하는 자가 있었다. 이릉은 특별히 감사하는 마음도, 안타깝게 여기는 마음도 없었다. 사마천과는 서로 얼굴을 아는 정도였고, 특별히 친한 관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논쟁만 하고 시끄러운 사람이라고 느꼈다. 현재의 이릉은 타인의 불행을 실감할 여유도 없이, 자기 자신의 고통과 싸우는 데 필사적이었다. 쓸데없는 참견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특별히 미안하다고도 느끼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처음에는 호지의 풍속이 야비하고 우스꽝스럽게만 느껴졌지만, 점차 그 지역의 실제 풍토와 기후를 배경으로 생각해보니 결코 야비하거나 불합리하지 않다는 것을 이릉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두꺼운 가죽 호복이 아니면 북쪽의 겨울을 견딜 수 없고, 육식이 아니면 한랭을 견딜 만한 정력을 축적할 수도 없다. 고정된 가옥을 짓지 않는 것도 그들의 생활 형태에서 온 필연이며, 머리부터 저급하다고 단정하는 것은 맞지 않다. 한인의 풍습을 유지하려 한다면 호지의 자연 속에서의 생활은 하루도 계속할 수 없는 것이다.
이릉은 일찍이 선대 저후 선우가 했던 말을 기억한다. 한나라 사람들은 두 마디만 하면 자국을 예의의 나라라고 칭하며 흉노의 행동을 금수에 가깝다고 비난하지만, 선우는 이렇게 말했다. 한나라 사람들이 말하는 예의란 무엇인가? 추한 것을 겉만 아름답게 꾸미는 허식이 아닌가. 이익을 좋아하고 사람을 질투하는 것, 한나라 사람과 오랑캐 중 어느 쪽이 더 심한가? 색에 탐닉하고 재물을 탐하는 것, 또 어느 쪽이 더 심한가? 겉껍질을 벗겨내면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다. 다만 한나라 사람들은 그것을 숨길 줄 알고 우리는 그것을 모를 뿐이라고. 한나라 초 이래의 내란과 공신 배척의 예를 들어 이렇게 말했을 때, 이릉은 거의 할 말이 없었다. 실제로 무인인 그는 지금까지도 번거로운 예의를 위한 예의에 의문을 느낀 적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확실히 호족의 거친 정직함이 미명 아래 숨겨진 한나라 사람들의 음험함보다 훨씬 더 바람직한 경우가 많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중원의 풍속을 올바른 것으로, 오랑캐 풍속을 비천한 것으로 머리부터 단정하는 것은 너무나 한나라 사람들의 편견이 아닌가 하고 점차 이릉은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지금까지 인간에게는 이름 외에 자가 필요하다고 무조건적으로 믿었지만, 생각해보면 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의 아내는 매우 온순한 여자였다. 아직도 남편 앞에 나서면 조심스러워 제대로 말도 못 한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태어난 아들은 조금도 아버지를 두려워하지 않고 아장아장 이릉의 무릎 위로 기어 올라온다. 그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이릉은 몇 년 전 장안에 남겨두었던, 결국 어머니와 할머니와 함께 살해당한 아이의 모습을 문득 떠올리고 무의식적으로 언짢아졌다.
이릉이 흉노에 항복하기보다 일찍, 정확히 그 1년 전부터 한나라의 중랑장 소무가 오랑캐 땅에 억류되어 있었다.
소무는 본래 평화의 사절로서 포로 교환을 위해 파견되었다. 그러나 그의 부사가 우연히 흉노의 내분에 연루되면서 사절단 전원이 붙잡히게 되었다. 선우는 그들을 죽이려 하지 않고, 죽음으로 위협하여 항복을 강요했다. 그러나 소무만은 항복을 거부하고,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스스로 검을 들어 가슴을 꿰뚫었다.
