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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제이여라 · 2026-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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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는 생각보다 깨끗했다. 계단에선 흔히 나는 삐걱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지하를 관리하던 하인 두 명이 크리스와 세라에게 고개를 숙였다. 크리스는 가장 가깝게 배치된 책장에서 책을 꺼냈다. 붉은색 표지를 지닌 책이었다. 윗층과 다른 점이라면 지나치게 얇고 제목이 적혀있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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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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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고개를 내밀었다. 크리스는 천천히 책을 넘겨 목차를 찾아냈다. 목차도 존재하지 않았다. 책의 내용도 모두 백지였다. 책장에서 고른 다음 책도, 다음다음 책도 모두 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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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아무것도 안 적혀 있잖아.”

“마법 공식이라도 넣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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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세라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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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마법 쓸 줄 알아? 그런 건 귀족만 쓸 수 있는 거 아니었어?”

“실용 마법이면 쓸 수 있어. 예를 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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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책 위로 선들이 그어졌다. 선은 모여 단어를, 단어들은 문장을 만들었다. 크리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세라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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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을 넣었어?”

“아니, 이건 내가 한 건 아냐. 애초에 실용 마법은 간단한 것들만 이뤄주잖아. 이건 실용이 아니라 책에 걸려있는 마법인 것 같은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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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천천히 글씨를 읽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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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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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커다랗게 적힌 글씨를 읽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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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무거워지는 느낌이 나더니 표지가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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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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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와 크리스가 힘을 합쳐 표지를 넘기려도 해도 넘겨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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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무거운 추가 달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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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책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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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넘어가지 않거나 종잇장이 전부 백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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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선 조사를 할 수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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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엔 책장뿐이었고 그나마 볼 수 있는 책 제목도 엉망진창으로 쓰여 있었으므로 결국 두 사람은 지하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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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짜잔, 하고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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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성과는 있었어?”

“지금 장난해?”

“책이 그냥 닫혀버리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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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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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게 무슨 소리야?”

“책 표지가 안 넘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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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머리카락 덩이를 보내 책 표지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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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리에의 무력에도 책은 열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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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하네. 이런 경우는 나도 처음 보는데.”

“결국 성과는 로지서라는 단어밖에 없었네.”

“로지서가 대체 뭐길래 이렇게 숨기는 거지?”

“귀족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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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말을 멈췄다. 리에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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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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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세 사람 사이에서 정적이 돌았다. 무언가 어색한 정적이. 정적을 눈치챈 리에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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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 공부를 시작해볼까?”

“공부?”

“시험에 통과해야지. 적을 알면 백전백승, 일단 적이 뭔지 알아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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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구석을 가리켰다. 아까 리에가 건네줬던 책 두 권이 놓여 있었다. 크리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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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보고 의학을 공부하라고?”

“겉으로 보기엔 의학책이지만 그건 의학책이 아니거든. 이리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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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머리카락으로 책을 받았다. 손을 허공에 흔들자 종이에 적힌 글씨들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세라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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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이 안 걸려 있다는 건 저건 기록용이 아닌가보네?”

“정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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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책을 건넸다. 크리스가 다시 책을 받아 읽었다. 앞서 나와 있던 의학 공식은 사라지고 처음 보는 내용의 글들이 적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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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터 배우는 황실 안내서라고 하면 좀 이해가 되려나?”

“그러고 보니 우리 황궁에 들어간다고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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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책을 살펴보다 사색이 되어 리에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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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것들 전부 다 외워야 해?”

“응.”

“시험에 나온다는 소리야?”

“황실에서 일하게 될 테니 당연히 시험에 나오지. 네가 황제라면 무지한 사람과 아는 사람, 뭘 뽑겠어? 당연히 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을 뽑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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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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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아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건 예쁜 변명일 뿐이야. 일단 하고 봐야지. 이번에 바뀐 황제는 그런 것에 더 민감하니까 잠은 다 잤다고 생각해.”

“황제가 바뀌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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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순간 멈칫했다. 그녀는 웃으며 이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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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최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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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는 크리스와 세라에게 책 한 권씩 쥐어주었다. 그러곤 다시 모자를 푹 눌러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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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가봐야 해.”

“알려준다며. 어디가.”

“동생이 있거든. 곧 동생이 돌아올 시간이라 얼굴 보러 가야 해. 그때까지 천천히 읽어봐. 아니면 집을 더 찾아봐도 돼.”

“야, 잠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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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그녀를 어떻게든 막으려 했지만 리에는 머리카락을 사용해 멀리 뜀박질 한 후였다. 세라가 혀를 쯧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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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뭐하는 애인지 모르겠네.”

“읽기나 하자. 이게 최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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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와 세라는 다시 옹기종기 모여 책을 펼쳤다. 리에가 말한 것처럼 무언가 크게 바뀌었는지 책은 생각보다 두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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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악, 황실 계급도에 예법에 금기? 이걸 다 외워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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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머리를 붙잡았다. 크리스는 다음 장으로 종이를 넘겼다. 황실의 역사에 대해 적혀 있었는데, 최근 세대에 들어선 내용이 복잡하고 무거운 분위기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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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기록서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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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은 단조롭게 상황을 서술하고 있었다. 마치 관찰자 같았다. 계속 누군가가 기록하고 있는 모양인지 내용이 가끔 바뀌기도 했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문장들이 있었으므로 두 사람은 확실한 것부터 보기로 했다. 가장 최근에 서술된 새로운 황제에 대한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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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황비의 폭력적인 대리청정을 멈추고 새로운 황제가 탄생했다. 그는 후궁 메리 제이의 유일한 아들로, 역사상 가장 총명한 황제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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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이름은 키리오 아르티나. 두 사람의 시선이 같은 단어에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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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오네. 우리 황제를 조사하나 봐.”

“키리오? 아니, 잠깐만. 아르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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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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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황제를 우리가 조사해야 한다고? 아니, 그것보다 후궁 소생이잖아?”

“후궁 소생인게 왜?”

“후궁 소생은 절대로 황제가 될 수 없을 텐데.”

“그런 건 차별 아냐?”

“아냐. 유전적으로 황제의 힘을 받지 못할 거야. 내가 알기엔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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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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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 사람을 우리보고 조사해라?”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게 새로운 황제의 비밀을 캐는 거네.”

“그게 실질적으로 가능해? 황제라고. 황제의 비밀이면 우리의 목숨이 달려있잖아. 잘못하다간 우리 목이 날아갈 수 있어. 게다가 글 적힌 거 보면 절대로 정상적인 방법으로 황제가 된 건 아닌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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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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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이건 거절하는 게 좋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아니야. 차라리 길거리에서 노숙하지.”

“응. 나도 이건 아닌 것 같아.”

“그렇게는 안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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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가 다시 사람의 형체로 변했다. 세라가 고개를 획 돌리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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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준 성의라면 다시 돌려줄테니⋯⋯.”

“그 문제가 아니다. 너흰 이미 구조에 들어갔다. 말은 결국 사라지지만 남는 건 기록이다. 선택은 되돌릴 수 없어. 이미 기록됐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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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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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조사를 진행하는 게 맞았는데.”

“쉽게 알고 싶다면 협조해라. 나쁜 제안은 아닐 것이다. 크리스는 이미 납득한 것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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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가 크리스를 돌아봤다. 크리스는 그림자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사색이 된 얼굴로 세라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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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 진짜 하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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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는 천천히 다시 커튼으로 돌아갔다. 세라가 뭐라 말하려 하던 그때, 크리스가 그녀의 손목을 잡고 마당으로 이끌었다. 마당에 딸린 창고 구석에 들어간 크리스가 손바닥을 펴고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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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사람들을 이용하자.”

“이용이라니?”

“저 사람들은 뭔가 알고 있어. 우리를 그냥 고른 게 아니야. 우리도 우리만의 정보가 있어야지.”