혼절한 소무에 대한 흉노의 치료법은 매우 기묘했다. 땅을 파고 불을 피워 그 위에 부상자를 눕히고 등을 밟아 피를 빼내는 거친 치료법이었다. 한서에는 이 치료법이 기록되어 있다. 다행히도 소무는 반나절 후에 숨을 되찾았다. 선우는 그에게 완전히 반해버렸다. 몇 주 후, 소무의 몸이 회복되자 측근인 위율이 다시 항복을 권했다. 위율은 소무가 심한 욕설을 듣고 치욕을 당해 물러섰다고 전했다.
그 후 소무가 지하 감옥에 유폐되어 털을 눈에 섞어 먹으며 굶주림을 면했다는 이야기나, 북해 변두리로 쫓겨나 양이 젖을 내는 것을 보고 돌아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그의 이름과 함께 너무나 유명하여 여기서는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다. 어쨌든 이릉이 답답한 여생을 흉노에서 보내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게 되었을 무렵, 소무는 이미 북해 변두리에서 홀로 양을 치고 있었다.
이릉에게 소무는 20년 지기 친구였다. 한때 같은 시기에 시중을 지낸 적도 있었다. 고집스러운 면은 있었지만, 그가 보기 드문 강직한 선비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천한 원년에 소무가 북쪽으로 떠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노모가 병사했을 때, 이릉은 양릉까지 그의 장례를 배웅했다. 소무의 아내가 남편의 귀환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집으로 시집갔다는 소문을 들은 것은 이릉이 북정으로 출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때 이릉은 친구를 위해 그 아내의 경박함에 몹시 분노했다.
그러나 자신이 흉노에 항복하게 된 후부터는 더 이상 소무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그가 멀리 북쪽에 있어서 얼굴을 마주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오히려 기뻐했다. 특히 자신의 가족이 살해당하고 한나라로 돌아갈 마음을 잃은 후에는 이 ‘한나라의 절개를 지킨 목양자’와의 만남을 피하고 싶었다.
호록고 선우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몇 년 후, 소무가 생사불명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아버지 선우가 항복시키지 못했던 이 불굴의 한나라 사신의 존재를 떠올린 호록고 선우는 소무의 안부를 확인하는 동시에, 만약 살아있다면 다시 항복을 권고하도록 이릉에게 부탁했다. 이릉이 소무의 친구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이릉은 북쪽으로 향했다.
고차수를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 거수와의 합류점에서 다시 서북쪽의 삼림 지대를 뚫고 나아갔다. 아직 눈이 남아있는 강변을 며칠 동안 나아가자, 드디어 북해의 푸른 물이 숲과 들판 너머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지역 주민인 정령족 안내인은 이릉 일행을 한 채의 초라한 통나무 오두막으로 이끌었다. 오두막의 주인은 낯선 사람 소리에 놀라 활과 화살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부터 털가죽을 뒤집어쓴, 수염이 덥수룩한 곰 같은 산사람의 얼굴 속에서 이릉은 옛 이중구감, 소자경의 모습을 찾아냈지만, 상대방이 이 호복을 입은 대관을 전 기도위, 이소경으로 알아보는 데는 한참의 시간이 걸렸다. 소무 쪽에서는 이릉이 흉노에 봉사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감동이 이릉의 마음속에서 휘몰아쳐, 지금까지 소무와의 만남을 피하게 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압도했다. 두 사람 모두 처음에는 거의 말을 주고받을 수 없었다.
이릉의 수행원들이 주변에 몇 채의 천막을 세우자, 인적이 드물던 곳이 갑자기 활기를 띠었다. 준비해 온 술과 음식이 곧바로 작은 오두막으로 옮겨졌고, 밤에는 드문 환호와 웃음소리가 숲의 새와 짐승들을 놀라게 했다. 체류는 며칠간 이어졌다.
자신이 오랑캐 옷을 입게 된 사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역시 괴로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릉은 변명하는 어조를 섞지 않고 사실만을 이야기했다. 소무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수년간의 생활은 참으로 비참했던 모양이다. 몇 년 전, 흉노의 어왕이 사냥을 하러 우연히 이곳을 지나다가 소무를 동정하여 3년간 의복과 식량을 주었으나, 그 어왕이 죽은 후로는 얼어붙은 땅에서 들쥐를 파내어 굶주림을 면하는 지경이라고 한다. 그의 생사불명 소문은 그가 기르던 가축 떼가 도적에게 습격당해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된 것에서 비롯된 모양이다. 이릉은 소무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것만은 알렸지만, 아내가 자식을 버리고 다른 집으로 갔다는 말은 차마 할 수 없었다.
이릉은 눈앞의 남자가 무엇을 목표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한나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소무의 말에서 짐작하건대, 그는 더 이상 그런 기대를 하고 있지 않은 듯했다. 그렇다면 그는 왜 이 가혹한 나날을 견뎌내고 있는가? 선우에게 항복을 청하면 중용될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소무가 그런 일을 할 리 없다는 것은 이릉에게 분명했다. 그가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빨리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릉 자신도 희망 없는 생활을 스스로 끊지 못하는 것은, 어느새 이 땅에 뿌리내린 수많은 은정과 의리 때문이며, 이제 와서 죽어도 한나라를 위해 의를 세우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반면 소무는 달랐다. 그에게는 이 땅에서의 가족도 없었다. 한나라 조정에 대한 충성심으로 생각하면, 언제까지나 절개를 지키며 황야에서 굶주리는 것과, 당장 그 절개를 불태우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에는 특별히 차이가 없어 보였다. 붙잡혔을 때, 갑자기 자신의 가슴을 찔렀던 소무가 이제 와서 갑자기 죽음을 두려워하게 되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이릉은 젊은 시절 소무의 완고함을 떠올렸다. 선우는 영화를 미끼로, 극도의 곤궁 속에서 소무를 끌어들이려 시도한다. 미끼에 걸려드는 것도, 고난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도, 선우에게 지는 것이 된다. 소무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운명과 고집 싸움을 하고 있는 듯한 소무의 모습은, 이릉에게는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어려움이나 고독을, 태연히 웃어넘기는 고집이 있다면, 그 고집은 정말로 웅장한 것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옛날 소무의 완고함이 이렇게나 큰 인내로 성장한 것을 보고, 이릉은 경탄했다.
게다가 소무는 자신의 행동이 한나라에 알려질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다시 한나라에 받아들여지는 것은 물론, 무인 지대에서 어려움과 싸우고 있다는 것을 한나라는 물론 흉노의 선우에게조차 전해줄 사람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에게도 지켜봐지지 않고 홀로 죽어가는 마지막 날에, 자신을 돌아보고 끝까지 운명을 비웃으며 만족하며 죽어가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도 자신의 업적을 알아주지 않아도 아무 문제 없다는 것이다. 이릉은 예전에 선대 선우의 목을 노리면서도 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모처럼의 행위가 무의미해지고 한나라에까지 들리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여 결국 결행의 기회를 찾지 못했다. 남에게 알려지지 않는 것을 신경 쓰지 않는 소무 앞에 서자 그는 은밀히 식은땀을 흘리는 심정이었다.
처음의 감동이 지나고 이삼일이 지나면서 이릉 안에 일종의 집착이 생겨나는 것을 어찌할 수 없었다. 무엇을 이야기하든 자신의 과거와 소무의 그것과의 대비가 마음에 걸렸다. 소무는 의인이고 자신은 매국노라고 거기까지 명확하게 생각하지는 않지만, 숲과 들, 그리고 물의 침묵에 의해 오랫동안 단련된 소무의 엄격함 앞에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유일한 변명이었던 고뇌가 마치 무의미하게 압도당하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기분 탓인지 날이 갈수록 소무의 자신에 대한 태도 속에서 뭔가 부자가 빈자에게 대하는 듯한, 우월함을 안 후에 상대에게 관대하고자 하는 자의 태도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딘가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어떤 계기에 그런 감각이 떠오를 때가 있었다. 비단옷을 입은 소무의 눈 속에 때때로 떠오르는 희미한 연민의 빛을, 호화로운 담비 가죽옷을 입은 우교왕 이릉은 무엇보다도 두려워했다.