“그래도 그렇지 이런 위험한 일을⋯⋯.”

“돈이 모일 때까지 하는 척만 하자. 그러면 되겠지. 확신은 없지만 그들의 말을 들어주는 게 제일 손해가 적어. 우리도 안정적으로 있을 터전이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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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세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만 마치 외줄에 올라선 것 같았다. 다시 거실로 들어오면서 크리스가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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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어떻게 하느냐인데. 갈피가 안 잡혀. 가능이나 할까.”

“당연히 가능하지. 우리 장로님의 눈을 과소평가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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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박수를 짝, 치며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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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 동생이 좀 아파서. 우리 장로님은 절대로 헛된 판단 같은 거 안해. 너희에게 뭔가 있다고 생각하셨을 테고. 그러니 해. 한다고 했으니 일을 진행시켜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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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고처럼 보이는 방에서 리에가 칠판을 끌고 왔다. 크리스와 세라는 멍하게 그 광경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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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주긴 했지만 부족할 것 같아서 내가 설명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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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필로 칠판을 치며 리에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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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들어. 궁인 시험에는 단계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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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는 천천히 칠판에 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우글거리는 선이 모여 모양을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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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험 전엔 수습 궁인으로 들어가게 될 거야. 군대로 치면 훈련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돼. 거기서 약 2개월 간 교육을 받고 시험을 치룬 후 그 능력에 따라 부서를 배정받거나 쫓겨나게 될 테지.”

“수습⋯⋯?”

“세라 너, 설마 이것도 모른다고 하는 건 아니지? 궁의 예법이나 기초적인 일을 배우는 단계야. 당연히 급여는 나오니까 쟁여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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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에가 다시 칠판에 글씨를 썼다. 선이 뻗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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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서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세 개만 알려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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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갈래 밑엔 기록부라는 글씨가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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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기록부라는 곳이야. 정보부라고 부르기도 해. 진실을 기록하고 관리하는 곳이지. 아까 내용이 변하는 책 봤지? 그것도 기록부에서 관리하는 거야. 대부분의 기록물은 이 기록부를 거쳐서 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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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갈래. 리에가 분필을 바쁘게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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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는 시중부. 황실 사람들을 모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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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크리스와 세라의 시선이 분필을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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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음, 이곳저곳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리하는 곳이야. 궁 내의 치안을 관리하는 곳이니까 치안부라고 하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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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 여러 부서들이 적혔고 분필이 여러개의 갈래를 하나로 묶었다. 그 위로 관리부라는 글씨가 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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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 부서들을 완벽하게 관리하는 관리부까지. 관리부의 수장은 황제야. 황제가 직접 제안을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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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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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안이 와야 갈 수 있는 거야?”

“응. 마음대로 들어가지 못해. 그렇기 때문에 너희가 수습 궁인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룹별로 관리자가 붙어. 그 관리자가 너희를 판단해서 윗선에게 보고하는 그런 식. 뭐 너희가 직접 느끼면 알겠지.”

“복잡하네.”

“말했잖아. 이번 황제는 굉장히 까다롭다고. 관리부의 수장은 결국 황제니까 잘 보이도록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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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듣고 있던 세라가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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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궁금한 거.”

“오, 좋은 자세야. 뭔데?”

“황제는 어떤 사람이야?”

“잔인하지. 사람을 그렇게 죽였으니.”

“그런 사람을 우리보고 조사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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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길이 캄캄하잖아. 세라가 웅얼거리며 무릎에 고개를 묻었다. 그러나 말거나 리에는 설명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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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에서 눈이 중요한 건 알고 있지?”

“응. 이름보다 눈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했잖아. 사람은 세계이며 눈동자는 그 세계를 들여다보는 창이기 때문에.”

“맞아. 궁에선 눈을 보여주지 마. 남의 세계를 함부로 보는 행위는 예의에 어긋나. 게다가 황궁에서 그러면 매타작 맞는 거지.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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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뒤로 대문이 닫혔다. 닫힌 대문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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