열흘 정도 머문 후 이릉은 옛 친구에게 작별을 고하고 쓸쓸히 남쪽으로 떠났다. 식량과 의복은 숲 속의 통나무집에 충분히 남겨두었다.
이릉은 선우의 항복 권고에 대해서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소무의 대답은 명백한데, 이제 와서 그런 권고로 소무와 자신을 욕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돌아간 후에도 소무의 존재는 단 하루도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떨어져서 생각하니 소무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엄격하게 그의 앞을 가로막는 듯했다.
이릉 자신은 흉노에게 항복한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조국에 헌신한 흔적과 그에 대해 조국이 자신에게 돌려준 것을 생각하면, 아무리 무정한 비판자라도 그 "어쩔 수 없었음"을 인정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여기에 한 남자가 있어, 아무리 "어쩔 수 없다"고 생각되는 상황 앞에서도 결코 자신에게 그것을 허락하려 하지 않는 것이다.
굶주림과 추위, 고독의 고통, 조국의 냉담함, 그리고 자신의 고생이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거의 확실한 사실도 이 남자에게는 평소의 절의를 바꿔야 할 만큼의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아닌 것이다.
소무의 존재는 이릉에게 숭고한 교훈이자 동시에 초조한 악몽이기도 했다. 때때로 그는 사람을 보내 소무의 안부를 묻고, 식량과 소와 양, 융단을 보냈다. 소무를 만나고 싶은 마음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그의 안에서 항상 싸우고 있었다.
몇 년 후, 이릉은 북해 호숫가에 있는 통나무 오두막을 다시 찾았다. 도중에 구름 속에서 북방을 지키는 위병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최근 한나라 변방에서는 태수와 관리들이 모두 흰 옷을 입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백성들이 일제히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은 천자의 상임에 틀림없다. 이릉은 무제의 붕어를 알았다.
북해에 도착하여 이 사실을 소무에게 알리자, 그는 남쪽을 향해 통곡했다. 며칠 동안 그의 통곡은 계속되었고, 마침내 피를 토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릉은 점점 더 어두운 기분에 잠겼다. 그는 물론 소무의 통곡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 순수하고 격렬한 슬픔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한 방울의 눈물도 떠오르지 않았다.
소무는 이릉처럼 일족이 몰살당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형은 천자의 행렬 중에 작은 사고를 일으켰고, 동생은 어떤 범죄자를 잡지 못했기 때문에 함께 책임을 지고 자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나라 조정으로부터 후한 대우를 받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눈앞에서 소무의 순수한 통곡을 지켜보는 동안, 이전에는 그저 강렬한 고집이라고 생각했던 그의 마음속 깊은 곳에 비할 데 없이 맑고 깨끗한 한나라 국토에 대한 사랑이 가득 차 있음을 이릉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것은 의리나 절개와 같이 외부에서 강요된 것이 아니라, 억누르려 해도 억누를 수 없는, 항상 솟아나는 가장 친밀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이었다.
이릉은 자신과 친구 사이에 있는 근본적인 차이에 직면하여, 좋든 싫든 자신에 대한 어두운 의심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소무의 곁을 떠나 남쪽으로 돌아오자, 마침 한나라에서 사자가 도착한 참이었다. 무제의 죽음과 소제의 즉위를 보고하고, 앞으로의 우호 관계를 맺기 위한 평화 사절이었다. 그 사자로 온 사람은 이릉의 오랜 친구인 농서의 임입정 등 세 사람이었다.
그해 2월, 무제가 붕어하고 겨우 여덟 살인 태자 불릉이 즉위하자, 유조에 따라 시중봉거도위 곽광이 대사마대장군으로서 정사를 보좌하게 되었다. 곽광은 원래 이릉과 친했고, 좌장군이 된 상관걸 또한 이릉의 오랜 친구였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이릉을 다시 불러들이자는 논의가 나왔던 것이다. 이번 사자에 이릉의 옛 친구들이 선택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선우 앞에서 사자의 공식적인 용무가 끝나자, 성대한 주연이 열렸다. 평소에는 위율이 접대역을 맡았지만, 이번에는 이릉의 친구가 왔기 때문에 그도 끌려나와 연회에 참가했다. 임입정은 이릉을 보았지만, 흉노의 대관들 앞에서는 "한나라로 돌아가라"고 말할 수 없었다. 자리를 사이에 두고 이릉을 응시하며, 눈짓을 하면서 자신의 칼자루 고리를 쓰다듬어, 그 뜻을 암묵적으로 전하려 했다. 이릉은 그것을 보고, 상대방이 전하고 싶은 것을 거의 짐작했다. 그러나 어떻게 응해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공식 연회가 끝난 후, 이릉과 위율 등만이 남아, 소와 술, 그리고 박희로 한나라 사자를 대접했다. 그때, 임입정이 이릉을 향해 말했다. "한나라에서는 지금 대사령이 내려져, 만백성은 태평한 인정을 누리고 있습니다. 새 황제는 아직 어리시므로, 그대의 오랜 친구인 곽자맹과 상관소숙이 주상을 보좌하여 천하의 일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입정은 위율을 완전히 오랑캐로 간주했고, 사실 그것과 다름없었지만, 그 앞에서는 분명히 이릉에게 설득하기를 주저했다. 단지 곽광과 상관걸의 이름을 들어, 이릉의 마음을 끌려고 한 것이다. 이릉은 묵묵히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입정을 빤히 쳐다본 후, 자신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 머리카락도 추결로, 이미 중국의 풍습이 아니었다. 잠시 후 위율이 옷을 갈아입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 처음으로 입정이 이릉의 이름을 불렀다. "소경이여, 다년간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겠는가. 곽자맹과 상관소숙으로부터 안부를 전해달라고 했다." 그 두 사람의 안부를 묻는 이릉의 서먹서먹한 말에, 입정은 거듭 말했다. "소경이여, 돌아가 주시오. 부귀 따위는 말할 것도 못 되지 않소? 부디 아무 말 말고 돌아가 주시오." 소무의 곁에서 막 돌아온 이릉도, 친구의 간절한 말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이, 그것은 이미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가는 것은 쉽다. 그러나 또다시 모욕을 당할 뿐이 아니겠는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위율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입을 다물었다.
모임이 끝나고 헤어질 때, 임립정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릉에게 다가가 낮은 목소리로 다시 돌아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이릉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부는 다시 치욕을 당할 수 없다." 그 말에는 힘이 없었지만, 위율이 들을까 봐 두려워한 것은 아니었다.
5년 후, 소제 시원 6년 여름, 북방에서 조용히 죽을 것이라 여겨졌던 소무가 우연히 한나라로 돌아오게 되었다. 한나라 천자가 상림원에서 얻은 기러기 발에 소무의 비단 편지가 묶여 있었다는 유명한 이야기는 물론 소무의 죽음을 주장하는 선우를 설득하기 위한 꾸며낸 이야기이다. 19년 전, 소무를 따라 호지로 온 상혜라는 자가 한나라 사신과 마주쳐 소무의 생존을 알리고, 이 거짓말로 소무를 구출하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곧바로 북해 위로 사신이 파견되었고, 소무는 선우의 뜰로 끌려 나왔다. 이릉의 마음은 동요했다. 소무가 한나라로 돌아갈 수 있든 없든, 그 위대함은 변함없고, 따라서 이릉의 마음의 고통도 변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러나 하늘은 역시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이릉을 깊이 강타했다. 보지 않는 듯하면서도, 역시 하늘은 보고 있다. 그는 숙연해져 두려워했다. 지금도 자신의 과거를 결코 비난할 생각은 없지만, 소무라는 남자가 여기에 있어, 불가능하지 않았을 자신의 과거마저 부끄럽게 만들 일을 당당히 해냈고, 게다가 그 흔적이 이제 천하에 현창되게 되었다는 사실은 이릉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었다. 가슴을 쥐어뜯는 듯한 나약한 마음이 질투가 아닌가 하고, 이릉은 극도로 두려워했다.
이릉은 송별연을 열었다. 친구들과 함께, 그의 마음속에는 하고 싶은 말이 산더미 같았다. 그러나 결국, 그가 오랑캐에게 항복했을 때의 뜻이 어디에 있었는가 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 뜻을 이루기도 전에, 고국의 일족이 멸족되어, 더 이상 돌아갈 방법도 없게 된 것이다. 그것을 입에 담으면 푸념이 될 것이라 생각하여, 그는 한마디도 그 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연회가 무르익는 가운데, 참지 못하고 일어나 춤을 추고 노래하기 시작했다.
「만 리 길을 넘어 사막을 건너네. 그대를 위해 흉노에 맞서네. 길은 끊기고 화살과 칼날은 부서지며, 병사들은 죽고 이름은 사라지네. 늙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으니, 은혜를 갚으려 해도 어디로 돌아가야 할까…」
노래를 부르며 그의 목소리는 떨렸고,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나약한 자신을 꾸짖으면서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소무는 십구 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갔다.
그 후 사마천은 집필을 계속했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책 속의 인물로서 살아남아 있었다. 현실 생활에서는 다시 입을 열지 못했지만, 노중련의 말을 빌려 그의 생각은 격렬하게 이야기되었다. 오자서처럼 스스로 눈을 도려내고, 인상여처럼 진왕을 꾸짖었으며, 태자 단처럼 형가를 보내는 눈물을 흘렸다. 초나라 굴원의 슬픔을 이야기하고, 그가 멱라수에 몸을 던지려 했을 때의 심정을 길게 인용했을 때, 사마천은 그 문장이 마치 자신의 작품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원고를 작성한 지 십사 년, 부형의 고통을 받은 지 팔 년. 도읍에서는 무고의 옥이 일어나고, 여태자의 비극이 펼쳐지고 있을 무렵, 부자 상전의 이 저작은 거의 처음 구상했던 대로의 통사가 완성되었다. 증보와 개정을 거듭하는 동안, 다시 몇 년이 흘렀다. 사기는 백삼십 권, 오십이만 육천오백 자에 이르는 대작이 되었고, 완성된 것은 무제의 붕어가 가까울 무렵이었다.
열전 제70, 태사공 자서의 마지막 붓을 놓았을 때, 사마천은 책상에 기대어 아련한 생각에 잠겼다. 깊은 한숨이 뱃속에서 새어 나왔고, 눈은 뜰 앞의 홰나무 덤불을 향하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텅 빈 귀로 그는 뜰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한 마리 매미 소리에 귀 기울이는 듯했다. 기쁨이 있어야 할 텐데, 김 빠진 막연한 쓸쓸함이 마음을 덮고 불안이 앞섰다.
완성된 저작을 관청에 바치고 아버지의 묘 앞에서 그 보고를 마칠 때까지는 긴장하고 있었으나, 그것이 끝나자 갑자기 심한 허탈감이 밀려왔다. 빙의가 떠난 무당처럼 몸과 마음이 축 늘어져 무너졌고, 아직 육십을 갓 넘긴 그는 갑자기 십 년도 더 늙은 것처럼 쇠약해졌다. 무제의 붕어도 소제의 즉위도, 과거의 태사령 사마천에게는 더 이상 아무 의미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릉과 소무가 헤어진 후의 그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원평 원년에 오지에서 사망했다는 것만이 알려져 있다.
이미 일찍이 그와 친했던 호록고 선우는 죽고, 그 아들 호연 선우의 시대가 되어 있었다. 그 즉위에 얽혀 좌현왕, 우곡리왕의 내분이 일어났고, 이릉도 본의 아니게 그 싸움에 휘말렸을 것이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다.
한서 흉노전에는 이릉의 아들이 오지에서 태어나 오적도위를 세워 선우에게 맞서고, 호한야 선우에 대항하여 실패한 것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선제 오봉 2년의 일로, 이릉이 죽고 나서 정확히 십팔 년 후의 일이었다. 이릉의 아들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었고, 이름은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